소설리스트

단태신곡-95화 (95/293)

<-- 95 회: 3-14 -->

창을 들어 막으려 했던 병사들은 륜사가 휘두른 손짓에 휙 날아갔는데, 창과 함께 70개의 계단 아래로 굴렀다. 명국영의 명치를 어깨로 쳤던 그 병사는…… 놓친 창에 베여 뺨 한쪽이 잘렸지만 륜사는 뒤는 보지도 않고 시청 안으로 들어섰다.

“나 륜사가 왔소이다!”

마법의 기운을 담아서 외치자, 그 소리가 쩌렁쩌렁 시청 전체로 퍼져 나갔다.

시청에 속한 마법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마괘를 손에 쥔 마법사들도 있었다. 마둔수탑의 수련사보다 못한 실력의 소유자들을 힐끗 쳐다본 륜사는 단숨에 ‘광마수’를 펼쳐 그들을 뒤로 날려 버렸다. 륜사의 몸에서 뻗어 나온 물의 막이 그 마법사들을 뒤로 튕겨 냈는데, 일부가 쥐고 있던 마괘는 모조리 부서지고 말았다.

륜사는 신음을 흘리는 그들을 비웃으며 지하로 내려갔다. 병사들이 창을 들고 있었지만 감히 마둔수탑 최강의 마법사이자, 천마에 가장 가까운 용마로 세상에 알려진 륜사를 막지는 못했다. 그들은 막는 시늉만 하면서 륜사를 따라갈 뿐이었다.

륜사가 지하 3층으로 내려가 방단의 고문실 문을 열자, 피 냄새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윗도리를 벗어 근육질 몸을 드러낸 사내가 밧줄에 묶여 허공에 매달린 단태의 등에 채찍질을 하고 있었다. 단태는 정신을 잃었는지 채찍에 살점이 떨어질 때마다 손과 발만 가끔 경련을 일으켰다.

륜사는 단태의 입에 주목했다. 혀를 물어 자살하지 못하도록 나무로 만든 틀을 고정시켜 놓았다. 아마도 고통을 못 이겨 혀를 깨물었던 모양이다.

‘사부를 잘못 만나서 네가 고생하는구나.’

륜사는 단태 앞으로 걸어갔다.

사내는 중요한 작업을 방해받아서 기분이 나빠졌는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너, 뭐야?”

륜사는 손을 뻗었고, 희미한 물안개가 그 손에서 밧줄처럼 튀어나와 그 사내의 목을 옥죄었다. 륜사가 손목의 각도를 틀자, 사내는 신음을 흘리며 끌려왔다.

사내의 목을 움켜쥔 륜사가 물었다.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대, 대체 누구냐?”

“저 아이의 사부.”

륜사는 단숨에 죽이려다 상대가 시청 소속 관리라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벽에다 던져 버렸다. 팔과 다리가 하나씩 부러진 그는 기절하고 말았다. 분이 풀리지 않은 륜사가 단태의 등을 채찍질한 그 사내의 오른쪽 손가락을 자근자근 밟자, 우두둑 손가락 뼈 부러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그 방을 채웠다.

“……이런 꼴로 만들다니.”

륜사는 물로 칼을 만들어 밧줄을 잘랐다. 앞으로 쓰러지는 단태를 가볍게 안은 그는 몸을 돌렸다. 이미 바깥 복도에 동원 가능한 마법사들, 병사들이 모두 모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 사람이 방으로 들어섰다.

시장 반명이었다.

“자네다운 행동이야.”

“시장님다운 행동이군요.”

“왜 맹파루체에 가지 않았나?”

“이 아이의 몸을 보고도 그런 질문이 나옵니까?”

륜사가 소리치자 뒤쪽에 서 있던 마법사, 병사 들은 움찔 몸을 떨었지만 반명은 유유자적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그 여유로운 행동에 륜사는 단숨에 목을 잘라 버리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러나 륜사는 벌써 오래전에 그런 식의 충동적인 행동이 어떤 재앙을 가져오는지 경험한 바 있었다.

“그 아이는 추명의 끄나풀이네.”

“침대 아래에서 불온한 책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까?”

“……자네, 정보가 빠르군. 이제 막 도착했을 텐데 말이야.”

시장의 눈이 빛났다.

“제가 시장님의 침실에서 그 책을 발견한다면 시장님도 추명의 끄나풀이겠네요. 지금 당장 시장님의 침실로 가서 확인해 볼까요?”

“…….”

시장은 말없이 륜사를 노려봤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저는 다만 책과 서류만으로 사람을 데려가서 이 지경으로 만든 게 비정상적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륜사는 상대가 시장임을 감안해서 말했다. 정면으로 충돌한다면 주위 사람들이 크게 다칠 것이다.

반명은 문을 닫고 륜사 앞으로 걸어왔다.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대화를 듣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한 것이다.

“오늘 새벽에 추명이 시청을 습격했네. 물론 실패에 그쳤지만 말일세. 의심스럽다면 생포된 놈을 보여 줄 수도 있네. 추명이 무엇을 노렸겠나? 바로 저 아이를 구하려는 거지. 그보다, 자네는 시장인 내 명령을 어겼네. 맹파루체에서 공식적으로 항의할 테고, 나 역시 이번 일을 그냥 넘기지 않을 생각이네.”

“그렇다면 저는…… 마둔수탑을 떠나겠습니다. 당연히 물의 도시도 영원히 안녕이겠지요.”

예상외의 강수에 시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륜사는 제멋대로에 융통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는 괴팍한 놈이지만 실력만큼은 용금탄의 마법사들도 인정할 정도로 진짜였다. 만약 륜사가 마둔수탑을, 이 도시를 떠난다면…… 많은 마법사들이 그 이유를 궁금해할 테고, 자연스럽게 시장의 무리한 행동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터였다. 아무리 150년 이상 이 도시를 다스려 온 가문이라고 해도 주위의 평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압력이었다.

“……자네도 정치를 잘 아는구먼.”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으니까요.”

“좋아. 이렇게 하지. 앞으로 고문은 없을 걸세. 내가 보증하지. 원한다면 언제든지 찾아와서 저 아이의 몸을 살피게. 허나, 자넨 저 아이를 이 방에서 데리고 나갈 수 없네. 만약 그렇게 하겠다면 난 11인위원회의 힘을 모두 동원해서 마둔수탑의 문을 닫아 버릴 걸세. 자네가 여기 남든, 다른 곳으로 가든 상관없이.”

“…….”

이번엔 륜사의 얼굴이 굳었다.

“지금의 자네를 만들어 준 탑을 무너뜨릴 만큼 그 아이가 중요한가? 천린풍탑을 찾는 데 도움이 될 풍혈지체라서 말인가?”

“……어떻게 그걸?”

륜사는 깜짝 놀랐다. 저자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아냈을까?

“난 도시의 눈이라네. 내가 모르는 일은 없네. 있어서도 안 되고.”

반명은 기절한 사내의 몸을 살피더니 혀를 찼다. 그가 손을 뻗어 부러진 부분을 짜 맞추자 툭, 툭 소리가 들렸다. 간단한 동작인데 륜사는 그 정확하고 빠른 움직임에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제야 륜사는 시장의 속내를 깨달았다.

‘저게 바로 그 유명한 반극권이로군. 지금 내 앞에서 협박을 하는 건가? 마법사 따위는 금세 죽일 수 있다고?’

몸을 쓰는 사람은 체질적으로 머리를 쓰는 사람을 싫어한다. 용병이 마법사를 증오하는 이유였다. 마찬가지로 머리를 쓰는 사람은 몸 쓰는 사람을 무식하다고 깔본다. 마법사가 용병을 업신여기는 이유였다. 엄밀히 말한다면 저 반명은 술 취해서 돌아다니다가 아무나 만나면 행패를 부리는 건달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고 반명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용병 특유의 예리한 전투력은 이미 경험한 적이 있었다.

더 이상 시장을 자극해서는 득 될 게 없다고 판단한 륜사는 피로 흥건한 탁자 위에 단태를 눕혔다. 가슴 부분에 손을 올린 그는 자신이 아는 가장 강력한 치유 마법을 펼쳤다. 눈속임으로 피부의 상처만 아물게 하는 하급 마법이 아니라, 몸 자체의 회복력을 극대화시키는 ‘숙잠체수’였다. 푸르스름한 기운이 단태에게 흘러들자, 곧 호흡이 안정적으로 돌아왔다. 이 정도면…… 위험한 순간은 넘긴 셈이었다.

거칠게 숨을 내뱉은 륜사가 시장을 노려봤다.

“맹파루체에는 가지 않을 겁니다.”

“징계위원회가 열릴 텐데도?”

“상관없습니다.”

“마음대로 하게.”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살짝 고개를 숙인 륜사는 아직 의식이 없는 단태를 두고 밖으로 나왔다. 잔뜩 긴장한 마법사, 병사 들이 륜사를 보고는 뒤로 물러섰다. 륜사는 그들 사이를 산책하듯 지나서 시청 밖으로 나왔다.

시청을 올려다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다.

이기기 힘들지도 모른다.

륜사는 계단을 내려와 탑 쪽으로 걷다가 썰매를 타고 다가오는 명국영을 발견했다.

“여어, 친구!”

“……어떻게 됐나? 단태는?”

“저 안에 있네.”

“자네……”

“걱정 말게. 언제든지 확인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 냈으니까. 앞으로 단태를 고문하진 못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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