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100화 (100/293)

<-- 100 회: 3-19 -->

“닭 잡을 힘조차 없으면서 천하를 움직이는 사람이 여기 용금탄에는 있더구나. 돈은 중요하다.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마법과 무력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힘을 쥔 자는 모든 것을 쥘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혜가 없으면 결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없다.”

“그렇습니까?”

누천파는 속으로 명국영 같은 서생을 왜 높게 평가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불평을 해댔 다.

“아직 네가 준비가 안 된 게다. 아직 명 선생의 진가를 보지 못한 게야. 허나, 아버지의 얼굴을 봐서라도 명 선생에게 잘해라. 그러면 훗날 넌 천군만마를 얻게 될 테니까.”

“……그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누천파는 평소 존경하는 아버지의 충고라서 받아들였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찬 바람을 맞으며 반우현이 누천파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누천파는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을 하는 대신, 그녀를 보며 빙긋 웃었다.

“비행하는 동안 네 얼굴을 보니까 연금술 공부에 진전이 있는 모양이야.”

“너 역시.”

“황궁으로 돌아가면 서로의 성과를 알려 주는 게 어때?”

“좋지.”

누천파가 손바닥을 들어 보이자 반우현이 짝 소리가 나게 손바닥으로 쳤다.

두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쯤 축제가 한창이겠다.”

반우현이었다.

“기억나? 우리 어릴 때 불꽃을 쏘는 곳에 놀러 가서 장난을 치다가 불꽃이 터져서 얼굴이 새까맣게 변했잖아.”

“아, 맞아. 기억난다.”

반우현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순수하게 하루를 놀면서 보냈던 시절을 떠올렸다. 문득 그 시절이 그리웠다. 그때는 참 자연스러웠다. 억지로 무엇인지를 할 필요가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삶은 힘겨운 노력으로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부담스러운 것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번에 연금술의 비밀 중 일부를 풀어내어 무척 기뻤지만, 앞으로 남은 과정을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혔다. 평생 용의 유산을 붙잡고 있어도 연금술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누천파와 성과를 나누려는 것 역시 언젠가 벽에 막히면 조언을 구할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그 녀석이 생각났다.

용의 유산을 발로 걷어차 버린 멍청한 종자.

그러고 보니 유타루체에서 온 편지에 그 녀석이 마둔수탑의 종자장이 되었다는 내용이 기억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륜사의 독단적인 행동에 위기의식을 느낀 아버지와 11인위원회가 방단을 이용하여 그 녀석을 잡았다. 륜사를 압박하기 위한 경고의 일환이었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반우현은 아깝다고 생각했다. 잘만 가르치면 쓸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차라리 노예로 만들어 곁에 두고 요긴하게 써먹고 싶은데, 아버지에게 말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점은 반우현이 가장 잘 알았다.

반우현은 눈 덮인 세상을 내려다보는 누천파의 얼굴을 힐끔 쳐다봤다. 그녀는 누천파가 왜 유타루체로 가는지 알고 있었다. 누구도 그녀에게 말해 주지 않았지만, 미루어 짐작하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어쩌면 이번 일은 누천파에겐 고대하던 기회일지도 몰랐다. 어릴 때부터 무시당한 상대에게 처절한 복수를 할 수 있을 테니까.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오라버니, 오라버니라고 부르며 따라다녔던 그 사람이 유타루체를 떠난다니. 마음 한구석엔 나서서 륜사를 보호하고 싶은 부분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러나 반우현은 철부지 소녀가 아니었다. 무엇이 중요한지 스스로 결정할 나이였고, 그녀 스스로도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륜사는 좋은 사람이지만, 중요한 사람은 아니었다.

반우현이 보기엔 그랬다.

누천파는?

‘중요한 사람이지. 나처럼 용의 유산을 물려받았으니까. 아마 나처럼 더 큰 꿈을 꾸고 있을 테니까.’

반우현은 처음으로 누천파를 결혼 상대로 생각해 봤다. 아직은 어색했다. 워낙 어릴 때부터 친한 사이여서 남자로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저 멀리 물의 도시가 나타났다.

지금은 얼음의 도시였다.

“어……?”

유타루체의 서쪽 방책 너머에…… 있어서는 안 될 무언가가 물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아직 한참 먼 곳인데도 그 푸르스름한 머리가 보였다.

자신도 모르게 일어선 반우현은 입을 벌렸다.

누천파도 마찬가지였다.

“저거, 수룡이지?”

“……아마도.”

반우현의 질문에 누천파가 대답했다.

두 사람은 방책 앞을 맴돌던 수룡 유천주가 거대한 꼬리로 방책을 무너뜨리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수룡은 너무도 간단히 방책을 넘어 운하와 거주지로 난입했다. 모습을 드러낸 수룡은…… 두 사람이 타고 있는 천마룡보다도 훨씬 컸다.

수룡이 유타루체를 유린하는 동안, 누천파는 용마사에게로 가서 서두르라고 지시했다.

천마룡은 빠르게 물의 도시로 날아갔다.

@

평굉의 저택을 지키는 용병 한 무리를 광마수로 날려 버린 륜사는 족륜수를 펼쳐 악어들이 돌아다니는 연못을 가볍게 건넜다. 족륜수는 땅뿐 아니라 물 위에서도 이동을 가능하게 해 주는 마법이었다. 물의 바퀴를 타고 단태가 알려 준 입구로 들어서자 진동이 느껴졌다. 귀로 들을 수는 없지만…… 그 진동만으로도 이 아래쪽에서 소리 마법진이 활성화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의 바퀴를 없앤 륜사는 주먹을 움켜쥐고 경사진 통로를 노려보았다. 이미 수룡이 방책을 넘어와서 소리 마법진을 중단시킨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륜사는 심호흡을 하면서 손을 앞으로 뻗었다. 이런 순간을 위해서 그동안 틈날 때마다 반지에 마력을 집어넣었다. 돈으로 따지면 족히 1만 마전에 달하는 마력석에서 추출해 낸 마력이 이 다섯 개의 반지에 저장되어 있었다.

대마법사라고 해도 맨몸으로는 펼칠 수 있는 마법에 한계가 있었다. 마력석이 곧 돈인 세상에서 평소 마력석을 구입하여 반지에 박힌 보석에 저장하지 않으면 필요한 순간에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마법사는 혼자만의 힘으로 능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내가 그동안 번 돈을 이런 식으로 써 버리다니…….’

아깝지만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륜사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 주문이 완성되자, 뻗은 두 손 앞에 푸른색의 마법진이 생성되었고, 거기서 무엇이든 휩쓸어 버릴 기세의 물살이 튀어나와 통로로 흘러갔다. 흡사 홍수라도 난 것처럼 콸콸 물이 통로를 따라 흘러 지하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물살은 나무 상자를 부수었고, 잠긴 문을 뚫고 들어갔으며, 급기야 가장 아래쪽에 설치된 소리 마법진을 휩쓸었다. 그 마법진은 물에 잠기자마자 작동을 멈췄다.

지하 공간을 물로 다 채운 륜사는 숨을 헐떡거렸다. 파란색이었던 반지의 보석은 이제 회백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법사가 된 이후 번 돈을 모조리 들여서 저장한 마력이 한순간에 사라지자 허탈한 마음마저 들었지만 륜사는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륜사는 숨마저 멈추고 말았다.

하늘에…… 거대한 용이 떠 있었다.

천마룡은 아니었다.

“저, 저게 왜 하늘에 떠 있지?”

륜사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림자가 륜사는 물론 평굉의 저택 전부를 덮었다가 사라졌다. 수룡 유천주의 그림자였다. 항상 호수 아래에 몸을 숨긴 터라 누구도 유천주가 하늘로 날아오르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펼친 날개 곳곳에 해초가 붙어 있었지만, 유천주가 하늘을 나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륜사는 그 거대한 몸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가…… 유천주가 어디로 날아가는지 깨달았다.

도시 중앙이었다.

거기에는 시청이 우뚝 솟아 있었다.

평소라면 이 재앙 중에서도 얼굴이 까맣게 탈 시장의 속내를 생각하며 키득거렸겠지만, 시청 중앙탑 꼭대기에 단태가 갇혀 있는 지금은 오히려 륜사의 속이 타들어 갔다. 저 굵고 힘 있는 꼬리로 탑을 건드리기만 해도 단태는…… 와르르 무너진 탑의 잔해에 깔려 압사당하고 말 것이다.

탈진 직전인 륜사는 힘을 내어 족륜수를 펼쳐 질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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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국영은 취영루 앞쪽 선착장에서 수룡이 하늘을 날아 도시 가운데로 날아가는 모습을 멍한 시선으로 좇았다.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꿈을 꾸는 것처럼 전혀 현실적이지 않았다. 소영이 기루의 직원들과 함께 선착장으로 내려왔는데도 명국영은 여전히 거대한 날개를 움직이며 날아가는 용을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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