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101화 (101/293)

<-- 101 회: 3-20 -->

“……세상에.”

소영이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명국영은 용이 시청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청 중앙탑에 갇힌 단태를 생각해 낸 그는 발을 동동 굴렀다.

“왜 그러세요?”

“시청으로 가야 하는데, 방법이 없네.”

수룡의 난입으로 차망로는 물론 암방거로, 서천목로의 사람들이 대피하느라 썰매는 모두 동이 난 상태였다.

“제가 모셔다 드리겠어요.”

“……정말인가?”

“그럼요.”

소영은 직원들에게 얼른 도시를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가라고 지시를 내린 다음, 썰매를 끌고 명국영 앞으로 왔다. 명국영이 올라타자, 소영은 능숙한 솜씨로 썰매를 도시 중앙으로 몰기 시작했다.

“자넨 평범한 기녀가 아니로군.”

“전 태어날 때부터 특별했거든요.”

“농담이 아니야. 저 용이 하늘을 나는 것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

“할머니께서 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들려주셨거든요. 바다에 살면 해룡, 호수에 살면 수룡, 하늘을 날면 천룡, 땅 아래로 파고 내려가면 지룡이라구요.”

“지혜로운 분이로군. 성함을 물어도 될까?”

“인연이 닿으면 직접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자네 입으로는 말 못 한단 뜻이군.”

“잘 아시네요.”

“……혹시 추명인가?”

“그렇게 보이나요?”

“아닌가?”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소영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명국영은 썰매의 손잡이 부분을 꽉 잡느라 더 이상 소영에 대한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저 앞쪽으로 날아간 수룡의 꼬리가 시청에 속한 나지막한 건물 하나를 뭉갰다.

“더 빨리 갈 수는 없는가?”

“꽉 잡으세요.”

소영이 낀 반지에서 금색의 빛이 흘러나오자, 썰매의 외형이 바뀌었다. 금속 재질의 날개가 튀어나왔고, 뒤쪽에서는 흐릿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썰매는 마치 낮게 비행하는 것처럼 질주하기 시작했다.

손잡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도 명국영은 역시 소영은 보통 기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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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경로로 피신한 반명은 대대로 물려받은 시청이 수룡이 휘두른 꼬리에 박살 나는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흥분하거나 낙담하기보다 이번 계획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곰곰이 따져 보았다. 감정적으로 행동해 봐야 득 될 게 없다고 생각하는 그는 도대체 수룡이 왜 날아올랐는지, 왜 시청을 부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특별한 목적이 있을 텐데.

그 목적을 알면 조치를 취할 수도 있을 텐데.

또 다른 용이 시야에 들어왔다.

반명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상당히 놀라고도 남을 순간이었다. 반명이 속내를 이런 식으로 고스란히 드러내는 순간은 매우 드물었다.

천마룡이 용경로에 내려앉자, 강풍이 불었다.

천마룡에서 급히 내려온 딸이 달려왔다. 반명은 오랜만에 만난 딸을 반갑게 안아 주었다.

품에서 벗어난 딸이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보는 그대로다.”

“수룡이 어떻게…… 날 수 있죠?”

“썩 현명한 질문이 아니구나.”

이런 상황에서도 반명은 앞으로 도시를 다스릴 딸에게 따끔한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죄송해요. 어떻게 해야 저 용을 내쫓을 수 있을까요?”

“방법은 하나뿐이구나.”

반명은 손가락으로 천마룡을 가리켰다.

하인들이 부지런히 짐을 내리고 있는 그 용을 본 반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룡에 비하면 체구가 반밖에 안 되지만, 웬만한 마법과 물리적 공격은 통하지도 않을 수룡에게 그나마 타격을 입힐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바로 천마룡이었다.

문제는 천마룡을 움직여 수룡을 공격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용마사는 천마룡을 조종해서 비행할 수는 있지만 공격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동작을 시도했다가 어설프게 당하면…… 천마룡도 잃고…… 도시도 잃어버릴 것이다. 천마룡이 수룡을 쫓아내기는커녕 오히려 화만 돋운다면 더 끔찍한 결과만 남을 터였다.

“제가 해 보겠습니다.”

누천파였다.

“……자네가?”

반명은 몇 달 만에 훌쩍 분위기가 달라진 누천파를 눈여겨보았다. 역시 사람은 그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서 달라지는 모양이었다. 깊고 웅장한 기상이 누천파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도시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탁하네.”

반명이 허락하자, 누천파는 당장 천마룡을 향해 달려갔다.

전투는 절대 안 된다고 반대하는 용마사를 천마룡의 등에서 쫓아낸 누천파는 어느새 등으로 올라와 버린 반우현을 쳐다봤다. 안전한 곳에 있으라고 말하려 했지만 그래 봐야 곱게 들을 반우현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차린 그는 용마사의 자리, 즉 천마룡의 정수리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체구가 작은 용을 재미삼아 조종해 본 적은 있지만, 이 거대한 천마룡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단순한 비행이 아니라, 도시와 마둔수탑의 운명이 달린 수룡과의 전투 비행이었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반우현이 누천파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할 수 있어.”

“……고맙다.”

누천파는 뿔과 연결된 특별한 줄 ‘용라’를 움켜잡았다. 마력석을 녹여 용의 힘줄과 섞어서 만든 그 줄을 통해 누천파는 용과 연결되었다. 완전한 연결은 아니었다.

‘올라가 볼까?’

그 생각만으로도 천마룡은 거대한 날개를 펼쳐 육중한 몸을 이끌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반명과 고위 귀족들로 가득한 용경로가 저 아래로 멀어졌다.

도시가 한눈에 들어오자, 시청을 맴도는 수룡의 거대한 몸집도 볼 수 있었다. 그 끔찍한 꼬리는 상아별로의 저택을 사정없이 부수고 있었다. 도시를 지배하는 11인위원회와 부유한 상인들의 저택이 몰려 있는 그 지역은 복구하는 데 몇 년은 걸릴 만큼의 피해를 입고 있었다. 누천파는 잠시 그 저택의 주인들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모습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

“웃는 거니?”

반우현이었다.

“그냥.”

“내가 모를 줄 알아? 수룡의 난동에 속이 썩을 사람들 표정을 떠올린 거잖아.”

“……꽉 잡아.”

속내를 들킨 누천파는 당장 수룡을 공격하는 대신 가상의 적을 설정해 두고 천마룡을 움직여 봤다. 천마룡은 저주를 받아 지적인 능력을 잃어버렸지만 그래도 용족의 피를 이어받은 존재였다. 곧 포효하며 발톱을 드러내더니 사납게 누천파가 지시한 부분을 할퀴고 예리한 이빨로 물어뜯으려 했다.

그 때문에 반우현은 하마터면 정수리에서 튕겨 나가 추락할 뻔했다.

“자, 이제 가 볼까?”

누천파는 천마룡의 반응에 만족해하며 방향을 돌렸다. 저 아래 시청 주위를 날아다니는 수룡의 등을, 가능하면 목을 내리찍으며 공격한다면…… 어쩌면 오랫동안 도시를 괴롭힌 저 괴물을 없애 버릴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다.

“간다.”

누천파의 말에 반우현은 천마룡의 정수리에 설치된 쇠사슬을 꽉 잡고 눈을 부릅떴다.

5. 호수로

밧줄에 매달려 공중에 떠 있던 철무는 겨우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아무도 없었다. 이 텅 빈 공간을 가득 채운 침묵은 왠지 모르게 낯설었다. 몸의 감각은 지금이 밤이 아니라, 고문이 계속되는 낮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흑야궁을 보름 이상 헤맬 때도 틀린 적이 없는 감각이라 철무는 범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했다.

‘설마 추명이 나를 구하려고 하는 건가……?’

곧 철무는 속으로 자신을 비웃었다.

이런 마당에 아직까지 희망을 놓지 않다니. 고문은 몸을 갉아먹고, 이제 정신마저 무너뜨리는 중이었다. 철무는 고문의 작동 방식을 너무도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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