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103화 (103/293)

<-- 103 회: 3-22 -->

단태는 아래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선형 계단의 벽 곳곳에 조그만 창이 나 있었는데 달리면서도 단태는 그 창을 통해 바깥을 살폈다. 창이 작아서 용의 거대한 몸 중 일부만 잠시 보여서 바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수룡의 꼬리가 이 중앙탑을 강타할 것만 같아서 달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순간, 단태는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가죽주머니에 있던 물을 밖으로 움직인 그는 의지를 발휘해 물이 발을 떠받치도록 만들었다. 부드럽게 물컹거리는 물이 발을 들어 올리자, 몸 전체가 두꺼운 모포 위에 올라선 기분이었다.

“……가 볼까?”

두려움과 기대감이 공존했다.

단태의 뜻에 따라 융단처럼 변형된 그 물은 아래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물은 계단과 계단 사이의 높이 차이에서 오는 충격을 부드럽게 흡수했고, 단태가 흥분해서 소리칠 만큼 빠르게 그를 저 아래로 데려갔다.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설 만큼 무서웠지만, 또 그만큼 신이 난 단태는 마치 자신이 용이라도 된 것처럼 포효했다.

스스로 이 기술의 이름까지 붙였다.

초단취.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 때문에 조그만 창 너머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수룡의 꼬리를 놓치고 말았다.

중앙탑을 거의 다 내려왔을 무렵, 천마룡의 발톱을 피하느라 뒤로 물러선 수룡의 꼬리가 탑의 가운데 부분을 때렸다. 탑의 위쪽은 꼬리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 시장이 특별한 손님을 맞이하는 정원를 덮쳤다.

그 충격에 깜짝 놀란 단태가 위를 올려다보자 조금 전 자신이 창가에 서서 용들의 전투를 보았던 다락방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름이 쫙 돋았다. 조금만 늦었다면…… 그 다락방과 함께 자신도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정신을 차린 단태는…… 융단 형체로 몸을 떠받치고 있던 물이 흩어졌을 뿐 아니라 계단의 틈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즉시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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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강은 눈을 부릅뜨고서 이쪽으로 날아오는 탑의 잔해를 노려보았다. 그는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수백 개의 파편 사이를 바람처럼 통과했다. 오늘까지 그가 살아 있도록 만든 ‘쾌각무’ 덕분이었다.

완벽하게 통달하면 쏟아지는 비 속을 달리고도 한 방울도 맞지 않는다는 그 쾌각무를 윤강은 젊은 시절에 운 좋게 배웠는데, 계림 깊숙한 곳에서 윤강에게 그 기술을 가르친 사람은 끝까지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 주지 않았다.

그 후로 쾌각무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윤강은 그 사람에게 다른 기술도 배웠으면 얼마나 좋을까 후회하곤 했다.

윤강은 위쪽 반이 날아가 버린 중앙탑 너머로 맹렬하게 싸우는 두 마리 용을 쳐다보며 자신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철무가 저 어딘가에 갇혀 있지 않았다면 술이라도 한잔 하면서도 지켜보고 싶은 광경이었다.

시장은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진 꼴이었다. 하층민이 거주하는 서쪽 지역을 짓밟아서 추명의 영향력을 줄이려 했던 그는 오히려 수룡과 천마룡 때문에 시청이 망가지는 모습을 어딘가에서 속 쓰리게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그 시장의 표정을 보고 싶었다.

그러면 평생 잠은 잘 잘 수 있을 텐데.

그 순간, 윤강은 저 중앙탑에 누가 있었는지 깨닫고 침울해졌다. 번운재의 손자를 구했을 뿐 아니라, 그 존재만으로도 하층민에게는 상징이었던 그 아이가 저기 갇혀 있었다.

‘……임무는 결국 실패구나.’

윤강은 잡념을 죽이고 정원을 가로질러 그 유명한 시청의 70 계단 앞에 이르렀다. 용들의 그림자가 어지럽게 계단을 뒤덮었다. 가끔 용들의 몸부림 때문에 한 사람쯤은 짓이길 건물 파편이 떨어졌는데, 윤강은 요리조리 피하며 시청으로 올라갔다.

목표는…… 방단의 고문실이었다.

텅 빈 시청의 로비에 들어선 그는 지하로 내려갔다. 쿵쿵 진동이 느껴졌고, 그럴 때마다 불길하게 천장에서 흙먼지가 떨어졌다. 천마룡이 이 위로 추락한다면…… 이곳이 무덤이 되고 말 터였다. 윤강은 그 공포를 이기려 애쓰며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는데 천장의 일부가 무너진 곳에서 쓰러진 철무를 발견했다.

“철무!”

윤강이 부축을 하자, 철무가 거친 숨을 내뱉으며 겨우 눈을 떴다.

“이거, 꿈은 아니겠지?”

“전혀.”

“설마 추명이 이 건물을 공격하고 있는 건가?”

“직접 봐야 믿을 수 있을 거야. 자, 빨리 이곳에서 나가자. 곧 무너질 테니까.”

윤강은 아예 철무를 업고 달렸다.

시청 밖으로 나오자 철무는 위쪽에서 들린 짐승의 포효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입을 쩍 벌렸다. 윤강이 왜 직접 와야 한다고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용 두 마리가 하늘에서 싸우고 있다니! 게다가 그중 한 마리는…… 도시의 진정한 적이라고 할 수 있는 호수의 주인 수룡 유천주라니!

“자네 덕분에 추명의 전사들은 한 명도 죽지 않았네.”

“……정말 꿈이 아니지?”

철무는 용들의 싸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고생은 끝났네.”

윤강이 시청을 벗어나려 하자, 철무가 그 어깨를 잡았다. 그리 힘 있는 손은 아니었지만 윤강은 즉시 멈췄다.

“왜 그러나?”

“그 아이.”

“…….”

“임무는 완수해야지.”

철무는 윤강의 등에서 내려와 억지로 섰다.

“그 아이는 죽었네.”

“……뭐?”

윤강은 손가락으로 반쯤 날아가 버린 중앙탑을 가리킨 다음, 놀라는 철무에게 거기 단태가 갇혀 있었다고 말했다.

“……우린 여기서 벗어나야 해.”

“이대로 갈 수는 없어. 시체라도 확인하기 전까지는.”

철무가 고집을 부린 이유는 윤강의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직접 만났던 그 아이가 이토록 쉽게 죽을 것 같지 않다는 기묘한 확신 때문이었다. 그 아이가 보여 준 그동안의 모습만으로도 그 확신에는 근거가 있었다. 시장이 그 아이를 노린 건, 그 아이가 종자장이 되는 과정에서 드러낸 강렬한 존재감도 수많은 이유 중 하나라고 철무는 생각했다.

“……좋아.”

철무의 고집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윤강은 탑의 위쪽이 파편으로 흩어진 정원으로 가려고 했다.

“아니, 이쪽이야.”

철무는 남아 있는 중앙탑을 가리켰다. 그 뜻은 명백했다. 단태는 다락방에서 빠져나왔다는 확신.

“자넨 너무 고집불통이야.”

“여기서 살아난다면 취영루에서 내가 거하게 쏘겠네.”

철무의 그 말에 윤강은 웃고 말았다.

두 사람은 반쯤 남은, 그러나 충격으로 곳곳이 무너지는 중앙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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륜사는 시청의 다섯 개 탑 중 동쪽 탑 꼭대기에 서서 균형을 잡고 있었다. 이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심지어 그동안 모아 놓은 마력도 다 허비한 상태에서 저 망할 수룡의 정수리로 뛰어내릴 생각은…… 미치광이나 할 법한 것이었다. 그래도 륜사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수룡은 천마룡과 얽혀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륜사는 훌쩍 몸을 날렸다.

수룡의 몸까지의 그 짧은 시간 동안, 륜사는 복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더 이상 용은 인간처럼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지적인 존재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 거대한 수룡 때문에 단태가 죽었기 때문에 보복을 하고 싶었다. 그래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복수만이 이 미친 짓의 이유는 아니었다. 그가 사랑하고 아끼는 마둔수탑, 그리고 이 아름다운 도시를 위해서 뛰어내린 것이다.

수룡의 등에 떨어진 륜사가 첫 번째로 느낀 건, 해초와 이끼 따위로 뒤덮인 수룡의 등이 미끄럽다는 사실이었다. 순식간에 미끄러져 날개 끝까지 내려간 륜사는 겨우 돌기 하나를 잡고 버텼지만 수룡이 천마룡의 날개를 찢어 놓으려고 발톱을 내밀자, 륜사는 사정없이 흔들렸다. 하마터면 돌기를 놓치고 저 아래로 추락할 뻔했다.

겨우 날개 위로, 등으로 올라온 륜사는 저 경사진 목 너머에 있는 수룡의 정수리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쇠사슬이 설치된 천마룡의 정수리도 요란하게 움직이는 동안에는 올라가기가 어려운데, 아무것도 없어서 매끄러운 저 수룡의 정수리로 올라가야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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