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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태신곡-105화 (105/293)

<-- 105 회: 3-24 -->

곧 단태는 그 액체가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것만큼 몸 안을 가득 채웠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런 식으로 바깥과 안을 동시에 녹인다고 생각하자 겁이 나서 죽을 것만 같았다.

거세게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꿀에 빠진 파리 신세였다.

그 쥐처럼 머리카락이 녹고, 피부가 흐물흐물해지고, 근육과 뼈까지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던 단태는…… 고통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몸을 짓눌렀던 그 벽은 녹아 버려 천천히 움직이니 일어설 수 있었다. 상체를 일으키자 그 액체가 천천히 목, 가슴, 배를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그런데도 몸은 멀쩡했다.

‘……어떻게 된 거지?’

맞은편 벽이 흔들리자 그 아래에 숨어 있던 쥐 몇 마리가 튀어나왔는데, 한 마리만 무사히 달아났고, 나머지는 여기저기 흩어진 액체의 늪에 빠져 녹아내렸다.

그 모습에 단태는 가슴이 떨렸다.

용기를 내어 액체를 손바닥으로 떠서 자세히 살폈다. 악취 나는 꿀 같았는데,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액체를 들여다보니, 겉모습은 꿀 같지만 안쪽은 조그마한 반투명의 알갱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며 천천히 움직이는 기이한 형태의 물질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 알갱이들은 개구리나 물고기의 알과 비슷한데, 알맹이 없는 알 같았다.

그때, 저 위에서 파란색의 섬광이 터졌다.

얼음으로 뒤덮인 유타루체를 온통 파랗게 수놓을 만큼 강렬한 섬광에 이어 바로 머리 위에서 천둥이 울린 것처럼 쾅쾅쾅 굉음이 폭발했다. 이어서 마력의 폭풍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강풍에 폐허를 둘러싸고 있던 탑의 아래쪽 벽들이 모조리 무너졌고, 일부 얼어붙은 운하의 얼음이 깨졌으며, 상아별로 지역의 저택들이 자랑하는 투명한 유리 수천 장이 와장창 박살이 났다. 수룡의 꼬리에 피해를 입은 저택은 그 강풍에 폭삭 주저앉기도 했다.

수룡이…… 추락하고 있었다.

쿵.

무거운 진동이 땅을 훑고 도시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수룡은 단태 위로, 시청 위로 떨어졌다.

그 점성 있는 액체의 웅덩이에 빠진 단태는 꼼짝도 못하고 내려오는 수룡의 몸뚱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점점 하늘이 수룡으로 가득 찼고, 충돌 직전엔 두려움으로 눈을 감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듣지 못한 굉음이 귀를 찢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단태는 정신을 잃지 않았다. 곧 상황을 파악했다. 그동안 이 정체불명의 액체가 땅을 녹이는 바람에 수룡이 추락해서 아래에 깔렸는데도 액체 깊숙이 빠져들었던 단태는 직접적인 충격으로부터 보호받았던 것이다.

단태는 허우적거리며 위로 올라왔다. 마둔수탑의 종자회 신고식 때가 기억났다. 배망식 때문에 악취 나는 웅덩이에 빠졌던 단태는 어둠 속에서 살기 위해 밀었지만 뚜껑은 열리지 않았었다. 창수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거기서 죽고 말았을 그 기억처럼, 이번에는 수룡의 몸이 거대한 뚜껑이 되어 단태를 그 액체의 웅덩이에 가둔 것이다.

있는 힘껏 몸통을 밀어 봤다. 시청 건물 전체를 부수고도 남을 이 수룡이 꼼짝도 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단태는 생존 본능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단태는 숨을 쉬지 못할 때 찾아오는 그 압박감, 절박함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버둥거린 것은…… 이 어둡고 끈적끈적한 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온통 그 액체뿐인데도…… 숨이 막히지 않았다.

마치 물에 빠진 물고기가 숨이 막히지 않는 것처럼.

당장 죽지 않는다는 생각에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단태는 수룡의 매끄러운 몸을 더듬었다. 이 부분이 어느 쪽일지 상상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저 이처럼 거대한 생물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신비했다. 고룡 암탄주보다도 훨씬 컸다.

“아!”

단태는 자기가 손을 댄 부분이 파랗게 빛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짙은 어둠 속에서 나타난 파란 빛은 수룡의 몸에 닿아 있는 자신이 손바닥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손을 떼자 빛은 사라졌다.

손을 대니 다시 빛이 흘러나왔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마음을 집중하며 수룡의 몸에 손바닥을 댔는데, 익숙하면서도 기이한 느낌에 깜짝 놀랐다. 파랗게 빛나는 수룡의 몸……에서 물의 기운이 느껴졌다. 아니, 이 수룡은 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딱딱한데…… 그 안에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아니, 누군가 물을 재질로 견고한 가죽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수룡의 피부일 것만 같았다.

단태가 손을 댄 곳에서 시작된 파란 빛이 점점 커졌다.

그 액체 웅덩이에 갇힌 단태는 알 수 없지만, 그 파란 빛은 수룡의 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 놀란 단태가 얼른 손을 뗐는데도 그 빛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강렬해졌다. 몸 자체가 파란 태양처럼 빛을 뿜고 있었던 것이다.

곧 거대한 몸이 움직였다.

그리고 너무나 가볍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웅덩이에 갇힌 채 단태는 그 우아하면서도 압도적인 비행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조그맣고 귀여운 란조의 비행도 멋있지만, 저 수룡의 비행이야말로 완벽함의 극치였다.

그때, 수룡이 몸을 비틀더니 커다란 눈으로 단태를 내려다보았다. 단태 몸보다도 더 큰 그 눈은 맑고 깊었다. 단태는 그 눈에 깃든 광기와 지혜로움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다음 순간, 수룡의 앞발이 단태가 잠겨 있는 그 액체는 물론 주위의 땅까지 한꺼번에 퍼 올렸다. 단태는 단숨에 하늘로 올려 갔다. 버둥거리다가 몸을 일으켜 파랗게 빛나는 앞발 위로 고개를 내밀었는데, 저 아래에 더 이상 시청이라고 볼 수 없는 건물의 잔해와 날개가 찢어진 상태로 머리를 운하에 처박고 있는 천마룡, 그리고 여전히 아름다운 물의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수룡은 천천히, 그러나 점점 빠르게 호수 쪽으로 날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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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국영은 눈을 의심했다.

수룡이…… 단태를 데려가다니!

수룡의 추락을 가까스로 피한 명국영은 륜사가 강대한 마법으로 도시의 골칫거리를 해결했다고 확신했으나 수룡의 몸이 파랗게 빛나자 끝이 아님을 직감했다. 말리는 소영을 남겨두고, 혼자 수룡 가까이 접근한 그는 하늘로 떠오른 수룡의 앞발 사이에서 물에 빠진 생쥐 꼴인 단태를 발견했던 것이다.

수룡은 시장의 명령에 도시로 들어온 군대의 공격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서 유유히 호수로 날아가 버렸다. 남은 건, 시장의 헛된 욕망으로 인해 폐허가 된 시청과 자기 꾀에 빠져 자기가 다친 상아별로의 처참한 광경뿐이었다.

“여기 있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

소영이었다.

“……가지.”

안전한 곳으로 피했던 시장이 곧 돌아올 거라는 사실을 잘 아는 명국영은 소영과 함께 썰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었다. 왜 수룡이 단태를 데려갔을까? 이 도시의 역사에 관심이 있어서 훑어봤지만 수룡이 단 한 번도 사람을 산 채로 데려간 적은 없었다.

왜 단태만……?

‘아! 그렇지. 이 멍청한 사람 같으니라고. 단태는 보통 인간이 아니야. 용의 유산, 고룡 암탄주의 진정한 유산을 이은 사람이야. 그러니 수룡이 단태에게서 무언가 비범한 부분을 발견했겠지. 아마 그래서 데려갔을 거야.’

명국영은 답을 찾아냈다고 확신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염려가 사라지지도 않았다.

수백 년 동안이나 유타호의 지배자로 군림한 수룡 유천주는 호수 깊은 곳에 살기 때문에 그동안 대규모 토벌전을 벌여도 소용이 없었다. 단태가 수룡에 의해 그 깊은 곳으로 끌려 내려가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운이 좋아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수룡에게서 벗어나 도시로 돌아올 수 있을까?

명국영은 차라리 단태가 시청 중앙탑 꼭대기에 갇혀 있던 때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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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국영이 수룡의 남쪽, 시청의 남쪽에서 단태가 수룡에게 잡힌 모습을 목격했다면, 철무와 윤강은 반대편인 북쪽에서 같은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잠깐의 공황 상태.

두 사람은 명국영보다 훨씬 빨리 정신을 차리고 흑야궁의 입구를 찾아내어 지하로 숨어들었다. 한참 아무런 말도 없이 달린 후에야 겨우 숨을 몰아쉬며 잠시 쉬기로 했다. 이 순간, 두 사람은 흑천주나 백오공 등 흑야궁에 득시글거리는 괴물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내가 제대로 본 거지?”

윤강이었다.

“나도 봤으니까.”

철무는 나직하게 말했다.

말하면서도 손끝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알기로 수룡이 방책을 무너뜨리고 도시의 서쪽 구역으로 난입한 적은 있지만, 하늘을 날아서 중심부까지 들어온 적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생각할수록 오늘의 일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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