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쳐다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고, 가슴이 팔딱팔딱 뛰며, 할 수만 있다면 달아나고 싶어지게 만드는 강렬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고양이 앞에 선 쥐가 이런 기분일까?
단태는 용기를 냈다.
“……풀어 주시면 안 될까요?”
최대한 안쓰러운 말투로 부탁했지만, 저 거대한 용에게 자비심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애처로운 부탁을 가볍게 묵살한 수룡은 금이 깔린 바닥에 몸을 갖다 댔다. 그 긴 목은 앞으로 뻗었고, 어떤 나무보다도 굵고 단단한 다리는 몸통 아래로 숨긴 상태였다. 앞으로 꽤 오랫동안 잠을 자겠다는 뜻이었다.
뼈로 만들어진 우리는 바닥에 깔린 금덩이에 충돌했고, 그 때문에 단태는 또 한 번 뼈 창살에 등이 부딪혀 신음을 토해 냈지만 속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룡이 잠이 들면, 생각을 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곧 수룡은 코를 골기 시작했다.
단태는 숨을 헐떡거리며 몸을 살폈다.
처음 이 우리에 갇혔을 때는 팔다리가 몇 번이나 부러졌다. 고통으로 비명을 지를 때마다 수룡은 특유의 무심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마법을 펼쳐 낫게 했는데, 그러면서도 단태를 우리 밖으로 풀어 줄 생각은 없었다. 가끔은 단태가 목걸이에 달린 우리에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것 같았다.
손가락까지 다 확인한 단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안 다쳤어.”
호수 바닥 아래 깊은 곳에 자리잡은 이곳은 수룡이 발을 뻗고 자도 될 만큼 넓었다. 바닥은 온통 금이었다. 적어도 한 뼘 이상의 두께로 된 금이 이곳 전체를 덮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그 휘황찬란한 빛에 깜짝 놀랐지만, 이젠 바닷가에 사는 아이가 고운 모래에 아무런 감흥이 없는 것처럼 단태는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단태는 수룡의 상태를 살폈다. 길게 이어지는 호흡을 보니, 깊은 잠에 든 모양이었다. 정신을 집중한 그는 주위에서 느껴지는 물을 끌어모았다. 바닥에 깔린 금덩이의 틈으로 물방울이 하나 둘씩 나타나더니 이리저리 뭉쳐 허공으로 떠올랐다. 오래지 않아 단태 앞에는 크고 둥근 물 덩어리가 둥실 떠 있었다.
단태는 그 물을 칼의 형태로 만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곳에서 물을 다루기가 한결 쉬웠다. 물은 예리한 날을 가진 칼로 바뀌었고, 단태는 자루 부분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닿는 물 특유의 축축한 감촉에 놀라 정신 집중이 흐트러지자, 물은 더러운 우리의 바닥으로 쏟아졌다. 단태는 그 물이 황금 깔린 바닥의 틈 사이로 스며들기 전에 다시 끌어모았다. 입에서 단내가 날 만큼 힘겨운 작업이었다. 보이지 않는 끈을 만들어 물방울을 일일이 묶어서 하나의 완전한 형태로 만드는 작업인데,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물의 칼이 완성되었다.
단태는 칼을 쥐는 대신, 정신의 힘으로 휘둘렀다. 보이지 않는 손이 칼을 쥐고 뼈로 된 창살을 두들겼다.
캉!
허연 뼈는 단태가 빠져나왔던 시청의 탑 꼭대기 방 자물쇠보다 훨씬 강했다. 도끼와 망치로 형태를 바꾸어 세 번이나 강타했는데도 뼈에는 가벼운 생채기도 남지 않았다. 더 이상 물의 칼을 유지할 정신력이 없는 단태는 뼈 창살에 등을 대고 앉았다. 아래로 쏟아진 물은 황금 틈 사이로 사라졌다.
축 늘어진 단태는 ‘그날’을 떠올렸다.
놀라서 달아나던 쥐는 물론 땅까지 녹여 버리는 그 기괴한 액체 웅덩이에 빠진 상태로 수룡 유천주의 앞발에 갇혀 버린 단태는 순식간에 물의 도시가 멀어지고,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거대한 호수가 가까워지는 광경을 눈으로 직접 보았다. 사방이 온통 물뿐인 어느 순간, 수룡은 갑자기 날개를 접고 아래로 추락했다.
첨벙.
수면을 뚫고 호수로 뛰어든 수룡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숨을 참다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어쩔 수 없이 입을 벌린 단태는…… 곧 자신이 물에서도 호흡할 수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단태가 생전 처음 호흡하는 사람처럼 입을 벌려 호수의 물을 마시는 동안, 수룡은 햇살로 반짝이는 수면에서 멀어지며 저 아래, 어둠이 내려앉은 심해로 내려가고 있었다.
수면이 멀어질수록 주위는 깜깜해졌다. 사방에서 옥죄는 느낌이 강해졌는데, 그 느낌은 서서히 사라졌다. 몸이 물에 적응하고 있었다.
눈을 떠도 감은 것과 다를 바 없이 어두운 곳까지 내려가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스스로 무지개 빛깔을 발산하는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돌아다니다가 수룡을 보고는 이리저리 흩어졌고, 소마선 세 척을 합쳐 놓은 것처럼 기다란 물뱀은 붉은색으로 반짝이는 점을 보여 주며 수룡 옆으로 다가왔다.
곧 단태는 수백 마리의 물뱀들이 수룡을 따라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중 한 마리가 수룡의 발톱에 끼여 있던 단태를 보고는 먹잇감이라고 생각했는지 다가와 입을 벌렸다. 예리한 이빨이 드러났는데, 수룡이 그 물뱀을 덥석 물더니 오도독오도독 뼈까지 씹어서 삼켰다. 그러자 물뱀들이 일제히 어둠 너머로 사라졌다. 몸에 박혀 있던 반점에서 나오는 빛을 순식간에 꺼 버린 것이다.
더 아래로 내려오자…… 단태는 입을 벌렸다.
‘아!’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숲이 저 아래에 펼쳐져 있었다.
느리게 춤을 추는 숲은 파란색, 보라색, 주홍색, 노란색 등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 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호수의 바닥 전체를 가득 채운 그 숲은…… 거대 수초의 군락이었다. 마둔수탑만큼이나 크고 기다란 수초에서부터 잔디처럼 짧은 수초가 섞여 그 아름다운 광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수룡은 화려한 숲 사이의 어둠으로 들어갔는데, 동굴의 입구가 거기 있었다. 그 큰 몸이 부드럽게 움직여 물로 가득한 동굴을 이리저리 통과하자 갑자기 저 앞에서 빛이 보였다.
수룡은 단태를 앞발로 쥔 채 그 빛을 향해 움직여 기이한 느낌의 막을 통과했다. 막 너머에는 물이 없었다.
높은 천장에 점점이 박힌 돌이 빛을 내뿜었다. 그 빛이 사방을 밝히는 그 공간에 도착한 수룡이 처음 한 일은 어디선가 가져온 우리에 단태를 집어넣고, 그 뼈로 된 우리를 쇠사슬 같은 것에 묶는 것이었는데…… 그 이후 단태는 수룡의 사소한 움직임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단태는 수룡이 왜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왔는지 궁금했지만, 그보다 더 궁금한 건 왜 그 액체가 자신을 녹이지 못했는지, 그리고 왜 자신이 물속에서 호흡을 할 수 있었는지 하는 점이었다. 륜사나 명국영이라면 이 질문에 답을 할 수도 있을 텐데.
‘정말 용의 유산 때문일까?’
그때,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금으로 된 바닥에 머리를 괸 수룡이 눈을 뜨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음처럼 차갑게 빛나는 그 푸르스름한 눈을 보면…… 아름답다는 감탄과 두렵다는 공포가 동시에 가슴과 머리를 그득 채웠다.
-너는 무엇이냐?
수룡이 물었다. 그 낮고 깊은 울림에 바닥이 가볍게 흔들렸다. 황금이 진동하며 여기저기서 탁탁탁 소리가 났다.
동시에 단태의 마음도 떨렸다.
악어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보다 더 무서웠다. 이 공포를 이겨 내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엇보다 엄마와 여동생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 유천주도 두렵지만, 이런 곳에서 끝장나 버려 노예로 여전히 고생하고 있을 엄마와 여동생을 구해 내지 못하는 상황이 더 무서웠다.
갑자기, 물이 흘러넘치는 분수대의 바닥에 앉아서 올려다본 마둔수탑이 떠올랐다. 들뜬 엄포윤이 열어 놓은 문을 통해 탑에서 달아났지만 광장을 벗어나기는커녕 몇 번이나 죽을 뻔했던 단태에게 마둔수탑은 지금 눈앞의 유천주처럼 거대하고 무서운 괴물이었다. 당시 단태는 답답한 나머지 분수대의 물로 뛰어들었고, 바닥에 앉아서 위를 쳐다보았다. 신기하게도 흔들리는 수면을 통해 보이는 마둔수탑은 그리 높지도, 위압적이지도 않았다.
같은 탑인데, 보는 방법에 따라서 다르게 보였다.
‘그래, 유천주도 마찬가지야. 진짜 무서운 건 저 용이 아니야. 여기서 끝나는 거지.’
마음을 고쳐먹은 단태는 답을 기다리는 용을 쳐다봤다. 여전히 겁이 났지만 서서히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몸에 깊이 스며든, 대를 이어서 물려받은 본능의 감각은 유천주를 두려워하도록, 무서워하도록 자극했으나 정신은 단호히 거절했다.
정신이 육체를 앞지르자 손가락 끝의 떨림이 사라졌다. 시야가 밝아져 유천주뿐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벽과 천장의 형태가 눈에 들어왔다. 심장 박동은 평소 수준으로 돌아왔고, 나머지 감각도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 기이한 변화에 단태는 깜짝 놀랐다. 외부 상황은 그대로였다. 질문을 던진 유천주는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 단태를 노려보고 있었다. 바뀐 것은…… 마음뿐이었다. 유천주를 두려워하는 몸의 반응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한 정신뿐이었다.
순간, ≪무무비경≫의 내용이 기억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