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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네 마음이 세상이며, 세상이 곧 네 마음이다.[편지]
몇 번을 읽어도 그 의미를 깨닫기 어려웠었다. 그저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시청을 파괴하고 도시마저 뭉개 버릴 수 있는, 사람 하나는 벌레 죽이듯 없애 버릴 수 있는 유천주 앞에서 단태는 ≪무무비경≫의 깊은 뜻 하나를 깨달았다.
두려움과 공포는 외부의 자극에 의해서만 주어지는 감정이 아니었다. 내부, 즉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 한 그런 감정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떠한 조건에서도, 어떠한 환경에서도 발붙일 수 없는 불청객이었다.
이 깊은 곳으로 잡혀 온 이후 처음으로 단태는 웃었다. 호쾌한 웃음이라기보다는 희미한 미소에 가깝지만, 단태는 승리의 쾌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단태는 대답했다.
유천주를 올려다보면서.
“저요?”
-그래, 너!
거대한 공간을 울리는 거친 목소리에 담긴 분노가 단태를 뒤흔들었지만, 단태는 온 힘을 다해 그 강렬한 힘에 저항했다. 유천주가 이빨을 드러낸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않을 ‘자유’와 ‘권리’가 자신에게 있음을 잊지 않으려 애를 썼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몸의 근육을 자주 사용할수록 그 근육이 발달하는 것처럼, 정신의 근육도 같은 방식으로 성장한다. 단태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정신의 근육 ‘심안’을 처음으로 사용한 셈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외부의 조건에 휘둘리지 않는 정신의 근육 ‘내계’ 또한 처음 힘을 발휘했다.
쓰지 않던 근육일수록 사용하면 고통이 찾아오듯, 단태의 정신도 바람에 쓸려서 이리저리 넘어지는 갈대처럼 요동쳤다. 차라리 벌벌 떨면서 오줌이라도 싸야 유천주에게서 안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단태를 흔들었다. 그래도 단태는 버텼다. 여기서 무너지면 끝장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팔다리에 붙은 근육과 달리, 정신의 근육은 발달하는 데 평생이 걸리기도 하고, 단숨에 완성되기도 한다. 평생 두려움에 쫓기다가 삶을 마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겁에 질려 달아나다가도 어느 순간 공포를 딛고 일어나 용감하게 저항하는 사람도 있다. 단태는 내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밀려드는 공포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이었다.
끈질긴 저항 끝에 심안이 자리를 잡았다.
내계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두려운 감정이 사라졌다. 깨끗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아이에겐 움직일 수조차 없던 방패를 힘 좋은 어른이 가볍게 들어 올리는 것처럼, 발달한 정신의 근육은 육체가 뿜어내는 감정을 여유롭게 막아 내고 있었다.
이제 단태는 유천주를 관찰할 수 있었다. 왜 그런 질문을 던졌을까? 아무런 의미도 없이 질문을 던질 리는 없다. 단태는 수룡이 던진 첫 번째 질문에 주목했다.
이 순간, 명국영이 공들여 단태에게 쏟아부은 지혜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단태는 평범한 학생처럼 암기를 통해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다. 명국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라는 방식으로 수업을 이끌었는데, 특히 신경을 쓴 부분은 바로 ‘귀’였다. 주의 깊게 듣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지혜이며, 최강의 무기라는 게 명국영이 강조한 내용이었다.
당시 단태는 명국영이 침을 튀기며 설명했던 부분을 그리 신뢰하지 않았다. 뜬구름 잡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륜사의 마법은 눈에 확 들어오지만, 명국영의 수업은…… 어딘지 모르게 어렵고, 추상적이며, 당장 쓸데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가르침이 반복되자 지혜의 일부가 어느새 단태 내부에 스며들어 있었고,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 위기를 통과하면서 서서히 그 가르침이 머리와 가슴을 적셨던 것이다. 단태는 주의 깊게 들었고, 그 때문에 수룡 유천주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 용도 그 액체 속에서 내가 왜 무사할 수 있었는지 모르고 있어!’
단태는 몹시 기뻤다. 자신보다 수십 배는 크고, 수백 배는 무거운 저 용도 자신과 다를 바가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당연히 그런 마음은 철저히 숨겼다.
-왜 용수가 널 녹이지 못했을까? 넌 인간인데도 왜 이곳으로 내려오는 도중에 숨이 막혀서 죽지 않았을까?
용은 질문을 통해 단태의 추측이 옳았음을 드러냈다.
단태는 용에게 압도된 심리적 상태에서 벗어났다. 저 용은 도시 하나를 공황상태로 몰아가고, 시청이라는 건물을 박살 낼 수 있었지만, 적어도 대화에 있어서는 너무 단순해서 의도가 뻔히 드러나는 초보 수준에 불과했다.
‘스승님 앞에서 저런 질문을 던졌다가는 따끔하게 지적을 받고 크게 혼났을 거야.’
명국영은 중요한 순간일수록 의도를 숨겨야 결정적인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저도 그게 궁금해요.”
단태는 고개를 들어 용을 정면으로 쳐다봤다. 광기 서린 눈을 보니, 두려움이 몰려왔다. 생성된지 얼마 안 된 정신의 근육은 완벽히 막아낼 수 없는 감정의 폭풍이었다. 그래도 단태는 그 부정적인 감정에 저항하며 용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자신감이 담긴 시선이었다.
-네게 가족이 있느냐?
평소와 달리, 수룡은 질문을 이어 갔다.
이 질문도…… 속내가 뻔히 드러나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었다. 단태는 용의 의도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 수 있었다.
가족이 없다고 대답하려던 단태는 거짓은 진실의 숲에 숨겨야 진가를 발휘한다는 스승의 말을 기억해 냈다.
“엄마와 여동생이 있어요.”
단태는 아버지가 있다고 말할 생각이 없었다.
-고아가 아니라?
“고아는 아닌 것 같……아요.”
일부러 말을 흐리는 단태.
그걸 본 용이 조급함을 드러냈다.
-넌 그 엄마라는 여자와 닮았느냐?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요.”
-여동생과는?
“잘 모르겠어요.”
단태는 고분고분 대답은 하지만 가치 있는 정보는 주지 않으면서 용이 무엇을 알고 싶은지 알아내고 있었다. 특히 ‘고아’라는 단어가 중요했다.
‘저 용은 내가 고아라고 생각했어.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내 체질에 관심이 있다면 가족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물어야 할 텐데. 왜 나를 고아라고 생각했을까?’
용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
-용을 만난 적은? 물론 나를 제외하고.
“……있어요.”
단태는 잠시 고민했지만 암탄주와의 관계를 드러내야 저 용의 관심을 끌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가 가장 걱정하는 점은 용이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자신을 잡아먹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누구였지?
“고룡 암탄주였어요.”
-뭐?
수룡의 눈이 두 배로 커졌다. 여기 내려온 이후 처음으로 유천주가 감정 비슷한 것을 드러내고 있었다.
단태는 용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여전히 용은 압도적인 강함을 드러내고 있지만, 바로 그 강함 때문에 이 조그만 인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단태는 그 점을 역이용하고 있었다.
“북쪽의 용혈에서 고룡 암탄주를 본 적이 있어요.”
-……암탄주가 죽기 전에?
“네.”
-혹시 암탄주가 네게 유산을 남겼느냐?
“그 용이 선택한 세 사람 중에 포함되었지만, 저는 유산을 거절했어요.”
단태는 이번에도 진실을 말했다. 숨길 이유가 없었다.
-왜?
“저더러 용족의 부활을 약속하라고 해서요.”
-뭐?
어이가 없는지 수룡의 입이 벌어졌다. 예리한 이빨 수십 개가 드러나자, 단태는 겁을 먹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했다. 다행히 두려움이 몸을 집어삼키지는 않았다. 공포라는 적을 정신의 근육이 잘 막아 내고 있었다.
“……그날 이후 바보, 멍청이라고 욕 많이 먹었어요. 용의 유산을 거절했다는 이유 때문에요.”
-용의 유산은 누가 물려받았지?
그 질문에 단태는 반우현, 누천파라는 인간이 암탄주로부터 각기 다른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대답했다. 진실이었기에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었다.
용은 가만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용을 살피면서 단태는 용의 머릿속에 무엇이 있을지 헤아려 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이야기를 다 들은 유천주가 말했다.
-그 교활한 용이 제법 머리를 썼군.
“……네?”
단태는 광기가 서린 수룡의 눈을 쳐다보았다. 저 용은 암탄주의 의도를 알아차렸을까?
-네가 바로 암탄주의 진정한 상속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