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112화 (112/293)

<-- 112 회: 3-31 -->

“…….”

단태는 깜짝 놀랐다.

순간, 저 용을 얕잡아봤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각심을 일깨웠다. 인간을, 인간 중에서도 체구가 작은 자신을 깔보지 않았다면 이런 식으로 대화를 이끌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용수가 널 녹이지 못한 게지.

의문이 풀려서인지 유천주의 눈은 원래 지니고 있던 광기와 지혜로 가득 차 있었다.

“전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단태는 시치미를 잡아뗐다.

-후후, 넌 용이다.

“…….”

단태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생각할 여유조차 사라져 버렸다. 저 말이 무슨 뜻일까?

-넌 처음부터, 태어난 순간부터 용이었다. 용으로 태어났지만 인간의 손에 자란 게지. 용족 역사상 단 한 번 이런 경우가 실제로 있었다. 알에서 깨어났는데도 용보다 인간에게 먼저 발견되어 인간을 부모로 삼아서 성장하다가 나중에야 자기가 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거지.

“……제가 용이라구요?”

-그래, 넌 용이다.

유천주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

단태는 명국영의 가르침을 받아 나름대로 애를 써서 쌓아올린 마음의 탑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사람의 위장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음식의 한계가 있듯, 정신도 받아들일 수 있는 진실의 크기는 제한되어 있다.

한데, 수룡 유천주가 알려 준 진실은…… 아직 여물지 못한 단태의 정신이 받아들이기엔 너무 크고, 무거웠다. 그 진실은 단태의 조그만 정신을 깔아뭉갤 만큼 충격적이었다. 정신의 근육조차 유천주의 선언이 터트린 충격을 막아 내기는 어려웠다.

언젠가 용에 대한 전설을 듣고 용으로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단태뿐 아니라, 호기심 많은 또래의 사내아이들은 대부분 그런 생각을 했고, 심지어 상상의 날개를 펼쳐 수다를 떨기도 했다. 마음껏 하늘을 날고, 먹고 싶은 것은 뭐든 먹고, 하고 싶은 것도 얼마든지 하고…… 그런 게 아이들이 생각하는 꿈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단태는…… 눈앞의 용이 물의 도시에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직접 경험한 사람이었다. 그 용 때문에 사람들이 얼마나 죽었는지, 도시가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 자신도 죽을 뻔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고?

용이라고?

-왜 그런 표정이지? 벌레 같은 인간의 신세에서 벗어났는데도 왜 그런 얼굴이지?

수룡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그 눈빛을 보자, 단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말 한번 잘못하면 저 용의 배 속 구경을 하게 될 터였다.

“……아직 믿을 수가 없어서요.”

-나 수룡 유천주의 말이다. 넌 용이다. 그게 아니라면 용족 전체의 유산을 이어받은 암탄주가 네게 용의 유산을 전해 줄 리가 없으니까. 크하하, 축하할 일이군.

수룡의 목소리는 수십 개의 메아리가 되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수룡은 앞발의 발톱을 섬세하게 움직였다. 목걸이에서 뼈 재질의 우리를 떼 내어 금으로 뒤덮인 바닥에 내려놓은 것이다. 그러더니 발톱 하나로 뼈로 된 창살을 잘라 버렸다. 물의 칼로 내리쳐도 자국 하나 남지 않던 바로 그 뼈였다.

문이 저절로 열렸다.

단태는 비틀거리며 우리 밖으로 나왔다. 금으로 된 바닥을 밟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뱃사람이 오랫동안 바다에서 생활하다가 육지에 내려서면 땅이 흔들린다더니, 딱 그런 느낌이었다.

“……저와 같은 경우가 정말로 있었어요?”

단태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있었다.

“…….”

단태는 침을 삼켰다. 유천주의 말을 무조건 신뢰할 수도 없지만, 반대로 무조건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그건 그렇고. 원래 용이 태어나면 용오군이 그 용의 자질을 들여다보고 명룡을 결정하지만, 현재 그 망할 저주 때문에 용오군이 전멸했으니 나 수룡 유천주가 잠룡을 맡아서 책임지는 명룡이 되는 수밖에 없겠군. 네 이름이 무엇이냐?

“……단태예요.”

기력이 빠진 목소리.

-이제부터 너는 료마주다. 그동안의 삶은 모두 버려라. 넌 용이니까. 아니, 곧 스스로 버리게 될 게다. 그 버러지 같은 삶에 더 이상 만족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

단태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런 단태를 용은 푸른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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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영루 앞마당에서 마른 헝겊으로 술잔을 닦던 양지란은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둥실 떠올라 하늘을 가로지르며 서쪽으로 가고 있었다. 허리에 손을 얹고 끙 소리를 내며 일어선 그녀는 복구 중인 방책을 쳐다봤다.

저 방책 너머 어딘가에 단태가…… 있다.

양지란은 눈물을 훔쳤다.

왜 몰랐을까?

단태라는 이름은 물의 도시에서 워낙 유명해서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용의 유산을 거절한 장본인, 마둔수탑 역사상 최연소 종자장, 그리고 륜사와 시장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희생된 불쌍한 아이 등 단태는 도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이름이었다.

그러나 양지란은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어디에선가 고생하고 있을 아들을 생각했지, 바로 그 단태가 자신의 아들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노예로 팔렸을 그 아이가 마둔수탑의 종자가 될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또 아들 생각 하는가?”

“……죄송합니다, 마님.”

헝겊을 든 채로 일어선 양지란.

“쯧쯧, 또 그러는구먼. 난 자네의 마님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자네가 내 앞에서 갖춰야 할 예의는 먼저 태어나는 바람에 팍삭 늙어 버린 여자에 대한 약간의 배려뿐이야.”

“마님께서는 절 살려 주셨어요.”

“운이 좋았을 뿐이야.”

“전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에요, 마님.”

“자네 맘대로 하게.”

소청대는 웃으며 양지란 앞으로 지나갔다.

양지란은 이곳에 온 뒤로 학대와 경멸에서 벗어났다. 취영루는 차망로 구역에 자리 잡은 기루로 술과 요리의 맛이 뛰어나 찾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이곳에서 양지란은 노예가 아니라, 평범한 자유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면 이 변화에 눈물까지 흘렸는데, 아들과 딸을 생각하면서 베개를 붙잡고 통곡할 때가 많았다. 자기 몸 편하다고 기뻐할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여화 동생.”

“잘 계셨어요?”

“사람들이 잘해 줘. 그보다, 소식은 없어?”

“아직은 방책을 통과할 수 없어요. 시장이 봉쇄 명령을 내렸거든요. 그리고 날이 풀려 용마렵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호수로 나가는 건 자살행위와 다를 바가 없어요.”

“……그렇겠지?”

양지란은 다리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너무 염려 마세요. 단태는 무사할 거예요.”

“그럴 거야. 난 단태가 돌아올 때까지 이곳에서 열심히 일을 배울 거야. 특히 맛있는 요리 만드는 방법을 말이야. 그러면 단태가 돌아왔을 때 엄마가 직접 만든 요리를 실컷 먹일 수 있겠지. 여화 동생, 나 바쁘니까 먼저 가 볼게.”

“……네.”

양지란이 술잔이 가득 든 바구니를 들고 주방으로 가는 모습에 여화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없는 힘을 짜내느라 힘겨워하는 표정을 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밝게 웃는 양지란을 보니,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무사할 거라고 말했지만, 수룡에게 잡혀간 단태의 상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힌 여화는 취영루를 돌아봤다. 수수하고 기품이 넘치지만 평범한 기루의 조건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건물이었다. 이곳이 용봉고와 관련이 있었다니.

용봉고는 철의 도시 강성루체에서 시작된 조직으로 오직 여자만 받아들이는 조직으로 유명했다. 강성루체뿐 아니라 나머지 칠성시에도 지부를 운영했고, 심지어 황제의 도시 용금탄에도 용봉고의 거점이 존재했다. 전대의 황제 연장춘이 용봉고의 본부를 찾아내어 없애 버리려고 명령을 내렸으나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꽤 유명했다. 그만큼 용봉고는 은밀한 조직이었다.

소청대는 아무 조건 없이 구해 주었다. 아니, 조건이라 하기 힘든 조건이 하나 있었다. 용봉고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내용인데, 도움을 받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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