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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태신곡-116화 (116/293)

<-- 116 회: 3-35 -->

그 양 극단 사이에는 오직 금을 모으기 위해 동분서주한 천금룡 반단주, 음악을 사랑한 지천룡 경명주, 마법에만 몰두한 황마룡 투마주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듯, 용에게도 길이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일곱 개의 용옥을 통하여 일곱 용의 기억을 엿본 단태는 용이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었다. 용에게 인간은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바람에 다루기 힘들 뿐 기본적으로 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건드리지 않더라도 귀찮게 만드는 존재라는 시각도 있었다. 인간 중에는 대담한 자들이 있어서 용의 보물을 노리고 용혈, 즉 용의 보금자리로 숨어들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경우, 용은 용혈로 숨어든 인간뿐 아니라 전혀 관계가 없는 인근의 마을이나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어 인간족 전체에게 경고를 보냈다.

아무튼, 용은 인간을 특별한 존재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런 관점은 단태의 마음을 깊은 곳까지 흔들어 놓았다. 은연중 단태는 인간이, 사람이 세계의 기준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비록 노예 신세가 되었다고 해도 인간이라는 긍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노예 매매는 인간 내부의 갈등, 충돌이었던 것이다.

그 자부심은…… 바다 같은 것이었다.

바다에 사는 물고기는 바다를 직접적으로 의식하지 않는다. 미끼에 걸려 물 밖으로 나온 후에야, 공기를 느끼며 파닥거린 후에야, 바다의 존재를 깨닫는다. 운 좋게 다시 바다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 깨달음을 얻는 동시에 물고기는 사람의 배 속으로, 어쩌면 포식자의 배 속으로 들어가고 말 것이다.

단태는 지금의 자신이 처음으로 바다 밖으로 끌려 나온 물고기 같다고 생각했다. 낚싯줄에 매달린 채 태어나서 살았던 바다를 처음으로 본 물고기의 심정이랄까.

인간이 인간 중심으로 살아가듯, 용도 용 중심으로 살았다. 용옥에 담긴 기억은 그 증거였다. 일곱 개의 용옥을 경험한 단태는 더 이상의 용옥은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용옥에 담긴 기억을 접할수록 인간 특유의 자부심에 금이 가는 바람에 본능적으로 용옥에 손을 대기도 싫었던 것이다.

용은 인간보다 월등한 존재였다.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명백한 사실이었다.

만약 용이 인간처럼 협력을 추구했다면 인간이 이처럼 국가를 세워 대륙을 지배할 가능성은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이미 인간은 멸망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용은 인간처럼 약하지 않기 때문에 협력할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 덕분에 인간은 오만하게 대륙의 지배자를 자처하고 있지만, 저주가 용족을 덮치지 않았다면 그런 행운은 인간과 관련이 없었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용 앞에 선 인간으로서 단태는 더 이상 자괴심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용옥간을 벗어나려면, 나아가 이곳을 탈출하여 물의 도시로 돌아가려면 저기 있는 용옥을 모조리 손에 쥐고 용족이 남긴 기억으로 풍덩 뛰어들어야 했다. 엄마와 설희, 그리고 위연미를 구해 내려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 용인지도 알 수 있겠지…….’

“휴우.”

저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때, 돌문이 열렸다.

벌떡 일어선 단태는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아름다운,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표독스러운 젊은 여자가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때?”

“……누구?”

“아, 이런 모습은 처음이지? 나야. 수룡 유천주.”

“…….”

단태는 할 말을 잃었다.

거대한 용이 백발 노인으로 몸을 바꾸는 광경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은데, 저런 여자라니. 말투와 표정을 보면 단순히 몸만 변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자세와 분위기까지 젊은 여자였던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놀라게 될 거야. 잘하고 있니?”

“……열심히 용옥의 기억을 공부하고 있어요.”

단태는 겨우 대답했다.

“열심히? 그걸로는 부족해. 넌 오랫동안 인간으로, 사람으로 살아왔어. 심지어 너 자신도 네가 용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잖아? 그러니 넌 쉬지 않고 용옥 내부로 들어가야 해. 그것만이 네가 인간의 찌꺼기를 버리고 용으로서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네가 만약 원래 상태, 즉 용족의 일원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난 너의 명룡으로서 용족의 품격을 무너뜨리는 너를 죽일 수밖에 없어.”

“…….”

단태는 또다시 할 말을 잃었다.

죽인다는 경고 때문이 아니었다. 저 용의 의도 때문이었다.

용옥간에 가두고 용옥을 모조리 들여다보라고 한 이유는 단순히 잠룡을 초룡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유천주는 이미 단태의 속내를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천주는 단태가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버리고 완전한 용으로서의 자아를 되찾게 하려고 용옥간에 데려온 것이었다.

“넌 용족의 일원이야. 날 실망시키지 마. 알았니?”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뭐든지.”

유천주는 자신만만했다.

“고룡 암탄주는 저주로 죽었는데, 왜 당신……은 멀쩡한 거예요?”

단태는 그동안 꾹 억누른 질문을 유천주의 면전에 대고 던졌다.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건, 나중에 알려 줄게.”

유천주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신도 저주에 걸린 거죠?”

“…….”

유천주는 치켜뜬 눈으로 단태를 노려보다가 용옥간 밖으로 나갔다. 곧 돌문이 내려와 쾅 닫혔다.

잠시 얼어붙은 것처럼 그대로 서 있던 단태는 숨을 몰아쉬었다. 유천주가 자신을 사납게 노려볼 때, 정말이지 오줌을 쌀 뻔했다. 그만큼 무서웠다. 그러나 질문에 대한 유천주의 반응으로 볼 때, 그 용이 저주에 걸린 상태라는 점은 분명했다.

단태는 한 가지 가능성에 흥분했다. 유천주가 그 저주로 인해 죽는다면 이곳을 벗어날 가능성은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그동안 유천주가 원하는 대로 성실히 행동한다면 탈출의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다. 일단, 유천주가 이끄는 대로 가 보자. 그러면 길이 열릴 테니까.

위쪽에서 탁, 탁 소리가 났다.

단태는 놀라지 않고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봤다. 이번엔 몸이 하얀 거미가 천장의 어둠을 뚫고 아래로 내려왔다.

“저는 설고라고 해요.”

하얀 거미는 금룡어 세 마리와 용설장초, 심어초, 형운세초 등을 단태 앞에 수북이 쌓았다. 그 동작은 날렵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보였다. 단태는 용옥에서 본 혈마주의 행동을 통해 그 이유를 깨달았다. 유천주 역시 하족인 거미를 갖고 놀다가 죽이거나 먹잇감으로 삼았던 모양이었다.

“고마워.”

“…….”

거미는 번개라도 맞았는지 꼼짝도 못했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린 거미는 벽을 타고 천장의 구멍 너머로 사라졌다.

금룡어 한 마리를 용설장초, 심어초, 형운세초를 섞어서 먹어 치운 단태는 탁자 앞으로 향했다. 청색의 구슬을 집어 든 그는 눈을 감고 집중했다. 곧 푸르스름한 빛이 그를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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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태는 백 개의 용옥에 담긴 기억을 경험하고 지쳐서 누워버렸다. 그는 팔베개를 하고서 천장에 박힌 빛나는 돌을 쳐다봤다. 야광석이라 불리는 돌은 천장 골고루 퍼져 있었다. 염소와 양을 기르는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한여름의 밤하늘 같은 천장이었다.

염소 떼, 혹은 양 떼를 몰고 마을을 떠나 제법 먼 곳까지 가면 별이 총총 박힌 밤하늘 아래 모닥불을 피워 놓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주로 아이들 두셋이 끼어 서너 명의 어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이야기는 일종의 가르침이었다. 노골적으로 이건 해라, 저건 하지 마라는 식의 강요는 아니었다. 오히려 감탄과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오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푸줏간 주인 부월이 몰래 이웃 마을 처녀와 물레방앗간에서 만났다가 마누라에게 들켜 달아났는데, 소똥으로 가득한 구덩이로 굴러떨어져 죽을 뻔한 이야기, 촌장이 젊었을 때 용병으로 명성을 날렸지만 사기꾼을 만나서 돈을 다 날리고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왔다는 이야기, 농부이자 사냥꾼인 폐중이 길을 잃어 헤매다가 선녀를 만나 사랑을 나누었지만 알고 보니 선녀를 닮은 돌이었다는 이야기 등인데, 어떤 짓을 하면 창피를 당하는지, 어떤 행동이 올바른지, 어떤 삶이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지 그 이야기에 담겨 있었다.

아이들은 웃고 떠들면서 마치 어른이 된 느낌을 받았다. 일찍 자라는 말 대신 가끔 어른이 건네는 술도 한 모금 마시면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아이들은 마을이라는 조그만 세계가 운영되는 방식을 배웠다.

반짝이는 구슬에 담긴 용의 기억은 그런 이야기와 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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