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121화 (121/293)

<-- 121 회: 3-40 -->

“료마주 님?”

설고였다.

단태는 천천히 눈을 떴다. 두통은 없었다. 길게 숨을 내쉬며 앉은 그는 그릇을 쳐다봤다. 아까처럼 확대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파리로 들끓는 터진 눈알을 보는 순간, 주위 배경은 사라지고 오직 파리와 터져서 내용물만 남은 눈알만 보였다. 파리는 비둘기처럼 커졌고, 눈알은 잘 키운 수박 같았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자 그 현상은 사라졌다.

“왜 그러세요, 료마주 님?”

조심스러운 설고.

“잠깐만.”

단태는 다시 한 번 파리를 노려보았다. 파리에 집중하자 그 현상이 나타났다. 파리가 확대되어 설고의 무시무시한 이목구비를 능가하는 형태가 한눈에 들어왔다. 심지어 파리의 날개가 아래, 위로 움직이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만 같았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리자 얼른 눈을 감았다. 그 두통은 언제든지 찾아와서 괴롭힐 만큼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한 번 더 날아다니는 파리를 포착하는 데 성공한 단태는 길게 숨을 내쉬며 설고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에요?”

“눈이 달라졌어.”

단태는 무엇을 볼 수 있는지 설고에게 알려 주었다.

“그건 용족의 능력이에요. 흔히 용안이라고 부르는데, 그 어떤 것도 놓치지 않는 눈이에요.”

기뻐하는 설고.

“……그래?”

단태는 얼떨떨했다. 기쁜 동시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고, 용을 제외한 모든 것을 녹이는 액체 안에서도 아무렇지 않는데, 이제는 용족이라는 증거가 또 하나 늘었다. 유천주의 판단이 옳을까? 정말 용으로 태어났을까?

“중요한 점을 잊지 마세요.”

끝도 없이 이어질 뻔한 고민을 설고가 잘랐다.

“……맞아.”

단태는 억지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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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시작에 불과했다.

귀도 달라졌다.

코도, 입도, 그리고 피부의 감각마저도 변했다.

오감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예민해졌고, 원하는 순간에 집중적으로 능력이 강화되어 불가능한 영역을 뛰어넘을 수 있었는데, 문제는 통제력이었다. 감각이 제멋대로 증폭되자 단태에게는 그 고요한 용옥간도 지옥으로 바뀌었다.

그 동안 듣지 못했던 몸 안쪽의 소음이 단태를 불면증으로 몰아갔다. 피가 혈관을 타고 흐르는 소리는 무시할 수 있지만, 심장이 쿵쿵 뛰는 그 소리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심장은 마치 고문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피를 쥐어짜 내어 몸 곳곳으로 보냈는데, 그 소리는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었다.

코도 괴로움을 증폭시켰다. 금룡어가 풍기는 냄새는 물론 옆에 있는 설고의 몸에서 나는 냄새도 단태를 힘들게 했다. 무엇보다 괴로운 건, 자신의 몸에서 나는 악취였다. 물로 끼얹어도, 심지어 물속에 들어가서 앉아도 그 냄새에서 도망칠 수가 없었다.

피부는…… 닿기만 해도 고통이었다.

예민한 미각 때문에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심지어 물 마시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설고는 유천주에게 단태의 상태를 알렸다. 즉시 용옥간으로 온 유천주는 단태의 몸을 구석구설 살피더니 껄껄 웃었다. 용족 특유의 감각이 살아나는 과정이라는 점을 잘 알았던 것이다. 유천주는 설고더러 단태 옆을 지키라고 지시를 내리고는 웃으면서 가버렸다.

한계가 없는 고통으로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 단태는 잠시 감각의 폭풍에서 벗어나면 눈물을 흘리며 설고에게 부탁했다. 죽여 달라고. 그만큼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설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단태 옆에서 시간을 보내며 기다렸다. 단태가 이 과정을 버텨 내기를.

무려 한 달이나 감각의 지옥에서 허우적거리던 단태는 고통이 썰물처럼 서서히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전히 통증이 그를 괴롭혔지만, 당장 죽고 싶을 만큼은 아니었다. 천천히 고통이 물러가는 동안, 설고는 단태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한 달 만에 단태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데, 몸이 가벼워서 그런지 기분은 좋았다.

단태는 설고를 쳐다봤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이겨 내실 줄 알았어요.”

“버틴 거야. 죽을힘을 다해서.”

“그럴 줄 알았어요.”

설고의 목소리는 여전히 딱딱했고, 눈에서 턱으로 이어지는 이목구비의 형태는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지만, 단태는 저 거미가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고마웠다. 잠시 정신이 들면 설고는 항상 옆에 있었다. 아픈 아기 옆을 떠나지 않는 엄마처럼.

설고가 그릇을 가져왔다. 금룡어 눈알이 가득 차 있었다.

“그걸 먹어야 돼?”

“네, 하나도 남김없이요.”

“……알았어.”

단태는 비싸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포도를 먹듯 금룡어 눈알을 하나씩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비릿한 냄새 너머에 고소한 맛과 시원한 맛이 숨어 있었다. 그리 역겹지 않았다. 비릿한 맛에 덮여 놓쳤던 맛을 감지한 덕분에 처음으로 금룡어 눈알이 먹을 만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어떤 과정인지 단태는 곧 깨달았다. 처음 산 구두를 신으면 발뒤축에 상처가 나서 한동안 절뚝거리며 걷기 마련이다. 뒤꿈치 상처에 딱지가 붙고 굳은살이 생길 때까지 새 구두는 던져버리고 구멍 난 옛날 구두를 신고 싶어진다. 물론 새 구두에 적응한다면 헌 구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감각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차원의 감각에 적응하는데 한 달이나 걸렸다.

단태는 원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설고의 눈을 자세히 보고 싶으면, 그냥 보면 된다. 그 하얀 눈이 셀 수도 없이 많은 격자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눈의 구조가 사람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감각도 같은 방식으로 작용했다. 이전보다 훨씬 예민하게 소리, 냄새, 맛, 감촉을 감지할 수 있었다.

감각의 변화로 세상이 달라졌다.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풍성한 공간이었다. 돌멩이 하나에도 온종일 감탄할 만한 비밀이 담겨 있었다. 단태는 며칠이나 설고 앞에 앉아 있었다. 거미의 다리 관절이 움직이는 방식은 우아했고, 돌 표면까지 녹이는 독액은 목표물을 놓치는 법이 없으며, 기이한 방식으로 흘러나오는 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북소리를 닮아 있었다.

무엇보다 신비로운 건, 단태 자신이었다. 손등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이전에 몰랐던 세부 구조가 숨어 있었다. 그 구조를 살피면…… 절로 감탄이 터져나왔다. 손등을 귀에 대고 집중하면 거기로 흐르는 피의 소리가 들렸다. 손등에 코를 대면 독특한 냄새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사람의 몸이 이토록 아름답고 흥미로운 줄은 몰랐다.

내면은 전혀 다른 분위기로 가라앉아 있었다. 감각의 변화는 거대한 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단태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 주고 있었다. 아직 용족 특유의 심장은 없지만, 단태는 자기가 인간이라기보다는 용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고의 충고가 떠올랐다.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다!

단태는 오직 하나만을 위해 살아왔다. 가족이었다. 사람 같지 않은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 엄마와 여동생을 위해서 목숨까지 걸었다. 그에게는 두 사람이 삶의 목표였고, 살아가는 이유였다.

“또 그 고민이죠?”

설고가 물었다.

“……널 속일 수는 없겠다.”

단태는 빙긋 웃었다.

“료마주 님은 자신에게 솔직할 필요가 있어요.”

“무슨 뜻이야?”

“료마주 님은 자신이 용족이기를, 위대한 존재이기를 바라시잖아요.”

“…….”

말문이 막힌 단태.

“그건 자연스러운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료마주 님을 부러워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정말 그럴까?”

“인간은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하잖아요.”

“그렇다고 가족을 버리면서까지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하진 않아.”

“가족을 버리지 않아도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많아요.”

“내 경우엔 그렇지 않아.”

단태는 순간 울컥 화가 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거미 주제에 이러쿵저러쿵 간섭을 하는 게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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