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 회: 4-1 -->
*단 하나의 보물
물이 끓고 있었다.
냄비나 그릇에 담겨서가 아니라 허공에 둥실 뜬 채로.
마력으로 일으킨 불꽃이 물을 끓이고 있었다.
단태는 앉은 자세로 물이 흘러내려 불을 끄지 않도록, 마력을 연료 삼아 타는 불꽃이 꺼져 물이 식지 않도록, 공중에 띄운 물의 형태를 세심하게 조절하는 중이었다. 물이 팔팔 끓자 오른손으로 물과 불이 그 상태를 유지하도록 만들면서 왼손을 돌 항아리 쪽으로 뻗었다. 돌 항아리에 담긴 금룡어 한 마리가 가느다란 물의 채찍에 휘감겨 공중으로 떠올랐고, 끓는 물 위로 날아왔다.
금룡어가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그 물의 채찍이 끊길 뻔했지만, 단태는 송골송골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집중하여 금룡어의 반항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곧 금룡어는 산 채로 끓는 물로 추락했다.
“……지금이야.”
단태의 말에 곁에 서 있던 설고가 각종 이끼, 수초를 끓는 물에 집어넣고 뒤로 물러섰다. 물의 채찍은 이제 뚜껑 형태로 바뀌어 금룡어가 투명한 냄비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곧 군침 도는 향이 용옥간 전체로 퍼져 나갔다. 처음엔 살아 있는 금룡어를 기절시켜 날것 그대로 뜯어먹었다. 다음엔 불로 구워서 먹었는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옛말이 옳았다. 직화구이의 맛에도 더 이상 만족할 수 없었다.
그 후로 맛의 탐방이 시작되었다.
설고가 잡아온 여러 종류의 물고기를 맛본 단태는 금룡어가 최고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후에는 금룡어를 어떻게 해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 고심했다. 지상에서는 익숙한 향신료를 구하기 어려워 설고가 용혈 곳곳에서 가져온 이끼를 수초에 추가하여 요리를 하는 중이었다.
“맛 좀 볼까?”
단태는 마력을 차단시켜 불을 껐고, 이어서 팔팔 끓던 물을 흩었다. 바닥에 고였다가 틈으로 사라지는 물이 남긴 수증기에 용옥간의 실내가 잠시나마 뿌옇게 흐려졌다. 곧 벽에서 흘러나온 서늘한 바람이 그 수증기를 날려 버렸다.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단태는 돌 항아리에서 끌어온 물로 숟가락, 젓가락을 만들었다. 그동안 부지런히 훈련한 덕에 물을 특정한 형태로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정사각형의 커다란 살을 물의 젓가락으로 들어 올린 단태는 한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반우현과 명국영이 차례로 사준 금룡반침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의 맛이었다. 씁쓸하면서도 달콤하고, 쫀득쫀득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에 잠시 정신이 어지러웠다.
그 맛에 푹 빠진 단태는 금룡어를 반으로 잘라 한 조각을 설고에게 내밀었다. 주로 사냥감의 체액을 빨아서 영양분을 보충하는 거미에게 이런 음식은 낯설었지만, 설고는 나름대로의 섭취 방식을 고안해 냈고 단태가 정성들여 요리한 금룡어를 즐길 수 있었다.
“맛있어요!”
“그렇지?”
스스로 만든 요리의 맛에 감탄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그 요리를 먹은 다른 존재의 반응은 또 다른 기쁨이었다.
단태는 남은 금룡어의 뼈를 마력으로 일으킨 불로 바짝 구워 오도독 씹어 먹었다. 영양의 균형을 위해서였다. 게다가 잘 구운 뼈는 고소해서 과자 같았고, 금룡어 살로는 경험하기 어려운 맛이 숨어 있었다. 단태에게 그 구운 뼈는 일종의 후식이었다.
포식한 단태는 벽에 기대어 앉았다. 설고도 옆으로 와서 그 자세를 취하려 했지만, 몸의 구조상 벽에 기대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커다란 덩치로 벽에 기댔다가 미끄러지는 모습에 단태는 웃음을 터트렸다.
“나중에 방법을 알게 되면 제 몸을 바꿔 주세요, 료마주 님.”
“무슨 뜻이야?”
단태는 굽지 않은 커다란 가시로 이 사이를 쑤시며 물었다.
“이 몸, 불편해요. 료마주 님처럼 인간의 몸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부탁드려요. 절대 잊지 마세요.”
“알았어.”
단태는 진심으로 인간의 몸을 가지길 원하는 하얀 거미를 쳐다보며 속으로 다짐했다. 설고에게서 진 빚은 산더미 같았다. 설고가 옆에 없다면 구슬로 가득 채워진 용옥간에서 이토록 오랫동안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방법만 알아낸다면 반드시 설고의 몸을 바꿔 줄 생각이었다.
설고를 기쁘게 해 줄 요량으로 돌 항아리와 바닥 아래에 스며 있는 물을 끌어 올렸다.
공중으로 올라온 물은 거미의 형태로 변했다. 수박 크기만 한 거미는 뒤뚱거리면서도 굉장히 날렵했다. 슬쩍 옆으로 쳐다본 단태는 설고가 신기해하면서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허공에 뜬 그 조그만 거미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서서히 형태가 바뀌었다. 빳빳한 털로 뒤덮인 여덟 개의 각각 두 개의 팔과 다리로, 커다란 몸은 가늘게, 무시무시한 이목구비는 인간 특유의 얼굴로 변형되었다.
거미가 완전한 인간으로 변모하자, 설고는 네 개의 다리로 ‘박수’를 쳤다. 박수는 단태가 설고에게 가르친 인간의 표현 방식이었다.
“……고맙습니다, 료마주 님.”
“이 정도 갖고 뭘? 나중에 몸이 달라지면, 그때는 고맙다는 말로는 부족할 거야.”
“네, 료마주 님.”
단태는 일어섰다. 마지막 용옥의 내부를 탐색하기 위해서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이제까지 무려 4,283개의 용옥을 손에 쥐고 그 안에 어떤 기억이 있었는지 직접 경험했다. 이제 단 하나의 용옥만 남아 있었다.
그 어떤 용옥보다 거대한 붉은 구슬이 선박 가장자리에 놓여 있었다. 단태가 그쪽으로 가자 설고가 뒤따랐다.
“조심하세요.”
“알았어.”
단태는 설고를 보며 빙긋 웃었다.
설고는 아직도 오래전의 일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단태는 백화룡 시하원주에게 붙잡혀 죽을 뻔한 기억은 생생했지만,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암탄주가 남긴 용의 유산 덕분에 감각과 심장은 물론 몸까지 덩달아 강인해지자 그 어떤 용도 단태를 의심하지 않았다. 게다가 거칠게 나오는 용에게는 유천주가 시하원주를 다루듯 뜨거운 맛을 보여 줄 정도로 단태는 강한 인간이었다.
그래도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지금의 두려움은 공포와는 달랐다. 낯선 세계로 발을 내딛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종류의 감정에 가까웠다.
“갔다 올게.”
“기다릴게요, 료마주 님.”
단태는 두 손으로 용옥에 손을 올렸다. 두 손에서 동시에 빠져나간 마력이 용옥에 스며들자, 붉은 안개가 흘러나와 단태를 에워쌌다. 곧 섬광이 터졌다.
시꺼먼 연기가 피어오르는 구덩이 안에 시뻘건 용암이 이리저리 흐르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본 단태는 화산의 꼭대기에 서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 화산의 이름은 방염산이었다. 저 아래에 제법 커다란 규모의 도시가 보였고, 그 너머로 광활한 사막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단태는 용옥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그 사막이 ‘중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 저 도시가 방염루체구나! 저기 조그맣게 솟아 있는 건물이 염종화탑이겠지?’
단태는 하쿠를 떠올렸다. 잘생긴 얼굴에 진심이 담긴 듯한 목소리의 소유자인 하쿠는 단태를 보기 좋게 속였다. 단태는 그 일을 잊지 않았다. 언젠가 갚아 줄 생각이었다.
인기척을 느끼자마자 단태는 몸을 돌려 다가오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사람이 아니었다.
“명룡 유천주의 잠룡 료……마주가 인사 올립니다.”
단태는 ‘료마주’라는 이름이 싫었다. 그 이름을 입에 올릴 때마다 암탄주의 교묘한 함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용오군 중 하나인 적서룡 무열군주라고 하네. 유천주는 처음 듣는 이름이구먼. 그건 그렇고, 자네의 시대는 제국력 몇 년인가?”
저 용이 용오군이라는 사실에 놀랐지만 단태는 어림잡아서 말했다.
“지금은 제국력…… 1493년입니다.”
“그런가? 시간이 제법 많이 흘렀군. 그대를 보니, 어딘지 낯선 느낌이 드는구먼. 그 이유를 물어도 괜찮겠나?”
잠시 망설였으나 단태는 진실의 일부를 털어놓았다.
“저는 현룡 무한주처럼 인간 사이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래?”
무열군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단태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용의 대부분이 의심부터 했기 때문에 그런 반응에 익숙해져 있었다. 다만, 인간을 경시하는 용족의 오만함이 싫어서 화가 날 뿐이었다.
“자네에게서 물과 바람의 향기가 느껴지는군.”
무열군주는 다행히 그 문제로 꼬투리를 잡지 않았다.
단태는 이번에도 진실을 알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