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136화 (136/293)

<-- 136 회: 4-13 -->

아레마고의 문 아래에는 처음 이곳으로 온 아이들과 문에 대해 설명하는 어른들로 북적거렸다. 아이들의 눈에는 문이 말을 걸어 주기를 바라는 갈망이 담겨 있었다.

아레마고의 문 아래로 간 명국영은 위를 올려다봤다. 대마법사 아레마고가 유타호의 주인이었던 수룡 만운주와 대화하는 장면이 아치형 문의 표면에 새겨져 있었다.

“나는 명국영입니다.”

명국영은 주위 사람들이 듣지 못하도록 속삭였지만, 곧 반응이 왔다.

-[전음]그대 명국영은 지금 이 순간부터 대마법사 아레마고의 계승자다.

그 목소리에 담긴 내용에 명국영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이 문은 자신을 지목했을까? 마법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학자일 뿐인데. 혹시 착오를 일으켰을까?

그때, 문에서 번쩍 푸른빛이 섬광처럼 터졌다.

도시의 성문으로 걸어가던 사람들이 일제히 놀라 멈춰 서서 아레마고의 문을 쳐다보았다.

수십 대의 짐마차, 수레들이 거짓말처럼 우뚝 멈추었고, 사람들은 자석에 철가루가 끌리듯 아메라고의 문으로 몰려들었다. 평소 이 문을 통과하면서 전설은 전설이라고 생각했던 어른들조차 전설을 떠올리며 찾아온 것이다.

아이들은 손을 뻗어 아레마고의 문을 만졌다. 어른들도 문에서 특별한 기운이라도 받을까 싶어 푸르스름한 문의 기둥을 만지기 시작했다.

명국영은 슬며시 그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오른쪽 손바닥이 화끈거렸던 것이다.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손바닥을 살핀 그는 눈에 힘을 주었다. 손바닥에는…… 아레마고의 구름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마치 불에 달군 쇠로 그 부분을 지진 것 같았다.

증거가 눈앞에 있으니 조금 전에 벌어진 일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명국영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 아메라고의 문은 수십 번이나 통과했었다. 그동안 아무런 반응도 없다가 오늘, 용금탄에서의 삶을 버리고 이곳 유타루체로 내려온 오늘 말을 걸다니!

사람들이 모여든 아레마고의 문을 쳐다본 명국영은 몸을 돌려 도시의 문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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륜사는 수정구를 부숴 버릴 뻔했다.

“……그러니까 아직도 연락이 닿지 않는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용천마 님.”

“연락을 부탁드린다고 말한 게 벌써 한 달 전입니다만.”

륜사는 최대한 성질을 죽이고 부드럽게 말하려고 애를 썼지만 붉게 달아오른 얼굴 표정은 감출 수가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 연결을 끊고 싶었다.

“사령마 님께서는 북동쪽의 사혈지로 들어가셨는데, 원래 거기 가시면 수정구로는 연락이 불가능합니다. 용천마 님의 말씀을 듣고 부마 세 명을 급히 사혈지로 보냈지만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조금 더 기다려 주셔야겠습니다.”

겨우 부마급 마법사 셋을 보냈다?

륜사는 폭발할 뻔했다.

최소 용마급 마법사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알겠소.”

륜사는 더 이상 말을 섞기 싫어서 연락을 끊고 숨을 몰아쉬었다.

저 빌어먹을 후령사탑은 할 수만 있다면 당장 가서 무너뜨리고 싶었다. 팔마탑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연락을 담당하는 하급 마법사조차 은근히 자존심을 내세웠는데, 마음 같아서는 거꾸로 매달아 곡소리 좀 나게 만들고 싶었다.

현재 륜사는 올해 여름에 있을 용마렵에 천마급 마법사들을 초대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천광탑의 백휘섬선 광오선은 용마렵이 시작되기 전에 유타루체로 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황제의 마법사 석장명도 긍정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그때까지는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나 싶었는데, 나머지 천마들은…… 도무지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패용녹탑의 은림자 차명은 계림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 알려져 있었다. 계림에서 나오지 않은 지 수년이 지났다는데 패용녹탑의 탑주조차도 그 위치를 모르고 있었다.

은후성탑의 음마성 율암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노래하는 나무 청명정목을 구하기 위해 운면산맥을 헤매고 있다는데, 역시 율암의 정확한 위치는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평환탑의 광마 종만추, 건원빙탑의 암혼빙마 백탁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용마렵에 여덟 명의 천마들이 참석하는 게 내 계획인데, 이러다가 엉망이 되는 거 아니야?”

륜사는 툴툴거렸다.

그때, 문이 열리며 보주관 여화가 들어왔다. 쟁반에 차가운 차를 가지고서.

“열 받으셨죠? 이거 좀 마시면 머리가 한결 정리될 거예요.”

“고마워.”

타마로 승급한 여화는 1년 만에 부탑주의 비서인 보주관이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인사 조치였다. 여화는 오래전부터 륜사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후령사탑이 부탑주님을 애먹이고 있죠?”

“아, 열 받아.”

륜사는 차가운 차를 단숨에 마셨다.

“제가 가서 후령사탑을 흔들고 올까요?”

그 말에 륜사는 웃음을 터트렸다.

“안 돼. 네가 가면 예쁜 여자 마법사가 왔다고 쌍수를 들어 환영할걸.”

“……그럴까요?”

여화는 예쁘다는 말에 얼굴을 붉혔다.

“물론 농담이지.”

륜사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런 륜사를 장난스럽게 흘긴 여화는 책상으로 걸어가서 오늘 도착한 편지, 서류 등을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명국영의 편지도 거기 섞여 있었는데, 여화는 은연중 그 편지를 본 륜사의 눈에서 불편함을 읽었다.

그럴 만도 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단태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벌써 3년이나 흘렀는데도 열흘마다 한 통씩 꾸준히 편지를 보내어 단태에 대한 소식을 묻는 명국영의 끈기야말로 비정상적인 것이었다.

“치울까요?”

“……아니.”

륜사는 결심을 한 듯 명국영의 편지를 뜯었다. 부담감을 회피하는 건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편지를 읽은 륜사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이것 좀 봐. 명국영 그 친구도 이곳으로 내려오는 모양이야.”

륜사가 건넨 편지를 대번에 훑은 여화는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명국영처럼 똑똑한 사람이라면 요즘 륜사를 괴롭히는 문제를 슬기롭게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제가 사람을 보낼게요.”

“그래, 그렇게 해. 정말 잘됐어. 이 친구가 오다니! 정말 아쉬웠거든. 명국영이 내 옆에 있었다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때, 문이 열렸다.

여화와 륜사의 시선을 받으며 그리 깔끔하지 않은 여행객 복장을 한 명국영이 가느다란 지팡이를 들고 부탑주실 안으로 들어섰다.

“이야!”

륜사가 벌떡 일어나 달려가서 명국영을 안았다. 여화가 그 옆으로 걸어갔다.

“오랜만이네.”

“연락 좀 하고 오지! 난 지금 막 이곳으로 내려온다는 편지를 읽었어. 이 꼴이 뭐야? 설마 용금탄에서 여기까지 걸어서 온 거야? 수정구로 미리 알렸다면 이번에 구입한 수궁룡을 태워줄 수도 있었을 텐데. 아무튼 잘 왔어.”

륜사는 명국영을 푹신한 의자에 앉히고 자신은 맞은편에 앉았다. 눈치 빠른 여화는 여행의 피곤을 풀어 줄 만한 차를 준비하려고 밖으로 나가고 없었다.

“보기 좋군.”

명국영은 륜사의 몸을 훑었다. 이전보다 살이 올라 있었다. 아직 뚱뚱한 정도는 아니지만 날렵하다 못해서 예리한 과거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모양이야. 그나저나 갑자기 이곳으로 내려온 이유가 뭐야? 잘리기라도 한 거야?”

“그만 뒀어.”

“왜?”

륜사는 깜짝 놀라며 걱정하는 척했으나 명국영은 그 미묘한 억양을 통해 륜사가 기뻐하고 있음을 간파했다. 어사관이라는 관직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명국영이 한 일의 대부분은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그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사람을 보고 속내를 파악하는 능력은 이전보다 훨씬 예리해져 있었다.

“이것저것 귀찮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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