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138화 (138/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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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시험은 실기였다.

변형수, 변성수, 통교수라는 기본 마법을 펼쳐야 하는데, 문제는 겨우 1율의 마력석만으로 성인 남자의 몸무게와 버금가는 물통을 옮기거나 물을 얼음 혹은 수증기로 바꿔야 했다. 게다가 통교수는 마력석 없이 물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많은 수련사들이 통교수에서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타마는 마법사로의 공식적인 첫 번째 경지였지만, 그 위로 많은 단계가 있었다. 타마가 한 단계 위인 부마로 승급하기 위해서는 같은 마력석으로 2배의 능력을 보여야 했다. 진마는 4배, 강마는 8배, 용마는 16배, 천마는 32배의 힘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 비결 중 하나가 바로 삼협이었다. 삼협은 마법의 역사에서도 위대한 발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원리였다.

삼광은 삼협과 반대로 세 가지 넓은 것이었다.

삼협이 같은 마력석을 이용하여 펼칠 수 있는 능력을 결정한다면, 삼광은 한꺼번에 끌어 모아 펼칠 수 있는 마력의 양과 관계가 깊었다. 인간의 몸에는 한계가 있어서 다량의 마력을 이기지 못해 심장이 터져 비명횡사로 삶이 끝나는 마법사들이 적지 않았다. 높은 수준으로 올라갈수록 그런 위험이 증가했는데, 삼광의 원리를 알아낸 덕분에 죽음의 공포는 서서히 줄어들었다.

단태는 용옥을 들락날락거리며 무열군주에게서, 아니 무열군주가 남긴 생생한 기억을 통하여 중요한 마법의 개념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장벽이 사라지자 마법에 대한 이해는 급속도로 증가했다. 조각조각 흩어져 파편으로 존재했던 지식이 서로 연결되어 덩어리가 되었고, 그 덩어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용옥 밖으로 나온 단태는 이미 자신이 타마의 수준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정령왕과의 계약으로 친화력이 남다른 그에게 물은 다루기 쉬운 물질이었다. 삼협, 삼광의 비결을 꾸준히 익히면 그리 어렵지 않게 부마, 진마의 단계에 이를 수 있을 테고, 어쩌면 강마와 용마도 불가능한 단계는 아닐 터였다.

“……그러다 보면 천마도 가능하겠지.”

소름이 돋았다.

전율이 몸을 타고 돌아다녔다.

륜사가 한 말이 생각났다. 풍혈지체의 부작용에서 벗어나려면 천마의 경지에 오르는 수밖에 없다고 했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건만. 단태는 유천주에게 끌려와 이곳 용혈에서 보낸 시간을 지옥처럼 여길 때도 많았다. 그런데 오히려 여기서의 경험이 그를 천마를 기대할 수 있는 곳까지 안내한 셈이었다.

천장에서 희끄무레한 것이 벽을 타고 내려왔다. 설고였다. 오랜만에 보니 무척 반가웠다.

“잘 지냈어?”

“네, 료마주 님.”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유천주 님은 약해지고 있어요. 전 그걸 느낄 수 있어요. 왜냐하면 제 안에 있는 것, 그 소중한 무언가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어요. 시간이 없어요, 료마주 님.”

“…….”

그 말을 듣자 뺨이 달아올랐다. 단태는 부끄러워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마법서가 보여 주는 거대한 세계의 매력에 빠져 설고의 깊은 고뇌를 잊다니! 그 어떤 변명으로도 합리화할 수 없으리라.

설고가 힘없이 사라지자, 단태는 다시 용옥 내부로 들어갔다. 그토록 단태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도움을 주었던 무열군주는 유독 하족 관련 문제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단태는 다른 용옥에 깃든 용의 기억을 뒤졌으나 하나같이 하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려 했다.

‘돌파구가 필요해.’

단태는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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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족을 파멸로 몰고 가는 재앙을 두고 시간의 흐름을 잊어 가며 깊이 고민에 잠겼던 단태는 한 가지 의문에 사로잡혔다. 그가 마간에 쌓인 산더미 같은 마법서를 탐독하면서 깨달은 진실 중 하나는 철저한 인과관계였다.

마법은 합리적인 학문이어서 원인 없는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배경으로 깔려 있었다. 아무리 신기하고 경이로워도 깊이 따지고 들어가면 항상 설명 가능한 원인과 결과가 있었다. 그저 복잡한 중간 과정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기적처럼 느껴질 뿐이다.

의문의 핵심은 용족의 심장이었다.

마력의 저수지 같은 심장을 두 개나 지닌 용족에게 마법은 호흡처럼 쉽고 자연스러운 방식일 수 있는데, 심장을 채우는 마력은 대체 어디에서 올까? 용족은 소화를 통하여 마력을 얻을까? 그렇다면 얼마나 많이 먹어야 그 막대한 양의 마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단태는 용이 무엇을 먹는지, 얼마나 먹는지 몰랐다. 그런 부분에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다행히 그에게는 사소한 질문을 던져 진실을 알아낼 수 있는 특별한 용옥이 있었다.

능옥은 고정된 기억을 담은 평범한 용옥이 아니었다. 보통의 용옥은 마력을 주입하여 내부로 들어설 때마다 같은 공간, 같은 내용, 같은 행동을 보여 주지만 능옥은 던지는 질문에 따라 반응이 달라서 마치 살아 있는 용족이 구슬 안에 잠들어 있는 느낌을 주었다. 용오군 중 하나인 무열군주의 용옥도 능옥이었다.

단태는 그 용옥에 접근하여 용족에게는 사소하고 가치가 없는 질문을 던졌다. 무엇을 먹는지, 잠은 얼마나 자는지, 배설은 어떤 방식인지 꼬치꼬치 캐물어 답을 알아냈는데, 생각보다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단태는 용을 인간에 비하여 능력이 탁월한 종족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용이 원한다면 먹지도 자지도 심지어 배설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점은 상상도 못 했다. 용은 배가 고파서 무언가를 먹는 게 아니었다. 보석이 생존에 필수적인 물건은 아닌 것처럼, 용에게 먹는 행위는 세상을 대하는 방식 중 하나일 뿐 필요성 때문에 따르는 본능적 행동과는 거리가 있었다.

용은 완전무결한 존재였다.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재앙이 닥치면 굶어서 죽기도 하는 인간의 고통을 용은 도저히 알 수가 없으리라.

무열군주는 심오하나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네가 왜 그런 질문을 던지는지 알 수 없지만, 용족은 자연 그 자체와 연결되어 있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생명을 가지고 있든 아니든 모든 것은 자연의 일부지만 본질적으로 자연과 단절되어 있네. 바위는 자연의 일부로서 외부의 힘이 가해지기 전까지 한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지. 허나, 진정한 의미로 자연과 연결되어 있지는 않네. 이해하기 쉽지 않을 테지. 전체의 일부이면서 그 전체와 단절된 상태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으니까. 굳이 설명을 한다면 인간족을 예로 들어야겠군. 백성이라 불리는 평범한 인간은 국가라 불리는 조직의 일부지. 그러나 그 백성은 국가의 운영에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네. 국가와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세. 불평을 늘어놓아도 황제와 귀족이 결정하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네. 부족한 비유지만 용족은 세계 전체와 실질적으로, 심층적으로 연결되어 있네. 바다가 가만히 있어도 강물이 흘러드는 것처럼 용족의 심장에는 저절로 마력이 흘러드는 거지. 예로부터 이 진정한 세계, 모든 것이 이어져 있는 이 세계를 우라마타라고 불렀네. 우라마타와의 연결이야말로 용족을 용족답게 만드는 본질이라네.”

무열군주는 은연중 용족을 세계를 다스리는 황제의 자리에 놓고 있었다. 바로 그 주장 때문에 무열군주의 말을 신뢰하기 어려웠다.

단태는 명국영을 통하여 권력을 지닌 자가 그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어떤 일을 벌이는지 배웠다. 황제는 곧 하늘의 아들이라는, 널리 알려진 생각 자체가 권력을 정당화하려는 교묘한 술책이었다. 배움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한 순진한 사람들은 그 주장을 받아들여 황제를 신의 아들로 섬기기도 했다.

기분 나쁜 논리지만, 단태는 일단 그 설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야 거기 숨겨진 진실을 알아낼 수 있을 테니까.

무열군주의 말이 옳다면, 그러니까 용족이 우라마타인지 뭔지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왜 저주가 용족을 괴롭힐까?

어쩌면 그 연결이라는 게 끊어졌는지도 몰랐다.

바다는 그럴 일이 없지만, 조그마한 연못의 경우 거기로 들어오는 물길이 끊기면 연못 자체가 말라 버려 바닥을 드러낸다. 어쩌면 지금 유천주의 상태가 말라버린 연못 같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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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힘겹게 눈꺼풀을 밀어올린 유천주가 단태를 노려보았다.

복잡하게 그려진 마법진 중앙에 누워 있는 유천주는 바싹 말라 있었다. 중년 남자의 얼굴에서 광대뼈가 불거졌고 턱 선이 날카로워 안 그래도 사나운 성격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아름답고 위엄을 갖춘 조각품을 배경으로 누워 있는 모습이 더 안쓰럽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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