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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태는 금룡어 눈알이 가득 든 그릇을 든 채로 유천주를 쳐다봤다. 이런 모습은 전혀 예상 못 했다.
“마음껏 비웃어라.”
잇몸을 드러내며 으르렁대는 유천주.
단태는 정신을 차리고 유천주 옆에 앉았다. 유천주가 저주의 위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직접 공들여 만들었을 마법진은 작동을 멈춘 지 오래였다. 단태가 억지로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았다면 유천주는 홀로 쓸쓸하게 죽었을 것이다.
“이것 좀 먹어 보세요.”
“금룡어 눈알? 웃기는구나.”
“…….”
단태는 금룡어 눈알을 입에 밀어 넣었다. 강제로. 유천주가 버둥거렸으나 지금 상태로는 단태의 힘을 이길 수가 없었다.
백 개의 눈알이 목구멍 너머로 사라졌다.
용으로 태어나 처음으로 이런 꼴을 당한 유천주는 분이 차올라 거칠게 숨을 쉬고 있었다.
“……죽여 버리겠어.”
“몸이 나아야 그럴 수 있겠죠? 나중에 또 오겠습니다.”
단태는 주혈 밖으로 나갔다. 빈 그릇을 들고.
마음이 무거웠다.
유천주를 살리기 위해 직접 살아 있는 금룡어의 눈알을 도려냈다. 그리고 주혈로 들어가서 억지로 먹였다. 이런 행동, 과연 잘한 짓일까? 운미의 주장처럼, 유천주에게 붙잡혀 이곳으로 끌려온 입장에서 이런 시기를 기회로 삼아 오히려 유천주를 죽여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운미가 서 있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녹슨 단검을 손에 든 채로.
“열어 줘. 내가 끝날 테니까.”
다부진 결심이 엿보였다.
단태는 가만히 있었다.
“저 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운미가 소리쳤다.
통로의 벽에 부딪혀 메아리치며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를 듣는 순간, 단태는 왜 유천주를 죽이는 대신 살리려고 안간힘을 쓰는지 그 이유를 깨달았다. 설고 때문만은 아니었다.
유천주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용옥을 통하여 용족 특유의 사고방식을 접한 단태가 보기에 유천주의 행동은 납득할 만한 무언가를 포함하고 있었다.
유천주는 심심해서 유타루체로 날아와 난동을 부려 시청 건물을 무너뜨린 게 아니었다. 오히려 유천주를 먼저 자극한 건, 사람들이었다. 소리 마법사가 시 당국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유천주를 건드리는 마법진을 실행하지 않았다면, 유천주는 도시로 난입하지 않았을 터였다. 시청 건물만 무너뜨리고 호수로 돌아온 것은 유천주가 사악한 용과는 거리가 멀다는 증거였다.
단태는 운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당신을 물에 빠뜨린 건 유천주가 아닙니다. 저 위에 있는 인간들이죠. 유천주는 내버려 두면 죽고 말 당신을 살려서 이곳으로 데려왔습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잘 알지만, 은인이라 할 수 있는 존재를 죽여서까지 돌아가야 합니까?”
차분한 질문에 운미는 당황했다. 수룡 유천주를 생명의 은인이라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날 호수에 던진 건 용신전 놈들이야.”
“당신도 느끼겠지만 유천주는 용신전이 뭘 하든 상관치 않습니다. 유천주가 용신전을 세운 것도 아니구요.”
“……수룡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날 호수 한가운데에다 던질 리가 없어!”
악을 쓰는 운미.
“그 대신 도시 외곽의 홍등가로 팔려갔겠죠. 그곳보다는 여기가 낫지 않을까요?”
“…….”
운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조금만 기다려요. 난 반드시 이곳을 벗어나 물의 도시로 돌아갈 생각이니까요.”
단태는 천천히 다가가 운미에게서 단검을 빼앗았다.
그때, 문이 열렸다.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몸이었으나 눈빛은 광기가 서린 평소의 분위기를 되찾은 유천주가 서 있었다.
“그런 꼬챙이로 날 죽이겠다? 재미있군.”
유천주와 눈이 마주친 운미는 뒤로 물러서다가 발이 꼬여 넘어졌는데 딸꾹질을 했다. 창백한 얼굴로.
단태는 운미 앞을 가로 막고 유천주를 쳐다봤다.
“몸, 괜찮습니까?”
“저주를 억누르는 효능이 있더군. 저주를 풀지는 못해도 발작 시기를 늦출 수는 있겠어.”
유천주는 단태 어깨 너머로 운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미 죽이기로 마음 먹는 터라 눈에서 살기가 번득거렸다.
“안 됩니다.”
단태가 제동을 걸었다.
“비켜라.”
“제 행동이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저 여자를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단태는 단호했다. 만약 유천주가 끝까지 운미를 죽이려 한다면 이 자리에서 끝장을 낼 생각이었다. 마음에 따라서 몸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윙윙 부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후후, 좋아.”
“감사합니다.”
바람은 즉시 멎었다.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너, 규칙적으로 내게 금룡어 눈알 백 개를 가져와라. 금룡어는 설고가 가져다주겠지만 눈알을 도려 내는 일은 전적으로 네가 해라. 날 속인다면 난 네 눈을 도려낸 다음 악어에게 먹이로 던질 것이다.”
공포에 질린 운미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유천주가 주혈 안으로 사라지고 문이 닫히자 단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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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좋은 것을 먹을수록 회복 속도도 빨라졌다.
단태는 금룡어 눈알을 간식처럼 맛있게 먹어 치우고 손가락을 핥는 유천주를 보며 무열군주가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용족은 자연 그 자체, 우라마타라 불리는 세계와 연결된 존재일까? 그래서 음식을 먹고 똥을 싸는 생명의 원리에서 자유로울까? 그렇다면 저주로 인해 그 연결이 끊어지는 바람에 완벽한 상태에서 추락하여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로 전락했을까?
“우라마타가 무엇인지 압니까?”
단태는 신중한 어조로 질문을 던졌다.
“우라마타? 처음 듣는데. 그건 왜?”
“……마간에 있던 책을 읽다가 궁금해서요.”
미리 생각한 핑계로 얼버무렸다.
“그따위 종이더미, 읽을 필요 없다. 곧 바빠질 테니까.”
유천주가 빙긋 웃었다. 수업을 재개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만큼 몸이 좋아졌다는 의미겠지.
단태는 주먹을 가볍게 쥐며 속내를 드러냈다.
“인간을 하족으로 삼겠어요.”
“…….”
어찌나 놀랐던지 유천주의 눈에서 광기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순수함과 순진함이 남아 있어서 소년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보지도 않고 뛰어들 수는 없어요. 작하족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각 단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작하족을 통하여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먼저 알아야겠어요.”
“하하하. 얼마든지 알려 주마. 네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구나.”
기뻐하는 유천주를 보며 양심에 가책을 느꼈지만 단태는 간단히 무시했다. 언제 다시 악화될지 모르는 유천주에게서 작하족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거짓말이 필요했다.
지속적으로 물이 유입되어야 할 연못에 물통 몇 개를 주기적으로 끼얹는다고 해서 연못이 찰랑찰랑 물로 가득한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곧 다시 바닥이 드러날 것이다.
단태는 유천주가 저주에 먹히기 전 작하족의 비밀을 알아내어 설고를 그 족쇄로부터 풀어 주고 싶었다. 그렇게 된다면 엄마와 여동생이 기다리고 있을 지상으로 마음 편히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유천주는 벽에 손을 대어 숨겨진 문을 열었다. 마법진으로 입구를 막아 놓아 유천주 외에는 문의 존재조차 알 수 없는 교묘한 장치였다. 그 안에 수십 개의 용옥이 고풍스러운 나무 받침대에 놓여 있었다. 용, 구름, 나뭇잎 등이 조각된 나무 받침대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이었다.
“작하족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는 용옥이다. 이것을 통하여 넌 확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네.”
단태는 앞으로 걸어가 용옥 하나를 손에 쥐었다. 어떤 기억이 담겨 있을까? 기대하며 마력을 주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