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149화 (149/293)

<-- 149 회: 4-26 -->

단태는 맹수 특유의 표정을 가진 저 동물이 얼음의 마법에서 최상급 재료로 간주하는 유면마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3층에는 몸 색깔이 수시로 바뀌는 뱀 혼암오각사, 4층에는 몸 형태를 바꿀 수 있는 도마뱀 역신척, 5층에는 몸에 녹색의 풀이 자라는 커다란 원숭이 중초후가 있었다. 6층, 7층에는 아예 듣도 보도 못한 기괴한 동물이 우리에 갇혀 바깥에서 구경하는 단태를 쳐다보고 있었다.

뼈로 제작된 우리는 깨끗했다. 관리가 잘되고 있다는 뜻이다. 설고로부터 이런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기에, 거미가 우리를 청소하지는 않을 터. 그렇다면 유천주가 직접 이 많은 동물을 돌보고 있다는 뜻이다.

유천주는 왜 저 많은 동물을 이 방에 가두고 있을까?

호기심은 더 커졌다.

단태는 밖으로 나와 두 번째 문을 열었다.

첫 번째 방과 달리, 숲 특유의 상쾌한 공기가 밖으로 밀려 나왔다. 단태는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서다가 바닥에 깔린 푹신한 풀밭을 밟고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꽤 규모가 큰 숲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천장과 벽에 박힌 야광석 덕분에 은은한 빛이 비쳐 숲은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담고 있었다.

피처럼 붉은 덩굴이 눈에 띄었다. 어린아이의 손바닥처럼 생긴 독특한 잎을 보자 단태는 이 식물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화융이었다.

운면산맥 고지대에서만 자란다고 알려진 화융은 불의 마법에 효과가 좋은 재료로 유명했다. 식충 식물의 일종으로 자고 있을 때 슬금슬금 다가와서 덮어 버리면 사람도 죽을 만큼 위험한 덩굴이었다. 한낮에만 채취가 가능한 화융은 잎사귀와 열매를 말려 재료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 옆에는 ‘불의 나무’로 불리는 염괴가 우뚝 서 있었다. 염괴는 불타고 있었다. 불에 휩싸여 있는데도 나무 자체는 타지 않는 기이한 광경을 보여 주는 염괴는 일 년에 한 달만 불길이 약해져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염괴가 내뿜는 열기는 엄청나게 강해서 은륜목이 냉기를 뿜어 그 열기를 막지 않는다면 다른 나무들은 말라죽을지도 몰랐다. 얼음이 표면에 맺힌 은륜목은 자그마한 고목이었지만, 거기서 흘러나오는 냉기는 염괴로부터 숲을 보호하기에 충분했다.

단태는 은륜목 근처로 다가가지 않았다. 그가 ≪마법재료대백과≫에서 나무를 지키는 은색의 뱀 빙사가 은륜목 뿌리 틈에 숨어 접근하는 사람을 공격한다는 내용을 읽었기 때문이다. 과연 굴곡진 뿌리 틈에서 한 마리 뱀을 발견할 수 있었다.

회령목도 있었다. 말라비틀어져 죽은 나무로 착각할 수도 있는 회령목 근처에는 크고 작은 뼈가 떨어져 있었다. 후령사탑 같은 죽음, 어둠의 마력을 애용하는 마법사들이 최고의 재료로 평가하는 회령목은 기이한 방식으로 생명을 빨아들일 수 있었다.

색깔이 자주 바뀌는 열매 환마과가 달린 커다란 나무 환마목,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오는 노래하는 나무 청명정목,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나무 섬신목, 나무 주위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고 알려진 천간목, 외형 자체가 서서히 바뀌는 환체목 등 평범한 사람은 평생토록 한 번도 볼 수 없는 나무들이 숲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거 참…….”

단태는 잎사귀 하나 건드리지 않고 그 방을 빠져나와 일곱 개의 문을 쳐다봤다. 유천주의 방에 이런 공간이 있을 줄이야.

호기심에 사로잡힌 단태는 세 번째 문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방에는 크고 작은, 다양한 색깔의 돌이 쌓여 만들어진 바위산이 떡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역시 범상치 않은 돌이었다.

붉은 대나무를 닮았으나 실은 화산지대에서 압력을 받아 땅 위로 솟구친 광물인 화식순, 만년설이 있는 높은 산봉우리에서 운이 좋아야 발견할 수 있는 빙운석, 묘지가 몰려 있는 공동묘지에서 가끔 모습을 드러내는 암사석, 스스로 소리를 낼 수 있는 음명석, 이끼 형태를 취하나 은은한 빛을 발하는 광물 백광양, 시간의 흐름을 방해하는 간류석, 나무 안에서 생성되어 나무를 뚫고 나온다고 알려진 녹옥석 등이 거기 있었다.

저기 있는 돌 중 하나만 채취해도 거액의 돈을 벌 수 있다. 전문적으로 마법 재료를 찾아서 대륙을 헤매는 사람들에게 이 방은 꿈의 공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 방은 호수로 이어져 있었다. 금룡어를 비롯하여 환각 현상을 일으킨다는 천환마어, 시체를 먹고 자란 시무치, 바람을 일으키는 녹풍어 등 기이한 물고기가 호수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또한 호숫가에는 다양한 종류의 수초가 자라고 있었는데, 그 어떤 곳보다 질 좋은 형운세초를 비롯하여 진귀한 수초가 무성한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다섯 번째 문을 열자, 수백 마리의 새가 일제히 지저귀는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단태는 크고 작은 뼈 우리에 갇힌 그 많은 새들 중에서 단번에 눈에 익은 새를 찾아냈다. 붉은 몸통에 새하얀 날개, 은색의 머리. 그는 눈을 비볐다. 분명히 란조였다. 란조는 단태가 붙인 이름으로 원래는 소리 마법사의 증표인 백관조로 불렸다.

단태는 그 새 앞으로 다가갔다.

“단태가 란조를 찾으러 왔다.”

새가 말했다.

“……정말 너 란조니?”

“나, 란조다. 나, 란조다.”

단태는 우리의 문을 열었다. 란조는 날개를 퍼덕여 단태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네가 어떻게 여기 있는 거야?”

그 소리 마법사가 란조를 데려갔었다.

“나, 도망쳤다. 단태를 찾으려고.”

“설마? 날 찾으려고 여기까지 온 거냐?”

“소리를 찾아서 내려왔다가 길을 잃었다.”

“……그래?”

단태는 적잖이 놀랐다. 백관조가 인간은 물론 청각이 뛰어난 웬만한 동물보다 수천 배, 수만 배 훌륭한 청각을 가졌다는 사실은 책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그 먼 곳에서 목소리만으로 이곳까지 내려왔다니.

그 순간, 단태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을 받았다. 란조가 호수 바닥까지 잠수했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땅으로 올라가는 통로가 어딘가에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런 나를 위대한 존재가 돌봐 주었다.”

“정말?”

유천주가 여기 있는 진귀한 동물, 식물, 돌, 어류, 수초를 수집을 목적으로 강제로 데려온 줄 알았는데, 적어도 란조는 거기에 해당되지 않았다.

이유야 어떻든 란조를 다시 보니 감동으로 가슴이 뭉클했다.

란조를 어깨에 둔 채 단태는 여섯 번째 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어떤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

텅 빈 공간이었다.

중앙에 원형의 탁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푸르스름한 용옥이 열 개 남짓 그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주위를 살핀 료마주는 용옥 하나를 손에 쥐었다. 거기서 흘러나온 푸른빛에 휩싸인 순간, 그는 용옥의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공동 중앙에 그리 크지 않은 수룡 유천주가 앉아 있었다. 유천주는 인간의 몸이 아니라 본체였다. 단태는 직접 본 몸에 비하면 작은 체구였다.

유천주를 둘러싼 인간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완벽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었다. 단태는 광기 서린 눈빛을 통하여 그들이 인간이 아니라 용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다운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아직도 변신 마법을 익히지 못한 거니? 너, 그러다가 영영 잠룡으로 살아야 할지도 몰라.”

눈이 붉게 빛나는 여자가 말하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왁자지껄 웃음을 터트렸다.

유천주는 커다란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용오군도 고개를 내저었으니 암탄주 님이 아무리 뛰어난 명룡이라고 해도 저런 녀석은 쉽지 않을걸.”

피부를 뚫고 나온 덩굴이 옷처럼 몸을 덮고 있는 남자의 말에 또 웃음이 터졌다.

“날 비웃어도 그분은 건드리지 마라.”

유천주가 분을 담아 말했다.

“그분을 건드리는 건, 바로 너야. 너 유천주 때문에 암탄주님의 명성이 땅에 떨어졌어. 어떻게 백 년이 흘렀는데도 넌 여전히 잠룡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거냐? 아직 작하족의 과정도 통과하지 못했다면서? 설마 네 힘으로 용혈을 만들려는 거야? 역사상 자기 손으로 땅을 파서 용혈을 만든 용은 없었어.”

머리카락이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남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와서 손가락으로 유천주를 가리켰다.

“……난 그저 시간이 좀 걸리는 것뿐이야.”

유천주의 반박은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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