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156화 (156/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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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았을 뿐이옵니다, 폐하.”

“앞으로도 계속 정진하여 대마법사 하랑을 뛰어넘는 성취를 보여 주기 바라오.”

“황송하옵니다, 폐하.”

륜사는 진심을 담아서 고개를 숙였다.

천마의 경지에 올랐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은 그 순간, 륜사는 또 다른 목표로 하랑을 떠올렸다. 여러 천마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천마…… 아니 천마의 경지를 넘어서는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황제는 몸을 일으켰다.

마법사들도 일어섰다.

“그대들이 있기에 제국의 백성이 평화롭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소. 내 그대들을 위해 잔을 들겠소.”

“황공하옵니다, 폐하.”

마법사들도 술이 담긴 잔을 들어올렸다.

“그대들의 마법을 위하여!”

“폐하의 치세를 위하여!”

건배 이후, 마법사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바람이 불어와 배가 흔들리는 바람에 멀미 기운이 있는 황제가 석장명과 함께 갑판 아래로 내려갔던 것이다.

광오선이 륜사 옆으로 다가왔다.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어르신.”

륜사는 제국 최강의 마법사가 다가오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한편으로 언젠가 최강의 마법사가 되어 있을 자신을 떠올렸다.

“어르신이 아니라 그냥 선배라고 하게. 자네도 천마의 경지에 올랐으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선배님.”

명성이 대지를 진동하는 광오선에게서 인정을 받자 륜사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마법의 성취만을 위하여 달려왔던 그는 광오선의 말 몇 마디에 그동안의 노력에 대해 보상을 받은 느낌이었다.

“천마라고 다 같은 천마는 아니야.”

암혼빙마 백탁이 차가운 말투로 끼어들었다.

“……알고 있습니다.”

륜사는 머리카락처럼 은색으로 반짝이는 눈을 보고 속이 서늘해졌다. 과연 얼음의 마법사다웠다.

“그렇지. 천마라고 다 같은 천마는 아니지. 안 그런가, 후배?”

종만추가 다가와 백탁을 쳐다보았다.

“……그렇지요, 선배님.”

백탁은 내키지 않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대답했다.

륜사가 천마들과의 교제라는 낯선 경험을 하는 동안, 음마성 율암은 홀로 갑판 끝으로 나와 출렁이는 호수를 바라보는 사령마 만표 옆으로 다가섰다.

“오랜만입니다, 선배님.”

“귀를 닫고 산다더니, 말은 잘하는구먼.”

“세상의 소음이 싫지, 대화까지 끊고 살 생각은 없으니까요.”

“자네도 그 책 때문에 왔지?”

“저뿐 아니라, 저기서 수다를 떠는 분들도 모두 아레마고가 남긴 책 때문에 여기로 모이지 않았겠습니까?”

“경쟁이 제법 치열하겠군.”

“책이 있다면 말이지요.”

음마성은 빙긋 웃었다.

“……없다는 뜻인가?”

눈에 힘이 들어간 사령마.

“없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후후, 책이 있어야 할 게야. 누군가의 농간으로 나를 이곳으로 불렀다는 게 드러난다면, 아무리 황제가 있다고 해도 죽음의 춤을 막지는 못할 테니까.”

“농간을 부렸다면 대가를 치러야 하겠지요.”

음마성은 사령마의 의견에 동조했다. 자신이 나서서 그 작자를 벌주지는 않겠지만 사령마를 말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레마고의 문, 살펴봤겠지?”

“네.”

“자네도 느꼈나?”

“……그 문에 관한 전설은 사실이었습니다. 아레마고가 봉령수체를 연구해서 완성시켰다더니, 어쩌면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게 아니었다면 이런 자리에 와서 지루한 시간을 보낼 리는 없지.”

그렇게 말한 사령마는 끌끌 웃었다. 죽음이 깃든 웃음이었다.

“어르신, 황제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유천주를 처리하여 유타루체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곳에 온 모양인데, 유천주가 모습을 드러낼까요?”

“용마렵이 왜 하필 지금 열리는지 아는가? 바로 유천주가 깊이 잠드는 시기이기 때문이야. 용을 사냥하는 시기로는 적당치 않지. 이건 저 유랑극단의 공연과 같네. 용을 잡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공연이지. 어리석은 황제의 의도와 달리, 이번 용마렵도 연극으로 끝날 공산이 크네.”

“역시, 그렇군요.”

음마성은 그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까다로운 선배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 이제 본론을 말해 보게. 자네가 평소 날 꺼리진 않지만 그렇다고 친근히 여기지도 않는다는 점을 나는 잘 알고 있지. 그런 자네가 먼저 다가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나는 듣고 싶네.”

사령마는 날카로웠다.

“……진동을 느꼈습니다.”

음마성은 본론을 꺼냈다.

“저 호수에서?”

“그렇습니다.”

“평범한 진동이 아니겠군.”

사령마의 눈이 반짝거렸다.

“마력이 깃든 진동이었습니다.”

“……마력이 깃든 진동? 자네 생각은 뭔가?”

“저주로 이성을 잃은 유천주 외에 또 다른 용, 그러니까 아직 저주로부터 자유로운 용이 이 호수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추측입니다.”

음마성은 자신의 추론을 털어놓았다.

“설마? 고룡 암탄주까지 집어삼킨 저주가 아닌가?”

“그래서 선배님께 말씀드리는 겁니다. 후령사탑은 용의 접근을 미리 알아내는 마법을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네, 많이 아는구먼.”

음마성을 경계하는 사령마.

“선배님께서 저희 은후성탑에 대해 아는 것만큼, 저도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음마성은 늙은 마법사의 성질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단어까지 선택하며 말했다.

“좋아. 속는 셈치고 해 보지.”

그 자리에 주저앉은 사령마가 눈을 감고 뭐라고 중얼대자 몸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 연기를 본 음마성은 즉시 뒤로 물러섰다.

연기는 허공에서 복잡한 기하학적 형태로 변하더니, 하늘 위로 솟구쳐 사방으로 퍼졌다. 어둑어둑한 밤에 터지는 불꽃놀이와 달리, 저 검은 불꽃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천마들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저 악귀가 대체 뭘 하는 건가?”

백휘섬선 광오선이 음마성에게 물었다.

“……유천주가 어디 있는지 알아보고 있습니다.”

얼버무리는 음마성.

“…….”

광오선은 음마성을 쳐다봤다. 맑고 깨끗한 사람 앞에서는 인자한 할아버지 같지만, 무언가를 숨기기나 어둠에 물든 사람 앞에서는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도 있는 사람이 바로 광오선이었다.

“선배님?”

“저주에 걸린 용, 즉 야생동물과 다를 바 없는 용의 위치를 알아내는 마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 허나, 후령사탑에는 용투기에 반응하는 ‘사유위룡’이라는 마법이 있는데, 그 마법은 삼년 전쯤에 죽은 고룡 암탄주 같은 진짜 용의 접근을 미리 알 수 있지. 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나?”

“그게…….”

음마성은 어쩔 수 없이 진실을 털어놓았다. 마력이 깃든 진동을 느꼈다는 내용이었다.

“호수 쪽에서 온 진동이 확실한가?”

“선배님, 전 음마성입니다.”

“……그렇군. 소리에 관해서라면 세상 누구도 자네만 못하겠지. 자네가 미심쩍어서 저 늙은 악귀를 통하여 사실 확인을 하려는 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네.”

광오선이 평소처럼 활짝 웃자, 음마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광오선이 한번 날뛰기 시작하면 사령마 만표마저도 고개를 내젓고 말 것이다.

그때, 사령마 만표가 눈을 떴다.

“젠장!”

만표가 몸을 위로 날려 밧줄을 잡고 돛대 위로 솟구친 순간, 묵직한 충격이 황마선을 강타했다. 탁자 위에 놓인 진귀한 요리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엎어졌고, 연주하는 악사들은 바닥으로 나뒹굴었으며, 배 전체가 그 충격을 흡수하느라 요동쳤다.

거대한 그림자, 황마선 몇 척은 덮고도 남을 그림자가 호수 아래로 지나가고 있었다.

갑판 끝에 서서 그 짙은 그림자를 본 마법사들은 안색이 변했다.

그 순간, 거대한 꼬리가 수면 밖으로 나오더니 허공 높이 솟구쳤다가 황마선을 강타했다. 정확히 두 척의 대마선을 연결하는 가교 부분을 꼬리가 때리자 황마선은 둘로 갈라졌다.

꼬리가 굉음을 일으키며 물속으로 사라지자마자 푸른 눈의 유천주가 입을 쩍 벌려 대마선 하나를 꽉 물고 물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요리사와 경비병 등 용마렵 행사를 위해 동원된 사람들이 탄 그 배는 눈앞에서 사라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황마선 근처로 따라왔던 수십 척의 크고 작은 배들은 황급히 선수를 돌려 안전한 방책 너머로 들어가기 위해 노를 저었지만 대마선 한 척을 수장시킨 유천주가 훨씬 빨랐다. 그 거대한 꼬리를 한 번 후려치자 몇 척의 배가 박살이 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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