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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혼빙마 백탁이 휘파람을 불며 호수로 뛰어내렸다. 발이 수면에 닿기도 전에 물이 얼어붙었고, 백탁은 새하얀 얼음 덩어리 위에 서서 유천주가 작은 배들을 박살 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던 그가 마력을 끌어 올려 웬만한 배보다 긴 얼음의 창을 만들어 냈다. 창을 꽉 쥔 백탁은 유천주의 목을 겨누며 던졌다.
공기를 뚫고 날아간 얼음의 창이 유천주의 목에 박히자, 지켜보던 사람들이 환호했다. 그러나 천마들은 생각이 달랐다. ‘은빙창’ 하나로 유천주 같은 용을 죽일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것이다.
천마들이 일제히 호수로 뛰어내렸다.
마력을 발바닥에 집중시켜 무형의 막을 만들어 낸 그들은 부채꼴로 진형을 갖춘 채 발톱을 들어 올려 얼음의 창을 부수는 유천주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두를 차지한 사람은 용천마 륜사였다.
륜사는 단숨에 탄양극수를 펼쳤다.
3년 전 유천주를 죽이기 위해 탄양극수를 펼쳤을 때는 목숨을 걸어야 했지만, 천마가 된 지금은 달랐다. 수면을 박차고 공중으로 도약한 그는 마력을 마법에 쏟아부었다. 물의 안개가 륜사를 휘감고 회전하자, 회백색의 소용돌이가 공중에 생겨났다. 그 무엇이든 다 찢어 놓는 탄양극수가 펼쳐진 것이다.
유천주는 그 위험을 감지한 듯 물 아래로 숨어 버렸다.
탄양극수를 펼친 륜사가 수면에 부딪히자 커다란 소용돌이가 유천주로부터 겨우 살아남은 작은 배들을 집어삼켰다. 살려 달라고 소리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당황한 륜사는 탄양극수를 멈추려 했지만 한번 발동된 대형 마법은 그 힘이 다할 때까지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었다. 용마렵에 참가하기 위해 고르고 고른 용병, 솜씨 좋은 어부 들이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 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음마성 율암이 소매자락 안쪽에서 꺼낸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그 피리에서 흘러나온 기이한 소리가 소용돌이에 닿자 맹렬하게 회전하던 힘이 약해졌다. 소용돌이를 지탱하는 근원적인 힘을 무력화시켜 소용돌이를 단숨에 멈춘 것이다.
배는 부서졌지만 거기 타고 있던 선원들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손을 흔들며 환호했다.
다음은 광마 종만추가 나섰다. 그가 직접 만든 마법진을 곳곳에 뿌리자, 수면 위로 여러 명의 천마들이 생겨났다. 환상마법으로 만들어진 그 천마들은 자유자재로 움직였는데, 진짜와 구별하기가 불가능할 만큼 현실적이었다. 종만추의 환상마법이 무서운 까닭은 그런 마법으로 만들어진 환영이 실체처럼 작용하기 때문이다.
유천주가 나타나 수면 위를 돌아다니는 마법사를 집어삼키고 사라졌지만, 그 마법사는 종만추가 만든 허상이었다.
그사이, 천마들은 ‘전성’을 통하여 유천주를 죽일 계획을 짜고 있었다. 서로의 마법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곧 계획은 완성되었다. 다섯 명의 천마가 힘을 합쳐야 가능한 계획이었다.
“……저도 돕고 싶습니다.”
륜사가 끼어들었다.
“자넨 지켜보게. 선배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광오선의 말에 륜사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종만추가 뿌린 미끼를 향해서 흥분한 유천주가 덤벼들자, 그 옆으로 따라붙은 백휘섬선 광오선이 섬광을 터트렸다. 그 빛에 닿은 모든 시선을 마비시키는 빛의 마법이었다.
유천주가 머뭇거리는 순간, 암혼빙마 백탁이 달려들어 단숨에 물을 얼음으로 만들었다. 몸에 담긴 마력은 물론 열 개의 보석반지에 틈 날 때마다 저장한 마력을 모조리 끄집어내 그는 유천주를 얼음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 유천주의 거대한 머리만 얼음 밖으로 나와 있었다.
다음엔 종만추가 나섰다. 유천주의 정수리에 올라탄 그는 준비한 두루마리를 찢었다. ‘환형마진’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당하면 환형마진이 만들어내는 기이한 세계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죽고 만다는, 종만추가 자랑하는 마법진이었다. 환형마진은 유천주의 정신을 괴롭혀 얼음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막을 터였다.
그와 동시에 음마성 율암이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유천주가 혹시라도 환형마진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피리에서 흘러나오는 고혹적인 연주에 정신이 묶이도록 만든 것이다.
유천주의 동공이 흐릿하게 풀리자 후령사탑의 사령마 만표가 껄껄 웃으며 얼음에 갇혀 호수 위에 떠 있는 용 옆으로 다가갔다. 몇 번 용을 죽인 적은 있지만, 이토록 거대한, 아직 용투기를 잃지 않은 진짜 용은 처음이었다.
순간, 그의 뇌리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여기서 저 용을 죽인다면 황제와 물의 도시 유타루체에게만 이익이 될 뿐이다. 아직 용투기를 완전히 잃지 않은 이 용이라면 세상에 둘도 없는 충성스러운 수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용을 완전히 죽이는 마법 ‘투형망’ 대신 죽음의 기운을 깊이 심는 ‘사혈투지’를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사령마는 두 손을 유천주의 이마에 놓고 사혈투지를 펼쳤다. 시꺼먼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가 유천주의 이마로 파고들었다.
그때, 유천주는 환형마진과 피리 소리로부터 벗어나 제정신을 차렸다. 머릿속으로 침투한 사혈기가 유천주를 마비 상태로 몰아넣었던 저주의 기운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운미가 그랬던 것처럼 사령마도 본의 아니게 유천주를 도운 셈이었다.
유천주는 방심이 얼마나 큰 실수인지 깨달았다. 평소 상대하던 마법사와 차원이 다른 능력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평소처럼 행동하다니! 자칫 잘못하면 위대한 존재답지 않게 죽을 뻔했다.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낀 그는 푸른 눈으로 인간을, 마법사를 쳐다봤다.
입을 벌린 유천주는 호수는 물론 그 너머까지 들릴 만큼 굉음을 터트렸다.
그 소리에 얼음이 깨졌다.
곧 위대한 존재의 부름에 반응한 물고기들이 유천주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물뱀과 악어들도 마찬가지였다.
호수의 생명들이 모조리 수면 위에 발을 딛고 있는 마법사들을 공격했다. 금룡어의 예리한 이빨이 마력으로 만든 막을 뚫고 구두를 물어뜯었고, 악어는 순식간에 종만추가 만든 환영을 먹어 치웠으며, 물뱀은 떼를 지어 배로 가서 강력한 흡착력을 이용하여 뱃전을 넘어 갑판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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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국영의 의식에서 쫓겨난 단태는 결존계가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나비와 거미, 잡혀온 인간의 내면으로 파고들었던 그는 돌 항아리에 갇혀 죽기만을 기다리는 금룡어가 되기도 했고, 용혈 바깥 호수의 수면으로 몰려들어 배를 공격하는 물뱀이 되기도 했으며, 심지어 악어와 물뱀이 갑판으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창으로, 막대기로, 방패로 밀어내는 뱃사람이 되기도 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단태는 알 수가 없지만, 그 진귀한 경험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점은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소금을 뿌린 생선이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고 몸부림치는 것처럼, 결존계는 단태를 뒤덮은 소금이 되어 단태가 한시도 안정을 취할 수 없도록 호수 곳곳에 자리 잡은 존재의 내면으로 이끌었다.
살아 있는 생명이라면 그 무엇이든 단태를 담을 수 있었다. 진흙탕 안쪽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는 물론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한 입에 물고 물 아래로 내려가는 악어, 그 악어에게 잡혀 죽음을 느끼는 사람, 그 혼란에도 평정을 지키는 천마들까지.
순간적으로 과거에 한 번 보았던 고귀한 인물의 내면에도 단태는 파고들 수 있었다. 황제는 그 위태로운 순간에도 북쪽의 반란을 염려하고 있었다.
점점 존재의 내면에 머무르는 시간이 짧아졌다.
이제 단태는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자기가 누구인지도 알기 어려웠다.
생각이 뚝뚝 끊기고, 기억마저 가물거리면 누구나 자아를 잃기 마련이다. 자아는 태어난 순간부터 한 번도 그 자신을 떠나지 않기에 가능한 ‘연속적인 생각’과 ‘축적된 기억’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존계의 위험은 바로 그 내부에 갇힌 존재의 본질, 즉 자아를 갉아내어 완전히 없애 버릴 수 있다는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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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천주는 당황하는 마법사들을 노려보며 물 아래로 내려갔다.
깊이, 깊이 가라앉으면서 유천주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저주를 늦추는 금룡어의 눈알을 하루에 수십 개씩 먹어 치우면서 버텨 왔건만, 한계에 다다르고 말았다. 조금만 마력을 끌어 올려도 그 저주가 따라 올라와 몸을 점령하고 말 것이다. 저주 때문에 몸이 마비되지 않았다면 그 허약한 인간 마법사들에게 그런 수치를 당하지 않았을 텐데.
호수의 바닥에 가라앉은 유천주는 겨우 꼬리를 움직여 용혈로 돌아왔다. 인간의 몸으로 변하는데, 오른쪽 가슴이 아팠다. 눈을 감고 확인한 그는 두 개의 심장 중 하나가 죽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주가 하나의 심장을 먹어 치운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