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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겨운 금룡어의 눈알을 한꺼번에 수십 개나 먹어 치운 것도 모두 저주 때문이었지.
문제는 나머지 심장 역시 저주에 물들어 언제 꺼질지 모르는 촛불이나 다를 바 없는 신세라는 점이지. 언젠가 나는 죽는다. 다른 모든 생명처럼. 하나, 그 저급한 생명처럼 죽지는 않을 생각이다.
잘 들어라.
나는 스스로 짐승이 될 것이다.
나는 스스로 인간이 부리는 그 짐승이 될 것이다.
마지막 남은 마력을 짜내어.”
그렇게 말한 유천주는 단숨에 결존계의 일부가 된 단태의 몸을 뚫고 들어간 덩굴 줄기를 손날로 잘랐다. 단태의 몸에서 분리된 그 덩굴 줄기는 녹색의 액체를 흘리면서 버둥거렸는데, 유천주는 그 줄기를 잡아서 자기 몸에 꽂았다.
그러자 단태에게 붙어 있는 덩굴 줄기들이 녹색의 뱀처럼 흔들리더니 유천주의 몸으로 이동했다. 수십 마리의 뱀들이 일제히 유천주의 몸 곳곳으로 파고들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유천주의 얼굴.
“물론 짐승이 되기 전에 널 구해야겠지. 이 모든 게 너 때문이다. 네가 풍혈지체만 아니라면, 내가 오늘 여기서 이런 꼴을 당할 이유가 없는 거다.”
유천주는…… 웃고 있었다.
단태는 당장 용옥에서 벗어나 결존계가 설치된 주혈 아래로 달려가고 싶은데, 그에게는 이 용옥에게서 빠져나갈 능력이 없었다. 답답함에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혹시라도 날 걱정한다면, 그런 감정은 버려라. 나 유천주는 위대한 존재, 위대한 종족의 일원이다. 누군가의 동정을 바라고 기뻐하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다. 넌 허약한 인간으로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감정에 휩싸이겠지만, 네가 누군지 잊지 마라. 넌 나처럼 위대한 종족의 일원이며, 위대한 존재니까.”
유천주는 그 말을 하자마자 기침을 시작했다. 끝도 없이 이어질 듯한 기침이 끝나자 피를 토했다.
몸에 박힌 녹색의 덩굴 줄기를 통해 무언가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뱀이 자기 몸보다 큰 먹잇감을 삼킨 것처럼, 불룩한 것이 줄기를 통해 이동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창백한 유천주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숨을 몰아쉬던 유천주는 말했다. 힘이 없는지 속삭이는 수준이었다.
“결존계를 멈춘 다음, 나는 대혈로 가서 마지막 마법을 펼칠 것이다. 그 마법은 나 자신을 깡그리 없애는 마법이다. 이른바 ‘자살 마법’이지. 이런 식으로 사용하려고 만든 마법은 아니지만 말이야. 물론 그 전에 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내가 약해지면, 저주로 인해 쇠약해지면, 이 마법진 바깥에서 지금 상황을 주시하는 놈들이 계약에서 풀려나 제멋대로 돌아다닐 것이다. 저놈들의 충성은…… 공포 앞에 무릎 꿇은, 그런 종류의 충성이라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겠지. 그러니 넌 용옥간에서 정신을 차리면 용옥에서 벗어나는 순간, ‘예간’으로 가서 ‘천살제주’를 발동시켜라. 나의 표식을 지닌 너는 지금 이 순간부터 거기 설치된 마법진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눈치를 챈 놈들이 널 공격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예간으로 가거라. 그런 다음에 대혈로 나를 찾아와라. 나의 ‘희생’을 절대로 헛되게 만들지 마라.”
유천주는 손을 뻗어 옆에 쓰러져 있는 단태의 손바닥에 자신의 손바닥을 지그시 눌렀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유천주가 손을 떼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단태의 손바닥에 복잡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붉은 거미를 닮은 그 문양은 윤곽만 남았다.
그때, 단태는 용옥에서 벗어났다.
정신을 차린 단태는 몸을 일으켰는데, 용옥간의 구석에서 미세한 기척이 느껴졌다. 눈에 마력을 집중하자 시력이 좋아져 어둠이 뒤로 물러갔고, 거기 자리 잡은 거미들이 보였다. 원형으로 둘러싼 거미들은 단태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흔들림 없는 까만 눈에 평소와 달리 소름이 돋았다.
단태는 모른 척하고 용옥간 밖으로 나가려는데 천장에서 벽을 타고 설고가 내려와 앞을 막았다.
“어디로 가십니까?”
딱딱하지만 정확한 발음으로 설고가 물었다.
“결존계가 있는 곳으로.”
“용주 님은 대혈로 가셨습니다.”
“……그래?”
“료마주 님을 대혈로 모시겠습니다.”
단태는 설고를 쳐다봤다. 다른 거미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설고.”
“예, 료마주 님.”
“……선택을 한 건가?”
“…….”
“동족의 편에 서기로 결정한 거냐?”
“그렇습니다.”
깊숙이 숨어 있는 슬픔이 흐릿하게 묻어나는 딱딱한 목소리였다.
“네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을 모조리 잃어버릴 거야.”
“오랫동안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겐 동족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진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동족이 없으면 저도 없으니까요.”
“후회하지 않을까?”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설고가 말하자, 어둠에 숨어 있던 거미들이 모습을 드러내어 노골적으로 단태를 에워쌌다. 다가온 거미들은 앞발로 단태의 몸을 꽉 잡았다.
“감히!”
단태가 소리쳤다.
“그저 료마주 님을 보호하여 대혈에 계신 용주 님께 모시기 위해서입니다.”
눈까지 하얀 설고가 말했다.
“싫다면?”
“용주 님께서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거짓말까지?
단태는 피식 웃었지만 몸은 분노로 떨렸다. 설고의 배신 때문이었다.
배신?
단태는 순간 정신을 차렸다.
왜 배신이라고 생각할까?
설고 입장에서는 오히려 동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선택인데. 비난하기보다는 오히려 고귀한 결정을 내린 설고를 칭찬해야 할 상황이 아닌가. 결존계를 통하여 들여다봤던 문종후와 그 작자들에 비하면 설고는 아름답고 자신만의 의지를 지닌 존재니까.
“힘들었겠다, 너.”
단태는 설고를 쳐다보았다. 무시무시한 이목구비도 지금 이 순간 친구의 얼굴처럼 보기 좋았다.
“…….”
이목구비에 변화가 생겼다. 일그러진 표정 같았다.
“그동안 고마웠다, 설고.”
“……저도 고마웠어요.”
“가능하면 고통 없이 보내 줄게.”
“저도 그럴게요.”
설고의 답을 듣는 순간, 단태는 마력을 끌어 올렸다. 삽시간에 바람의 갑옷이 몸 전체를 휘감았다. 보이지 않는 바람이 윙윙 소리를 내며 몸을 감싸는 순간, 단태는 앞으로 나가 단숨에 만든 물의 칼로 거미들의 다리를 잘랐다.
쉭쉭.
거미들이 독액을 뱉었지만, 침처럼 빠르게 날아온 독액은 갑옷처럼 단태의 몸에서 불어나오는 바람에 튕겨 사방으로 흩어졌다. 거미들은 뒤로 물러서기는커녕 오히려 달려들어 강력한 턱으로 단태를 물어뜯으려 했다.
두 손으로 쥔 물의 칼이 커지며 거미를 찌르고, 베었다. 지난 3년 동안 유천주와의 싸움으로 단련된 단태에게 거미들의 공격은…… 위협이 될 수 없었다. 게다가 맹렬하게 회전하며 무엇이든 튕겨내는 바람의 갑옷 덕분에 단태는 거리낌 없이 거미들을 공격할 수 있었다.
상황을 지켜본 설고가 휘파람 같은 기이한 소리를 내자, 천장의 통로로 거미들이 쏟아졌다. 천장에서 바로 뛰어내린 거미들이 용옥을 건드리자, 수백 개의 용옥이 바닥으로 떨어져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부딪혀 영롱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여기 안에 있다가는 당하겠어.’
단태는 마력을 양손에 주입했다가 앞으로 뻗었다.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바람의 형태로 바뀌어 용옥간 입구에 이르는 길을 막고 있던 거미들을 날려 버렸다. 맹렬한 소용돌이에 휘말린 거미들의 다리가 꺾이고, 몸통이 터져 체액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죽어 버리자, 거미들도 공포를 느꼈는지 잠자코 있었다.
단태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용옥간 밖으로 나갔다.
“……이런!”
용옥간 밖 복도도 이미 거미로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유천주의 죽음을 확신한 거미들에게 단태는 죽여야 할 대상에 불과했다. 그 거미들에게 용혈은 자기들이 피땀 흘려 만든 둥지이자 보금자리,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이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바람을 일으켜 통로를 가득 메운 거미들을 없애려 했던 단태는 통증에 신음을 흘렸다. 벌겋게 달군 쇠로 손바닥 안을 지지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