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 회: 5-2 -->
목증을 본 단태는 활짝 웃었다. 앞으로 성문을 통과할 때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소매는 딱 맞았다.
까슬까슬하면서도 얇은 재질의 옷을 입으니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느낌이었다. 시선이 느껴져 몸을 돌리니, 그 옷을 권한 의류상점 주인의 흐뭇한 얼굴이 보였다.
“옷이 날개네, 날개야. 그렇지?”
대답을 강요하는 질문.
단태는 주인을 무시하고 거울 앞에 섰다. 굳이 주위에서 속삭이는 목소리를 듣지 않더라도 잘생긴 사내가 거울 속에 당당히 서 있었다.
믿기 어려웠다.
딱 꼬집어서 획기적으로, 예전 모습을 떠올리기 어려울 만큼 변한 부분도 없지만, 그렇다고 예전 그대로인 부분도 없었다. 눈은 커졌다. 코는 오뚝해졌고, 턱도 가름해졌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얼굴에 담긴 기이한 기운이었다. 인간의 몸으로 변한 유천주의 얼굴에서 느껴지던 그 광기와 흡사한 분위기가 얼굴에서, 몸 전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유천주와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서일까?
아니면 용족 특유의 심장 때문일까?
거울을 보면서도 단태는 이 근본적인 변화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이것 좀 신어 봐. 내가 특별히 만든 건데, 손님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 판매를 개시하지 않았지만, 손님이 신고 다니면 아마도 사람들이 여기로 몰려오지 않을까? 혹시 누가 물어보면 말 좀 잘해 주고.”
“얼마죠?”
용혈에서 금을 가져왔음에도 단태는 여전히 가격에 민감했다.
“공짜야. 대신, 사람들에게 말 잘해 줘야 돼. 알았지?”
“그러죠.”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짜로 신발을 받은 기분은…… 이상했다.
상점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 단태를 의식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나이를 막론하고 그윽한 눈빛으로 단태를 쳐다봤고, 남자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단태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대담한 여자 몇 명이 다가와 말을 걸었는데, 단태는 정중한 태도로 호감을 거절했다.
밖으로 나온 단태는 멀지 않은 여관에 방을 잡은 후, 상아별로로 가기 위해 배를 잡아탔다. 목적지는 엄마가 있을 누천파의 저택이었다.
건물 곳곳에 설치된 횃불이 밝히는 밤의 운하는 흐르는 검은 유리 같았다. 단태는 일부러 운하 주변에 자리 잡은 건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하며 규칙적으로 노를 젓는 사공을 쳐다봤다.
“정말 잘생겼구먼.”
늙은 사공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단태는 잘생긴 남자의 기분을 만끽했다.
“여자들이 자넬 가만 내버려 두지 않겠어.”
“그럴까요?”
“저기 좀 보게.”
사공은 고갯짓으로 각 건물에 딸린 간이 선착장의 계단을 가리켰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러 나와 있던 사람들, 특히 여자들이 지나가는 단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사공이 말했다.
“젊음은 한 때라네. 즐기는 것도 좋지만 늦기 전에 정착해야 하는 법이지.”
“조언, 감사합니다.”
“자넨 좀 특이하구먼.”
“그런가요?”
“늙고 힘없는 사공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드무니까. 게다가 자네처럼 잘생긴 젊은 남자라면 더더욱 그렇지.”
“믿기 어렵겠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가 잘생긴 줄 몰랐거든요.”
“예끼! 늙은이를 놀리면 못써.”
“하하, 죄송합니다.”
사공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상아별로 입구에 도착했다. 사공의 배는 상아별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사공조합의 허가증이 필요한데, 그 허가증을 구입하려면 늙은 사공은 감당할 수 없는 거액이 들었던 것이다.
“내 이름은 만추라네. 잘 가게.”
“저는…… 단태입니다.”
사공은 투박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상아별로는 공기에 섞인 냄새부터 달랐다. 값비싼 마력석이 필요한 마법진으로 만들어 낸 이 향기는 상아별로 전체를 감싸고 있을 터였다. 하층민과는 마시는 공기부터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단태는 입구에 섰다.
상아별로 전체를 둘러싼 견고한 벽은 도시를 에워싼 성벽처럼 높았다. 도시 안에 도시였다. 상아별로 내부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도시의 성문처럼 또 다른 문을 통과해야 했다.
단태는 목증을 내밀었다.
“용무는?”
목증을 훑은 경비대원이 물었다.
“노예 매매소 황운에서 노예를 구입한 고객님께 알릴 게 있어서 나왔습니다.”
단태는 미리 준비한 핑계를 댔다.
“여기서 난동을 부렸다가는 가중처벌받는 거 알지?”
“잘 알지요.”
몰라도 아는 척해야 하는 상황.
“좋아. 통과.”
문을 통과하자 봄날의 꽃밭에 들어선 것처럼 사방에서 꽃향기가 몰려왔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달랐다. 대부분 하인, 하녀 또는 노예였는데도 상아별로 바깥 세계의 평범한 사람들보다 복장이 화려했고,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엄마를 만나면 뭐라고 말할까?
어떻게 엄마를 거기서 데리고 나올 수 있을까?
누천파의 저택 앞에 선 단태, 입이 벌어졌다.
저택은…… 성이었다.
운하의 물을 끌어들여 만든 해자 너머로 담이 우뚝 서 있고, 조그만 도개교를 건너야 문을 통과할 수 있는 구조였다. 바깥을 살필 수 있는 첨탑이 담벼락의 모서리마다 세워져 있고, 수련사 특유의 빨간 목도리를 두른 사람들이 첨탑에서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그 어떤 침입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단태는 도개교를 건너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악어 몇 마리가 물살을 가르며 움직이고 있었다. 도개교를 들어서 닫아 버리면 사실상 저택 내부로 들어갈 방법은 사라질 터였다.
창을 든 사내가 다가오는 단태를 노려보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정중한 말투였으나 눈빛은 날카로웠다.
“그게, 저는 노예 매매소 황운에서 온 백중이라고 합니다.”
단태는 목증을 보여 주었다.
“노예 매매소? 용건이 뭐야?”
목증을 확인한 사내의 말투가 바뀌었다.
“이곳에 양지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노예가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일하는 노예만 백 명이 넘어.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사내는 필요 이상으로 까칠했다.
“노예 등록소의 명령으로 찾아왔는데, 그게 어렵다면 저는 매매소로 돌아가서 있는 그대로 보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등록소의 관리가 직접 이곳으로 올 겁니다. 그래도 괜찮습니까?”
“여기가 누구 댁인 줄 알아? 마둔수탑의 탑주이신 누마탄 님의 저택이야. 그깟 등록소 관리가 온다고 해도 마음대로 들어올 수는 없어.”
사내는 기세등등했다.
“누마탄 님이야 물의 도시 사람은 다 알지요. 누가 그분을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한데, 보초가 감히 시장 직속 기관인 노예 등록소의 명령을 우습게 여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요? 이 저택이야 변함이 없겠지만 문지기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
“마음대로 하십시오.”
단태는 냉정하게 돌아섰다.
“잠깐!”
두 걸음도 떼기 전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죠?”
단태는 능청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들어가서 직접 찾아봐. 나는 이곳을 떠날 수 없으니까.”
사내는 문을 열고 옆으로 비켜섰다.
단태는 웃으며 그 옆을 지나가다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사내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일그러진 사내의 얼굴이 밝아졌다. 돈은 액수가 중요하지 않았다. 협박 때문이 아니라 돈을 받고 집 안에 들인다는 사실은 사내의 자존심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저택은 넓었다.
호수라고 해도 될 만한 넓은 연못 주위로 숲이 우거져 있었고, 작은 오솔길은 숲 너머로 이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