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176화 (176/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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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내리쬐는 지붕 위에 선 철무는 사방을 내려다봤다.

‘훤히 보이는군.’

5층 높이 연립 주택 꼭대기는 밭의 이랑처럼 펼쳐진 건물의 지붕과 좁은 골목길뿐 아니라, 돌출된 간판 너머 공간은 물론 건물을 출입하는 사람들까지 확인이 가능한, 사냥꾼에게 적합한 장소였다. 서부 경비대 소속 특찰과가 달아난 남자를 연쇄살인범으로 확정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바람이 불어와 옷을 흔들었다.

철무는 지붕마루에 쪼그려 앉아 발자국을 살폈다. 의뢰를 받아 각종 사건을 조사하는 탐사로서 오랫동안 일을 해 온 그가 보기에 발자국은 특이했다. 품에서 꺼낸 가루를 발자국에 뿌리고 부드러운 종이를 덮어 누르자, 종이에 발자국이 고스란히 옮겨졌다.

주변을 돌아다니며 발자국을 집중적으로 살핀 철무는 눈살을 찌푸렸다. 놈은 지붕을 평지처럼 내달려 이곳으로 왔고, 관을 붙잡고 땅으로 내려갔다. 용병이라고 해도 될 만큼 넓고 규칙적인 발자국 간격은 죽음의 마법사와 어울리지 않았다.

철무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서부 경비대 소속 경비대원 두 명이 사건 현장을 지키고 있었고, 멀리 떨어진 곳에 사람들이 수다를 떨며 현장을 구경하고 있었다. 꽤 높은 곳이어서 사람들은 조그만 인형 같았다.

“휴우.”

철무는 놈처럼 관을 잡고 미끄러지듯 땅으로 내려갔다.

“우와!”

구경꾼들이 철무를 발견하며 소리쳤다.

경비대원들도 고개를 돌려 내려오는 철무를 쳐다봤다.

부드럽게 착지한 철무는 손에 묻은 먼지를 털며 위를 올려다봤다. 관은 견고하게 벽에 붙어 있지만 웬만한 사람은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침착하다 못해 차갑기까지 한 마법사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철무는 몸을 돌려 사건 현장으로 향했다. 탐사의 자격으로 왔기에 경비대원은 철무 앞을 막지 않았다.

시체가 놓였던 곳에 선 철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곱 명을 죽일 때까지 목격자 하나 없이 완벽하게 희생자를 처리했던 놈이 왜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을까? 우연은 아니야. 세상에 우연은 없으니까.’

골목길이라 해도 지붕만이 유일한 탈출로는 아니었다. 왜 하필 지붕으로 달아났을까? 지붕으로 왔기 때문에?

시체 주위를 살피던 철무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바닥을 촘촘히 채운 벽돌 중 정확히 세 개가 금이 가 있었다. 상태를 보건대, 최근에…… 거의 동시에…… 충격을 받았음이 분명했다. 벽돌 하나만 금이 가려면 어떤 일이 필요할까?

보통 무거운 마차로 인한 충격은 마모의 단계를 거쳐 벽돌을 부순다.

철무는 발을 내디뎠다.

퍽.

체중이 실린 강력한 충격에 벽돌은 금이 간 게 아니라 부서졌다.

철무는 금 간 벽돌을 바닥에서 빼내어 자세히 살폈다. 경탄으로 입이 벌어졌다. 겉은 멀쩡한데…… 속은 이미 가루가 되어 있었다. 어떤 충격을 받았기에 이런 상태가 되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상당히 세련된 전투기술의 흔적일 것이다.

철무는 금 간 벽돌의 위치를 노려보았고, 잠시 후 번개처럼 떠오른 생각을 붙잡았다.

‘……여기서 몸을 틀었어. 급격하게.’

현장을 넓게 관찰한 철무는 진실을 깨달았다.

어젯밤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경비대원에게 발견되어 지붕으로 달아난 놈은…… 살인마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을 죽인 살인마와 싸웠고, 살인마를 도망치게 한 실력자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붕에서 느낀 의문이 풀렸다.

‘그 용병을 찾으면…… 살인마에 대해서도 무언가 알 수 있겠지.’

철무는 경비대원에게 수고하라고 인사를 건넨 다음, 현장을 빠져나왔다. 서둘러 갈 곳을 떠올리던 그의 앞을 추관구가 막았다.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무슨 일인가?”

“……긴히 할 말이 있습니다.”

“그러지.”

철무는 추관구와 함께 운하가 내려다보이는 난간으로 걸어갔다.

주위를 살핀 추관구가 비밀을 털어놓듯 말했다.

“살인마의 정체를 알아냈습니다.”

“……그래?”

의외였다.

“혈마수 율각이라는 작자입니다.”

“율각? 후령사탑의 마법사가 아닌가?”

“그자가 분명합니다.”

“근거는?”

철무는 분노라는 감정에 휘말려 섣불리 결론을 내리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어젯밤 이 근처에서 율각을 본 목격자가 있습니다.”

“그 목격자가 범행 장면을 봤나?”

“……그건 아닙니다만, 정황 증거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율각은 지금 물의 도시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풀어서 감시한 결과…….

“뭐? 아이들을 풀어? 왜 내게는 보고하지 않았지? 자네에겐 그런 권한이 없을 텐데.”

“사안이 급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추관구의 변명에 철무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당장 철수하도록 전달하게.”

“그럴 수 없습니다.”

추관구는 철무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흔들림 없는 눈이었다.

그 태도에 철무는 충격을 받았다.

추관구 혼자 결정한 게 아니었다. 추관구 뒤에는 철무를 못마땅해하는 ‘칠하’가 있으리라. 추명을 이끄는 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일곱 명을 칠하라고 부르는데, 윤강의 부탁을 받고 추명을 맡은 철무를 처음부터 불편해했던 사람들이었다.

그제야 철무는 비리를 저지른 추관구를 비호하여 처벌을 받지 않도록 칠하가 애를 쓴 이유를 깨달았다. 이런 계획을 세웠던 것이리라.

“그래서 뭘 할 생각인가?”

추관구에겐, 뒤에 있는 칠하에겐 더 이상 자신의 허락이 필요치 않다는 점을 철무는 알아차렸다.

“율각을 죽일 겁니다.”

“상대는 죽음의 마법사, 후령사탑이 자랑하는 용마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라네.”

“그래 봐야 사람입니다.”

추관구는 철무의 신중함을 비겁함으로 간주하며 비웃었다.

“용마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를 상대한 적, 있나?”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근거리에서는 전사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니까요.”

“……알겠네.”

고개를 끄덕이는 철무.

추관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물의 도시 바깥은 나가 보지도 않은 애송이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죽음의 마법사, 그것도 용마의 경지에 오른 후령사탑의 마법사를 죽이려 하다니! 스스로 무덤 속으로 뛰어드는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철무는 결국 말리지 않았다. 추명이 살아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명국영의 조언처럼, 도려내야 할 부분은 도려내야 생명은 건질 수 있는 법이니까.

이번 일로 추명은 큰 타격을 입고 휘청거리겠지만,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환골탈태, 새로운 조직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철무는 배를 잡아타고 목적지에 갈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동쪽 광장 문가막에 도착한 그는 발자국이 담긴 종이를 들고 가까운 상점으로 들어갔다. 진실은…… 무수한 반복으로 이루어진 인내의 결실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철무는 의외로 일곱 번째 의류점에서 발자국을 알아보자, 하늘이 돕는구나 싶었다.

“이거, 최근에 판 신발이야. 맞아.”

중년의 여주인은 반말도 정겹게 들리도록 만드는 재능의 소유자였다.

“신발을 구입한 사람들은 몇 명입니까?”

“아직 팔지 않았으니 구입한 사람도 없어. 그런데 왜?”

“신발이 없어지진 않았습니까?”

“아! 생각해 보니, 공짜로 준 적은 있어.”

살집이 넉넉한 여주인의 눈이 커졌다. 그래 봐야 좁쌀이 콩알 수준이 된 것이지만.

“그게 누굽니까?”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은 아직도 기억해. 내 평생 그렇게 잘생긴 남자는 처음이었어. 내가 20년만 젊었어도 어떻게 해 보는 건데. 그런 미남이 신고 다니면 사람들 눈에 띌 것 같아서 내가 공짜로 줬어.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야?”

철무는 왜 찾아왔는지 전혀 알려 주지 않고 여주인으로부터 상세한 정보를 뽑아낸 후에 가게 밖으로 나왔다.

하루에 수십, 수백 명을 상대하는, 닳고 닳은 장사꾼조차 감탄할 정도로 미남이라면 목격자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철무는 근처에서 유명한 술집으로 가서 멍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사내들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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