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177화 (177/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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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아내를 찾고 있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아내는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잘생긴 남자와 달아났습니다. 혹시 최근에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잘생긴 남자를 본 적 없습니까?”

반응은 뜨거웠다.

바로 어제 광장에 그런 남자가 나타났다는 이야기였다.

그중 한 남자가 유독 흥분으로 침까지 튀기며 말했다.

“그 새끼, 강도야, 강도. 갑자기 다가오더니 날 기절시키고 몸에 있는 걸 다 털어 갔어. 그 새끼, 다시 만나면 죽여 버릴 거야.”

철무는 그 남자, 백중이 목증까지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신분증 역할을 하는 목증을 왜 가져갔을까?

해 질 무렵, 철무는 동쪽의 성문 앞에 서 있었다.

도시로 들어오기 위해 줄을 지어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짐마차와 수레 그리고 짐을 등에 진 상인이 대부분이었다. 그중에는 혈혈단신 혼자 서 있는 남자들도 섞여 있었다. 대부분 용병 혹은 떠돌이로 일을 찾으러 도시로 온 사람들이었다.

‘놈은 어제 이 시간쯤에 저기 있었어. 피곤으로 지친 성문 관리에게 노예상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주소를 알려 줘 무사히 통과했고, 한동안 운하를 쳐다보다가 문가막으로 향했어. 거기서 옷과 신발을 구입하고 여관에 방까지 잡았는데, 이후의 행적이 묘연해.

대체 넌 누구지?

왜 이 도시로 온 거지?’

몸을 돌린 철무는 그 관리를 협박하여 알아낸 주소로 찾아갔다. 한때 노예 상인의 소유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평범한 노인이 가족과 함께 거기서 살고 있었다.

빌린 배로 돌아온 철무는 노를 저으며 생각에 잠겼다.

왜 놈은 이 주소를 관리에게 말했을까?

노예 매매와 관련이 있을까?

그 순간, 철무는 관리에게 알아낸 주소가 적힌 종이를 꺼내어 살폈다. 어쩐지 눈에 익다 했더니! 이 주소, 예전에 본 적이 있었다.

바로 단태에 대한 배경 조사 과정에서 튀어나온 주소였다. 가족과 함께 물의 도시로 온 단태가 처음으로 머물렀던 집이 바로 노예상인 도양의 집이었던 것이다.

“……우연이야.”

그 누구보다 우연을 신뢰하지 않는 철무가 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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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국영은 칠판 앞에 서서 이름, 성별, 직업 그리고 지도상에 표시된 발견된 장소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여자 넷에 남자 넷.

10대부터 50대까지 치우치지 않은 분포.

살인마가 피해자를 죽인 장소는 도시의 서쪽 구역 전체에 고루 퍼져 있었다.

엄포윤이 마법 지식을 통하여 사건 해결에 필요한 단서를 찾고 있고, 철무는 탐사로서 지닌 경험과 직감으로 범인을 쫓고 있다면 명국영은 살인마가 희생자를 선택하는 방식, 희생자를 버린 장소 등을 집중적으로 살피는 중이었다.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의도가 포함된다. 명국영은 칠판에 붙여둔 지도를 통하여 범인이 남긴 의미를 찾고 있었다.

다섯 시간 동안 꼼짝도 않고 세세한 부분까지 검토한 결과, 한 가지 특징이 두드러졌다.

균형이었다.

범인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애를 썼다. 남자를 더 많이 죽이지도 않았고, 허약한 아이나 노인을 선호하지도 않았다. 마치 어떤 사람이라도 해치울 수 있음을 자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폭넓은 연령층, 다양한 직업 혹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택했고, 살인에 성공했다.

엄포윤은 범인이 죽음의 마법사이며, 패혈력을 얻기 위해 살인 행각을 벌인다고 확신했다. 그 주장에 명국영은 말을 보태지도, 빼지도 않았다. 그저 패혈력이 유일한 목적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패혈력이 목적이라면 이런 식으로 사람들 눈에 띄게 희생자를 버려 둘 리가 없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생기를 빨아들여 미라로 만드는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지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죽음의 마법사가 아닌가.

‘범인은 일부러 보여 주고 있어. 대체 무엇을 보여 주고 있지?’

명국영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절대 잡히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

그가 익히는 죽음의 마법에 대한 자부심?

아니면 한 지역을 공포로 물들일 수 있다는 과시욕?

한 가지는 확실했다. 범인은 충동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멀며, 연쇄살인은 사전에 계획을 세워 실행한 결과라는 사실이었다.

사혈지에 들어가기 위해 참가한 원정대에 속한 죽음의 마법사에게서 인간 본성의 또 다른 면을 깊이 배웠던 명국영은 대부분, 아니 절대 다수의 죽음의 마법사는 직접 돈을 벌어 구입한 노예를 이용하여 패혈력을 얻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죽음의 마법사에게도 노예가 아닌, 멀쩡한 자유인을 죽여 생기를 흡수하는 행동은 금기였다. 왜냐하면 시 당국이 나서면 일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마법의 탑이 아무리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해도 경비대, 그리고 군대의 규모를 당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후령사탑이라고 해도 노골적으로 사람을 해친다면 벌써 무너지고 말았을 터였다.

그런 이유로 죽음의 마법사는 동료라고 해도 금기를 범할 경우 가차 없이 죽였다. 후령사탑처럼 명성 높은 탑이라면 이번 일을 좌시하지 않을 터였다.

명국영은 생각을 정리하여 결론을 내렸다.

‘범인의 목적은 패혈력이 아니야. 진짜 목적은 따로 있어.’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창가로 가서 창문을 열었다. 점등부의 수고로 물의 도시는 어둠에 완전히 잠기지 않았다.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물길로 배들이 돌아다녔고, 곳곳에서 노랫소리와 웃음이 어렴풋이 들렸다. 물의 도시는 잠드는 법이 없었다.

범인의 목적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그 이상은 근거 없는 추측에 지나지 않을 터였다.

문을 열고 륜사가 들어왔다. 문 두드릴 여유조차 없는 듯 초조해하는 몸짓이었다.

“일이 터졌어.”

“일단 앉아서 얘기하게.”

륜사는 소매로 입술을 닦으며 의자에 앉았고, 명국영은 연쇄살인사건 관련 자료를 옆으로 치운 후에 륜사 맞은편에 앉았다.

“백율운현, 기억하나?”

“잊을 수 없지. 단태를 데려가 고문한 여자가 아닌가?”

“그 여자가 사라졌어.”

“사라져?”

“……내가 마지막 목격자야. 그 때문에 시장은 날 의심하고 있어. 방단이 이번 원정대에 참여하기를 원했지만, 난 한사코 반대했거든.”

“억지를 부리는군.”

몇 가지 생각이 명국영의 뇌리를 스쳤다.

“시장은 백율운현의 실종을 빌미로 원정대를 해체할 속셈이야. 도시에 이득이 되지 않는 원정대는 인정할 수 없다는 거지. 황제 폐하께서 여기 계셨다면 시장이 이런 식으로 나오지는 못할 텐데.”

황제는 얼마 전에 황명거사 석장명과 함께 수도로 떠났다. 황궁을 오래 비워 둘 수 없었던 것이다.

“백율운현이 도시를 나간 흔적은 없나?”

“없네. 마둔수탑 앞 광장에서 사라졌어. 갑자기.”

“혹시 그 여자가 시장과 짜고서 일부러 잠적한 건 아닐까?”

“아!”

륜사가 무릎을 쳤다.

“그런 내색은 비치지 말게. 설사 그제 사실이어도 감정적으로 대응해서 좋을 건 없네.”

“내가 어떻게 해야 좋겠나?”

륜사는 솔직했다.

“방단의 참가를 허락하게.”

“뭐?”

“흑야궁에서, 그보다 더 깊은 지하에서는 무슨 일이든 벌어지지. 일단 원정대가 도시의 지하로 내려가면 더 이상 시장의 영향력은 미치지 못해. 자네라면 원정대에 참가하는 천마들과 함께 얼마든지 방단을 안전하게 고립시킬 수 있지 않겠나? 평환탑의 환상 마법이라면 방단이 꽤 오랫동안 헤매도록 만들 수도 있겠지.”

“역시!”

륜사의 얼굴이 밝아졌다.

“일단 방단을 받아들이면 백율운현이 잠적했는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걸세. 방단의 수장으로 모습을 드러내면 시장과 짜고 의도적으로 사라진 것이니까.”

“후후, 자네가 내 옆에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말로는 표현이 어려워.”

“나도 내 말에 귀 기울이는 친구 옆에 있어서 기분이 좋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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