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183화 (183/293)

<-- 183 회: 5-18 -->

“다 익었어.”

“맛 좀 볼까?”

불 곁으로 간 단태는 백율운현이 건넨 금룡어 꼬치구이를 받아 한 입 물었다. 야들야들한 고기는…… 돼지고기처럼 식감이 살아 있었다.

금룡어 살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던 백율운현은 여전히 단도를 쥐고 있었다.

단태는 단도를 움켜쥔 손을 힐끔 쳐다봤다.

“기회는 열려 있어. 죽일 수 있다고 확신하면 언제든 덤벼. 대신, 실패하면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그럴 생각 없어.”

몇 번이나 시도해도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한 단태의 실력을 떠올린 백율운현은 단도를 내려놓았지만 아쉬운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기분이 어때?”

“……왜 계속 그런 걸 물어보지? 허리가 끊어지도록 더러운 우리를 치웠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잖아.”

백율운현은 단태의 눈치를 살피며 가볍게 역정을 냈다.

“왜 묻냐고? 노예의 처지를 알려 주고 싶어서.”

단태는 고개를 들어 백율운현을 쳐다봤다. 감정이 배제된, 담백한 시선이었다.

“노예?”

“당신은 노예야. 몰랐어?”

“…….”

백율운현은 꼬챙이를 놓쳤다. 부르르 몸을 떨던 그녀는 손을 뻗어 단도를 쥐었다.

“분하지? 죽이고 싶은데, 힘이 없잖아. 달려들어봤자, 고문 같은 고통에 시달릴 테니까. 물의 도시가 암묵적으로 노예 매매를 용인하는 이유는 바로 당신 같은 탐욕스러운 상류층 때문이지. 11인위원회에 대해 내가 왜 궁금한지 알아? 같은 인간을 노예로 삼아 짐승처럼 학대하고 착취하는 자들이 얼마나 잘 사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물론 개인적인 이유도 있지만.”

“……난 노예가 아니야.”

꽉 다문 입술 사이로 굳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 그렇게 믿고 싶다면 굳이 말릴 이유는 없지. 앞으로 죽을 때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우리 청소를 계속해야 한다는 사실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노예가 아닐 수도 있겠지. 혹시 당신, 원래 동식물에 관심이 많았어? 이제야 적성을 찾은 거야?”

금룡어 살을 다 먹어 치운 단태는 꼬챙이를 불에 던지며 백율운현을, 특히 손에 쥔 단도를 노려봤다.

“난 비열한 적에게 포로로 잡혔을 뿐이야.”

백율운현이 들어 올린 단도의 날이 반짝거렸다.

“그럴까?”

단태가 푸른 팔찌를 들어보이자 백율운현을 몸을 떨었다. 자기가 찬 검은 팔찌와 한 쌍인 저 팔찌를 찬 손목을 흔들면 참기 어려운, 비명이 절로 터져 나오는 고통이 덮친다. 검은 팔찌는 고통을 선사할 뿐 아니라, 몸에 깃든 기운마저 막아 버려 그녀가 힘겹게 익힌 무술까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처럼 무력할 수 있을까?

노예가 아니라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지만, 그건 현실을 부정하는 믿음에 불과했다. 백율운현은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유천주를 떠올렸다. 용은 압도적인 강함을 뜻한다. 그런 용 앞에서라면…… 노예도 굴욕이 아닐 수 있지 않을까?

슬며시 단도를 내려놓으려는 순간, 단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놓지 마!”

“…….”

깜짝 놀란 백율운현.

“스스로 노예라고 생각하지 마. 내가 아무리 당신을 노예로 취급해도 스스로 노예라고 여기지는 마.”

그렇게 말한 단태는 밖으로 나왔다. 대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스스로도 몰랐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용옥간에 이르러서야 단태는 충동적인 행동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멀쩡한 사람을 노예로 팔아먹는 도양 같은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복수하려고, 도시의 사정을 자세히 알기 위하여 백율운현을 용혈로 데려왔지만, 진심으로 그녀를 노예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저 산꼭대기에 익숙한 백율운현에게 저지대의 처지를 알려 주고 싶었던 것이다.

백율운현에 대한 생각을 옆으로 치워 버린 단태는 무간으로 갔다. 과거 유명한 무인, 용병 들이 남겨 놓은 보물이 거기 가득 있었다.

검, 방패, 갑옷, 무술서 등 용병이라면 침을 질질 흘릴 보물로 그득한 방 안쪽 벽에 수십 개의 가면이 붙어 있는데, 처음 여기로 들어왔던 당시에 단태는 사람 얼굴이 벽에 걸려 있어 오줌을 지릴 뻔했다.

알고 보니 진짜 사람의 얼굴이었다.

용병단에 밀려 영향력이 줄어들었지만, 한때는 무사, 혹은 무인이라 불리던 자들의 요람인 ‘도장’이 융성했던 시기가 있었다. 도장은 무술 자체를 삶의 목표로 삼은 자들의 보금자리였다. 무인들은 도장에서 기존의 무술을 익혔고, 새로운 무술을 창안했으며, 자신감을 얻은 후에는 도장을 떠나 세상으로 나와 자신을 시험했다.

선을 추구하고 약자를 돕는 도장이 있는 반면, 죽음의 마법사처럼 사람을 수단으로 삼는 도장도 존재했다. 지금은 흔적도 찾기 어렵지만, 용령제국이 건국되기 전, 혼란스러웠던 가파랑 연방의 말기에는 ‘탄하장’이라 불리는 도장이 악명을 떨쳤다.

탄하장은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을 벗겨서 가면을 만들었다. ‘탄면’이라 불리는 그 가면은 너무나 정교해서 벗겨지기 전까지는 꼼짝없이 속을 수밖에 없었다. 겁도 없이 대귀족의 아들을 납치해서 탄면을 만든 한 명의 무인으로 인해 탄하장은 군대의 공격을 받았고, 겨우 막아 냈음에도 전성기는 끝나고 말았다.

탄하장 깊숙한 곳에 보관되었던 탄면들은 사라져 버렸는데, 일부가 단태의 눈앞 벽에 걸려 있었다.

“예전에는 평범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단태는 길을 걷다가 지나쳐도 기억나지 않을 얼굴을 골랐다.

차가운 탄면을 얼굴에 대자,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탄면이 꿈틀거렸다. 역겨운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곧 한 번만 봐도 잊을 수 없는 잘생긴, 기이한 분위기의 얼굴은 사라지고, 어떤 여자도 눈길을 주지 않을 평범한 사내가 나타났다.

마간에 쌓여 있는 마법서를 통하여 처음 그 존재를 알 수 있었던 탄면에도 주의할 점이 있었다. 하루 이상 탄면을 쓰고 있으면, 반쯤 살아 있는 탄면이 얼굴로 파고들어 원래 얼굴은 사라지고 탄면이 진짜 얼굴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 외에도 부작용이 있다고 알려졌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단태도 알 수가 없었다.

단태는 대혈로 가서 무룡 앞에 섰다.

단태의 마음을 느낀 무룡이 눈을 떴다.

“가자.”

무룡이 기다란 목을 펴며 포효하자 용혈이 떨렸고, 그 순간 울분을 삭히며 금룡어 살을 마저 뜯고 있던 백율운현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줌을 누고 말았다.

단태는 무룡의 목에 타고서 용혈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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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장의 접객실은 조용했다.

창가에 앉아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하며 차를 마시던 명국영은 눈을 감았다. 새소리가 더 맑게, 더 가깝게 들렸다. 흥분 혹은 두려움으로 가슴이 떨릴 때면 그는 자주 눈을 감아 외부 세계를 차단함으로써 평정을 되찾곤 했다.

이번에도 효과가 있었다.

“자네가 이리도 빨리 날 찾아올 줄은 몰랐군.”

녹슨 쇠막대 두 개를 부딪치는 느낌의 목소리.

눈을 뜬 명국영은 몸을 일으켜 고개를 숙였다. 상대는 사령마 만표, 천마의 경지에 오른 죽음의 마법사였다. 실수는 곧 죽음이다.

“반갑게 맞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날 따르기로 한 건가?”

사령마는 급한 성격을 숨기지 않았다.

“지나치게 조용하군요.”

“흥, 자네라면 이곳에 나 혼자 남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유천주 때문입니까?”

“…….”

사령마의 눈이 가늘어졌다.

명국영은 몰려와서 마음을 후려치는 공포에 무릎 꿇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쉽지 않았다. 사령마가 한껏 뿜어내는 살기에 명국영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저 실눈으로 죽여야 할 이유를 곱씹고 있으리라. 만약 계산이 조금이라도 엇나간다면 이 자리에서 죽을 뿐 아니라, 죽은 후에도 편히 쉬지 못할 것이다.

살기는 천천히 줄어들었다.

“놀랍군.”

사령마가 말을 했을 때, 거짓말처럼 살기가 사라졌다.

“……고맙습니다.”

“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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