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184화 (184/293)

<-- 184 회: 5-19 -->

“저를 죽이지 않으셨잖습니까?”

“배포 한번 대단하군. 죽을 수도 있음을 알면서 그런 말을 지껄인 건가?”

사령마의 눈이 반짝거렸다. 세상에 강자는 드물지만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세상을 담을 만한 그릇이야말로 평생 한 번 만나기도 어려운 인물이다.

“목숨을 걸 만한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알았나?”

“논리적인 추측이었습니다.”

명국영이 대강의 과정을 알려 주자, 사령마는 코웃음을 쳤다.

“손바닥 보듯 본탑의 사정을 알다니, 자네를 반드시 죽여야 하는 이유로구먼.”

“유천주는 어디 있습니까?”

명국영은 눈 한번 깜박이지 않았다.

“이 도시 어딘가에 있을 걸세.”

“…….”

명국영은 할 말을 잃었다. 가능한 경우를 빠짐없이 고려했다고 생각한 그에게도 생각조차 못한 상황이었다.

“자네라면 사유위룡도 알고 있겠지?”

“들은 적은 있습니다.”

“본탑의 마법사는 어딜 가든 사유위룡진을 먼저 설치하지. 용의 접근을 미리 알기 위해서야. 사흘 전, 대형 사유위룡진이 용투기에 반응을 했네.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말일세. 결론은 하나라네. 유천주는 용투기를 숨긴 채 도시 안으로 들어왔네. 지나쳐도 용족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겠지. 어쩌면 지금도 저 바깥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지.”

“……사실입니까?”

질문을 던지자마자 명국영은 후회했다.

“죽고 싶은가?”

“……죄송합니다, 어르신.”

“이 늙은이는 자비로워서 한 번은 봐준다네.”

“감사합니다.”

명국영은 소매로 이마, 목의 땀을 닦았다.

“자네, 왜 유천주에 관심이 있나?”

“유천주를 만날 생각입니다.”

“뭐?”

이번엔 사령마가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유천주를 만나야 할 이유가 제겐 있습니다.”

“목숨이 일곱 개라도 되는 모양이군.”

“목숨을 걸 만한 일입니다.”

명국영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좋은 눈이야. 사내라면 목숨을 걸 수도 있어야지. 한데, 자네를 도와줄 수는 없네. 유천주는 사유위룡으로 감지할 수 없으니 말이야. 용투기를 자유자재로 숨길 수 있다면, 유천주가 파운장 안에…… 접객실 바로 밖에 있다고 해도 나는 알 수가 없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명국영은 실망을 감추기 어려웠다. 목숨을 건 이유는 유천주를 만나서 단태를 구해 내기 위해서였다. 사령마조차 유천주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니!

그래도 실망은 일렀다.

유천주는…… 저 바깥 어딘가에 인간의 모습으로 있을 가능성이 높다.

왜 도시로 들어왔을까?

답은 즉시 떠올랐다.

원정대 때문이리라.

한숨을 쉬며 무심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명국영은 사령마의 존재도 잊고 벌떡 일어섰다.

사령마도 천천히 일어나 창밖을 노려봤다.

거대한 용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유천주!”

명국영이었다.

사령마 만표는 이미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패혈력을 발출하여 떨어지는 속도를 줄인 그는 숲 가장자리의 나뭇가지에 내려앉자마자, 숲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사령마뿐 아니라,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던 천마들이 일제히 중앙에 자리 잡은 시청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중앙탑 붕괴

무룡은 단숨에 수면을 뚫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옆구리에 붙이고 있었던 날개를 펼쳐 두 번 힘차게 퍼덕이자 호수가 멀어졌고, 그만큼 고도가 높아져 동쪽의 방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무룡의 뿔 사이에 서서 호수 끝자락 너머로 퍼져 있는 물의 도시를 쳐다본 단태는 종자장 시험을 칠 때보다 더 큰 떨림을 느꼈다. 천마들까지 참가한 원정대가 용혈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행동이지만,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물론 다른 목적도 있었지만.

“좀 더 높이 올라가자.”

단태는 우둘투둘한 뿔을 만지며 말했다.

거대한 용의 몸은 바람을 타고 둥실 위로 떠올랐다.

도시가 커지고 있었다. 멀어서 마치 수면에 붙어 있는 듯한 방책의 규모가 드러났고, 그 너머에 자리 잡은 크고 작은 건물들, 특히 유타루체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시청이 햇살을 받아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방책에서 하품을 하던 경비대원 하나가 하늘을 가리키며 주저앉았다.

“저 사람, 우릴 보며 크게 놀랐나 봐.”

단태가 웃자, 무룡도 입을 벌려 울음을 토해 냈다.

호수 전체로 퍼져 나가는 그 무겁고 거대한 소리는 소와 염소, 양은 물론 사람들과 친숙한 개에게 영향을 미칠 터였다. 갑자기 주저앉아 똥, 오줌을 싸거나 구석에 머리를 처박고 나오지 않는 등 사람보다 감각이 빠른 동물들이 먼저 반응을 할 것이다.

무룡은 방책 상공을 통과했다.

고공에서 본 방책은…… 장난감 목책 같아서 발로 툭 차면 쓰러질 것만 같았다. 단태는 썰물처럼 방책에서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경비대원들을 보고 있었다. 지휘체계는 무너진 듯, 사내들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다들 집으로 갈 거야, 아마.”

단태는 뿔 옆으로 엎드렸다. 혹시 시력이 좋은 사람의 눈에 띄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거기서도 고개를 옆으로 내밀면 아래쪽을 충분히 볼 수 있었다.

하늘에 뜬 거대한 용을 발견한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고기를 썰던 백정도, 가죽을 말리던 무두질장이도, 얼음을 팔러 돌아다니는 얼음장수도, 심지어 급한 용무로 마차를 타고 달리던 귀족조차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그림자를 지상에 뿌리며 거대한 몸을 드러낸 채 날아가는 용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순간 도시는 공포로 얼어붙었다.

무룡의 정수리 뿔 사이에 숨어서 아래를 살핀 단태는 공포가 점점 더 멀리, 점점 더 빨리 퍼져 나가는 광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연못에 던진 돌멩이로 인해 생긴 파문이 가장자리까지 퍼져 나가는 것처럼, 용은 도시에 공포의 파문을 일으켰다.

무룡이 서쪽 지역을 넘어 도시의 중앙으로 향하자, 사람들은 마비에서 깨어났다. 3년 전에 비교적 피해를 입지 않았던 서쪽 지역의 거주자들도 안심할 수 없어 값어치 나가는 물건만 챙겨 동쪽으로 몰려들었다.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상아별로를 차지한 상류층, 귀족 들은 앞을 다투어 달아났다. 3년 전의 재앙을 떠올린 까닭이다. 그때처럼 시청을 공격한다면 상아별로는 안전지대가 아닐 터였다.

단태는 도시를 내려다보며 자신이 내린 결정이 불러온 결과가 얼마나 큰지 깨달았다. 몸 안쪽이 뜨거워졌다. 특히 가슴과 심장 근처가. 천적의 출현에 겁을 먹고 달아나는 개미 떼를 내려다보는 기분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위대한 존재가 된 듯한 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누구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압도적인 힘의 소유자가 되었음을 도시의 반응을 통하여 단태는 직감했다.

무룡은 순식간에 시청 상공에 도달했다.

몸을 일으켜 뿔 사이에 선 단태는 겁에 질린 관리들이 완공된 지 반년도 되지 않은 시청 건물 밖으로 나와 사방으로 달아나는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시청을 중심으로 사람들은 멀리 몸을 피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했다. 새삼 인간 특유의 열정이 느껴졌다.

천천히 세 바퀴나 시청 위를 선회한 단태는 무룡에게 속삭였다. 무룡과는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뜻을 전달할 수 있지만, 단태는 직접 말로 표현하는 방식이 좋았다.

“중앙탑만 꼬리로 무너뜨린 다음 바로 용혈로 돌아가. 중간에 귀찮게 하는 놈들이 있어도 상대하지 말고. 알았지?”

도시를 울리는 포효로 대답한 무룡은 고도를 낮추었다.

잠시 후, 굵고 긴 무룡의 꼬리가 시장의 집무실이 자리 잡은 시청의 중앙탑을 후려쳤다. 한 번의 타격으로 크고 웅장한 중앙탑은 와르르 무너졌고,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나중에 보자.”

단태는 무룡이 동쪽 첨탑을 스치듯 지나가는 순간, 몸을 날려 첨탑의 난간에 매달렸다.

무룡은 고도를 높여 흙먼지를 벗어났고, 방향을 틀어 호수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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