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185화 (185/293)

<-- 185 회: 5-20 -->

난간을 기어 올라간 단태는 멀어지는 무룡의 안전을 확인한 다음, 닫힌 문을 부수고 나선형 계단을 통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마음이 급했다. 시간이 없어서였다.

다행히 첨탑 아래쪽 건물에 남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 용을 향한 인간의 극심한 공포가 사람들을 건물에서 모조리 몰아낸 것이다. 무룡을 최초로 목격한 서쪽 방책의 경비대가 미리 알려 준 모양이었다.

단태는 건물을 벗어나는 대신 지하로 향했다. 지하 3층 구석에 자리 잡은 특별문서고가 목표였다.

11인위원회를 구성하는 11개의 가문이 보유한 노예 현황을 기록한 장부가 시청 동쪽 첨탑 지하 특별문서고에 비치되어 있음을 백율운현은 털어놓았다. 그 장부는 11개 가문을 통제하기 위해 시장이 직접 지시하여 만든 것이었다.

지하 3층도 비어 있었다.

단태는 백율운현의 설명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특별문서고로 달렸다. 담당자가 서두르는 바람에 특별문서고의 입구는 열려 있었다. 운이 좋았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가져온 마법진은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안으로 들어간 단태는 문서고의 구조를 재빨리 파악한 다음, 그 장부를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찾았어!”

백율운현은 똑똑한 여자였다. 그녀의 설명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단태는 장부를 넘겨 원하는 부분을 찾았다.

노예 매매소에서 엄마를 구입한 사람은…… 누천파였다!

그리고 돈을 주고 위연미와 설희를 데려간 사람은…… 반우현이었다!

누천파와 반우현!

두 사람이 노예를 구입한 장본인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장부를 원래 위치에 꽂아 둔 단태는 분을 삭이며 계단으로 접어들었다. 아직 흙먼지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을 뿐 아니라, 추가 붕괴가 우려되기 때문에 건물 내부로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숨을 참고 달리던 그는 다른 사람도 아닌 누천파, 반우현이 엄마와 설희를 산 사람이라는 사실에 이성을 잃을 뻔했다.

‘천벌을 받아 마땅한데, 두 사람은 오히려 용의 유산을 얻었지. 물론 그들의 몫은 아니지만.’

그 순간, 단태는 진심으로 두 사람에게서 용의 유산을 빼앗기로 마음먹었다. 암탄주의 뜻, 혹은 유천주의 유언을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두 사람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생각을 하느라 하마터면 주의도 하지 않고 건물을 벗어나 잔해가 쏟아져 엉망인 광장으로 나갈 뻔했다. 다행히 단태는 안개처럼 퍼져 있는 흙먼지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난장판이군.”

중앙탑이 무너져 엉망진창인 주변과 어울리지 않게 차분한 목소리였다.

“백휘섬선도 얼굴을 찡그릴 수 있군.”

또 다른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운 느낌이었다.

단태는 백휘섬선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설마 백휘섬선 광오선일까?’

“흙먼지를 뒤집어 쓴 내 얼굴, 아마 평소 자네의 얼굴 같겠지? 안 그런가, 만표?”

단태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벽에 붙어 서서 호흡까지 참았다. 광오선과 만표는…… 천마 중에서도 서열 1, 2위를 차지하는 마법사였다. 들키면 살아서 빠져나갈 수 없으리라. 할 수만 있다면 가슴 안쪽에서 쿵쿵 뛰는 심장마저 잠시 멈추고 싶었다.

“유천주는 왜 시청만 부수고 가 버렸을까요?”

엄격하면서도 부드러운 기운이 담긴 목소리였다.

“음마성, 궁금하면 유천주를 찾아가서 물어보게.”

만표였다.

단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무룡, 아니 저들에게 유천주로 알려진 거대한 용이 나타나면 천마들이 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이처럼 빠르게 시청으로 달려올 줄은 몰랐다. 음마성은 분명 은후성탑이 배출한 천마 율암일 것이다.

“충격을 받은 건물이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안전한 곳으로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단태도 잘 아는 목소리였다.

바로 륜사였다.

그러나 광오선은 륜사의 말을 무시했다.

“만표, 자네는 유천주가 도시로 날아올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겠지?”

“헛소리는 집어 치우지.”

“사유위룡으로 유천주의 움직임을 알아차린 게 아니라면 왜 자네 아이들을 탑으로 돌려보냈나?”

광오선의 질문은 예리했다.

“클클, 왜 이렇게 관심이 많지? 난 젊은 여자의 관심만 받아들이지. 냄새나는 늙은이 따위와는 말을 섞고 싶지도 않군.”

사령마 만표의 목소리는 빠르게 멀어졌다.

다른 천마들의 인기척도 금세 사라졌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단태는 천마들이 있던 곳으로 가지 않고 멀리 돌아서 건물 밖으로 나갔다. 아직 자욱한 흙먼지 덕분에 의심받지 않고 시청 광장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가운데가 파괴된 다리를 뛰어서 운하를 건넌 단태는 골목길로 들어선 후에야 몸을 돌려 부서진 시청을 바라봤다. 위용을 자랑하던 시청의 중앙탑은 처참하게 파괴되어 아래에 자리 잡은 부속 건물을 덮쳤다. 2년 반이나 걸린 공사가 헛수고로 돌아간 셈이다.

단태는 입을 벌렸다.

‘내가 무너뜨린 셈이잖아…….’

새삼 기분이 이상했다.

영향을 끼치기는커녕 영향을 받거나, 또는 지배당하는 삶에 익숙했던 단태에게 망가져 엉망이 된 시청 건물은 한심한 삶은 지나가 버렸다는 증표였다.

뿌듯한 마음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동쪽 첨탑 지하에 있는 특별문서고의 장부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원정대가 용혈로 출발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무룡을 움직여 시청 건물을 무너뜨렸는데, 막상 그 결과를 보니…… 입을 다물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일이었다.

흥분을 가라앉힌 단태는 자신에게 주어진 힘이 얼마나 강한지 깨달았다. 유천주가 죽으면서 남긴 무룡은 도시의 상징이자 실질적인 지배기관인 시청을 가볍게 무너뜨렸다.

이번 사건이 도시의 수장에게 얼마나 큰 충격일까? 3년 전, 시법원으로 나와 힘없는 종자를 첩자로 모는 엉터리 재판을 지켜보며 근엄한 자태를 고수하던 시장 반명은 이 순간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3년 전처럼 평온한 표정은 아닐 것이다.

몸을 돌린 단태는 피난 행렬에 섞여 중심 지역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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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우현은 폐허가 된 시청을 바라보았다.

뿌연 먼지로 덮인 폐허.

지난 3년 동안 아버지가 밤잠을 설치며 건축 현장을 돌아본 결과가 한순간 무너지고 말았다. 잔해를 치우고 새 건물을 올리는 데 들어간 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가문의 재산 상당량을 새로운 시청 건물에 쏟아부었건만.

대체 왜 유천주는 가까운 서쪽 지역 대신 이곳까지 날아와 시청을, 시청만을 무너뜨렸을까?

반우현은 바삐 움직였다.

아버지는 무사하실까?

다행히 근처의 공터에 설치된 천막 안에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기다란 탁자 맞은편에 앉아서 골똘히 생각을 하던 시장 반명은 딸을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왔느냐?”

“괜찮으세요?”

“보다시피.”

일부러 힘주어 활짝 웃는 아버지.

그때, 천막으로 사람들이 몰려왔다. 11인위원회였다. 도시를 이끄는 11개 가문의 대표자들은 반우현을 보고도 모른 척했다.

“대화가 필요한 것 같군요.”

당가의 가주 당현추가 말했다. 빚을 받으러 온 사람처럼 당당하고 거친 태도가 말투에 묻어났다.

반명은 고갯짓으로 딸을 내보냈고, 곧 회의가 시작되었다.

시청 관리와 경비대원을 중심으로 복구 작업이 진행되었지만, 두 번이나 당한 터라 사람들에게서 열의를 찾기는 어려웠다. 당장이라도 유천주가 날아와 남아 있는 건물마저 무너뜨릴 수 있음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도시를 벗어나고 싶은 그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반명은 소매를 걷어 올리고 그들 사이로 가서 일부러 힘껏, 웃음을 터트리면서 일을 도왔다. 이런 식으로라도 아버지에게 힘을 실어 주고 싶었다.

“엉망이군.”

귀에 익은 목소리.

“천파!”

“오라버니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마라.”

누천파는 일부러 위엄을 부렸다. 누천파식 농담이었다.

“고마워. 와 줘서.”

“당연히 와야지. 친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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