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188화 (188/293)

<-- 188 회: 5-23 -->

단태는 유천주의 출현이 그런 결과를 낳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얼마나 일자리가 줄어드나요?”

“자세히는 알 수가 없어. 시장님이라면 아실 수도 있겠지. 체감적으로 3할은 줄어드는 것 같아. 한동안은 살아가기가 팍팍하겠지. 특히 없는 사람일수록.”

여관 주인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단태는 2층 복도 끝에 있는 방으로 올라갔다. 조그만 창을 열자, 저 멀리 들리는 피난 행렬의 소리만 희미하게 들릴 뿐, 주위는 조용했다. 문을 잠근 그는 탄면을 떼 내어 가져온 가죽 위에 올려놓았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는데, 마음이 무거웠다.

무룡은…… 보통 사람, 아니 웬만한 인간은 상상도 못 하는 거대한 힘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투입되어 완성하는 데만 2년 반 가까이 걸린 건물을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힘! 평소 오가는 용에 친숙한 사람들마저 공포에 질려 도시 밖으로 밀려 나가도록 만드는 힘!

단태는 한 가지 진실을 깨달았다.

거대한 힘일수록, 거대한 그래서 때때로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원하는 결과는 얻은 셈이지만, 오늘 도시가…… 사람들이 입은 피해는 결코 적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천마까지 포함된 대규모 원정대가 흑야궁을 통하여 호수 아래의 용혈로 내려온다면, 유천주가 죽은 지금 그 원정대는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용혈에 쌓인 보물을 약탈할 것이다. 그들에겐 용혈에 들어올 자격도, 보물을 가져갈 자격도 없다.

단태는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알아차렸다. 원정대를 겨냥한 결정이었다. 원정대가 용혈로 내려올 수 없도록 시장 그리고 관련자들을 압박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도시에 사는 무수한 사람들, 여기 여관 주인 같은 평범한 사람들, 유천주를 보면 두려움에 빠져 앞을 다투어 달아나고 말 사람들은 그 고민에서 빠져 있었다.

왜 그들을 고려하지 않았을까?

그 답을 찾아내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눈앞을 가리면 손바닥만 보인다. 그렇다고 손바닥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손바닥 너머에 있는 진짜 세상은 가려져 있을 뿐, 여전히 거기 존재한다. 다만, 손바닥으로 시야를 가린 사람에게만 보이지 않을 뿐이다.

“……난 그동안 뭘 보고 있었지?”

유천주 그리고 용혈.

3년 동안 유천주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또한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을 쳤고, 점점 유천주의 방식을 수용할 수는 없으나 용으로서의 유천주를 존중할 수 있는 마음에 이르렀다. 그 시간 동안, 온전히 유천주와 용혈에 집중했기에 진짜 세상을 볼 수 없었다.

부끄러웠다. 할 수만 있으면 되돌리고 싶었다. 유천주로 인해 줄어든 일자리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없도록 만들고 싶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 아닌가.

어쩔 수 없었다고, 누구든 이런 실수는 범할 수 있다는 핑계 안으로 숨고 싶지 않았다. 잘못을 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단태는 공포에 질려 달아나는 사람들을 기억해 냈고, 도시의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들 거라는 여관 주인의 말을 생각했다.

날이 저물어 어둠이 깔리자, 단태는 탄면을 얼굴에 대고 탄면이 스며들기를 기다렸다. 바뀐 얼굴을 확인한 그는 여관 주인에게 금 조각을 건네며 곧 돌아올 테니 아이를 부탁한 다고 말한 다음, 어두워지는 도시의 거리로 나섰다.

“단태!”

란조가 날아와 어깨에 앉았다.

단태가 용혈로 내려갈 때마다 란조는 유타루체 동쪽의 숲 유청림에 머물다가 주인의 목소리가 들리기만을 기다렸다. 흑야궁을 통해 용혈까지 내려오는 데 며칠이나 걸릴 뿐 아니라, 란조에게도 위험한 흑천주, 백오공, 양각서 같은 놈들 때문에 단태가 그렇게 말했고, 란조는 그 부탁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잘 있었어?”

“잘 있었다. 란조는 잘 있었다.”

단태는 란조가 좋아하는 수초의 열매를 꺼내어 손바닥에 올렸다. 란조는 금세 푸르스름한 알갱이를 먹어 치웠다.

란조가 옆에 있으니 기운이 났다. 문득 그 마법사가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소리 마법으로 유천주를 자극했던, 한때는 란조의 주인이었던 그 마법사. 그래서 란조에게 물어봤다.

“……죽었다.”

란조의 목소리는 낮고 느렸다.

“왜?”

“음마성이 죽였다.”

“음마성? 천마 음마성 율암?”

“그가 죽였다. 그가 죽였다.”

란조는 구슬픈 노래를 시작했다. 난폭하고 제멋대로인 주인이지만 한동안 함께 지냈던 그 마법사에 대한 애도의 표시였다.

음마성이 왜 그를 죽였을까? 란조를 잃어버려서? 아니,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소리 마법으로 유천주를 자극한 일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 일로 은후성탑의 명성이 땅에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적어도 유타루체는 두 번 다시 은후성탑의 마법사를 신뢰하지 않을 테니까.

한동안 란조의 노래에 귀 기울이며 걷는데, 풍경이 바뀌었다. 불빛 하나 없는 건물은 거대한 무덤 비석 같았다.

부랑자들이 횃불을 들고 비어 있는 건물 안을 약탈하고 있었는데, 이곳으로 와서 상황을 정리할 경비대원도, 집주인도 없었다. 거지, 건달 들은 이보다 좋은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환호를 지르며 주인이 떠난 건물을 노리고 있었다.

치안은 무너져 있었다.

그 무리 중 하나가 단태를 발견하고 다가와서 에워쌌다. 가진 것 다 내놓으라는 요구에 단태는 다섯 명을 쓰러뜨렸다. 마지막 놈이 고함을 치는 바람에 일곱 명이 더 달려왔는데, 단태는 나머지까지 깨끗이 쓸어버렸다.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손바닥에 새겨진 용마문으로 마력이 봉인당했지만, 강화된 감각과 용족 특유의 탄력이 살아난 몸만으로도 그들을 손보기에 충분했다. 마법이 정교하게 결합된 용족의 무술이라 할 수 있는 ‘용즉계’는 기본적으로 혼자서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었다.

호되게 당한 사내 하나가 무릎을 꿇었다.

“……저희들의 형님이 되어 주십시오.”

“생각 없어.”

그 사내까지 기절시킨 단태는 서쪽 지역을 벗어나 북동쪽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반가’였다.

부서져 위태위태한 다리 몇 개를 건너 상아별로의 입구에 이르자, 평소보다 많은 경비대원들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검을 든 경비대원 열 명 뒤에는 창과 방패 그리고 갑옷까지 갖춘 군대가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부랑자의 습격을 대비하고 있었다.

유타루체 전체를 통틀어 상아별로 지역만 치안이 유지되고 있었다. 다수의 귀족이 도시를 떠났는데도 여전히 유타루체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남은 자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시장은 남았을 것이다.

11개의 가문도 물의 도시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참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상아별로의 입구를 살핀 단태는 몸을 돌렸다. 지금 숨어들면 눈에 불을 켠 경비대원, 병사들의 눈에 들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3년 넘게 꾹 참고 기다렸는데, 며칠 더 기다릴 수 없을까?

단태가 향한 곳은 마둔수탑이었다.

텅 빈 광장은 평소보다 더 광활했고, 분수대에 흐르는 물소리는 더 멀리 퍼지고 있었다. 점등부마저 도망쳐 버려 광장은 마둔수탑과 장당전 근처를 제외하면 어둠에 잠겨 있었다. 분수대는 마둔수탑의 창을 통해 삐져나온 빛 덕분에 윤곽만 보였다.

분수대 옆 의자에 앉아 올려다본 마둔수탑은…… 그때보다 위압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왜소하다는 느낌이었다. 저 탑의 높이가 줄어들 리는 없다. 탑을 올려다보는 사람이 달라진 것이다. 무룡의 꼬리 한 방이면 시청의 중앙탑처럼 눈앞의 탑도 무너질 거라는 사실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는지도 몰랐다.

“저기 기억나니?”

“안다. 란조는 안다.”

단태는 손가락으로 란조의 머리를 가볍게 긁었다. 기분이 좋은 란조가 노래를 불렀다.

밤이 늦도록 의자에 앉아 탑을 힐끔거리던 단태 쪽으로 빨간 목도리를 맨 수련사 몇 명이 다가왔다.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마법을 펼치는 데 도움을 주는 마괘였다.

그중 한 명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단태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바로 창수였다!

“누구냐?”

마괘를 앞세워 언제든 마법으로 공격할 태세를 갖춘 창수가 물었다.

“적적해서 광장으로 나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오.”

“목증!”

창수 옆에 있던 수련사가 소리쳤다.

단태는 그냥 달아날 수도 있지만 창수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한 나머지 목증을 꺼내어 창수에게 내밀었다. 목증을 훑은 창수는 경계를 풀고 단태에게 나무로 된 패를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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