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191화 (191/293)

<-- 191 회: 5-26 -->

대화는 뚝 끊겼다. 두 사람은 부드럽게 흔들리는 운하의 수면을 쳐다보며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마둔수탑에 도착할 때까지 두 사람은 침묵을 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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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태는 한숨을 쉬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멀쩡한 남자가 하인처럼 옆에 서서 시중을 들고 있으니, 신경 쓰지 않고 밥 먹기가 어려웠다.

“대체 언제까지 그럴 겁니까?”

“저를 받아 주실 때까지요.”

류근철은 끈질겼다. 아침에 일어나면 뜨거운 물이 담긴 대야를 들고 문 앞에 서서 기다렸고, 옷도 멋대로 가져가 깨끗하게 빨았으며, 무엇이든 명령만 내려 달라는 태도로 하루 종일 단태 옆을 떠나지 않았다.

철저하게 류근철을 무시하는 방법뿐이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한두 대 얻어맞고 끝냈을 것이다.

“웬만하면 받아 주세요. 동생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이 녀석 괜찮은 놈이에요.”

류근묵이 불난 집에 부채질을 했다.

단태는 말없이 류근묵을 노려봤다.

시선을 느낀 류근묵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가볍게 치며 몸을 일으켰다.

“깜빡 잊고 있었네. 계철이 공부 봐 주기로 했는데 말이야. 그럼 전 이만 일어납니다.”

두계철은 여관 주인의 아들이었다. 삼근원에서 공부를 했던 두계철을 가르치기로 한 류근묵 덕분에 류씨 삼 형제는 여관에서 무료로 먹고 잘 수 있었다.

“혹시 투자할 생각, 없으십니까?”

막내 류근명은 류근철이 주방에 물을 가지러 간 틈을 노려 단태에게 속삭였다.

“투자라니요?”

“삼근맹이 무너지는 바람에 그동안 벌었던 돈을 홀랑 날려 버렸습니다. 제가 운영하던 삼근회는 잘 나가던 상회였습니다. 여기저기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제게 투자를 하시면 딱 일 년 만에 두 배로 돌려 드릴 수 있습니다.”

류근명은 자신만만했다.

류근명에 대해 몰랐다면 허무맹랑한 사기꾼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르지만, 단태는 류근명이 3년 만에 사업 규모를 열 배로 확장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삼근맹의 실패는 류씨 삼 형제의 잘못이 아니었다. 방단을 주도하에 도시 전체가 달려들어 삼근맹을 무너뜨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혈의 바닥에 깔린 황금을 떠올린 단태는 류근명을 쳐다봤다.

“억울하게 실패한 지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또다시 사업을 할 생각입니까?”

“제가 할 줄 아는 게 그거니까요.”

“돈을 벌어서 뭘 할 거죠? 왜 돈을 벌고 싶은 거죠?”

“음, 전 그냥 돈 버는 게 좋습니다. 정정당당하게 경쟁해서 이기는 것도 좋구요. 다른 상회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팔면 더 기분이 좋지요. 뭐랄까? 이해하실지 모르지만, 제대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아침에 눈을 뜨는 것만큼 좋은 삶도 없는 것 같습니다.”

류근명은 속내를 털어놓았다.

“얼마나 필요합니까?”

“얼마나 투자할 수 있습니까?”

류근명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때, 류근철이 나타났다.

류근명은 의미심장한 눈짓을 보이고는 이 층으로 올라갔다.

“혹시 동생이 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까?”

그렇다고 하는 순간, 당장 쫓아가서 동생을 두들겨 팰 듯한 눈빛이었다.

“……아닙니다.”

단태는 류근철을 뒤에 세워놓은 채로 천천히, 소화불량으로 고생하지 않도록 꼭꼭 씹어서 밥을 먹었다. 공포에 쫓겨 도시를 떠났다가 돌아와 여관에 투숙한 사람들의 시선은 가볍게 무시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이 재밌기도 했다.

제자라니!

류씨 삼 형제는 독특한 사람들이었다. 삼근맹의 붕괴는 백율운현을 통해서 진실을 알게 된 단태도 분개할 만큼 억울한 일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술이나 퍼마시며 세상을, 도시를, 관련자들을 저주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인데, 삼 형제는 정신적 회복력이 남달라 그 사건은 먼 과거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했다.

성공을 꿈꾸되, 성공에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실은, 제가 그 아이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류근철은 단태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아이라니요?”

식사를 끝낸 단태는 류근철을 응시했다. 곁에 서 있는 것보다는 저 자리가 마음에 들었다.

“피난 중에 부모를 잃은 아이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만두라고 하시면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부탁드립니다. 저도 찾아보고 있지만, 쉽지 않아서요.”

“알겠습니다. 목숨을 바쳐 그 아이의 집을 찾아내겠습니다!”

류근철은 벌떡 일어서더니 허리를 접어 인사를 하고는 여관 밖으로 달려 나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단태에게 쏟아졌다. 건장한 사내를 하인으로 데리고 있는 귀족 혹은 부유한 상류층이 왜 허름한 여관에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눈빛이었다. 가난한 자의 삶을 호기심 삼아 체험하는 귀족에게 호의적인 시선이 쏟아질리 만무했다.

답답해도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기에 단태는 이 층으로 올라갔다. 아이는 까치발로 창가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소녀 특유의 활기를 잃어버려 그늘진 아이 옆으로 단태는 천천히 걸어갔다.

아이가 돌아섰다.

“오빠.”

“뭐 하고 있었니?”

“그냥, 밖을 쳐다봤어요.”

“그래?”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돌아왔나 봐요.”

“아직도 기억이 안 나?”

“……네.”

아이는 이름도, 사는 곳도 떠올리지 못했다. 엄마의 손을 놓친 채 피난민의 광기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단태는 생각했다.

“천천히 생각해도 돼. 주인아주머니에게 말해 뒀으니까, 뭐든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말해.”

“고맙습니다.”

“오빠는 잠깐 나갔다 올게.”

“……꼭 돌아올 거죠?”

“당연하지.”

단태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복도로 나왔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저 아이가 밝게 웃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릴 때의 설희를 떠올리게 하는 아이여서 그런지, 마음이 무거웠다.

설희를, 아니 설희가 있을지도 모르는 곳을 찾아갈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엄마에 이어 설희마저 가 버렸다면…… 그 감정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으리라.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엄마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인 것처럼 설희의 비극마저 슬픔 없이 자연스럽게 인정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단태는 조금만 더, 며칠만 더 있다가 설희를 찾기로 마음을 고쳐먹었지만, 언제 갈지는 그 자신도 몰랐다.

도시는 활기를 회복하고 있었다. 상인들은 각지에서 생산된 물품을 부지런히 유타루체로 가져왔고, 도시 곳곳에 위치한 시장에서 그 물품들은 도매상인, 소매상인을 통해 도시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런 식으로 상권은 꿈틀꿈틀 일어서고 있었다.

유천주 사건의 여파는 작지 않았다.

아예 살던 집을 팔아 버리고 방염루체나 맹파루체, 혹은 수도 용금탄으로 이주하려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다. 무엇보다 안전에 민감한 귀족, 상류층의 이탈은 도시의 회복에 악영향을 끼쳤다. 일자리가 줄어들자, 남은 일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커져 인심이 각박해졌다.

단태는 기억을 더듬어 철무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녹슨 문을 두들겼지만 반응이 없었다. 사무실은 비어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

옆 사무실 출입문 앞 난간에 서서 운하를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우던 남자가 물었다. 자주색 깃털 달린 모자를 비뚤게 쓴 남자는 외모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철무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만.”

“철무? 그런 작자는 왜? 설마 일을 맡기려고? 허, 손님은 아무것도 모르나 봐. 철무가 얼마나 무능한데. 소문만 듣고 찾아온 거지? 그렇지? 소문은 믿을 게 못 돼. 철무가 왜 거기 없는지 알아? 일을 맡았는데 돈만 받고 달아났거든. 그 때문에 탐사 자격을 뺏길지도 몰라. 그러니까 철무는 더 이상 찾지 않는 게 좋아. 내가 더 싸게,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해 드리지. 무슨 일인데, 말해 봐.”

철무가 무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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