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194화 (194/293)

<-- 194 회: 5-29 -->

마음이 급한 나머지 제자의 손목을 꽉 잡고 달렸다. 용마문의 봉인에도 불구하고 사용할 수 있는 미약한 마력이 류근철의 몸을 가볍게 했고, 사부와 제자는 도시의 밤을 가르며 질주했다.

“여깁니다!”

류근철이 소리쳤다.

손을 놓은 단태는 문 앞에 섰다. 문을 두드리려는데, 두런두런 안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소윤이를 찾았다면서?”

폐병 걸린 노인의 낮은 목소리.

“찾으면 뭐해. 부모가 버리고 가 버렸는데.”

억센 노파의 목소리.

단태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이의 이름이 무엇인지, 류근철이 왜 말꼬리를 흐렸는지 깨달았다. 난리통에 손을 놓친 게 아니라, 버려진 아이였다. 그 아이가 집을, 자기 이름을 기억 못하는 이유도 버려졌기 때문이리라.

류근철이 다가왔다.

“부모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돌아가자.”

단태는 류근철이 쫓아오다 헐떡이며 주저앉는 것도 모른 채 여관으로, 아니 여관을 지나쳐 밤길을 달렸다. 횃불을 든 경비대원들이 깜짝 놀라 쫓아오는 것도 무시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지만 엄마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 그는 소윤이 얼마나 아파하고 있을지 알 수 있었고,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여관으로 돌아가자, 입구에 류근철이 앉아 있었다. 단태를 본 류근철이 벌떡 일어섰다.

“오셨습니까?”

“소윤이를 지켜. 내가 없을 때는.”

“알겠습니다.”

“늦었다. 올라가자.”

방으로 들어간 단태는 새근새근 잠이 든 소윤을 내려다봤다. 이 아이에게도 후원이 필요하다. 힘 있는 사람의 후원. 단태는 소윤의 후원자가 되리라 마음먹었다.

맞은편 침대로 간 단태는 탄면을 벗고 용혈에서 가져온 주머니에 담긴 금룡어 눈알을 꺼내어 입에 넣었다. 백율운현이 고생하여 도려낸 금룡어의 눈알은 여전히 차가웠다. 마간에서 찾아낸 특별한 가죽 주머니 덕분이었다. 얼음 마법이 걸린 그 주머니에 넣어둔 금룡어는 사흘, 아니 석 달이 지나도 상하지 않을 터였다.

침대에 누워 팔베개를 한 채 천장을 올려다본 단태는 명국영을 떠올렸다. 곧 명국영을 만날 생각이었다. 그동안 어떻게든 미루고 미룬 일인데, 더 이상 망설이고 싶지 않았다. 명국영의 생각을 확실히 알게 된다면, 미련 없이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어릴 때는 힘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고의 마법을 익히면 제국의 황제가 될 수 있다고 아이들은 확신한다. 아이들은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지 알지 못한다. 그저 말 한마디, 명령 한 번이면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갈 거라고 여긴다.

현실은 다르다.

유천주, 아니 무룡의 힘을 가져도 할 수 없는 게 많다.

단태는 무룡의 등에 탄 채로 반우현의 저택에 내려앉고 싶었다. 무룡의 힘을 이용하여 당장 설희를 구해 내고 싶었다. 실제로 그럴 생각도 있었고, 계획까지 짜기도 했다. 순식간에 시청으로 몰려든 천마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지 않았다면 경솔한 짓으로 일을 그르쳤을지도 몰랐다.

만약 설희를 구하기도 전에 도착한 천마들에 의해 무룡이 죽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천마들은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밀물처럼 용혈로 내려올 것이다. 누가 그들을 막을 수 있을까?

용혈은 약탈당하고 말 것이다.

더 큰 힘을 손에 쥔다면 가능할까?

그럴지도 모른다.

단태는 손바닥을 어루만졌다. 용마문의 도드라진 선이 만져졌다. 유천주가 새겨 넣은 마력 봉인 마법진을 깨뜨릴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천마들을 상대하여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멀쩡한 용,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용이라면 그들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겠지만, 단태는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은 꿈꾸기 어려운 힘을 가졌지만, 압도적인 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게 문제였다.

그때, 머릿속으로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유산.

용족 전체의 유산!

용족 전체의 유산이라면…… 분명히 그동안 존재했던 용족이 모아 놓은 보물, 지혜, 지식을 모두 포함한다. 이 광활한 세계 위에 군림했던 용족의 유산에 비하며 호수 아래의 용혈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 유산은 어디에 있을까?

누천파, 반우현이 가진 언마, 연금술은 용족 전체의 유산이라고 할 수 없다.

혹시 심장이 하나뿐이라서 그 유산을 받지 못했을까?

고민에 잠긴 단태는 새벽빛이 밝아 올 무렵에 눈을 붙였고, 아침 햇살이 창으로 비쳐들 때 잠에서 깼다. 변화된 몸은 오래 잘 필요가 없었다. 소윤의 상태를 살핀 그는 탄면을 쓰고 밖으로 나갔다.

@

철무는 지붕에 몸을 숨긴 채 맞은편 건물 입구를 지켜보고 있었다. 명국영이 편지로 알려 준 내용을 토대로 조사한 결과, 의심스러운 인물의 은신처가 바로 그 건물이었다. 상대는 마둔수탑의 마법사였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다.

유천주 사태로 바쁜 명국영이 시간을 내어 그 자료를 보내주지 않았다면 철무는 여전히 문가막의 분수대 의자에 앉아 정체불명의 그 사내를 기다렸을지도 몰랐다.

마차가 아침 안개를 뚫고 달려와 허름한 건물 앞에 멈췄고, 지팡이를 손에 쥔 노인이 마차에서 내려 주위를 살폈다.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 예리한 눈빛이었다.

노인이 문을 열고 건물로 들어가자 철무는 몸을 일으켰다. 경비대를 부르기 전에 사실 확인을 위해서였다. 마둔수탑의 마법사, 그것도 진마의 경지에 오른 실력자를 건드리려면 증거 없이는 불가능했다.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지붕에서 내려와 길을 건넌 철무는 미리 확보한 좁은 창을 통해 건물 내부로 숨어들었다. 안쪽은 조용했다. 용병단에서 익힌 보법을 발휘하여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일 층, 이 층, 삼층까지 살핀 그는 늙은 마법사가 지하에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거기서 뭘 할까?’

심증은 충분했다.

명국영이 보낸 편지에는 죽음의 마법사에게 필수적인 약초, 마법 재료 목록이 담겨 있었다. 철무는 그 목록을 손에 쥐고 약방이 몰려 있는 거리뿐 아니라, 도시 곳곳에 자리 잡은 약초상을 찾아다녔다. 때로는 구슬려서, 때로는 협박으로 특정한 약초를 대량으로 사들인 명단을 확보했는데, 대부분 마법사였다.

탁월한 집중력으로 약종상에게서 입수한 서류를 분석한 철무는 의심스러운 몇 사람을 추려냈고,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그중 한 사람이 살인마라고 확신했다.

단도를 손에 쥔 채 낡은 계단을 딛고 내려온 철무는 거꾸로 매달린 사람의 몸에서 떨어진 피가 양동이에 떨어지는, 혹은 가슴이 열려 내장이 고스란히 보이는 끔찍한 광경을 기대했으나, 먼지 쌓인 선반으로 둘러싸인 지하실은 평범했다. 죽음의 마법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었다.

이상한 건, 중앙에 우뚝 선 문이었다.

문은 공간과 공간을 잇는 경계가 아닌가.

대체 왜 문이 지하실 중앙에 서 있을까?

단검을 허리띠의 자루에 꽂은 철무는 문으로 다가갔다. 앙상한 나뭇가지, 두개골과 뼈, 기이한 형태의 문양이 새겨진 문은…… 골동품 같았다. 못해도 수백 년은 된 문이었다.

장갑 낀 손으로 손잡이를 잡았는데도, 냉기에 몸이 떨렸다.

손을 놓으며 뒤로 물러선 철무는 깜짝 놀랐다. 더워서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르는 여름이 아닌가.

단도를 빼내어 손에 든 철무는 단번에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훅 다가와 입김이 보였다. 그 연기 같은 입김 너머로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이제 막 젊은 여자의 머리에서 쪼그라든 뇌를 꺼내던 늙은이가 철무를 발견했다. 잠깐 동안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본 채로 얼어붙었다.

“누, 누구냐?”

노인이 먼저 말했다.

철무는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마법사와의 싸움은 길게 끌면 불리해진다. 근접전에 속전속결이 답이다.

철무가 휘두른 단도에 늙은 마법사의 수염이 잘렸다. 마법사는 마법 재료를 꺼내어 주문을 외울 시간이 없다는 점을 너무나 잘 알았다. 뒤로 물러서며 손을 내밀자 시꺼먼 반지에서 안개가 흘러나왔다. 철무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으나 안개에 닿은 단도는 맥없이 녹아내렸다.

문 밖으로 튀어나온 철무는 문을 닫고 몸을 막았다. 쿵쿵 소리가 들렸지만 문이 열리는 순간 그 안개에 닿아 죽고 만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뼈마디가 흔들리도록 버텼다.

그때, 지하실로 내려오는 문이 쾅 부서지며 갑옷에 창까지 갖춘 경비대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곧이어 망토를 걸친 마법사들이 지하실로 밀려 내려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