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204화 (204/293)

<-- 204 회: 5-39 -->

“이름이 뭐죠?”

“……백중입니다.”

단태는 어깨와 허벅지, 옆구리로 몰리는 바람의 압박을 느꼈다. 서두르지 않으면 몸 전체로 바람이 터져 나올지 모른다.

“어디에 묵고 있죠? 제가 당신의 사촌 동생에 대하여 알아볼 수도…….”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제가 설희를 직접 찾을 생각입니다.”

단태는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광기에 가까운 분노가 몸을 불태워 버릴 것 같아서였다.

골목길로 접어들자마자 당장 주머니를 열어 금룡어 눈알 열 개를 입에 털어 넣었다. 눈을 감고 목구멍으로 넘어가 빠르게 녹는 금룡어 눈알의 효과를 기다렸다.

잠시 후, 몸 안쪽의 압력이 줄어들었다.

단태는 헝겊을 꺼내어 왼쪽 팔뚝을 동여맸다. 꽉 묶어 바람과 피가 새 나오지 않도록 조치한 그는 충동을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벽을 쳤다. 푹, 벽돌 석 장이 부서졌다. 발로 바닥을 강하게 밟자, 단단한 돌에 금이 갔다.

당장 무룡을 부르고 싶었다. 아니, 이미 불렀다. 대혈에서 코를 골다가 주인의 부름에 몸을 일으킨 무룡이 느껴졌다. 포효로 용혈을 뒤흔든 무룡이 호수로 나오기 전, 단태는 새로운 명령을 내려 무룡이 거기 머물도록 만들었다.

이성적 판단이 감정의 열기를 누르는 데 성공했다.

서서히 분노가 사그라지자 시선이 느껴졌다. 두 명이었다. 아마도 반우현이 보낸 사람이겠지.

단태는 골목을 벗어나 여유롭게 걸었다. 따라오는 두 사람의 발소리에 집중하니, 굳이 돌아서서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오가는 사람들에 비해 가볍고 민첩한 발소리만으로도 두 사람이 보통 사람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단태는 상아별로를 빠져나왔고, 두 사람도 따라 나왔다. 반우현이 설희를 모른다면, 이름조차 들어 본 적이 없다면 사람을 붙일 리는 없다. 그렇다면 왜 반우현은 거의 4년 만에 나타난 설희의 친척에게 미행을 붙였을까?

백율운현으로부터, 또한 석현담으로부터 도시의 운영 방식에 대하여, 도시를 지배하는 자들의 삶에 대하여 꾸준히 수업을 받았기에 답은 질문을 던지는 순간, 튀어나왔다.

반우현에게 골치 아픈 문제를 안겨 주기로 마음먹은 단태는 행인 사이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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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연미가 설희에 대해 떠들지 않도록 단단히 입단속을 시킨 반우현은 회의 내내 백중이라는 남자로 인해 고민에 시달렸다. 소규모 원정대의 출발 일시를 정하는 중요한 순간에도 반우현은 그 남자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해?”

옆에 앉은 누천파가 몸을 기울여 속삭였다.

“……뭐?”

“누가 널 괴롭히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야.”

반우현은 회의에 집중하려고 애를 썼고, 시청의 입장을 반영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회의 결과, 원정대의 출발 일시가 결정되었다. 보름 후였다. 용마렵을 위해 유타루체로 몰려든 마법사들이 도시를 빠져나가고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출발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회의가 끝나자 반우현은 깊고 습한 지하실을 빠져나와 바람 부는 옥상으로 향했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이제 살 것 같았다.

“오빠한테 속 시원히 말해 봐.”

누천파가 뒷짐을 지고 다가왔다. 서쪽 지역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잡힌 엄포윤 때문에 륜사가 부탑주에서 물러나고, 임시로 그 자리를 대신한 누천파는 원정대 회의에도 마둔수탑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

“……그래, 너도 알아야 하는 문제니까.”

“나도 알아야 한다?”

“너 양지란이라는 노예를 구입한 적 있지?”

“노예? 내가? 말도 안 돼. 내가 왜 노예를…….”

노예 등록소라는 관청이 존재할 만큼 노예는 공인된 제도지만, 노예 매매는 계승자에게 어울리는 행동이 아니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깨끗하다고 볼 수는 없다. 얼마든지 꼬투리를 잡아 흔들 수 있으니까.

“특별문서고 장부를 확인했어. 날 속일 순 없어. 속일 필요도 없고. 네가 노예 매매소에서 양지란을 산 무렵, 나도 노예를 샀어.”

반우현은 그 노예가 바로 황제의 여자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공개되면 곤란하지만, 중요한 회의 내내 딴생각을 할 만큼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산 노예의 어머니가 바로 네가 산 노예였어. 그리고 오늘 난 그 노예들의 친척을 만났어. 사촌 동생을 돌려 달라고 하더라.”

“뭐?”

누천파는 즉시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마탑의 계승자란 위치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많지만, 또한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다로운 자리이기도 했다. 만약 계승자가 직접 노예를 구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지금처럼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모른다. 륜사와 명국영은 기다렸다는 듯 이 일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이다.

“맞아. 누군가 그 친척이라는 작자에게 정보를 흘렸어. 시장과 계승자를 비롯해 극소수만 접근 가능한 특별문서고의 장부 내용을 대체 누가 그 녀석에게 알려 줬을까?”

반우현은 누천파를 이용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진실의 일부만 걸러내어 알려 주었다.

“짚이는 건?”

“당가.”

“…….”

누천파는 손가락으로 턱을 긁었다. 왼쪽, 오른쪽. 거칠게.

“나를, 반가를 끌어내리기 위한 사전 포석이겠지. 아마 그 친척이라는 놈도 가짜일 거야. 내가 보낸 미행을 쉽게 따돌렸거든. 몇 마디 나눴는데 보통 놈이 아니야.”

“어떻게 할 생각이야?”

“네가 날 도와줘야 해. 당현추가 시장 자리에 오르면 마둔수탑의 위상도 흔들릴 테니까.”

“뭘 원해?”

누천파는 계산이 빨랐다.

“당가를 살펴봐. 내가 움직이면 금방 들통이 날 거야. 너라면, 마둔수탑이라면 들키지 않고 당가가 무엇을 하는지 알아볼 수 있겠지.”

“좋아.”

“고마워.”

궁지에 몰린 반우현에게 망설임 없는 누천파의 태도는 큰 힘이었다. 그러나 이어진 누천파의 말에 반우현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조건이 있어.”

“……조건?”

“전혀 어렵지 않아. 연금술에 대한 자료를 내게 보여 줘. 언마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 정도는 괜찮잖아? 넌 당분간 연금술 연구는 꿈도 꾸지 못할 만큼 바쁠 테니까.”

“……알았어.”

“믿을 만한 사람을 통해 보내. 나도 그 사람을 통해 네게 당가의 동태를 알릴 테니까.”

“그래.”

누천파는 먼저 아래로 내려갔고, 혼자 남은 반우현은 저 멀리 저물어 가는 붉은 태양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찬란한 태양도 시간이 흐르면 그 힘을 잃고 지기 마련이다. 반가의 영향력도 그럴까? 고군분투 애를 쓰고 있지만 기세등등한 당현추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원정대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지만, 가능성은 낮은 편이 아닌가.

외롭다.

누군가와 고민을 나누고 싶은데.

이해가 얽히지 않은 순수한 사람이면 좋겠는데.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어.”

반우현은 저무는 태양도 어둠을 지나면 다시 떠오른다는 사실을 되뇌며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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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하는 소윤이와 시장에 놀러 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온 단태는 여관 구석진 곳에 앉아 있는 석현담의 눈짓을 놓치지 않았다. 소윤이 여관 주인에게 시장에서 뭘 봤는지, 뭘 먹었는지, 뭘 샀는지 자랑하려고 달려가자, 단태는 석현담 맞은편에 앉았다.

“주군의 여동생, 황궁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황궁?”

“다방면으로 조사한 결과, 반우현은 위연미와 함께 용금탄으로 가서 꽤 오랫동안 황궁에 머물렀습니다. 위연미가 설희를 데리고 황궁으로 간 것 같습니다.”

“반우현, 위연미는 물의 도시로 내려왔는데, 설희만 황궁에 있다? 그럴 가능성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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