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 회: 6-2 -->
“난 그 세계와 연결되어 있네.”
“…….”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아레마고는 그 의미를 알고 있을까? 우라마타와의 연결은 곧 용이라는 선언인데.
“물론 용족은 아닐세.”
아레마고는 단태를 보며 주름진 입술로 웃었다. 마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아는 것 같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우라마타와 연결된 순간, 말은 그대로 이루어지지. 그래서 말이 곧 마법이라는 뜻이야.”
“전 모르겠습니다.”
모른다는 고백, 자존심이 상해서 쉽지 않지만 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는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설명하기 어려운, 아예 설명이 불가능한 진실이 있네. 난 자네에게 그 진실을 알려 주고 싶네.”
아레마고가 손을 뻗어 단태의 손목을 잡는 순간, 단태는 거칠게 숨을 쉬었다.
분명히 모닥불 앞에 앉아 있다.
분명히 언젠가 물의 도시가 들어설 황량한 호숫가에 앉아 있다.
그런데 왜 사방이 뻥 뚫린 들판 언덕의 꼭대기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는 것처럼 광활한 느낌이 떠나지 않을까?
단순한 느낌이 아니었다.
많은 것들이 보였다.
말과 소, 수백 명의 인부가 동원된 대규모 공사장, 살벌한 기세를 드러내며 서로를 노려보는 두 무리의 군대, 감미로운 연주와 입에 침이 고이는 산해진미로 그득한 연회, 매끈한 바위에 빨래를 놓고 방망이로 두들기며 수다를 떠는 아낙네들, 그물에 걸려 몸부림치는 물고기를 쳐다보며 힘겹게 그물을 걷어 올리는 어부들, 웃으며 잘 익은 사과를 따는 여인, 밧줄에 묶인 채 경매장으로 끌려가는 노예들, 마법을 펼쳐 거목을 쓰러뜨리는 젊은 마법사, 수십만 마리가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서조, 폭우로 홍수가 난 녹색의 바다 계림, 해적선의 등장으로 혼비백산 달아나기 바쁜 상선 한 척, 그리고 꿈틀거리며 무덤 밖으로 걸어 나오는 시체까지.
너무나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보였다. 어디에 앉아 있는지 헷갈릴 만큼. 그 경험은 압도적이어서 의식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호흡마저 힘들게 했다. 마치 몸이 공간이동 마법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레마고가 손을 뗀 순간, 그 괴이한 여행은 끝이 났다.
헐떡이는 소리만 들렸다.
“괜찮은가?”
“……전혀 괜찮지 않습니다.”
“우라마타라네.”
“…….”
믿을 수도 없고, 무시할 수도 없다. 어떻게 판단을 내려야 할까? 마둔수탑의 서고에서, 용혈의 마간에서 읽은 어떠한 책이 이 순간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혼란으로 고개를 흔드는 단태를 바라보던 아레마고가 입을 열었다.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세. 지혜로운 의원은 환자를 신중하게 대한다네. 살아날 가망성이 많아도 의원이 부정적인 태도로 어렵다는 몸짓을 보이면, 그 환자는 오래 버티지 못하지. 치명적인 질병에도 의원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약도 없이 살아나는 환자도 있네. 내가 아는 의원은 감기든, 소화불량이든, 골절이든 같은 알약을 주면서 반드시 나을 거라고 환자에게 얘기를 하네. 신기하게도 환자들 중 다수가 나아 버리지.”
단태는 ‘우라마타’를 잠시 잊기로 마음먹었다. 삼킬 수 없다면 뱉어야 한다. 그래야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는다.
“……그야 나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 아닙니까?”
“바로 그거야!”
흥분한 아레마고의 입에서 침 두 덩이가 튀어나와 모닥불 속에서 칙칙 사라졌다.
대마법사가 말을 이었다.
“믿음이 듬뿍 담긴 말은 그 자체로 마법이라네. 엄마, 아빠는 반드시 자신을 사랑할 거라고 믿는 아기의 말은 그대로 이루어지지. 믿음을 가진 환자에게 던진 의원의 말은 그대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 의원과 환자가 같은 생각을 믿는다면, 아무리 치명적인 병도 나을 수 있네.”
단태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의 아메라고는 마법사가 아니라, 퇴락한 시골 신전에서나 만날 수 있는 늙은 신관 같았다. 무턱대고 믿음을 강조하는 신관의 말을 따랐다가 재산은 물론 자식까지 잃은 상인의 이야기가 기억났다.
“아무리 믿어도 낫지 않는 병도 있습니다.”
“자네 말이 맞아.”
“……네?”
“마법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것처럼, 믿음이 담긴 말로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네.”
아레마고는 무조건 믿어야 효과를 본다는 신관과는 달랐다. 단태의 얼굴을 살핀 노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자넨 마법에 대해 잘 알겠지. 마법을 그저 마력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행동이라고만 비난한다면 마법사로서 얼마나 억울하겠나? 마법은 바다처럼 광활하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학문, 아니, 그 이상일 테니까. 언마도 마찬가지네. 언마를 들여다보지 못한 사람의 눈에는 얼토당토않은, 그저 믿음을 강조하여 사기나 치는 거짓말쟁이처럼 보이겠지만, 언마는 마법을 포함할 정도로 거대한 영역이며, 광활한 체계라네.”
“……전 잘 모르겠습니다.”
단태는 오늘 모르겠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더듬었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난 오늘 자네에게 세 가지 증거를 보여 주었네. 물고기가 저절로 물 밖으로 나왔고, 축축한 장작에 저절로 불이 붙었으며, 위대한 존재 만운주로 하여금 늪지대가 포함된 땅뙈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했네. 이 정도면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하지 않겠나?”
노인의 말이 옳았다. 아무리 황당한 주장이라고 해도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존재한다면 그 주장은 합리적이다.
그래, 일단 받아들이자.
언마의 존재를 진심으로 인정하는 순간,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제게 왜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전 아레마고의 계승자도 아닌데, 왜 제게 세 가지 증거를 보여 주신 겁니까?”
아레마고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자네의 적응력은 대단하구먼. 계절의 변화, 환경의 변화는 쉽게 받아들이지만, 인간은 한 번 만들어진 내면의 규칙은 죽을 때까지 바꾸지 않으려고 저항한다네. 어린 시절에 받아들인 관점을 바꾸기는 사실상 불가능한데, 자넨 역시 다르구먼. 아마도 인간과 용, 두 종족의 관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지?”
“제가 원한 답은 아닙니다만.”
단태는 핵심을 놓치지 않았다.
“나도 모르네.”
“…….”
기괴한 각도로 예상을 벗어난 대답에 단태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저 해야 한다는 사실은 확실하네. 물고기가 저절로 튀어오를 것을 안 것처럼, 장작에 불이 붙을 것을 미리 안 것처럼, 만운주가 땅을 내줄 것을 안 것처럼.”
노인의 눈은 맑고 깊었다. 거짓이라는 단어의 의미조차 모르는 아기의 눈망울 같았다.
“……무엇을 더 아십니까?”
“자네가 영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그런 말에 기분 좋아할 시기는 이미 지난 지 오래였다.
“그게 전부입니까?”
“하나 더 있지. 자네가 누구도 가 보지 않은 곳으로 갈 사람이라는 것.”
“…….”
점점 더 노인을 신뢰하기가 어려워졌다.
“자네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겠네. 소요왕령, 이쪽으로 좀 와 주겠습니까?”
아레마고의 말에 공간이 잔잔한 수면처럼 일렁거렸다. 아름다운 여인이 그 공간의 면을 부드럽게 통과해 아레마고 앞에 섰다. 반투명한 미녀가 아슬아슬하게 걸친 바람의 옷에서 차갑고 시원한 바람이 흘러나왔다.
-드디어 나를 불렀군, 아레마고.
“나와의 계약, 잊지 않았겠지요?”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저 녀석인가?
소요왕령은 단태를 쳐다보았다.
“저 아이와 계약을 맺어 주십시오. 약속대로 대가는 제가 치르겠습니다.”
-좋아.
소요왕령은 눈으로 좇기 힘든 속도로 단태 앞에 섰다. 단태는 뒤로 물러섰지만, 소요왕령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