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 회: 6-6 -->
소리를 내는 안쪽의 구조를 직접 보고 문제와 해결책을 알아내기 위해.
란조가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날아올라 선반에 내려앉았다.
그때서야 단태는 자기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깨달았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손가락 끝이 떨렸다.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마터면 저렇게 귀엽고 아름다운 새를 죽일 뻔했다. 죽여서 내부 구조를 확인하기 위해 해부할 뻔했다. 울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울음을 완벽하게 만들고 싶다는 충동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질 뻔했다.
란조는 눈치를 보고 있었다.
몸을 일으킨 단태는 란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미소를 지으며.
“내가 미쳤나 봐. 미안해.”
직관적으로 느낀 살기를 피해 달아났던 란조는 잠시 망설였으나 곧 조그만 날개를 퍼덕여 단태의 팔에 내려앉았다.
윤기를 잃어 당장 뽑아야 깔끔해 보일 것만 같은 깃털이 몇 개인지까지 눈에 들어왔다. 단태는 란조를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잠시만 방심하면 털을 뽑아야 한다는, 혹은 일부 깃털만 상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부와 같은 극단적인 생각으로 치달았다.
생각이 이처럼 제멋대로 움직일 줄은 몰랐다.
덜컥 겁이 났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잠시라도 방심을 한다면 끔찍할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아니, 그 자신이 그 짓을 하고 말 것이다.
무룡을 대혈에 남겨두고 란조와 함께 용혈을 떠난 단태는 취풍장령을 소환했다. 반투명한 여인이 일렁거리는 공간 밖으로 나왔다.
“땅 위로 올라갈 때까지 날 보호해.”
-알겠습니다.
단태는 앞서 날아가는 란조의 뒤를 쫓으며 가끔 취풍장령이 무엇을 하는지 살폈다. 숨어 있다가 먹잇감이 나타나면 독액을 쏘거나 몰래 다가와 바늘로 푹 찌르는 어둠의 사냥꾼들은 취풍장령이 일으킨 돌풍에 휘말려 갈가리 찢어졌다. 바람의 정령이 가진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소환했는데, 만족스러웠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세상이 달라지고 말았다.
“아니, 내가 달라졌어…….”
단태는 속삭였다.
바싹 긴장하지 않으면, 생각을 한 곳에 집중하지 않으면, 엉뚱한 곳으로…… 대부분 평소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잔혹한 곳까지 가 버린다.
그를 보기 위해 위험천만한 지하 통로를 뚫고 날아온 란조를 찢어서 그 구조를 살피려 했었다. 란조가 알아차리고 피하지 않았다면 손에 피를 묻힌 후에야 비명을 지르며 놀랐을지도 모른다.
란조에 대해서만 그런 방식으로 생각한 건 아니었다. 취풍장령, 공중에서 흔들리듯 움직이는 바람의 정령도 무언가 부족했다. 그 결함을 채워 주고 싶었다.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이런 생각, 충동이 솟구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아레마고로 인해 맺은 그 계약 때문일까? 그 외에는 추측조차 할 수가 없다. 어쩌면 암탄주의 유산으로 인해서 또 다른 심장이 생기기 직전인지도 모른다.
“단태는 단태가 아니다.”
흑야궁의 미로를 가로지르던 란조가 말했다.
“……난 나야.”
속이 뜨끔했지만 단태는 모른 척했다.
“그래도 난 단태 옆에 있을 거다.”
“……고맙다, 란조.”
머릿속이 복잡했다.
분명히 고마우면서 부끄러운데, 마음 한구석엔 왜 하찮은 감정 따위에 휘둘러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짜증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게 왜 잘못인지 모르겠다는 강렬한 생각이었다.
세상을 보다 풍요롭게, 보다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사소한 희생쯤 감수해야 한다는 욕구는 너무나 강렬해서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비틀었다. 그 사악한 생각은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었다.
단태는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했고, 확인했다. 나는 용이 아니다. 용에 가까운 몸을 가졌을지라도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 나는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다. 완벽하면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도 많다.
완벽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나 자신부터 없애야 할 것이다.
밀물처럼 몰려들던 그 생각은 힘을 잃었다. 하지만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었다.
취풍장령을 정령의 세계로 돌려보낸 단태는 란조와 함께 땅 위로 올라왔다. 버려진 폐가의 지하실이었다. 란조를 따라 올라갔더니, 높다란 서쪽 방책이 보였다. 호수로부터 도시를 보호하는 방책 위로 소수의 경비대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집은 낡았지만 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왜 비어 있을까? 주위를 살피니 열 채 남짓 모두 빈 집이었다. 고양이 몇 마리가 떼를 지어 몰려다니다 단태를 보더니 줄행랑을 놓았다.
곧 이유를 찾아냈다.
유천주 때문이었다. 아니, 단태 자신 때문이었다.
유천주가 두 번째로 시청 건물을 무너뜨리자 도시는 휘청거렸다. 위험을 느낀 상류층, 귀족, 부자가 안전한 곳으로 근거지를 옮겼고, 그로 인해 물의 도시엔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그 영향력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커졌다. 하루 벌어 하루 살던 하층민에겐 마른하늘에 천둥 같은 일이어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물의 도시를 떠난 것이다. 그들은 희망을 가지고 방염루체나 맹파루체로 향했을 테지만, 사정이 나아질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았다.
란조를 어깨에 올린 채 운하가 보이는 선착장으로 다가간 단태는 도시가 얼마나 더러운지, 이곳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씻지 않은 아이에게서 나는 악취를 참지 못해 욕통에 집어넣고 박박 몸을 문질러 때를 벗기듯, 이 도시를 쓸어버리고 싶었다.
운하는…… 쓰레기로 그득 차 있었다. 입다가 버린 옷, 먹다가 버린 음식 찌꺼기, 둥둥 떠다니는 배설물, 죽어서 썩어 가는 고양이까지.
크고 작은 배를 타고 운하를 통과하는 자들도…… 쓰레기였다.
다 치워 버리고 싶었다.
모조리 뭉개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때, 란조가 비명 같은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온몸으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반응한 것이다. 이번엔 낮게 드리운 먹구름 낀 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란조!”
급히 불러도 란조는 돌아오지 않았다.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미칠 것만 같았다. 대체 왜 이럴까? 왜 이런 생각에 빠져들까? 왜 파괴하고, 무너뜨리고, 죽이려 할까?
용족 특유의 사고방식일까?
그건 아니다. 유천주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괴팍했으나 전체적으로 본다면 일관적이었고, 무조건 부수거나 죽이려 하지 않았다.
행인을 만나면 또 파괴적인 충동에 사로잡힐까 염려한 단태는 지붕으로 올라갔다. 마침 우뚝 솟은 종탑이 눈에 띄었다. 종탑의 지붕 아래 공간에 걸터앉자 비가 내렸다.
바닥을 탁탁탁 때리는 빗방울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려다본 광장은 비둘기 똥으로 번들거렸다. 비가 더러운 광장을 청소하고 있었다. 도시를 씻어 내고 있었다. 악취가 줄어들었다. 빗소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마저 덮었다.
그 파괴적인 충동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냉철하게 생각할 여유가 생겨서 너무 좋았다.
그 계약 때문에 생긴 변화임에 틀림이 없다. 적응해야 한다. 생각도 못한 거금을 손에 쥐면 온갖 걱정, 염려가 찾아옴과 동시에 거만해지듯, 정령왕과의 계약으로 인해 마음이 너무도 쉽게 상식이라는 선을 넘어 버리는 것일까?
일단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이자. 좀 더 신중하게, 좀 더 정확하게 생각하면 된다. 마음이 제멋대로 움직이지 않고 단단히 고삐를 틀어쥐면 된다. 그러면 된다.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단태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비는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건물 옥상은 물론 좁다란 골목과 운하에까지 물을 퍼붓고 있었다. 비는 공평했다. 생각해 보면 자연은 느닷없이 재앙을 가져오지만, 차별과는 거리가 멀었다. 홍수도, 가뭄도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왜 이런 생각을 할까? 인간으로 태어났다가 용으로 변해 가는 지금 상황도 지극히 정상적인 자연 현상으로 파악하고 싶을까?
올라오는 계단에서 소리가 났다. 종을 쳐서 시간을 알려야 하는 모양이다.
단태는 일어나서 지붕으로 훌쩍 뛰었다. 빗방울이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옷이 금세 묵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