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221화 (221/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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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슬란과 더불어 최강의 시간 마법사로도 알려진 장철상은 시간을 강물에 비유했다. 강물처럼 시간도 끝없이 흘러가는데, 그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고, 반대로 시간보다 빨리 떠내려간다면 미래도 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 매혹적인 이론을 믿고 시간 마법에 뛰어든 사람들 중 다수가 죽거나, 반신불수가 되거나 미쳤다. 그로 인해 장철상은 비난을 받아 유하탑에서 쫓겨났고,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장철상이 만든 시간 마법 쾌둔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바로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 죽음 때문이었다.

쾌둔을 제대로 펼칠 수 있다면 수명은 획기적으로 늘어난다. ≪천간론≫에 따르면 이론적으로 수십 배나 늘어난 삶을 살 수도 있다. 늙지 않거나, 서서히 늙어 갈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도 무수한 마법사들이 쾌둔에 도전했지만, 아직 누구도 견고한 문을 열지 못했다.

모두가 불사의 마법인 상둔을 꿈꾸고 있을 때, 단태는 오히려 하둔에 주목했다.

상둔이 수명을 늘린다면, 하둔은 마법을 펼친 사람의 내부 시간만 느리게 만든다. 똑같은 한 시간을 상둔이 두 시간, 혹은 세 시간으로 늘린다면, 하둔은 한 시간을 두 시간, 세 시간으로 느끼도록 만든다.

엄밀히 말한다면, 하둔은 시간 마법이 아니었다. 시간 자체를 왜곡한다기보다는 그 사람의 정신과 감각을 속이는 환상 마법에 가까웠다. 뇌에 자극을 주어 정신 활동의 속도를 증가시키면 자연스럽게 시간은 늦게 흘러가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마치 괴물에 온종일 쫓겨도 꿈에서 깨어나면 실제 꿈을 꾼 시간은 짧은 것처럼, 하둔은 마법사가 현실적이되 현실의 시간보다 몇 배나 긴 꿈을 꾸게 한다.

단태는 충동을 살피고 잠재울 수 있는 내면의 시간이 필요했다.

문제점을 미루어 짐작한 단태는 다시 하둔을 시도했고, 마룻바닥에 쓰러졌다. 머리가 터져 나갈 듯 아팠으나 포기하지 않았다.

한 번 더.

한 번만 더.

어깨와 팔, 이마에 시퍼런 멍이 든 후에야 단태는 치명적인 결점을 찾아냈다. 스승의 가르침 없이 독학으로 마법에 뛰어든 애송이라면 누구나 겪는 함정이었다.

해석을 잘못한 것이다. 마법서는 암호로 그득한 책이어서 있는 그대로 풀이하여 마법을 펼치면 용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죽을 수 있다.

“화로가 아니라, 심장이었어…….”

단태는 두려움을 억누르고 하둔을 펼쳤다.

바깥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무슨 일이 생겨도 들어오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준 데다, 마법으로 문을 잠근 터라 여기서는 안전하다.

그러나 이 무시무시한 충동을 해결하지 못하면 누구도 만날 수 없다. 어쩌면 용혈에 틀어박혀 백율운현이나 괴롭히며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수도 없다. 백율운현을 보는 순간, 잔혹하게 죽여 버릴 테니까.

설희를 만난다고 해도 기뻐할 수만은 없으리라. 그토록 보고 싶었던 여동생을 죽이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할 테니까.

쓰러지고 또 쓰러졌다.

정신을 잃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단태는 ≪천간론≫이 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몸으로 특정한 구절의 의미를 확인했던 것이다. 무식한 방법이자, 미련하며 위험천만한 접근법이라는 사실, 그는 잘 알았다. 용의 심장을 믿었다. 보통 사람보다 월등히 뛰어난 신체에 기대를 걸었다.

하둔을 익히지 않는다면, 그 충동을 이기지 못한다면, 다 포기하고 용혈에 갇혀 지내야 한다면, 차라리 여기서 심장이 터져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하나씩, 하나씩 장애물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나씩, 하나씩 장애물은 무너졌다. 점점 암호와 모호한 표현으로 감춰진 하둔의 진면목이 형체를 갖추었다.

‘귀’는 사람의 귀가 아니었다. 귀는 그 외양이 닮은 달팽이를 뜻했고, 달팽이는 곧 인내와 느림의 상징이었다. ‘날개’는 초월, ‘태양’은 근원, ‘인간’은 ‘신의 아들’을 의미했다. 그런 식으로 암호를 풀자, 하둔의 비밀이 풀렸다.

단태는 하둔, 중둔을 뛰어넘어 단번에 상둔에 도전한 마법사들이 왜 그토록 처참한 운명으로 끝이 났는지 알 것 같았다. 강화된 몸으로도 하둔을 정복하기 어려운데, 겁도 없이 하둔보다 월등히 강력한 상둔을 펼쳤다면 십중팔구 죽음이라는 결과만 남았을 터였다.

“휴우, 다시 해 보자.”

단태는 ≪천간론≫이 알려 주는 대로, 몸으로 알아낸 방법대로 하둔을 펼쳤다. 심장에서 마력이 빠져나갔고, 빛과 소리, 냄새가 사라졌다.

암흑이었다.

천천히 감각이 돌아왔다.

모든 것이 느려졌다. 공기 중의 먼지는……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 떨림을 볼 수 없었다. 소리와 냄새는 별 의미 없이 지속되고 있었다.

‘성공이야!’

하둔이 제대로 펼쳐졌고, 머리와 심장을 터트릴 듯한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부의 시간이 느려진 것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숨을 쉬지 않아서 불안해졌다.

고요한 가운데, 심장 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숨이 막혀 괴롭지는 않아도, 평소처럼 호흡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숨을 쉬었는데, 제대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몸은 게을러빠진 노예처럼 너무나 천천히, 답답할 만큼 느리게 움직였다.

필요 이상 오랫동안 서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태어나서 이토록 오래 같은 자세로 서 있었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이 고요, 정적, 멈춰 버린 듯한 분위기가 단태를 옥죄었다.

어떻게든 고개를 돌리거나, 몸의 중심이라도 옮기고 싶었다.

그러나 몸은 석상처럼 단단했다.

비명이 터져 나……오지 않았다. 분명 단태는 겁에 질려 소리 지르고 있으나, 그건 마음일 뿐 몸은 소리를 터트릴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목소리조차 마음대로 낼 수 없다는 사실이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몸을 잃어버린 듯한, 설명 불가능한 확신에 사로잡힌 까닭이다.

단태는 공황에 빠졌다.

마력을 끊어 하둔에서 벗어나고자 애를 썼으나, 마력 또한 몸의 일부였다. 마음의 지시를 몸이 받아들이는 데 걸리는 시간이 너무나 길어, 단태에게는 마치 몸이 마음을 배반한 것처럼 느껴졌다.

몸도 혼란에 빠져 있었다. 너무나도 빠른 마음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그렇게는 하지 마라 등 서로 모순된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결국 몸은 균형을 잃고 통나무처럼 마룻바닥으로 쓰러졌다.

몸이 기울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마가 마룻바닥을 찧기 전까지, 단태는 무려 189까지 셀 수 있었다. 서서히, 끊임없이 다가오는 마룻바닥에서 눈을 뗄 수 없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처음 깨달았다. 눈을 깜박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잦은 호흡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평소처럼, 습관적으로 숨을 들이마셨는데, 그게 문제였다. 내면의 속도가 빨라 필요 이상으로 자주 공기를 마셨기 때문에 몸은 한계에 다다랐다.

고통으로 가슴이 뻐근한 무렵에야 단태는 진실을 깨닫고, 의식적으로 느리게, 천천히 숨을 쉬려고 애를 썼다. 몸이 느끼는 시간과 마음이 느끼는 시간이 달랐다.

마음의 시간을 기준으로 삼으면 몸에 탈이 날 터였다. 그래도 습관적으로 해 온 호흡 때문에 방심하면 배와 가슴이 아팠다.

단태가 느끼기로 거의 1시간가량, 외부 시간 기준으로 불과 1, 2분 정도 흘렀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결과, 몸의 시간에 맞추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평소 습관적으로 해 오던 모든 행동을 전부 뜯어 고쳐야 한다는 뜻이었다. 호흡은 물론 팔다리 놀리는 법까지 처음부터 배워야 할지도 몰랐다.

몸을 포함하는 외부 세계의 속도와 정신의 속도가 일치하지 않아서 생긴 혼란에 익숙해지려면 그 방법뿐이었다.

몸에 밴 모든 습관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시간 흐름의 속도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단태는 몸으로 깨달았다. 호흡은 문제의 시작에 불과했다.

팔을 들어 올렸는데, 어찌나 느리고 불편한지 다른 사람의 팔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급한 마음에 팔의 각도를 바꾸면, 팔은…… 마음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혼란에 빠져 경련을 일으켰다.

하둔은 지극히 당연한 동작, 습관으로 쌓인 움직임을 없애 버렸다. 대신, 단태로 하여금 모든 것을 처음부터 익히도록 강요했다. 외부 속도에 비해 지나치게 빠른 내면의 속도에 적응해야만 했다.

몸이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져 하둔에 투입되는 마력이 급격히 늘어나자, 다른 사람에게 평범한 하룻밤, 단태에게는 몇 달, 몇 년으로 늘어났다. 하둔에 필요한 마력의 양을 제대로 계산하지 않고 용의 심장에 고인 마력을 쏟아부은 탓이었다.

두려움이 발목을 잡았지만 단태는 그 감정에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독하게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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