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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보예, 학용, 광월, 신균 그리고 단강까지. 그들 뒤에 암계보다는 학관이 어울릴 서생 같은 자가 서 있었고,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가 앉아 있었다.
묘홍은 편안한 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그 사내가 배후의 인물이라고 확신했다. 사내의 어깨에는 어디에선가 본 듯한 새가 앉아 있었다. 붉은 몸, 하얀 날개, 깊은 눈 그리고 은빛의 머리까지 범상치 않은 새였다.
“나, 묘홍이오. 반갑소!”
단번에 기다란 탁자 위로 뛰어오른 묘홍은 종보예 등이 반응할 여유도 주지 않고 그 사내를 향해 달렸다.
이상했다. 아무도 달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비웃음이 그들 입가에 걸려 있었다. 사나운 고양이, ‘맹묘’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묘홍이라고 해도 그 사내에겐 상대도 되지 않다는 확신을 그들은 공유하고 있었다.
종보예 등에게 잠시 눈길을 준 사이, 그 녀석은 사라졌다.
웃음이 들렸다.
그제야 묘홍은 천천히 돌아섰다.
사내는 팔짱을 낀 채 탁자 위에 서 있었다. 그 화려한 새는 부리로 깃털을 헤집고 있었다.
언제 등 뒤로 돌아갔는지 알 길이 없는 묘홍은 침을 삼켰다.
거리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사람이 세상엔 실제로 존재한다.
처음 백율운현을 멀리서 보았을 때, 묘홍은 나약한 여자가 백율가의 실세라는 소문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대면했을 때, 백율운현은 왜 그녀가 백율가를 실질적으로 이끄는지 보여 주었다. 그때의 충격을 묘홍은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회의실 입구에서 혼자 앉아 있는 사내를 봤을 때,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지만 위축되지는 않았다. 백율가라는 배경 때문이었다. 그러나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 선 사내 앞에서 묘홍은 왕우파가 오늘로 문을 닫게 되리라 직감했다.
평범한 외모로도 사내가 풍기는 정체불명의 기운을 완전히 가리진 못했다. 어떻게 이런 인물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을까? 누군가 조직 운영에서 어떤 재능이 중요한지 물었을 때, 묘홍은 사람을 보는 안목이라고 답했었다. 귀인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스스로 우두머리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도 덧붙였었다.
‘이런 날이 오다니…….’
“백중이오.”
사내가 말했다.
“……어디까지 갈 거요?”
묘홍은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그 질문에 사내의 눈빛이 달라졌다. 형태가 기이해서 방에 가져가서 두고두고 보고픈 수석(관상용 돌)을 살피는 느낌이랄까.
“일단, 이 도시를 먹을 생각이오. 모조리 다.”
“하하하하.”
묘홍의 웃음만 회의실을 채웠다. 다른 사람들은 웃지 않았다.
“황당하다고 생각하시오?”
사내는 기분 나쁜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어깨에 앉은 새는 묘홍을 보더니, 마치 금세 파악했다는 듯 다시 깃털 뒤집기에 열중했다.
“그 용기가 부러워서 웃었소. 한때 그런 꿈을 품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소. 그리고 당신도 곧 현실을 알게 될 거요.”
“백율가는 왕우파를 위해 누구도 보내지 않을 것이오.”
“…….”
묘홍은 복부에 주먹이 박혀 호흡이 막힌 사람처럼 잠시 동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은 어떻게 알았을까? 왜 백율가가 마법사와 용병을 보내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까?
“당신 앞에 갈림길이 있소. 선택은 당신 몫이지만. 일중!”
“네, 주군.”
사내 옆에 서 있던 그 서생 같은 사람이 다가왔다.
주군이라는 호칭에 묘홍은 웃음보다는 깊은 떨림을 느꼈다. 주군이라는 단어는…… 이미 사라졌다. 누구나 이야기를 통해 그 호칭을 안다고 해도 실제로 진정한 의미를 담아 그렇게 누군가를 부르는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한데, 일중이라는 남자는 저 사내를 주군이라고 불렀고, 그 호칭은 완벽한 충성을 담고 있었다.
사내가 부러웠다. 누군가로부터 저렇게 불릴 수 있다니.
“친절하게 설명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새의 머리를 가볍게 어루만지며 사내가 떠나자, 일중이 다가왔다.
일중이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 설명도 하기 전에 묘충은 이미 결정을 내렸다. 사내와의 짧은 만남은 범강파, 상도파, 경부파 등의 폭력조직이 왜 하나로 뭉쳤는지 알려 주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저 사내의 눈빛과 목소리…… 아니, 사내의 존재 자체가 피를 끓게 만드는 무언가를 발산하고 있었다.
차분하게 일중의 설명을 들은 묘충은 망설임 없이 합류했다.
종보예, 학용, 광월 등이 다가와 손을 내밀어 악수를 나누었다. 마치 원래 하나의 조직의 구성원이었던 것처럼 스스럼없는 태도가 신기하면서도 자연스러웠다. 묘홍이 보기에, 이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 사내에게 느낀 무언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게도 그런 게 느껴질까?’
묘홍은 그 꿈을 접은 이후 처음으로 가슴 벅찬 흥분에 사로잡혔다. 과거에 잃어버린 값진 보물을 찾은 기분이었다. 구제불능의 꼴통, 쓰레기 들이 왜 하나로 뭉칠 수 있는지 그 자신이 직접 경험한 순간, 묘홍은 도시를 먹을 생각이라는 사내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깨달았다.
하나, 11개의 유력 가문은 사내와 이 조직을 가문 두지 않으리라. 발본색원이 그들의 방식이니까.
어쩌면 사내는 도시 전체와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묘홍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내를 지킬 뿐 아니라, 그를 중심으로 모인 조직을 보호하리라 마음먹었다.
사내로서의 결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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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혼빙마 백탁은 악취가 유독 심한 서쪽 지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운하에는 둥둥 구역질나는 것들이 떠 있었고, 오가는 사람들의 몸에서도 냄새가 진동했다. 그러나 의견을 모아서 내린 결정을 번복하기는 더더욱 싫었다.
수정구가 떨렸다.
손으로 살짝 건드리자, 백휘섬선 광오선의 주름진 얼굴이 보였다.
“차망로 입구입니다.”
“기회는 한 번뿐이네.”
“잘 압니다.”
백탁은 연결을 끊었다. 성질 같아서는 당장 유타루체를 떠나고 싶지만, 행여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은 ≪지완수≫가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발목을 잡았다. 그나마 차망로에 기루가 몰려 있어 암방거로보다는 여러모로 조건이 좋다는 점을 위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음마성 율암은 암방거로를 관통하는 운하 선착장 말뚝에 밧줄을 묶은 소마선에 타고 있었다. 광오선으로부터 수정구를 통해 연락을 받은 그도 불편한 심기를 완전히 숨기진 못했다. ≪지완수≫에 대한 욕심은 여전했지만, 스스로 위대한 존재라고 철석같이 믿을 유천주가 이 더러운 지역에 있다는 사령마 만표의 말을 신뢰할 수가 없었다.
“그 늙은이, 속셈이 뭐지?”
율암이 중얼거렸다.
광마 종만추는 서천목로 교차로에 서 있었다. 평범한 아낙네의 모습을 취한 그는 이왕 하기로 했으니 제대로 해 볼 마음을 먹고 있었다. 한 번도 용을 직접 본 적이 없기에 도시로 숨어든 유천주를 대면하고 싶었던 것이다.
서쪽 지역의 입구에 자리 잡은 광오선은 수정구를 이용해 사령마 만표를 불렀다. 만표는 사유위령진이 설치된 별장 지하실에 있었다. 연결이 되자 둥그스름한 수정구 표면에 해골 같은 만표의 얼굴이 보였다.
“지금 어디 있나?”
“……암방거로에서 서천목로 쪽으로 이동 중이네.”
“좋아.”
만표와의 연결을 끊은 광오선은 율암, 종만추에게 그 말을 전했다.
곧 두 명의 천마는 운하든, 골목길이든 눈에 띄는 사람을 놓치지 않았다.
용의 습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광오선의 충고는 제법 도움이 되었다. 광오선은 둘 이상 무리를 짓는 사람들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단언했다. 용은 동족과도 함께 지내는 법이 없다는 게 광오선의 설명이었다.
냉혹한 표정을 가진 사람, 혼자 운하나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 자세가 꼿꼿하거나 어색한 사람 등이 고려 대상이었다. 그러나 율암과 종만추가 중간에서 만날 때까지 찾아낸 사람들은 심사가 뒤틀린 평범한 인간이었다.
광오선은 수정구로 만표를 불러냈다.
“지금은?”
“차망로에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