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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계라 불리는 뒷골목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여기저기서 소문을 들은 철무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깨닫고, 탐사 특유의 감각을 발휘하여 암계 내부의 상황을 알아봤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암계는 이미 통일되어 있었다. 예전과 다를 바 없는 갖가지 폭력조직들이 존재하지만, 실상은 단 하나의 조직으로 뭉친 지 오래였다. 유혈이 낭자한 영역 다툼은 사라졌다. 각종 자릿세와 보호비를 상납하는 장사꾼들이 그 변화를 가장 빨리 감지했다. 동업조합은 합리적이고 일관적인 상납금을 열렬히 환영했다.
서쪽 지역을 이미 장악한 그 조직은 남쪽, 동쪽 그리고 중앙 지역을 포함한 북쪽까지 손을 뻗고 있었다. 상아별로의 중심부에 건물을 구입한 것은 확장 전략의 일환이라고 철무는 판단했다.
가능하면 객관적으로 현실을 직시하려고 애를 쓴 철무는 거대 조직의 등장으로 인한 긍정적인 변화는 바람직하지만, 내부 구조를 들여다볼 수 없어서 답답했다. 어떤 조직이든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목표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누가, 어떻게, 왜 암계를 통일했을까?
거기 투입된 자금은 어디서 왔을까?
혹시, 방단이 개입하여 추명을 뿌리째 뽑으려는 것일까?
그 조직은 ‘백중파’라고 불렸다.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조직의 우두머리 이름이 백중이었던 것이다. 철무는 그 이름이 거슬렸다. 그 우두머리가 죽음의 마법사를 쫓아내고 사라진 강력한 용병일 리는 없지만, 왠지 마음이 꺼림칙했다. 추명을 위해서라도 백중파를, 그 조직을 이끄는 자를 파헤칠 생각이었다.
칠하는 이 급격한 변화에 흔들리고 있었다.
철무를 쫓아내고 추명을 장악한 칠하의 기반은 흑수파, 왕우파를 비롯한 폭력조직이었다. 그들의 지지가 사라지면, 칠하의 권위도 땅바닥에 떨어지고 말 터였다. 암계를 하나로 묶은 백중파는 간접적으로 칠하가 딛고 선 지반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추명은 바람 앞의 등불 신세였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유천주로 인한 불안이 증가했으며, 용마렵이 끝났는데도 천마들이 여전히 도시에 남아 있었고, 황제까지 이곳으로 내려왔다. 한 번의 실수만으로 추락할 수 있는 형국이었다.
“형님!”
건장한 체구를 자랑하는 사내가 다가왔다.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갇힐 뻔한 그를 위해 철무가 진실을 밝힌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호형호제하는 관계가 되었다. 원청남이 왕우파에 들어갔을 때, 철무는 실망했지만 관계를 끊지는 않았다.
“어서 와.”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원청남이 물었다.
철무는 잠시 원청남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입고 있는 옷은 이전보다 못했다. 실속보다 주위 시선에 신경을 쓴다고 철무가 몇 번이나 호통을 쳐도 멋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던 원청남은 달라져 있었다. 들뜬 분위기는 사라지고, 차분하면서도 안정된 느낌이 원청남에게서 흘러나왔다.
“결혼했냐?”
“……네?”
“달라진 것 같아서.”
“그거요? 여자 때문이 아니에요.”
활짝 웃은 원청남은 기다렸다는 듯 변화에 대해 열변을 통했다. 종교에 심취하여 전적으로 교주를 신뢰하는 광신자처럼, 원청남은 똥통 같은 암계를 바꾼 인물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원청남의 표현이 사실이라면, 그는 인간 이상의 존재일 것이다.
“만족하니? 지금 네 삶에 대해서.”
“당연하죠. 형님도 그분을 만나면 생각이 달라질 거예요. 그분은…… 우리를 사람답게 만들었어요. 사실, 저…… 글을 배우고 있습니다.”
원청남은 수줍게 고백했다.
“글을 배워? 네가?”
철무는 깜짝 놀랐다. 기술이라도 배워서 먹고살게 하려고 몇 번이나 기술학원에 집어넣었는데도 답답하다고 뛰쳐나오는 바람에 여태 까막눈이었던 원청남이 글을 배우다니.
“저만 그런 게 아닙니다. 글을 몰랐던 친구들 모두 같이 배우고 있어요. 올해 제 목표는 글을 배워서 ≪무무비경≫을 한 번이라도 제 힘으로 읽는 겁니다.”
“…….”
단순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그래서 1,500년이나 꾸준히 읽히는 ≪무무비경≫ 같은 책을 원청남이 읽고 싶어 한다? 백중이 어떤 인물인지, 백중파의 내부 분위기는 어떤지 묻고 싶었던 철무는 말문이 막혔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백중을, 백중파를 자랑하던 원청남은 수업에 늦으면 안 된다면서 종종걸음으로 가 버렸다.
원청남의 눈빛에, 표정에, 그리고 목소리에 담긴 열망을 철무는 놓치지 않았다. 강요로도, 돈으로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열정이 원청남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 분위기는 가짜일 수가 없다. 백중이 어떤 인물인지 몰라도 원청남의 내면에 불을 붙인 건 분명했다.
“여기 있었군.”
귀에 익은 목소리.
“이곳까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온 거지?”
철무는 몇 명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인 류근묵을 올려다봤다.
류근묵은 철무 옆에 앉았다.
“자네도 신경이 쓰이겠지. 백중파 말이야.”
“……맞아.”
철무는 ‘자네도’라는 말에 주목했다.
“다행이야. 굳이 의뢰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백중파와 얽힌 일이 있나?”
“단단히 얽혔다고 봐야지. 둘째는 그 사람의 제자가 되었고, 셋째는 그자의 돈으로 신 나게 사업을 할 뿐 아니라 그자의 조직에 들어가 버렸으니까.”
“……자세히 말해 봐.”
철무는 조바심을 억누르지 못했다.
여전히 덥지만 가을의 기운이 가끔 바람을 통해 전해지는 광장의 그늘에서 류근묵은 그간의 일을 간략하게 들려주었다. 암계를 통일한 그 백중이라는 사람이 류씨 삼 형제와 잘 알 뿐 아니라, 최근까지 같은 여관에 머물렀다는 이야기를 들은 철무는 잠자코 기다렸다. 류근묵이 왜 백중파를 두려워하는지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자는…… 도무지 바닥이 보이지 않네. 처음 봤을 때는 심성 좋은 시골 청년이라고 생각했지. 한데, 근철이를 가볍게 날려 버릴 만큼 강하더군. 게다가 큼지막한 금괴를 가져와 근명에게 투자금이라면서 줬다네. 내가 그 힘과 부의 근원을 묻자, 직접 알아내라고 했네. 한동안 잠자코 있던 그자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한 달도 되기 전에 자네도 아는 것처럼 쓰레기 같은 자들로 가득했던 암계를 통일했네. 그동안 근철, 근명을 통해 그자를 살폈는데도, 난 아직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네. 오히려 혼란만 커졌다네.”
두려움의 원인은…… 무지였다. 백중이 가진 능력과 부가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어서였다.
철무는 이번에도 기다렸다. 직감적으로 류근묵에게 할 말이 남아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한숨을 내쉰 류근묵은 철무를 응시했다. 그제야 철무는 친구가 족히 십 년은 늙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석현담이라는 이름, 자네는 알겠지?”
“용금탄에 있을 때, 들은 적도 있지. 황명거사 석중명의 아들이 아닌가?”
“그자가 백중 옆에 있네.”
“…….”
“백중을 주군이라고 부르더군. 스스로 일중이라는 이름을 쓰면서 말이야. 장난이 아닐세.”
“……믿기 힘든 이야기군.”
“백중파는 서쪽 지역은 물론 값이 폭락한 유타루체 전역의 부동산을 사들이고 있네. 그 막대한 자금의 출처는 잠시 밀어 둔다고 해도, 석현담 같은 인물이 가세했다면 결코 보통 일이 아니야. 난 아직도 그자가 어디에서 왔는지, 진짜 이름은 무엇인지, 뭘 원하는지 알 수가 없네. 그러니…….”
“나더러 알아내 달라?”
“자넨 탐사잖나.”
“대가는?”
철무는 웃으며 농을 던졌다.
“뭐든 말하게.”
류근묵은 농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진지했고, 철무도 그 점을 느꼈다.
“대가는 필요 없어. 개인적으로 이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추명 때문이야. 백중파가 몸집을 불려 추명을 무너뜨리게 내버려 둘 생각은 없네.”
“……그도 그렇군.”
철무는 일어섰다. 지금까지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느긋하게 움직였다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달려야 하리라. 떠오른 몇 가지 방법의 실현 가능성을 계산하던 그는 류근묵을 내려다봤다.
“자네가 날 도와줘야겠어.”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