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236화 (236/293)

<-- 236 회: 6-28 -->

“내일 저녁, 당가에서 연회가 열려. 황제 폐하도 참석하시는 대연회야. 내가 널 그 연회에 데려갈 거야.”

단태는 ‘누구 맘대로’라고 대답할 뻔했다. 하둔으로 내면의 여유를 확보했음에도 이 맹랑한 여자 때문에 황당했던 것이다.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당주연이 못을 박았다.

“같이 가기로 한 거다, 매조랑.”

“매조랑?”

“몰랐어? 다들 당신을 매조랑이라고 부르던데. 매조랑 백중이라고 말이야.”

“…….”

처음 듣는 말이었다.

“아무튼, 내일 마차 보낼게.”

당주연은 단태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같이 온 여자들과 함께 재잘거리며 광장을 빠져나갔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단태는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부리로 깃털을 잡고 흔드는 란조를 쳐다봤다.

“매조랑이 뭔지 아니?”

고개를 든 란조가 단태를 응시했다.

“사람들이 나를 매조라고 부른다. 매혹적인 새라는 뜻이다. 매조랑은 그런 새를 가진 남자다.”

무심한 태도로 다시 깃털 청소에 돌입한 란조.

단태는 웃음을 터트렸다. 미안한 마음 때문에 웬만하면 란조를 어깨에 올려놓고 돌아다녔다. 그런 모습 때문에 매조랑이라는 별명이 붙은 모양이었다. 란조는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목적이 담긴 발소리가 귀로 파고들었다. 이번엔 누구일까? 향수는…… 뿌리지 않지만, 여자다.

“당신이었군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단태는 상대가 누군지 알았다. 보고서를 뒤집으며 고개를 돌린 그는 장차 시장이 될 가능성이 극히 적은, 설사 시장 자리에 오른다고 해도 오래 버티지 못할 여자를 발견했다.

“누구시죠?”

단태는 가늘게 뜬 눈으로 반우현을 쳐다봤다.

“……재미있군요. 설희의 사촌 오빠라더니, 지금은 백중파의 두령이네요.”

“아, 계승자님이군요.”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뭐야?”

반극권의 불의 장 ‘화강투’로 눈앞의 사내를 묵사발로 만들 뻔한 반우현은 폭발 일보 직전에 가까스로 분노를 억제했다.

“설희, 찾았습니까?”

“모른다고 했잖아요!”

짜증 섞인 대답.

반우현은 돌아온 백율운현 때문에 방단의 수장에서 물러났을 뿐 아니라, 설희를 따라다니며 뒤치다꺼리나 하는 임무를 맡았다. 게다가 원정대마저 무산되고 말았다. 사춘기 이후, 요즘처럼 짜증과 신경질이 불쑥불쑥 튀어나온 적은 없었다.

“그럼, 왜 절 찾아오셨습니까?”

“당신이 이끄는 백중파 때문이지. 왜 땅과 건물을 사들이는 거지? 거기 들어간 돈은 어디서 난 거지?”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 이곳에서 그 어떤 땅도, 건물도 구입한 적이 없습니다.”

“…….”

반우현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치고받던 암계의 조직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땅과 건물을 사들이는데, 심증만 있을 뿐 거대 조직이라는 물증은 존재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보면 개별 조직, 혹은 개인이 정당한 거래를 통해 획득한 부동산이었다. 하지만 조직의 중심이자 우두머리로 알려진 백중에겐 조그만 집 한 채도 없었다.

“그럼, 이만.”

단태는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반우현의 발이 단태의 발목을 노렸다. 옆으로 몸을 비틀며 다리를 든 단태는 반우현을 쏘아보았다.

“뭐 하는 겁니까?”

“죽여 버리겠어.”

맹렬하게 돌진해 들어오는 반우현의 동작은 분노, 흥분보다는 집요함, 끈기 쪽에 가까웠다.

단태는 금세 반우현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소문을 통해서든, 정보원을 통해서든 류근철을 제자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알아낸 반우현은 기습에 대처하는 방식과 구체적인 동작을 통해 상대가 어디 출신인지 확인할 계획이었다. 몇 가지 핵심 단서만 찾아낸다면 이름은 물론 나이까지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닐 터였다.

‘춤을 추고 싶다면, 얼마든지.’

단태는 살짝살짝 피했다. 류근철을 지치게 만들었던 방법이었다.

조금만 더 빠르게, 조금만 더 강하게 공격하면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방어법 덕분에 반우현은 금세 지쳤다. 숨이 턱에 차오른 후에야 그녀는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 깨닫고 위축되었다.

반우현은 허리를 굽힌 채 손을 무릎에 대고 헐떡이면서 단태를 노려봤다. 이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 방법을 바꾸는 수밖에.

“……설희, 찾았어.”

“압니다.”

단태는 뒷짐을 진 자세로 툭 내뱉었다.

“안다고?”

“황제 폐하 옆에 있잖습니까.”

반우현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저놈에게 농락당했다. 다 알면서 시치미를 잡아뗀 것이다.

“설희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기를 바라는 건, 그쪽이나 나나 마찬가집니다. 물론 그쪽과 달리 내겐 그 무엇보다 설희의 안전이 중요하지만, 이유야 어떻든 목적이 같으면 굳이 적이 될 필요는 없지요.”

“진짜 사촌 오빠야?”

“네.”

단태는 ‘사촌은 빼고’라고 속으로 덧붙였다.

“그렇다면 당신과 내가 한 배를 탔다고 봐도 될까?”

반우현의 눈이 반짝거렸다.

“설희 문제만큼은 그렇게 생각해도 됩니다.”

직접 찾아가서 설희를 만날 수는 없어도, 이런 식으로 설희에게 힘을 실어 줄 수는 있다. 이제 설희는 황제의 총애를 받는 여자일 뿐 아니라, 백중이라는 거물을 친척으로 둔 사람으로 격상되었다. 반우현도 노예 신분이라는 약점을 틀어쥐고 설희를 압박할 수는 없으리라.

“좋아.”

서쪽 지역에서 추명을 밀어낼 만큼 영향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까지 넘보는 백중파의 지지를 받는다면, 시장 자리를 노리는 당현추를 상대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될 터였다.

생각을 정리한 반우현은 손을 내밀었다.

단태가 그 손을 맞잡는 순간, 조그만 불꽃이 팍팍 튀었다. 놀라서 손을 놓으려 하는데,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반우현도 깜짝 놀라 아무 말도 못했다.

그때, 무수한 지식의 급류가 접촉을 통해 반우현에게서 단태로 흘러들었다. 암탄주가 반우현에게 남긴 유산이 진정한 상속자에게로 흘러간 것이다. 반사적으로 하둔에 평소보다 많은 마력을 투입한 단태는 빠르게 밀려오는 연금술의 지식을 찬찬히, 꼼꼼하게 살필 수 있었다.

‘연금술의 핵심은…… 언마야. 우라마타에 접속한 상태에서 의지대로 뭐든 이루어지는 언마의 하위 기술 중 하나가 바로 연금술이었어.’

용의 유산과 아레마고가 알려 준 언마가 관련이 있다니!

하둔도 홍수 난 급류처럼 밀려드는 연금술의 지식을 감당할 수 없었다. 마치 이해도 못하고 암기했던 마법서들처럼, 연금술 관련 지식은 단태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지식의 전달이 끝나는 순간, 손이 떨어졌다.

“……뭐예요?”

“그냥 잡고 싶었어요.”

“…….”

반우현은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떨렸다.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능력이 있는 데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을 갖춘 사내였다. 그 때문에 쓸데없이 무거운 짐처럼 생각을 짓누르던 연금술의 기억이 사라져 버렸음을 상상도 못 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든 후에야 깨끗이 용의 유산이 지워졌음을 알아차리겠지만, 그 일과 단태를 연결시키지는 못할 터였다.

“나중에 또 봅시다.”

단태는 금황사 본점이었던 건물로 향했다. 언젠가 반우현이 찾아올 줄 알았지만, 예상보다 빨랐다.

일중이 입구에 서 있었다.

“결과는?”

“전쟁이랍니다.”

비웃음이 밴 대답이었다. 칠하가 전쟁을 선포해도 목숨을 걸고 백중파에 달려들 젊은 전사는 없거나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게 일중의 확신이었다.

“천마들은?”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만, 이틀에 한 번꼴로 모여서 의논하고 있습니다.”

단태는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이곳을 사들임으로써 시청과 그 하부 조직, 11개의 유력 가문, 크고 작은 동업조합 들이 주군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주군을 염탐하기 위해 찾아온 자들이 저기 광장에만 열 명이 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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