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241화 (241/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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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위기사단은 황제가 휘두른 서슬 퍼런 칼날에서 겨우 벗어났다. 황궁 내부의 경호는 근위기사단의 몫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계효상은 두 눈 부릅뜨고 황제를 지켜보았다. 황제가 털끝만큼이라도 다치면 근위기사단은 통째로 교수형에 처해질지도 몰랐다. 단장뿐 아니라, 힘겨운 과정을 거쳐 선발되어 자부심이 충천한 기사들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다.

부단장 해무평이 계효상 옆에 섰다.

“이상 없습니다만.”

“없습니다만?”

“침소에 드신 폐하 곁에 황마사가 있습니다.”

근위기사단이 현 황제 폐하에게 신망을 잃은 데는 이유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근위기사단을 제쳐 놓고 마법사 한 명을 의지하는 모습을 공식적으로 보여 주는 노골적 결정은 근위기사단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황제의 의지와 관련이 있었다.

그때, 서황의 수석기사 휘상대가 두 사람 사이로 다가와 속삭였다.

“폐하께서 이곳으로 오십니다.”

그 말에 단장, 부단장은 감정의 흔적을 지우고 입구로 달려가 오른쪽에 황마사를, 왼쪽에 설희를 대동하고 옥상으로 올라온 황제 앞에 고개를 숙였다.

“역시 수고하고 있었어. 내, 그동안 근위기사단을 홀대한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소. 가져오너라!”

황제의 명령에 환관, 시녀 들이 군침 도는 음식과 술을 가져왔다. 백여 명에 달하는 기사단 전체가 다 먹어도 충분한 양이었다.

황제는 단장, 부단장을 이끌고 옥상 끝으로 걸어갔다. 가을이 다가온 듯 제법 바람이 서늘했다.

“두 사람에게 알려 줄 것이 있소.”

“……말씀하옵소서, 폐하.”

계효상, 해무평은 동시에 말했다.

“공식적인 조사로 밝혀진 바는 아니나, 지난 암살 사건에 개입한 원무황단 배후에 대사마와 승상이 있다는 익명의 첩보가 입수됐소. 그 첩보는 무시할 수 없는,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었소.”

두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침을 삼켰다. 그 소리가 연이어 들렸지만, 거기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계효상은 대사마 좌영윤의 사위였고, 해무평은 승상 동예의 사촌조카였다. 황제의 말은 듣기에 따라 역적으로 몰아 삼족을 멸할 수도 있다는 의미였기에 두 사람은 공포로 얼어붙었다.

“허나, 나는 근위기사단을 신뢰하오. 그동안 근위기사단이 보여 준 경호 수준을 눈으로 직접 봤기 때문이오. 만약 첩보가 사실이라면 오히려 그대들이 나서서 나를 해치치 않았겠소?”

“……송구하옵니다, 폐하.”

두 사람은 즉각 두려움을 드러내며 암살 사건과 관련이 없음을 부복으로 표현했다. 둘 다 엎드려 고개를 숙인 것이다.

“일어나시오. 그대들을 믿으니까.”

“황송하옵니다.”

두 사람은 목이 달아나기 직전, 겨우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황제는 수석 기사, 평 기사, 수습 기사 그리고 종자로 이루어진 근위기사단 전체를 위로한 다음, 아래로 내려갔다. 다른 기사들이 먹고 즐길 때, 단장과 부단장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칼날이 스치듯 지나갔음을, 까닥 잘못했으면 교수대에 매달렸음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황제가 베푼 술과 음식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한 잔, 두 잔 마시자 공포에 질린 마음이 풀어졌다. 어떤 미친놈이 그런 첩보를 황제에게 보냈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단장과 부단장 모두 이 일을 대사마와 승상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달마저 구름에 가려 어두컴컴한 밤, 비명이 울려 퍼졌다.

절반 이상의 기사들이 술에 취해 널브러진 상황에서 여전히 술과 음식을 즐기던 근위기사단은 거짓말처럼 동작을 멈췄다.

서로를 살피는 시선들.

다시 한 번 소름 돋는 비명이 들리는 순간, 기사들은 서로 먼저 일어나려다 술판을 엎었다. 단장 계효상은 잠시 벗어 둔 갑옷을 입지도 않고 아래로 달렸고, 그 뒤를 해무평이 쫓았다.

기사들은 벌 떼처럼 몰려갔다.

황제의 침소 앞에는 환관, 시녀 들이 모여 있었다. 환관 물항이 옆으로 비키면서 말했다.

“……안에서 잠겨 있사옵니다.”

계효상은 환관 따위와 말을 섞을 시간이 없었다. 즉시 몸의 중심을 앞으로 옮기며 두 손을 뻗었다. 발에서 무릎과 허벅지를 휘감으며 올라온 회전력이 몸 내부에 축적한 내공과 결합해 손을 통해 앞으로 튀어나갔다.

펑.

잠금 장치는 박살이 나고, 문이 양쪽으로 열렸다.

근위기사단이 먼저 안으로 뛰어들었다.

사람 형체의 무언가가 불에 타고 있었다. 그 옆에는 피투성이 황마사 석장명이 쓰러져 있었고, 황제는 침대 옆에 기대어 피를 흘리고 있었다.

“폐하!”

계효상은 판단이 빨랐다. 명령을 받은 부단장 해무평은 그나마 정신이 말짱한 기사들과 함께 그 어떤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을 방어진을 구축했다.

어의가 들어와 황제를 살폈다. 금빛 옷을 들추자 깊은 상처가 드러났다. 계효상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했다. 이번엔 교수형을 면할 길이 없다. 아무리 황제가 준 술과 음식이라고 해도 일이 이 지경이 되게 만들다니.

어의가 몇 군데 침을 놓자, 황제는 눈을 떴다. 주위를 두리번거린 황제는 석장명을 쳐다봤다. 어의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늦었사옵니다.”

“살려 내! 당장 살려 내! 살려 내지 않으면 내 그대를 능지처참에…….”

황제는 정신을 잃었다.

다행히 목숨에 문제는 없었다. 환관, 시녀 들이 어의와 함께 황제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자, 계효상은 기사들을 뒤로 물러 암살 사건 현장을 보존했다.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는 증거 때문이었다.

반드시 누가 이런 짓을 벌렸는지 찾아내야 한다.

황제의 염려처럼 장인어른이 관련이 있다면, 결단코 용서치 않으리라. 부단장의 결심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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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식은 유타루체를 강타했다.

운하 위로 놓인 다리에서, 나무 그늘 아래서, 빨래터에서, 식자층이 모여드는 가배점에서, 뱃사공이 모는 배 안에서, 열린 덧창 옆에서, 광장 분수대 근처에서, 시장에서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들 불안을 숨기지 못했다.

황제가 두 번이나 암살당할 뻔했다는 소문은 언제, 어디서 내전이 시작될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내전은 현재의 삶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아끼는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전쟁터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뜻이기도 했다.

시장에서부터 동냥으로 근근이 먹고 사는 거지에까지 모든 사람들이 그 일에 관심을 두었다.

수도 용금탄을 방어하는 군대가 움직였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무려 10만에 달하는 수도방위군은 황제를 보호하기 위해 남하하고 있었다.

국경지대의 형편은 복잡해졌다.

맹진국의 판금우가 역심을 품은 상황에서 황제가 다쳐서 정신을 잃었다는 소식에 국경방위군은 즉시 삼엄한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혼란은 없었다. 황제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대응 전략과 전술을 방위군 지휘부에게 요구했고, 그로 인해 준비를 갖추었던 것이다.

용금탄은 유타루체를, 특히 반명을 비난했다. 황제를 보호하지 않았다는, 노골적인 공격이었다. 칠성시에 속하는 방염루체, 맹파루체, 파림루체 등도 기다렸다는 듯 유타루체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한 사람의 부상으로 유타루체는 정치적으로 고립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수청보는 수도방위군의 남하 목적이 황제 경호가 아니라, 역심을 품은 유타루체의 정복에 있다는 기사를 실어,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시청의 요구로 그 기사가 실린 신문을 회수했지만, 이미 퍼질 대로 퍼진 후였다.

장례식은 조용히 치러졌다.

의식을 되찾은 황제는 국장으로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석장명은 황마사, 황제 개인의 마법사에 불과했다. 마법사나 용병을 경시하는 관료들이 용납할 리가 없었다.

평생 무리를 짓지 않고 혼자 황제 곁을 떠나지 않았던 석장명을 찾아온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일중은…… 아들로 돌아가 상주로서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켰다. 단태는 말없이 그 옆에 있었다. 천마들과 유타루체의 마법사들이 장례식장에 들렀지만,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뒤늦게 암계의 사내들이 그 사실을 알고 찾아와 장례식장을 채웠다. 그들은 백중의 오른팔, 일중이 황명거사 석장명의 아들임을 알고 한동안 말을 못 했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 아래에 있다는 현실을 믿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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