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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식이 알려지자 장례식장은 발 디딜 틈이 없도록 사람들이 몰렸다. 장례식장 바깥까지 사람들이 진을 쳤다.
그로 인해 유타루체의 실권자들이 장례식장으로 찾아왔다.
당현추를 비롯해 백율운현, 명가의 명연철, 유가의 유마찬, 윤가의 윤형관 등 11인위원회에 속한 사람들이 직접 찾아와 단태와 석현담에게 얼굴을 비추었다. 암계의 사내들은 도시의 지배층이 식장으로 찾아오자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마지막 만남에서 남긴 유언에 따라 아버지를 화장하기로 결심한 석현담은 끝까지 옆을 지킨 단태를 쳐다봤다.
“……고맙습니다, 주군.”
단태는 웃기만 했다.
말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말로 내뱉으면 그 감정은…… 훼손된다. 때로는 입을 다무는 게 낫다. 단태는 그 점을 알았기에 어설픈 위로는 삼갔다.
들끓었던 혼란은 서서히 가라앉았지만, 겉으로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시장과 유력 가문의 가주 들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수도방위군의 남하는 골칫거리였다. 황제 보호라는 명백한 목적이 있으니 항의할 수 없다. 그렇다고 시장 직권으로 방군부에 소속된 병사를 움직일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반역이라는 의심을 살 터였다.
닷새가 흘렀지만 이렇다 할 결론은 나지 않았다.
단태는 파란 하늘과 멋들어진 건물을 담은 채 잔잔하게 흐르는 운하를 바라보며 가배 우린 차를 마시고 있었다. 골목처럼 좁은 운하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건물 2층인데, 윤가학관의 교수를 비롯해 스스로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자들이 근래의 사태를 놓고 갑론을박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개의 주장이 치열하게 맞섰다. 탐욕에 눈이 먼 자들이 황제까지 건드렸다는 주장과 방염루체나 맹파루체 같은 외부 세력이 유타루체를 흔들기 위해 황제를 암살하려 했다는 주장이었다.
가배는 쓴맛인데도 묘한 중독성을 가진 차였다. 한 번 맛을 들이니, 하루에 한 잔은 마셔야 마음이 편했다.
계단을 딛고 올라오는 발소리만 듣고도 그가 누구인지 단태는 알아차렸다. 몸을 돌려 급히 걸어오는 묘홍을 쳐다봤다. 왕우파를 이끌던 묘홍은 사람들에게 백중의 왼팔로 알려져 있었다.
“큰일 났습니다.”
“큰일?”
왠지 모를 불안이 가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빨리 피하셔야 합니다. 경비대가 주군을 찾고 있습니다. 11인위원회는 황제 암살 사건의 주모자로…… 주군을 지목했습니다.”
“…….”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것 같았다. 도시를 운영하는 권력자들에겐 희생물이 필요했다. 죄를 뒤집어씌울 만큼 만만하면서도 황제를 건드릴 만큼 세력을 가진 희생물로 백중파가 선택된 것이다.
“서둘러야 합니다!”
묘홍은 창밖을 힐끔거렸다. 검과 석궁을 든 경비대원 수백 명이 어느새 가배점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단태는 가배를 마저 마시며 생각을 정리했다. 왜 이런 결과에 이르렀는지 알 것 같았다. 개인이 사라져버린, 그래서 조직만 남아 있는 이 낯선 세계의 규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꼭대기에 오른 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면 훌륭한 인품과 실력에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개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조직을 대표할 뿐이지, 혼자만의 생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없었고, 내리려 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미소는 허수아비의 표정과 다를 바 없었다.
단태는 그들을 개인으로 착각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조직의 얼굴임을 어렴풋이 느꼈지만, 실감하지는 못했다. 장례식장으로 찾아온 그들의 행동을 받아들였을 뿐, 그들이 속한 조직이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깊이 통찰하지 않았다.
그 대가가 저기 밖에 있는 경비대였다.
찻잔을 내려놓은 단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순순히 잡힐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공정한 수사나 재판은 기대할 수 없다. 11인위원회가 주축이 되었으니, 그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다. 과거 단태가 방단에게 잡혔을 때처럼.
“곧 돌아오겠다.”
“알고 있습니다, 주군.”
“갚아야 할 빚 목록을 작성하고 있어. 신 나게 갚아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묘홍은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단태는 창문의 모서리를 잡고 단숨에 지붕 위로 올라갔다. 석궁에서 발사된 화살이 옆으로 휙휙 지나갔다. 어깨에 박히기 직전의 화살을 손가락으로 잡아낸 그는 왜 백율운현이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알릴 수 없었을까? 아니, 알리지 않았을 것이다.
지붕 위에도 경비대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단태는 달리기 시작했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살이 쏟아지자 풍갑을 펼쳤다. 윙윙 소리를 내며 몸을 휘감는 풍갑은 화살을 가볍게 튕겨 냈다. 질주 속도가 빨라지자 경비대는 단태를 놓치고 말았다.
단태는 종탑으로 올라가 꼭대기에 서서 도시를 내려다봤다.
미로처럼 뻗은 운하와 고풍스러운 건물이 멋진 도시는…… 살아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암계를 하나로 묶은 모든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갈지도 몰랐다. 그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실수를 범했지만, 최선을 다해 따라잡으면 된다.
개인이 사라진 세계.
조직이 득실거리는 세계.
그렇다면 이 세계의 규칙대로 상대하리라.
단태는 비천단령을 소환했다. 곧 미풍이 단태를 어루만졌다. 소환은 계속되었다. 하나, 둘, 셋…… 다섯…… 아홉, 열.
정령들은 소환자의 의지에 따라 사방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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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어패를 보여 준 명국영은 엄격한 몸수색을 받은 후에 황제가 잠이 든 침소로 들어설 수 있었다. 거기엔 륜사가 와 있었다.
미간을 찌푸린 륜사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언제 또다시 암살자가 침입할지 몰라서였다.
명국영은 황제 옆에 섰다.
“이제 그만 일어나시지요, 폐하.”
창가를 살피던 륜사가 돌아봤다. 명국영의 목소리에 질책의 감정이 묻어났던 것이다. 놀랍게도 황제는 몸을 일으켰다.
“역시.”
“격렬한 혼란이 목적이라면, 성취하셨습니다.”
비꼬는 명국영.
“어떻게 알았나?”
황제는 아픈 옆구리를 조심하면서 침대 밖으로 나왔다.
륜사는 할 말을 잃었다.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찬찬히 살펴보면 알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적들도 그럴까?”
황제는 진지했다.
“……적이라고 하셨습니까?”
명국영도 마찬가지였다. 정치적 이유로 이런 일을 계획한 게 아닌가 생각했기에 ‘적’이라는 단어는 낯설었다.
“지금쯤 황궁은 재미있을 거야. 권력을 틀어쥔 자들이 서로를 의심하게 될 테니까.”
“그들이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서로를 불신하도록 만드셨군요.”
“전대의 황마사가 자네를 그토록 칭찬했는데, 그럴 만도 하군.”
황제는 창가로 가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사이, 명국영은 륜사에게 어떤 상황인지 설명했다. 암살 미수 사건은 조작되었다는 말에 륜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석장명은…….”
“스스로 택한 길이었네.”
황제가 말했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형편에서 석장명은 죽어 가는 몸을 바쳐 황제에게 충성을 다했다. 있지도 않은 암살 사건을 꾸미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데, 석장명 스스로 그 역을 맡은 것이다. 석장명이 마법으로 태워 죽인 자는…… 검시소에서 가져온, 이미 죽은 시체였다.
“왜 승상, 대사마, 어사대부, 환관장이 의심하도록 만드셨습니까?”
명국영은 핵심을 찔렀다.
“그들 뒤에 숨어 있는 놈들을 끌어내야 했거든.”
“……그들 배후에 누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륜사의 질문에 황제는 석장명이 남긴 보고서를 두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순식간에 훑어서 그 내용을 파악한 명국영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승상, 대사마 등을 움직였다면 보통 인물은 아닐 것이다.
“정체가 불분명한 자들이야. 부윤성, 비백포, 무청 그리고 저기 바깥에 있을 물항까지. 석장명이 은밀히 조사를 했지만 꼬투리 하나 잡지 못했어. 완벽한 배경, 완벽한 이유를 갖추었지만, 어딘지 수상쩍은 놈들이야. 전대의 황마사는 그들이 맹진국의 판금우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