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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국영, 륜사는 할 말을 잃었다. 맹진국이라면 북방 국경선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골칫덩이가 아닌가? 둘 다 자칫 잘못하면 내전, 어쩌면 그보다 더 큰 규모의 전쟁이 터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 사건으로 동예, 평용구, 패환 그리고 좌영윤은 서로를 믿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을 부추긴 자들까지 의심할 거야. 그들 중 누군가가 황제를 건드렸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러면 배후에 숨어 있던 자들이 직접 움직이겠지. 그림자가 아닌 이상, 직접 움직이면 흔적이 남게 되어 있어. 난 그 흔적을 이용해 놈들을 없애 버릴 생각이고.”
황제의 노림수는 정교했다.
그 술책이 유타루체에 가져온 극심한 혼란을 떠올린 명국영은 뭐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일개 백성의 관점과 제국 전체를 바라보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황제의 관점이 같을 수는 없다. 황제로서는 이번 일을 통해 숨어 있는 적을 찾아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제국은 뿌리부터 흔들릴지도 몰랐다.
명국영은 제국의 기둥이 든든히 서 있어야 나머지 부분도 견고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며칠 동안 직접 발품을 팔아 백중파를 들여다본 그는 유천주가 이끄는 그 조직이 여느 조직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돈과 권력 그리고 규칙이 인간이 소속된 조직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동력이라면, 백중파는…… 그보다 근원적이면서도 설명 불가능한 힘을 가진 조직이었다.
유천주가 어떻게 그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명국영은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용과 인간의 공존 가능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백중파가 그 증거였다.
그런 유천주가 황제의 편에 선다면, 황권은 더욱 공고해지리라.
“황궁에 믿을 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명국영이 물었다.
“몇 명 있지.”
“이곳에도 있습니까?”
“……없다. 자네들 둘을 제외한다면.”
“제가 추천해도 되겠습니까?”
“명 선생이 추천을 한다? 재미있군. 해 봐.”
황제는 명국영이 기본적으로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던 석장명의 보고서 한 부분을 떠올렸다.
“백중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독특한 인물인데, 그 사람이라면 폐하께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백중? 매조랑 말인가?”
륜사가 끼어들었다.
“매조랑이라니?”
“처음 듣나? 어깨에 새를 올려놓고 다녀서 다들 그렇게 부르던데. 매조랑 백중이라고.”
“……혹시 그 새 본 적, 있나?”
“직접 본 적은 없네.”
황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음도 잊어버린 명국영은 손톱을 물고 잘근잘근 씹었다.
경비대의 보고서가 생각났다. 화려하면서도 몸집이 작은 새가 날아와 방해했다는 그 내용을 처음 봤을 때, 반사적으로 단태를 떠올렸었다. 아니라고, 그럴 리 없다고 넘겼지만, 단태가 유천주에게 잡혀가기 전에 함께 있었던 새를 명국영은 잊지 않았다.
하나의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형태를 갖추었다.
호흡이 가빠 왔다.
설마……?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몇 가지 고정관념을 버리면, 그럴 가능성은 획기적으로 늘어난다.
황제는 명국영을 관찰했다. 몰입 상태의 명국영에게 황제는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석장명과 공을 들여 세상을 속이기 위해 만든 계획을 저 서생은 단숨에 간파했다. 별로 힘들지 않은, 자연스러운 생각의 결과라는 투였다. 그런 자가 저토록 깊이 파고드는 문제가 무엇일까?
그때, 명국영의 입이 벌어졌다.
결론에 이른 것이다.
명국영은 미친 사람처럼 웃어댔다. 고개를 흔들며, 때로는 주먹으로 머리를 쥐어박았다.
륜사와 황제는 서로를 쳐다봤다. 이런 모습, 처음 본다는 뜻으로 륜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폐하, 송구하옵니다.”
“해결했는가?”
“그렇사옵니다. 그 때문에 잠시 갔다 와야 할 곳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게.”
“제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사람을 데려오겠습니다. 그 사람이 폐하께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기대하지.”
밖으로 나온 명국영은 숨이 턱에 차오르도록 달렸다. 마차를 잡아탔는데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수탄왕령이 비웃을 만했다. 직전에 만난 사람을 찾아 달라고 소원 하나를 써 버렸으니까.
백중이 바로 단태였다. 명국영은 그렇다고 확신했지만, 아닐 가능성을 배제하지도 않았다. 백중이 단태라는 결론을 지탱하는 근거도 명백하지만, 백중이 유천주임을 증명하는 부분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명국영은 단태라고 생각했다. 그토록 분석과 근거를 중시하는 그였지만, 가끔은 직관에 사로잡힐 때도 있었다.
상아별로 입구에 자리 잡은 백중파의 본부는…… 엉망진창이었다. 경비대원들이 거칠게 내부를 수색했고, 거기 있던 사내들은 밧줄에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명국영에게 백중파 내부 분위기를 알려 준 사람들도 거기 포함되어 있었다.
명국영은 경비대원에게로 다가가서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황제 폐하 암살 사건의 주모자와 그 일당을 체포하는 중입니다.”
퉁명스러운 답이 튀어나왔다.
뒤로 물러난 명국영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주위를 살핀 그는 분수대로 다가가 흐르는 물에 머리를 담갔다. 서늘한 물이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들자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느낌이었다.
분수대 앞에 주저앉은 그는 황제 암살미수 사건에 놀란 유타루체가 백중파를 제물로 삼았음을 깨달았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수도방위군이 내려오는 중이니, 마음은 더욱 급했을 것이다. 백중파는 상당히 괜찮은 먹잇감이었다. 암계를 통일해 버려 짭짤한 수입이 사라진 것도 따지고 보면 백중파 때문이었다. 더 크기 전에 싹을 자른다는 의미에서 도시의 지배층은 백중파를 없애기로 결의했으리라.
어떻게 해야 단태를 도울 수 있을지 생각했지만,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황제는 직접 도시의 내정에 간섭할 수 없다. 칠성시는 자치 권한을 법적으로 보장받고 있었다. 게다가 황제는 암살미수 사건으로 외부 출입이 어렵다고 알려져 있었다. 황제가 멀쩡한 몸으로 나타나면, 석장명의 희생이 물거품이 될 터였다.
‘방법을 찾아야 해.’
명국영은 생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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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현추는 빗소리를 들으며 붓으로 글을 쓰고 있었다. 마음을 담아 글을 쓰노라면 머릿속 고민이 말끔히 가라앉곤 했다. 명확한 결정을 하루에도 몇 번씩 내려야 하는 가주라는 위치 때문에 틈만 나면 서예로 긴장을 풀었다.
인기척이 느껴졌다.
당현추는 옆에 둔 검으로 손을 뻗었다.
“잘 쓰시는군요.”
황궁만큼이나 외부인의 침입이 어렵다고 확신했기에 책상 맞은편에 서 있는 사람을 본 당현추는 눈살을 찌푸렸다. 무능한 경비대 덕분에 저자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하긴, 여기까지 몰래 들어올 실력이라면 경비대로서는 속수무책이리라.
“앉아도 되겠죠?”
단태는 대답도 듣기 전에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상대를 존중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뜻이었다.
“지나치게 느긋한 것 같군.”
도망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이었다.
“가주께서도 알다시피, 느긋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내겐 없으니까요.”
“황제 암살 미수 사건은 유감이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무슨 뜻인가?”
“만약 제가 붙잡힌다면, 전 당가의 사주를 받았다고 자백할 겁니다. 특히 현 가주인 당현추의 사주를 받았다고 명명백백 밝힐 겁니다.”
“사람들이 그 말을 믿을 것 같나?”
“유타루체 사람들은 믿지 않겠죠. 시법원의 법관도, 경비대도, 11인위원회도, 시장도 그 말을 무시하겠지만, 황제 폐하도 그러실까요? 용금탄을 떠나 이곳으로 내려오는 수도방위군도 같은 생각일까요? 유타루체가 무너지기를 바라는 방염루체, 맹파루체 사람들은 또 어떻게 생각할까요?”
“…….”
당현추는 단태를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