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244화 (244/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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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심이 솟구쳤다. 여기서 죽이고 시체만 던져 줘도 된다. 어차피 놈이 죄를 뒤집어쓸 테니까.

“제가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가지 않으면, 친필로 정신을 들여서 적은 편지 수십 통이 용금탄으로, 유타루체를 제외한 칠성시로 전달될 겁니다. 제가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이곳으로 올 거라 생각합니까?”

“……제법이군.”

“당신이 시장 자리를 노린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만약 암살 미수 사건의 배후가 당신이라는 말이 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당가는…… 당신 손으로 문을 닫아야 할 겁니다. 쾅쾅쾅, 못을 박아 두 번 다시 열리지 않게 만들거나, 불을 질러 여기 건물을 모조리 태울지도 모르겠군요.”

단태는 일부러 비열하게 웃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 조직의 생리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조직은 개인을 무시한다. 조직은 오직 조직만을, 혹은 조직을 대표한 개인을 상대한다. 돈과 명예는 조직을 굴러가게 만드는 생명력이었고, 내부 규칙은 조직의 뼈대라고 할 수 있었다. 개인과 달리, 조직은 감정적인 대응방식과 거리가 멀다는 점도 단태는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단태는 조직을 강조했다.

용금탄의 황궁이라는 조직, 수도방위군이라는 조직, 방염루체와 맹파루체라는 조직, 이 도시에 존재하는 다른 가문이라는 조직을 끌어들여 당현추로 하여금 모험을 할 수 없도록 강요한 것이다.

“뭘 원하나?”

가문의 파멸은 당현추에게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가문은 그에게 전부였다.

“누명을 벗겨 주셔야죠.”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네. 11인위원회는 다수결로 결정을 내리니까 말이야.”

“다들 생각을 바꿀 겁니다. 가주께서는 그저 11인위원회를 소집해서 다시 한 번 의논한 후에 결정을 하면 됩니다. 이곳에 오기 전, 몇 명의 가주를 만나서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들로부터 긍정적인 대답을 얻었으니까요.”

“…….”

당현추는 단태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백중파라는 조직을 조사했을 때, 그 유치하고 느슨한 구조에 혀를 찼다. 강력한 지배 구조를 확립하지 않았기에 언제든 무너뜨릴 수 있다고 판단했었다.

그러나 조직은 느슨할지 몰라도, 그 조직을 이끄는 자는 교활하기 짝이 없었다. 조직의 습성을 잘 아는 자였다. 가주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고, 그 점을 공략해 이미 내려진 결론을 뒤집었다.

“내일까지 원상태로 회복이 안 된다면, 제 발로 경비대를 찾아갈 생각입니다. 전 절대 혼자 죽지 않습니다. 아, 그리고 숨겨 둔 부인이 참 아름답더군요. 숨길 만한 미모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당현추가 본부인 모르게 집과 땅을 사 주고 첩으로 삼은 여인을 살짝 언급한 단태는 가주의 서재를 떠났다.

*새로운 유타루체

11인위원회는 공식적으로 백중파가 무혐의라고 선언했다.

경비대에 잡혔던 사람들은 즉시 석방되었고, 수청보는 백중파가 황제 암살미수 사건과 관련이 없음을 상세한 기사로 널리 알렸다. 이 같은 번복은 11인위원회의 권위를 약화시켰는데, 유력 가문의 가주들도 그 점을 알았지만 도리가 없었다. 수도방위군을 다시 용금탄으로 돌려보낸 황제까지 백중파는 아니라고 은근한 압력을 가했던 것이다.

위기를 넘긴 백중파는 공식적으로 출범식을 열었다. 백중파라는 이름이 실체를 가진 것이다. 단태의 결정이었다. 더 이상 기존의 조직들에게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11인위원회는 간접적으로 백중파가 형체를 갖도록 도와준 셈이었다.

백중파는 차근차근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졌던 일중이 돌아옴에 따라 그 변화는 더욱 빨라졌다. 각자의 영역을 맡은 간부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최고회의가 만들어졌고, 적절한 의견을 제시하는 전문가 집단도 자리를 잡았다.

물론 부작용도 생겼다.

조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백중파를 떠나는 이들이 생겼다. 대부분 치러야 할 대가보다 당장 얻을 수 있는 이득에 관심이 많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백중이, 그리고 백중파가 더 많은 돈, 더 큰 권력을 보장해 주리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들은 손쉽게 돈을 벌고, 힘을 행사할 수 있기를 바랐다.

단태는 그들을 붙잡지 않았다. 스스로를 신뢰하지 않는 자들, 대가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 자들을 잡아 봐야 소용이 없음을 잘 알았다. 불순물을 제거하려면 용광로에 들어가야 한다. 힘겨운 과정을 통해 평생 간직할 가치를 내면이라는 세계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기틀을 다진 백중파는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조직은 제각기 다르면서도 비슷한 점이 많았다. 조직을 운영하는 상층부, 규율을 지키는데 관심이 많은 중층부,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을 치는 하층부로 이루어진 내부 구조를 파악하면, 조직을 흔들 방법은 무수히 많아진다. 단태는 기존 조직의 구조를 역전시켜 새로운 조직으로 탈바꿈시켰다.

단태는 견고한 조직 세계를 뒤흔드는 데 재미를 붙였다. 굳게 결속되어 분리가 불가능해 보였던 조직 내부에 균열을 일으켜 둘, 셋으로 나눈 다음 하나씩 먹어 치우는 과정은 이전에 느끼지 못한 쾌감을 선사했다. 그런 식으로 약초를 매매하는 약종방, 장작과 숯을 다루는 운과회, 무기 제작을 맡은 무방, 곡물을 취급하는 곡단, 악기를 제작, 판매하는 악방 등 다양한 동업조합을 백중파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백중파는 동업조합에 유리한 조건을 보장했다.

기본적으로 몸이 튼튼하고 싸움에 능한 사내들이 백중파에는 차고 넘치기 때문에 안전한 상품 운송을 보장할 수 있었고, 다른 동업조합과의 분쟁에서도 백중파의 존재는 유리하게 작용했다. 유력 가문과 달리, 백중파는 지나친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업조합이 갑작스러운 재정 위기에 처하면 백중파가 지원해 주기도 했다.

암계 출신 사내들 중 일부가 동업조합에 취직하는 일이 벌어졌다. 동업조합을 운영하는 상인은 믿을 만한 사람을 직원으로 채용해서 좋았고, 암계의 조직은 안정적인 재원을 마련해서 좋은…… 쌍방이 만족하는 현상이었다. 글을 익히면서 새로운 세상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동업조합으로 진출하자, 어느새 백중파 내에서 암계와 동업조합은 자연스럽게 융합이 되었다.

단태와 일중은 백중파 내에서 차별을 지워 나갔다. 장사꾼 출신이라고 해서 무시하지 않았다. 글을 읽지 못한다고 해서 없는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부족한 부분은 조직 차원에서 채워 주려고 애를 썼다.

그 노력은 백중파의 상층부에 다양한 사람들이 자리 잡는 결과로 이어졌다.

평소 책을 가까이해서 학식이 뛰어나지만 소와 돼지를 잡아 고기를 파는 백정, 곡물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는 상인, 계산에 밝아서 재정 처리에 능한 서생 등 다른 조직이라면 쫓겨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최고회의에 참석했는데, 누구든 실력만 갖추면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증거였다.

이제 군소 동업조합은 백중파의 일원이 되기를 원했다. 백중파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가면 더 많은 이익을 볼 거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단태는 일정한 조건을 내걸었고, 대부분의 동업조합은 그 조건을 무리 없이 받아들였다.

백중파는 그 속도를 늦춰야 할 만큼이나 빠르게 커졌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11인위원회가 아니라, 12인위원회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단태는 몸집 불리기를 멈추고, 내실 다지기에 돌입했다. 그가 보기에 암계의 조직이든, 동업조합이든 여전히 서로에게서 동떨어져, 긴밀하지 않았다.

약종방은 운과회의 업무에 관심이 없었다.

운과회도 약종방의 일 따위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단태는 숯을 이용하면 약초 보관이나 처리에 유리하다는 점을 마법서를 통해 알았기에 그 점을 적극 알렸다. 반응은 미지근했다. 그럼에도 단태의 뜻을 존중하여 특정한 종류의 나무 장작과 다양한 숯을 약초 보관, 처리에 응용한 결과는 놀라웠다. 기존의 보관 기간보다 두 배나 들어났던 것이다. 그건 곧 이익의 증가를 가져왔다.

단태는 그 실험적 시도에 참가한 사람들을 한 단계 승급시키고, 주머니까지 두둑이 채워 주었다. 그들은 일종의 등대였다. 다른 사람들이 가야 할 방향이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익숙한 일, 편한 영역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지식에 관심을 가진 자들이 늘어났다. 그로 인해 각각의 조직 내부에만 머물던 전통적인 지식, 지혜가 벽을 넘어 교환되었고, 그 결과는 눈부실 정도였다.

백중파는…… 각 조직이 은연중 만들고 유지한 지식의 장벽을 무너뜨렸다. 백중파라는 견고한 울타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나의 지식은 하나의 결과만 남기지만, 이리저리 결합되는 네댓 개의 지식은 때에 따라 수십 가지나 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지식이 많아질수록, 기대할 수 있는 결과의 다양성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봇물이 터졌다.

유타루체에 존재하는 동업조합의 절반 이상이 백중파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여전히 규모 면에서, 매출과 이익 면에서 11개의 유력 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었지만, 이미 의미심장한 변화가 진행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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