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250화 (250/293)

<-- 250 회: 6-42 -->

“현재 백중파는 암계와 상계를 기둥으로 삼은 거대한 집이야. 기둥이 두 개라서 조금 불안한 감이 있는데, 유력 가문들은 그 점을 알고 무너지라고 이리저리 흔드는 거지. 기둥을 한두 개 추가해야할 것 같다.”

“…….”

접근 방식 자체가 달랐다. 사람들은 더 자세한 내용을 기다렸다.

“편하게 생각해 봐. 유타루체에 어떤 세계가 있지? 백중파가 아직 손을 뻗지 않은,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분야나 영역 말이야.”

단태는 사람들을 부드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말이 안 되는 의견도 받아줄 것 같은 넉넉한 태도였다.

“음식점입니다. 물의 도시에는 형편없는 음식점이 너무 많습니다.”

종보예였다.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 단태도 웃었다.

“객점입니다.”

묘홍이 종보예의 농담을 받았고, 다시 웃음이 회의실을 채웠다.

“방군부입니다.”

백정 출신 간부 등조의 말에 회의실은 조용해졌다. 도시 방어군이 소속된 방군부로 손을 뻗는다는 건, 곧 도시의 통치권을 목적으로 삼는다는 뜻이었다. 군사력을 소유한다면 백중파는 더 이상 평범한 조직이 아닐 터였다.

단태는 등조의 의견을 마음에 새겼다. 등조는 백중파는 기존의 조직과 달리, 하나의 도시로서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경비대도 먹음직합니다.”

광월이었다.

시법원, 11인위원회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결정적인 통찰…… 모두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의견은 아직 없었다.

단태는 일중을 쳐다봤다. 부담스러울지도 모르지만, 높아질수록 기대치도 그만큼 높을 수밖에 없다.

“종교계입니다.”

“…….”

두 번째 침묵에 빠져든 사람들.

“유타루체에는 장당전을 비롯해 원당, 적률당, 모굴당, 용신전 등 여러 종교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11개의 유력 가문도 종교계에는 손을 뻗지 못합니다. 제 생각에 종교계야말로 백중파가 새롭게 진출해야 할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그 설명에 단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단태가 생각한 방법은 서쪽 방책 너머로의 진출이었다. 무룡은 단태가 부르지 않으면 그 어떤 배도 습격하지 않을 터였다. 그러니 호수를 선점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몇 가지 의견을 집중적으로 검토한 후, 회의는 끝났다.

일중이 단태에게 다가왔다.

“주군,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약속이 있었나?”

“제 마음대로 잡았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일단 만나 보신 후에 자세한 설명을 올리겠습니다.”

“그러지.”

일중은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의 결정이니, 단태는 일단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회의실에서 멀지 않은 방에 한 사람이 있었다. 단태를 보자마자 일어선 그의 복장은 특이했다. 단태는 대번에 그가 장당전 신관임을 알아차렸다. 장당전의 신관이 왜 이곳으로 찾아왔을까?

“백중입니다.”

“……기양명입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단태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찾아오신 이유를 저는 아직 모릅니다.”

“……혹시 장당전에 대해서 아시는 게 있으신지요?”

신관은 일중처럼 경망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차분해서 같이 있기만 해도 흥분이 가라앉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몇 번 예식에 참석한 적은 있습니다.”

“그렇다면 장제에 대해서 들은 적도 있으시겠네요.”

“네.”

“장제가 때로는 태양의 모습으로, 때로는 달의 형태로, 때로는 자연현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도 아십니까?”

“……그렇습니다만.”

단태는 왠지 불안했다. 신관의 입을 막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장제는 인간으로도 나타나 세상을 이롭게 합니다. 장당전의 경전은 그 모든 내용을 인정하고 있지요. 저는…… 백중님이 장제의 현신이라고 확신합니다.”

“…….”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저 혼자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규칙적으로 시간을 내어 장당전으로 찾아오는 신도들 상당수가 저와 같은 생각을 합니다. 저 또한 신관이 되려고 윤가학관을 거쳐 전문적인 공부를 한 사람입니다. 역사와 철학, 사회의 구조에 대해 무지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백중파는…… 존재 자체가 기적입니다. 유타루체에 이런 조직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백중파는 제국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는 조직입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한데, 백중님은 기적적으로 백중파를 우뚝 세우셨습니다. 전 백중파야말로 백중님이 장제의 현실이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단태는 고개를 돌려 일중을 쳐다봤다. 백중파가 진출해야 할 새로운 영역이 바로 종교계라더니, 이런 일까지 있었을 줄이야.

일중이 가세했다.

“기양명 신관님의 말씀에 따르면, 유타루체에서 장당전에 출입하는 신도의 수는 무려 13만 명입니다. 그 중 열렬하게 믿음을 유지하는 사람을 절반이라고 쳐도, 무려 7만 명에 달합니다. 만약 주군께서 그들을 받아들이신다면, 줄잡아 5만 명은 백중파로 들어올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양명이 말을 보탰다.

단태는 두 사람이 하는 말을 듣기만 할 뿐 반응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소화하느라 바빴던 것이다. 장제의 현신……이라니? 그건 곧 신이라는 뜻이다. 차원이 다른 존재로 격상되는 것이다.

백중파가 법과 규칙이라는 무기로 달려드는 기득권 세력에게서 살아남으려면 구성원 수가 10만이 넘어야 한다는 명국영의 충고가 생각났다. 일중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백중파는 단숨에 6만 명에 육박하는 거대 조직으로 커질 테고, 유력 가문들도 더 이상 백중파를 적으로만 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맹목적인 믿음은 그만큼 모든 것을 뒤흔들 파괴력을 가졌던 것이다.

백중파를 위한다면 ‘신격화’라는 유혹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자신을 위해서는 일중의 제안을 냉정하게 걷어차야 한다.

기양명을 돌려보낸 일중이 단태 앞으로 다가와 앉았다.

“주군, 사실 저는 그다음 단계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 단계?”

눈썹을 찡그린 단태가 물었다.

“주군은 백중파를 단순한 조직이 아니라, 새로운 도시로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주군의 책사로서 백중파를 새로운 종교이자 새로운 국가, 어쩌면 모든 것을 포함하는 새로운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

충격으로 차분한 생각 자체가 힘들었다. 급진적이어서 일중과 어울리지 않는 생각 같았다. 종교를 넘어서 국가까지? 뭘 잘못 먹었나 싶기도 했다.

말이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백중파는 존재 자체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으니까.

“오늘 마법사 일곱 명이 익명이라는 조건을 걸고 백중파에 들어왔습니다. 그중 세 명이 마둔수탑 출신입니다.”

“……그래?”

놀랄 만한 일이었다. 마법사는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하다. 그런 자들이 건달과 장사꾼이 주축이 된 백중파로 찾아오다니.

“겉으로 보이는 구성원의 수는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능력을 갖춘 이들은 소문도 없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깨어 있는 자들은 백중파가 지닌 진짜 힘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어제는 용병단을 하나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용병들이 찾아왔습니다. 기양명 신관뿐 아니라 원당, 적률당, 모굴당의 신관과 신도 들도 꾸준히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들의 열망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들은 백중파가…… 더욱 커지기를, 확장되기를 원합니다. 주군은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단태는 자신이 백중파를 시작했지만, 어느새 백중파가 스스로 살아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봄에 심은 씨앗이 여름이 되어 초록으로 무성해지듯, 백중파는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가고 있었다.

“난 장제의 현신이 아니야.”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신은 아닐지 몰라도, 평범한 인간은 더더욱 아닙니다. 백중파를 처음부터 지켜본 사람으로서 저는 압니다. 주군이 없다면, 백중파는 와르르 무너질 겁니다. 전 거대한 나무의 가지에 불과하지만, 주군은 뿌리입니다. 주군은 사람들의 내면에 설명할 수 없는 힘을 공급하는 백중파의 뿌리입니다. 사람들에게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는 그 무형의 기운이야말로 주군은 평범한 인간의 위치를 벗어나, 신이라 불리는 자리로 올라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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