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3 회: 7-2 -->
존경 받는 신관 강총이 아흐레에 한 번 행해지는 의례인 ‘구례’에서 백중파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장당전 내부의 권력 다툼, 고위 신관들의 부패에 실망한 그는 스스로 백중파의 일원이라 선언했으며, 더 나아가 백중이 바로 장제의 현신이라고 피를 토하듯 외쳤다.
강총의 이야기는 도시 전체로 퍼져나갔다.
장당전 내부의 규율을 담당하는 운부의 신관들이 강총을 잡아서 천명정 지하에 가두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현실에 물들기에 아직 젊은 신관들이 예복을 찢으며 거세게 저항했다.
유타루체에서 가장 큰 장당전인 천명전을 이끄는 대신관 영종추가 파문이라는 무기를 꺼내들었으나 피 끓는 신관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신관들은 오히려 영종추가 경전을 무시하고 있으며, 경전의 교리를 어긴 자들을 옹호한다고 받아쳤다.
제2, 제3의 강총이 등장해 영종추, 현반우 등 고위 신관을 당혹스럽게 했다. 권력의 중심과 거리가 멀지만, 신관은 물론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신관들이 강총의 뒤를 이어 신전을 떠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을 신문으로, 일중의 보고로 파악한 단태는 방에 틀어막혔다. 면담을 요청하며 찾아온 신관들은 일중이 맡았다.
두 개의 심장은 간격을 두고 꿈틀거렸다. 하나의 심장이 피를 몸 끝까지 힘차게 보내는 동안, 다른 심장은 피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겉은 평범한 인간의 몸과 다를 바 없지만, 내부는 빠르게 달라지고 있음을 단태는 직감했다.
최대한 하둔에 마력을 투입하여 내면의 시간을 늘리지 않았다면, 쏟아지는 자극이 불러일으킨 파괴적 충동에 휩싸였을지도 몰랐다.
단태는 모든 것을 부수고 싶었다. 완벽한 파괴 위에, 새롭게 창조하고 싶었다. 짓밟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가라앉히는데, 내면의 시간으로 족히 한 달은 걸렸다.
머릿속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감정, 기억, 경험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었다. 더 중요한 변화는… 그 과정이 전혀 어렵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호흡처럼 쉬웠다. 그건 마치…… 그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느낌이었다.
연결된 사람들의 수도 빠르게 늘고 있었다. 단 며칠만에 1만 명이 회복되었고,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었다.
단태는 창가로 걸어갔다.
백중파의 본부 건물을 주시하다 단태를 본 사람들이 환호했다. 발 디딜 틈이 없도록 사람들로 가득 찬 광장 전역으로 그 환호가 퍼져나갔다.
단태는 뒤로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창문을 활짝 열고 그들에게 손을 흔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들은 단 한 사람을 위해, 그 한 사람을 보기 위해 이 광장에 모였다.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게 뭐가 나쁘단 말인가? 그러나 단태는 길고 깊은 내면의 시간 속에서 그 충동을 이겨냈다. 아직은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않았지만, 그 신념은 그리 견고하지 않았다.
일중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들, 주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상하지 않아?”
“…무엇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갑작스런 변화.”
단태는 진실을 들려줄 수 없었다. 두 개의 심장이 펄떡펄떡 뛰고 있음을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신관들의 반응이 예상 외로 강렬했지만, 이미 이런 수순으로 일이 진행되리라는 점은 알고 있었습니다.”
차분한 일중의 목소리이 단태에겐 큰 위안이었다. 맞다. 이미 의논한 적이 있는 일이다.
그래, 심장이 하나든… 둘이든… 중요하지 않다. 백중파, 스스로 서기 위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려는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중은 가만히 기다렸다.
단태는 말없이 방을 나와 건물 입구로 내려갔다. 심호흡을 한 다음, 열린 문 밖으로 나선 그를 수천 명이 환호성으로 맞이했다. 열기가 광기와 뒤섞여 광장을 그득 채웠다.
그들이 외쳤다.
“백중! 백중! 백중!”
군중이 그 이름을 외칠수록 단태는 냉정을 찾을 수 있었다. 백중은… 그가 임의로 선택할 이름일 뿐, 그 자신이 아니었다.
‘나는 단태니까.’
단태가 광장 중앙의 분수대로 향하도록 군중은 좌우로 갈라지며 길이 열렸다. 태어난지 몇 달 밖에 안 된 아이를 든 여인이 소리쳤다.
“장제의 현신이시여, 이 아이에게 복을 빌어주세요!”
단태는 멈칫거렸으나 그 여인의 간절한 눈빛을 이길 수 없었다.
“…아이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겁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여인은 너무나 기뻐 혼절했고, 옆에 서 있던 남편이 겨우 여인과 아기가 돌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막았다.
수천 명의 시선이 단태 한 사람에게로 모였다.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감정이 단태 내부에 쌓이고 또 쌓였다.
단태는 사람들의 눈을 통하여 고풍스런 분수대로 걸어가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정면으로 다가오는 단태, 옆으로 지나가는 단태, 중앙으로 멀어져가는 단태, 덩치 큰 사내 때문에 까치발로 겨우 볼 수 있는 단태, 계속 보고 싶어서 분수대 쪽으로 비집고 쫓아가면서 보는 단태…….
단태는 엄마에게 인정받기보다는 더 높은 기준을 강요당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엄마는 아들에게서 아버지를 원했고, 은연중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함을 표정과 말투, 몸짓으로 드러냈다. 아들은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 그리고 엄마에게 인정받기 위해 또래와는 다른 사고방식, 포기를 모르는 끈적진 태도, 용기와 결단력을 발전시켰다.
그럼에도 아들은… 사랑에, 인정에 목말라 있었다.
이 순간, 단태는 내면 깊숙한 곳이 촉촉해짐을 느꼈다. 아니, 찰랑찰랑 사람들이 보내오는 강렬한 확신으로 가득 찼다. 이토록 확고한, 맹목에 가까운 믿음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깊고 넓은 사람들의 마음이 단태를 황홀하게 만들고 있었다.
세 마리 말 청동상을 뒤로 한 채 사람들을 쳐다본 단태는 목이 메었다. 군중의 마음에서 흘러나온 뜨거운 감정이 보이지 않는 끈을 통해 그의 가슴을 그득 채웠고, 흘러넘친 감정은 또 다시 군중에게로 퍼져나갔다.
말은 필요치 않았다.
시선의 마주침만으로도 충분했다.
사람들도 광장 중앙에 선 사람으로부터 무언가 뜨겁고, 말도 설명할 수 없으나 왠지 모르게 그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만한 확신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광장은 조용해졌다.
아이들조차 침묵에 빠졌다.
처벌을 수반하는 명령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꿈조차 꿀 수 없는 만족스런 침묵이 군중을 에워싸고 있었다. 소리 없는 대규모 연주가 진행 중이었다.
한 사람은 곧 하나의 악기였고, 감정은 그 악기가 만들어내는 소리였다. 수천 개의 악기가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고 있었다. 중앙에 선 단태는 지휘자였다. 그 어떤 악기도, 그 어떤 음도 놓치지 않고 조율하고, 잘 다루었으며, 전체가 하나가 되도록 조화를 이루게 했다.
처음엔 ‘동질감’이라는 곡이 연주되었다.
수천 명이 단태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나가 될 수 있으며, 이미 하나가 되었다는 그 깊고 풍요로운 감정은 완벽한 화음을 이루었다. 세상으로 나옴으로써 태아 시절의 완벽한 교감을 망각한 사람들 중 일부가 그 편안하고 따뜻한 순간을 일부나마 떠올릴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연주의 폭이 넓어졌다.
다음 곡은 ‘희열’이었다.
군중은 현실을 잊었다. 외면한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한 결과였다. 수천 명은 동시다발적으로 그들이 왜 기쁜지 쏟아냈고, 단태는 중앙에서 그들의 감정을 이리 당기고, 저리 밀어서 하나의 곡으로 완성해냈다. 처음엔 굵직한,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이유가 있는 감정이었다.
딸이 쌍둥이 아들을 낳았다거나, 장사로 한 몫 제대로 벌었다거나, 어려운 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에 찾아온 감정이었다. 그러나 점차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기쁨이 사람들의 마음을 돌아다녔다. 오늘 아침 눈을 뜰 수 있어서, 걸을 수 있어서, 지금 여기 광장에 있다는 것으로 기뻐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그 은근하면서도 깊이 있는 감정이 군중 전체로 퍼져나갔다.
곧 사람들은 존재 자체를 긍정했다. 그저 ‘있다’는 이유로 기뻐했고, 단태는 그 감정에 깊이를 더했다.
세 번째 곡은 ‘성장’이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 중 일부는 백중파 소속으로 이미 성장을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한계를 뚫고 나온 경험을 감정으로 표현했다. 답답함, 단호한 결심, 목숨을 건 노력, 희미한 징조 그리고 혁명적인 변화에 이르는 감정은 그 자체로 완벽한 연주였다. 단태는 그 감정을 키워 군중 전체로 퍼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