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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태어난 대로, 삶의 조건에 수긍하며 더 이상의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자들은 깜짝 놀라며 그 감정을 받아들였다. 자신도 할 수 있을까 하는 부정적 감정도 일어났지만, 단태는 그 감정이 전체를 흔들지 못하도록 적절히 분산시켰다. 군중에는 성장이라는 감정의 연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그러나 한 명도 스스로 연결을 끊고 광장을 벗어나지 않았다. 연결 자체가 주는 만족감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연결은…… 그들이 혼자라는 무의식적인 고독을 말끔히 지워버리는 특효약이었던 것이다.
단태는 생각했다. 설마 이런 연결이…… 우라마타일까? 사람 뿐 아니라 세상 전체가 연결된 하나의 그물망이 우라타마일까?
어둠이 내린 후에야 그 기이한 연주는 끝이 났다. 다들 지쳐서 주저앉았다. 광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차린 일중이 미리 준비해놓은 음식물이 도착하자 사람들은 기분 좋게 소리 질렀다.
사람들은 배를 채우며 광장의 기적을 나누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수다를 떨었다. 이미 오랫동안 만난 사람들 같은 묘한 친근감이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단태는 일중의 부축을 받으며 본부 건물로 돌아왔다. 그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홀로 맡아서 황홀한 음악으로 만드는 일은 두 개의 심장을 가진 탁월한 신체로도 버거웠던 것이다.
“……난 한 마디도 못 했다.”
“그 어떤 연설도 주군의…… 이야기를 능가할 수 없을 겁니다.”
일중은 망설인 끝에 그 기이한 연주를 ‘이야기’로 표현했다.
“다행이군.”
일중은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인 후, 문을 닫고 방을 나섰다.
홀로 남은 단태는 그 자신도 믿기지 않는 경험을 떠올렸다.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일중이 이야기라고 말한, 단태 스스로는 대규모 감정의 교환이라고 생각하는 현상은 즉흥적이었다. 단태도, 광장을 채운 사람들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없었다.
기적은…… 그냥 일어났다.
재현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기적은…… 일어나버렸다.
이제 어떻게 될까?
그 경험은 광장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도시 전역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기적을 중시하는 장당전 신도 상당수가 기적을 경험하기 위해 백중파로 넘어올 테고, 그 수는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대이동은 기정사실이리라.
단태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두려움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래, 두 개의 심장이 뛰고 있다. 그게 뭐 어떤가? 스스로 인간이라 확신할 뿐 아니라, 용족 특유의 파괴적 본능을 억누르면 그만이 아닌가.
오늘 광장의 기적으로 수천 명의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존재로 태어났다. 평생 한 번 겪기 힘든 경험은 그들의 삶을 뒤바꿔 놓을 것이다.
“그래, 그거면 돼.”
단태는 만족했다. 점점 용족에 가까워질수록 강렬해지는 충동은 자신이 담당할 몫이다. 각 사람을, 여러 조직을 바꾸고, 성장시키는 백중파는 존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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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타루체를 떠난지 사흘만에 도착한 망반의 입구 옆 고목에는 시체가 매달려 있었다. 죽음의 마을답다고 생각한 암탄주는 길 양쪽에 들어선 낡은 집의 창문으로, 문틈으로 느껴지는 시선을 무시하며 천천히 걸었다. 당장 수리하지 않으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집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거기에 익숙해졌는지 누구 하나 염려하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암탄주는 하룻밤 묵을 여관으로 들어섰다. 그를 향한 시선이 제법 따가웠다. 주인에게 열쇠를 받아 올라간 방은 좁고 더러웠다. 짐을 침대에 내려놓고 복도로 나오는 순간, 단도가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암탄주는 손을 뻗어 그 단도를 쥔 손목을 부러뜨렸고, 비명이 터져나오는 입을 주먹으로 쳐서 우수수 치아가 떨어지게 만들었으며, 목을 꺾어 더 이상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도와주었다.
털썩 쓰러진 시체를 내버려둔 그는 아래로 내려와 콩과 돼지기름이 뒤엉킨 기괴한 음식을 목구멍으로 밀어넣었다. 먹어야 움직일 수 있는 몸 때문이었다. 맛은 중요치 않았다.
세 사람이 다가왔다.
대화는 필요 없었다.
검이 날아왔다. 도끼가 탁자를 반으로 쪼갰다. 요철이 달린 철제 몽둥이가 뒤통수를 부술 듯 내리찍혔다.
암탄주는 손목, 입, 목 순서대로 죽였다.
셋 다.
그러고는 남은 음식을 먹어치웠다.
“이 정도면 되겠지.”
여관 주인에게 금 조각을 건넨 암탄주는 방으로 올라갔다. 이곳 망반에서 살인은 범죄가 아니었다. 법이 없으면 범죄도 존재할 수 없다. 사혈지 입구에 자리잡은 망반은 제국의 황제조차 버린 마을이었다. 황제가 명령해도 제정신이라면 이곳으로 부임할 관리가 없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인생의 바닥으로 추락한 범죄자, 깡패 따위가 망단으로 몰려들었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마을.
수단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이루는 마을.
암탄주는 서둘러 이곳으로 오느라 쌓인 피곤을 풀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았다. 창과 문에 설치한 마법진이 반응하면 언제라도 깰 테지만, 그는 쉽게 피로를 느끼고 휴식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몸이 싫었다. 점점 인간을 닮아가는 변화는 되돌릴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끔찍했다.
다음날 새벽, 암탄주는 여관을 빠져나와 마을 북쪽으로 향했다. 짙은 안개 속에는 서늘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길 좌우에 쌓인 돌담 너머는 황무지였다. 아주 오래 전에는 감자나 옥수수 따위를 키웠는데 사혈지로 들어선 후,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거친 땅이 되고 말았다.
문이 나왔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수백 개의 얼굴들이 조각된 그 문 너머는… 짙은 어둠이 자리잡고 있었고, 문 양옆은 높이 20절(대략 20미터)에 달하는 장벽이 시야가 닿는 곳까지 뻗어 있었다. 쌓아올린 화강암에다 정교하게 새겨 넣은 방어 마법진이 없었다면 사혈지 안의 괴물들이 밖으로 튀어나와 망단은 물론 인근 지역을 유린하고 말았을 터였다.
사혈지가 처음 생겼을 때는 수만 명의 병사들이 장벽을 지켰다. 망단도 그 군대의 주둔지 중 하나였다. 그러나 군대를 유지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자, 곧 사혈지에 대한 관심은 시들었다.
“가볼까?”
암탄주는 크고 무거운 문에 양손을 대고 마력을 쏟아냈다. 곧 웅웅거리며 떨던 문이 서서히 열렸다.
동쪽 하늘이 푸르스름하게 변한 이쪽과 달리 사혈지는 달빛조차 없는 밤이었다. 마법으로 빛을 밝힌 그는 숨을 내쉰 다음, 어둠 너머로 들어섰다.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완전한 용이었을 때는 거리낌 없이 들어갈 수 있었건만.
갑자기 공기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옆으로 비켜서면서 암탄주는 마력을 늘려 빛을 사방으로 뿌렸다. 수백 구의 시체가 암탄주를 에워싸고 있었다. 죽음의 마법에 당해서 만들어진 망인이었다.
“한 번 해보자는 건가?”
암탄주는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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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구름이 하늘을 덮어 달빛조차 없는 깊은 밤, 흑야궁으로 숨어들었던 시체들이 살금살금 기어나왔다. 죽음의 마법사에 의해 목숨을 잃은 자들, 그래서 죽어서도 평안을 얻지 못하고 되살아나 영원히 어둠을 헤맬 운명을 가진 자들은 떼를 지어 사냥하는 늑대처럼 움직였다.
처음엔 가장 약하고, 가장 손쉬운 사냥감을 택했다. 바로 아직은 버틸만해서 골목길 곳곳에서 새우잠을 자는 거지들이었다.
악취에 익숙한 거지의 코를 자극하는 냄새에 몸을 일으킨 늙은 거지는 파랗고 깊은 눈을 발견했지만,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목이 꺾였다. 사냥꾼들은 식어 가는 사냥감에게 달려들어 게걸스럽게 식사를 했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먹어치우지는 않았다. 맛있는 부위만 골라냈다. 뜨거운 피, 당장이라도 뛸 듯한 심장 그리고 두개골 안쪽에 자리잡은 노르스름한 뇌가 그들이 좋아하는 부분이었다.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진정한 사냥꾼임을 잘 아는 그들은 늙은 거지를 데리고 지하 미로로 내려갔다. 거지 하나 없어졌다고 소란을 피울 사람은 유타루체에 없다.
사냥꾼들은 사라져도 눈에 띄지 않을 사람들을 하나씩 습격하여 지하로 끌고 갔다. 그 때문에 물의 도시는 아직 어둠과 죽음을 몰고 다니는 빼빼 마른 사냥꾼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