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265화 (265/293)

<-- 265 회: 7-14 -->

“오늘 식사 당번은 형님이에요.”

유무영이 말했다.

“…뭐라구?”

“어제는 제가 했고, 그 전날에는 종태가 했으니까요.”

낮과 밤의 변화를 알 수 없는 이 깊은 지하 공간에서 하루를 결정하는 것은 그들이 ‘지옥’이라 부르는 방이었다.

염괴는 하루에 한 번 불꽃을 공중으로 터트린다.

청명정목은 아침, 저녁으로 노래를 부른다.

천강백우는 하루에 세 번 얼음 알갱이로 가득 찬 안개를 사방으로 퍼트린다.

그들이 뒤치다꺼리를 하는 지옥의 생물을 통해 하루가 지나갔다는 사실을,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

백율청현은 무시무시한 눈으로 두 사람을 노려본 후, 돌 항아리로 가서 금룡어 한 마리를 잡았다. 날카로운 지느러미에 손등에 긴 상처가 생겼지만 애써 못 본 척했다. 여기서 죽는 소리 해봐야 득 될 건 없다. 단태라는 녀석이 주고 간 무딘 단검으로 금룡어의 내장을 꺼내어 손질한 후에 꼬챙이에 끼워 타오르는 모닥불 위에 걸었다.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졸음이 몰려왔다. 꾸벅꾸벅 조는데, 소리 때문에 깼다.

“형님, 다 익었어요.”

유무영은 세 토막 중 머리 부분을 내밀었다. 가운데는 명종태가, 꼬리는 유무영이 먹은 것이다. 그래도 꼬리 쪽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백율청현은 아가미 근처의 살을 뜯어 입에 넣었다. 잘 익은 닭고기처럼 쫄깃쫄깃했다.

“종태는?”

“피곤하다면서 자러 갔어요.”

명종태 옆에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몸이 약해 어릴 때부터 진귀한 약초를 입에 달고 살았던 유무영은 상황에 맞게 처신을 잘 하는 유가의 소가주였다.

백율청현은 말없이 그냥 먹기만 했다.

가만히 있던 유무영이 입을 열었다.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큰누님처럼 우리도 나갈 수 있어.”

백율청현은 단정했다. 그래야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의 시간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에 갇혀 있다가 밖으로 나간 백율운현은 그에게, 그들에게 희망이었다.

“종태는 11인위원회가 나서도 우리를 구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백율운현 님이 진짜 무사히 유타루체로 돌아갔는지 알 수가 없는 거라고…….”

“뭐?”

“그 말에도 일리가 있잖아요.”

유무영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옛날 같았으면 당장 버럭 소리를 지르며 먹던 것을 던져버렸을 텐데, 백율청현은 백율운현이 도시로 올라간 게 아니라 유천주의 간식거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명종태, 유무영의 생각에 화를 내면서도 손에 든 금룡어의 대가리 부분을 놓칠 수 없었다. 먹어야 했다. 그래야 하루를 버티고,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우린, 나갈 수 있어. 반드시. 그렇게 믿어야 해.”

백율청현은 다짐하듯 말했다.

그때, 단단한 석벽으로만 보였던 곳이 수직, 수평으로 갈라지며 문이 생겼고, 그 문이 열렸다.

화들짝 놀란 백율청현은 아끼던 금룡어를 떨어뜨리며 벌떡 일어섰다. 유무영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 녀석이었다.

“잘 있었지?”

“…….”

“어, 그렇게 놀랐어?”

유들유들하게 웃은 단태는 왼손으로 잡고 있던 구한철을 백율청현에게, 오른손의 도충기를 유무영에게 던졌다. 복도에 눕혔던 당현추를 업고 석실로 들어서자 문은 닫혔고, 이음새까지 사라져버렸다. 마법으로 열고 닫는 문이었다.

단태는 당현추를 모닥불 옆에 내려놓았다.

백율청현은 정신을 잃어 축 늘어진 구한철을 즉시 알아보았다. 11인위원회에 속한 11개의 가주 중 하나인 구가의 소가주였다. 도충기의 몸을 흔들며 정신을 차리라고 말했던 유무영이 백율청현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그러나 유타루체 최고의 가문을 이끄는 인물을 알아본 후, 두려움은 공포로 격상되었다. 옷이 찢어지고 머리가 헝클어졌을 뿐 아니라 피를 흘려 얼굴이 창백한 당현추까지 여기로 끌려오다니!

“맞아. 이 세 사람, 한동안 여기 있을 거야.”

그 추측이 옳다고 알려준 단태는 모닥불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은 당현추를 쳐다보다 단태 맞은편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유천주의 집사에게 잘 보여서 나쁠 건 없다. 특히 백율청현은 백율운현으로부터 단태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충고를 잊을 수 없었다. 유천주를 설득하여 이곳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단태는 백율청현을 힐끔 쳐다봤다.

“백율운현 님은 잘 계셔. 그냥 잘 계신 정도가 아니야. 천황패를 받았으니까.”

“…천황패?”

가주보다 더 강력한 권한을 의미하는 천황패가 백율운현에게 주어졌다? 그 사정은 모르지만 백율청현은 백율운현이 무사히 유타루체로 돌아갔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집사님?”

유무영이었다.

단태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궁금해 죽겠어요. 저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요. 집사님은 잘 아시잖아요.”

유무영은 유가의 소가주로서의 자존심을 접었다.

그 점을 눈여겨 본 단태는 반가, 백율가 그리고 백중파가 손을 잡고 당현추를 당가의 가주 자리에서 끌어내렸다고 설명했다. 포위당해 죽을 뻔한 그를 유천주가 구해서 이곳으로 데려왔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느새 자러 갔던 명종태까지 와서 백율청현, 유무영과 함께 단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백율청현은 뿌듯함에 허기까지 잊었다. 이번 사건으로 당가가 휘청거릴 테니, 백율가가 그 자리를 차지할 터였다.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저…….”

명종태였다.

“할 말 있어?”

“…저희들은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았거든요. 여기 상처 좀 보십시오. 백율 형님은 열각수의 화염에 머리카락이 타버렸습니다. 무영이는 변환마어에 홀려 익사할 뻔 했습니다.”

“그래서?”

“유천주 님께 잘 말씀 좀 해주십시오.”

“맨입으로?”

그 말에 명종태는 물론 백율청현, 유무영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곳을 벗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유천주를 모시는 저 녀석이 저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 사람은 단태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늘어놓았다. 돈, 지위, 명예 그리고 여자 등 다양한 제안이었는데 조금도 단태에게서 흥미로운 표정을 끌어내지 못했다. 뚱하고 심드렁한 얼굴은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뭘 원하십니까?”

백율청현이 물었다.

“하나도 바뀌지 않았어. 너희들 전부.”

차가운 목소리.

“…….”

“유천주 님이 왜 이곳으로 데려왔는지, 왜 죽이지 않고 살려뒀는지, 왜 우리를 청소하라고 하셨는지 생각 좀 해봐.”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단태의 모습이 흐릿해지더니 세 사람은 천융지에 찔려 몸이 딱딱해졌다. 벽으로 가서 숨겨진 문을 연 단태는 몸만 돌려 세 사람을 쳐다보았다.

“신입들과 함께 사이좋게 우리를 청소하면서 깊이 생각해보는 게 좋을 거야.”

당현추와 구한철, 도충기를 가리킨 단태는 문 너머로 사라졌고, 문은 소리도 없이 닫힌 후에 사라져버렸다.

@

잠들지 않은지 벌써 열흘이 넘었다.

몸이 뻣뻣하거나 눈 안쪽이 바늘로 콕콕 쑤시는 것 같은 아픔도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 변화는 격렬했지만 곧 자연스러워졌다. 잠을 자지 않고도 살 수 있음을 이제야 배운 셈이었다. 낮에는 주로 어두컴컴한 지하실이나, 서재나 도서관 깊숙이 처박혀 있었고, 밤에 달과 별 그리고 어둠이 지배하는 도시의 거리로 나왔다.

커다란 고민거리였던 급속한 노화는… 우연한 기회에 새로운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잠길 정도로 술을 마신 후, 마법으로 얼굴을 비롯해 몸을 젊게 유지하는 법을 잊었더니, 누구도 그가 누천파라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했다. 누천파라는 이름에 걸린 무게를 잠시 옆으로 밀어놓을 수 있다는 점은 추한 얼굴로 쏟아지는 시선을 이겨낼 만큼 매력적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