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267화 (267/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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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벌에 대해서 알게 된 건, 그 늙은 하인이 죽고 난 후였다. 여왕벌은 벌집 하나에 딱 한 마리라는 설명은 어린 그에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물었다. 또 하나의 여왕벌이 태어나면 어떻게 되느냐고. 벌집이 둘로 나누어진다는데, 그게 바로 분봉이었다. 벌집 하나에 두 마리의 여왕벌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장추는 백중거를 쳐다보았다. 이곳 광장 뿐 아니라 도시 전역에 퍼져 있는 백중파의 사람들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여왕벌은 바로 저 건물에 있을 것이다.

백중파가 단기간에 기존 조직의 견제와 폭력을 극복하고 신흥 세력으로 명성을 떨친 이유는…… 바로 자유롭다고 스스로 믿는 저 사람들을 일벌로 만들어버리는 능력 때문이리라. 백중이라는 작자는 어디에선가 여왕벌의 능력을 익힌 게 분명했다.

마법일까?

마둔수탑의 계승자로서 다른 마탑의 은밀한 마법의 특징까지 빠짐없이 배웠기에 그런 마법은 존재하지 않음을 잘 알았다. 일시적 최면은 가능하지만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원하는 대로 이끄는 마법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 마법이 있었다면, 지배자가 되고자 그 마법을 익히려는 자들이 줄을 섰을 터였다.

새삼 백중이라는 자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막대한 자금,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장악력, 조직을 꿰뚫는 통찰력 그리고 기존 조직의 생리를 파악하여 적절히 흔드는 정치력까지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었지만, 장추가 관심을 갖는 건 여왕벌의 능력이었다.

‘내게도 그런 능력이 있었으면.’

틈이 날 때마다 백중의 뒤를 캐보리라 마음먹고 돌아선 그는 자제력을 발휘해 달려들지 않았다.

“안녕?”

“…누구신지?”

장추는 일부러 모른 척했다.

놈이었다!

어떻게 여기 있을까? 아, 그래! 여왕벌은 일벌과 연결되어 있는 거야. 일벌이 느끼는 건, 여왕벌도 느낄 수 있는 거지.

“백중.”

“아, 백중파의……?”

“맞아.”

“저는 장추라고 합니다. 한데, 무슨 일이신지…?”

장추는 백중이 자신을 훑어보고 있음을 눈치 챘다. 그가 이끄는 벌떼를 건드린 이유를 알기 위해 직접 찾아온 것이다. 혹시 그가 진짜 신분을 알아차리지는 않을까 겁이 났지만, 애써 대범한 척했다.

“경고하러 왔지.”

“…뭐라구요?”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어. 직접 범죄를 저지른 적은 없다는 사실 또한 알지만, 상당히 많은 범죄의 배후에 당신이 있음 또한 잘 알고 있지. 그리고 당신이 죽음의 마법사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

장추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보통 사람의 눈에 자신은 괴상한 노인에 불과했다. 누구도 죽음의 마법과 관련시키지 않았건만.

“오늘 내로 유타루체를 떠나라. 그러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알겠소.”

백중이 내뿜는 기세에 장추는 굴복하고 말았다. 대답이 조금만 늦었다면 백중에게 당할 것만 같았다. 종종걸음으로 광장을 벗어난 그는 최대한 속도를 내어 혹시 있을지 모를 미행을 떨친 후에 동쪽 성문으로 빠져나갔다.

유청림 깊은 곳으로 들어간 그는 장추를 버리고 누천파로 돌아갔다. 두 번 다시 장추라는 이름으로 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니지 않을 생각이었다. 다시 성문을 통해 유타루체로 돌아온 그는 주위를 살폈다. 백중이라는 자가 나타나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 공포는… 머리로 설명이 불가능했다. 쥐가 고양이 앞에 서면 달달 떨다가 몸이 얼어버리는 본능적 두려움 같았다. 오랫동안 비어 있었던 그의 방으로 들어선 후에야 오줌까지 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형에게 지기 싫어 어릴 때부터 배짱을 키웠던 그가 겁에 질려 오줌을 싸다니. 그 자신도 놀랄 일이었다.

지시를 받은 하녀가 채운 욕통으로 뛰어든 그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는데도 몸의 떨림이 가라앉지 않는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열기가 피부를 어루만지자 서서히 불안이 사그라졌다. 얼굴을 푹 담갔다. 숨이 찰 때까지 기다렸다. 가슴이 터지기 직전에서야 물 밖으로 몸을 일으킨 그는 거칠게 헐떡거렸다.

몸을 닦고 옷을 대충 걸치고 밖으로 나온 누천파가 다다른 곳은 조각상 앞이었다. 회백색의 대리석상은 움푹 들어간 벽 안쪽의 공간에 서서 두 팔을 앞으로 펴고 힘차게 외치고 있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누가가 배출된 최강의 마법사, 누가 출신으로는 처음이자 마지막 천마였던 누청준은 이제 조각상 신세로 가문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릴 때, 형과 자주 와서 손바닥이 닳도록 빌었었다. 훌륭한 마법사가 되고 싶다는 소원 때문이었다.

갑자기 솟구친 충동에 누천파는 도끼를 가져와 조각상을 박살냈다. 집사와 하인, 하녀 들이 수군댔으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토록 간절하게 빌었는데, 왜 결과는 이 모양일까?

구경꾼들은 사라졌다.

유명한 석공의 작품이었던 조각상은… 수백 개의 파편으로 흩어져 원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누천파는 자기 꼴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더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서, 아들로 인정받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 그를 이 지경으로 몰고 온 것이다.

연못 쪽에서 첨벙 소리가 들렸다.

누천파는 도끼를 쥔 채로 연못가로 향했다. 분풀이를 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몸을 이끌고 연못 밖으로 나온 형체들을 본 그는 도끼를 놓고 말았다.

바싹 마른 시체였다.

더 놀라운 건, 체액이 빨려 오그라진 그 시체들이 낯설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들이었다! 륜사를 부탑주의 자리에서 내쫓기 위해 누천파가 하나씩 죽였던 사람들.

무덤 깊이 묻혀 있어야 할 놈들이 왜 움직일까? 혹시 죽음의 마법사가 저들을 일으켜 세웠을까? 그래, 사령종인이라는 마법을 쓰면 시체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 어떤 녀석이 저 시체들을 망인으로 만들었을까? 이곳에는 왜 보냈을까?

그 뻣뻣한 시체들의 무릎이 기괴한 각도로 꺾이며 그들이 무릎을 꿇는 순간, 누천파는 기이한 감촉에 부르르 떨었다. 저 시체들에게서 흘러나온 보이지 않는 끈이 몸에 와 닿은 느낌이었다.

이어서 마음 안쪽 깊은 곳에서 찰칵 소리가 나며 무겁고 거대한 자물쇠가 풀리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도 힘으로는 열어젖힐 수 없는 묵직한 철문이 열리는 느낌과 함께, 누천파는 그들이 누군지… 왜 여기 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누천파를 섬기기 위해 찾아왔다.

그들은 누천파를 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내방한 자들이었다.

- 죽음의 왕

누천파는 마음을 울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성대로, 혀와 입술로 낸 소리가 아니었다. 그들의 마음이, 존재 자체가 떨림으로써 내는 뜻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왕’이라는 단어엔 기묘한, 꼭 들어맞는 울림이 담겨 있었다. 죽음이라는 수식어가 꺼림칙하지만. 아니,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이미 죽음의 마법사로서의 삶을 선택했기에.

누천파는 왕으로서 그들을 받아들였다. 끔찍한 외모를 가진 그들을 최초의 백성이자 신하로 맞이했다. 단순히 왕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이유조차 알 수 없는 지독함 공포를 안겨준 그 백중이라는 작자 때문이었다. 그는 평범한 개인이 아니었다. 그는 광장에 있던 사람들,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 위에 우뚝 선 왕이었다.

왕과 싸우려면 왕이 되어야 하는 법.

그때, 누천파에 의해 죽었다가 되살아나 누천파 앞에 무릎을 꿇었던 시체에게서 거무스름한 안개가 흘러나왔다. 패혈운보다 옅은 그 안개는 서서히 사방으로 퍼졌다. 닿거나 마시기만 해도 지독한 병에 걸리는 안개에 노출된 하인, 하녀 들은 달뜬 기분을 이상히 여길 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갑작스런 인기척에 누천파는 왕으로서 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연못 속으로, 지하 미로로 사라졌지만, 하나로 묶여 있는 느낌은 여전했다.

‘…나는 혼자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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