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270화 (270/293)

<-- 270 회: 7-19 -->

혹시 거기 명국영이 있지 않았을까?

일중에게 명국영이 어디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했지만, 아직 소식이 없었다.

수염을 기른 늙은 하인이 다가왔다. 시간이 된 모양이었다. 단태를 고개를 끄덕였다. 염려로 속을 태워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 순간에 집중하자. 그런 후에 다시 명국영을 찾을 방법에 매달려도 된다. 대사를 그르칠 수는 없으니까.

단태는 그 방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의 시선이 단태에게로 쏟아졌다.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여 혼란스러운 눈빛을 통해 단태는 저들에게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였을 당가를 무너뜨린 사람을 향한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비록 이 특별한 모임의 수장 역할을 백율가의 대표, 백율운현이 맡았지만 다들 도시의 권력이 어디로 옮겨 갔는지 눈치 챘던 것이다.

“백중입니다.”

단태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신참은 기존 세계를 인정하는 겸손함을 보여야 적응이 쉬워진다.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럼, 앉으세요.”

백율운현의 말에 단태는 마련된 빈 의자에 앉았다. 가장자리였다. 거기 앉은 채로 사람들을 살폈다. 이들은 시장과 더불어 도시를 이끄는 지배자들이었지만, 생김새나 풍기는 분위기가 특출하지는 않았다.

그래, 저들은 거대 조직을 대표할 뿐이다.

그 점을 잊어선 곤란하다.

자연스럽게 안건 토의로 넘어갔다. 백율운현은 능숙하게 시청에 빌려준 대출 자금의 상환 문제를 의제로 내놓았다. 현재 시청의 재정 상황으로는 11인위원회가 공동으로 출자한 자금에 대한 상환이 불가능하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가만히 있자는 말씀은 아니겠지요?”

답청이 물었다. 답청이 이끄는 답가는 마둔수탑을 제외한 유타루체의 군소마탑을 관장하고 있었다.

“당연하지요. 상환에 문제가 생기면, 11인위원회에 속한 가문에도 어려움이 발생하니까요. 다행히도 백중파가 이 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답을 내놓으셨습니다.”

백율운현은 단태를 가리켰다.

급히 몸을 돌리느라 입고 온 화려하고 값비싼 옷이 구겨지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침묵을 지킨 단태는 천천히 일어서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바를 채워주었다.

“본파는 유타루체의 발전을 위해 미력하나마 약간의 돈을 내놓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백만 마전이에요.”

백율운현이 끼어들었다.

사람들은 얼어붙었다. 백만 마전이라니! 하나의 조직이 아무런 조건도 없이, 이자를 낀 상환을 요구하지도 않고 백만 마전을 내놓는다? 그들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도시를 운영하는 시청에 백만 마전을 지원하면, 급한 불은 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단태는 오만한 태도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최대한 애를 썼다.

대혈에 깔린 금괴 중 일부를 무상으로 시청에 주기로 한 결정은 그로서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도시를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주체인 시청이 기능을 잃어버리면 더 큰 혼란으로 막대한 피해를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그 결정을 내렸다. 그가 무룡을 이용해 시청 중앙탑을 무너뜨리는 바람에 입은 피해를 이번 기회에 갚는다는 생각도 한 몫 했다.

“…파주께서 어려운 결단을 하셨소.”

윤가의 가주 윤형학이었다. 윤가학관을 운영하는 윤가는 규모에 비해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가문이었다.

“유타루체를 위한 그 마음, 대단합니다.”

정가의 가주 정이도였다.

“그 자금의 출처를 알고 싶은데, 말할 수 있소?”

구가의 가주가 거칠게 말했다. 자금 출처는 상식과 관습에 어긋나는 질문이지만,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심지어 백율운현조차 백만 마전이라는 거금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고 싶어 했다.

“천명전의 대신관과 유달리 가까운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친해졌는지 알려주신다면, 저도 알려드리죠.”

“…….”

구백주는 입을 꾹 다물었다.

영종추와 구백주가 형제처럼 친하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만, 대신관관 유력 가문 가주가 어떻게 가까워졌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구백주를 바라보며 왜 대답을 하지 않을까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율운현이 침묵을 깼다.

“첫 번째 안건을 이 정도로 마무리 하고, 두 번째 안건이자 오늘의 마지막 의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미 예상하신 분도 계실 테지만, 유타루체는 오랫동안 11개의 가문이 주도적으로 운영해온 도시입니다. 그동안 유력 가문들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 결과 유타루체는 칠성시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허나, 미흡한 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해서, 오늘 과거는 잊고 밝은 미래로 옮겨가기 위해 11인위원회가 아닌, 12인위원회로의 재탄생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답청이었다.

“적절한 제안이군요.”

윤형학이었다.

“찬성이오.”

정이도였다.

백율운현과 미리 입을 맞춘 가주들은 즉시 12인위원회를 받아들이겠다고 의견을 표명했으나, 나머지는 충격을 받아 마치 하둔으로 내면의 시간이 늘어난 사람처럼 멍한 얼굴로 얼어붙었다.

천천히 그들끼리 시선을 교환한 후에야 구백주가 일어섰다.

“난 반대입니다.”

영종추와 배다른 형제인 그에게 백중은 구가의 숨겨진 힘으로서의 장당전을 약화시킨 장본인이었다. 소가주의 실종으로 가문 내부가 어수선했지만, 그는 가주로서 백중파가 전면으로 나서지 못하도록 어떻게든 막아야 할 형편이었다.

“도가도 반대요.”

가주 도고흥은 저 건방진 구백주의 의견을 따라가는 형세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은밀하게 용신전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백중파 때문에 12인위원회로 바뀌는 걸 원치 않았다.

내부 문제로 참석하지 않은 당가를 제외하면 10개의 가문 중 찬성은 백율가, 정가, 답가, 윤가였고 반대는 구가와 도가였다. 망설이는 가문의 뜻에 두 번째 안건의 운명이 달려 있었다. 명가, 유가, 그리고 진가, 양가는 쏟아지는 시선을 애써 못 본 척했다.

그 순간, 단태는 전성을 펼쳤다. 그 방에 모인 사람들 중 명가와 유가의 가주에게만 목소리를 전달한 것이다.

-사라진 소가주를 찾고 싶지 않습니까?

흠칫 놀란 유마찬과 명연철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 사람은 잠시 후에야 안건에 정신이 팔려 갑론을박 논쟁을 벌이는 가주들이 그 목소리를 듣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찬성하시면 소가주는 사흘 내로, 안전하게 돌아올 겁니다.

그제야 두 사람은 백중을, 단태를 응시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인 단태는 두 사람의 표정 변화를 찬찬히 읽었다. 가문의 입장과 아들, 둘 중 무엇을 택해야 하는지 두 사람은 고민하고 있었다.

이윽고 결정을 내린 두 사람은 손을 들어 백중파의 입성과 12인위원회의 출범에 찬성을 표했다. 분위기를 살피던 진가, 양가까지 동의를 하자 백율운현은 내부 규칙에 의거해 안건을 통과시켰다. 구백주와 도고흥이 탁자를 내려치며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다른 가문들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동쪽과 북쪽으로 난 문으로 나가버렸다.

유마찬이 다가왔다. 눈빛은 흔들렸고, 목소리는 두려움으로 떨리고 있었다.

“…혹시 전성이었습니까?”

“식견이 대단하십니다.”

“…….”

다리가 휘청거린 유마찬을 단태가 잡아주었다.

술이나 퍼마시고 싸움이나 해대는 일개 폭력조직이 몸집을 부풀린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했건만, 백중파를 이끄는 이 사내가 천마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라는 사실에 유마찬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가 알기로 전성은 몇 가지 다른 마법과 함께 천마만이 가능한, 그래서 천마라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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