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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죠?”
뻔히 이곳으로 온 목적을 알면서도 단태는 물었다.
사람들은 반우현과 백율운현에게 눈짓을 했다. 두 사람이 나서서 이야기를 하라는 뜻이었다.
“내가 할게.”
백율운현이 입을 열었다.
“여긴 공식적인 자리입니다. 전 유천주님의 대리인으로 왔으니, 반말은 곤란합니다.”
딱 잘라서 말하는 단태.
“그, 그렇군요. 12인위원회의 대표로서 말씀드리지요. 우리는 유천주님께서 왜 대리인을 이곳으로 보내셨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단태는 입을 다물고 이 불편한 침묵을 즐겼다. 물론 그에겐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등골을 콕콕 찌르는 듯한 그 불안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그를 제외한 권력자들이었다.
“말씀드리죠.”
또 다시 뜸을 드린 단태는 참다 참다 폭발하려는 백율운현의 입이 달싹거리는 순간, 준비한 폭탄을 터트렸다.
“유천주님께서는 호수를 제한적으로나마 개방하실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반응의 속도가 느렸다. 유천주 때문에 호수 중앙으로 나가지 못했기에 도시가 정체되어 여러 문제가 생겼음을 알기에 그들로서는 환영할 일이었지만, 왜 유천주가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위대한 존재께서는 인간과의 공존을 고려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유타루체의 수호룡으로 불리기를 원하십니다.”
더 큰 폭탄이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밧줄에 묶인 듯 옷자락 구겨지는 소리도 없었다.
그 어떤 도시도 그 도시만의 용을 가진 적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용은 살아가는 방식, 영역 자체가 인간과 달랐다. 용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면, 그건 홍수나 지진처럼 자연 재앙에 가까웠을 뿐, 누구도 용을 복수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았다. 그만큼 용은 인간의 역사에 차지하는 부분이 적었다.
그랬던 용이 수호룡이 되겠다니!
“물론 위대한 존재께서도 바라시는 게 있습니다. 매출 기준으로 2할을 황금으로 원하십니다. 개방된 호수를 통해 들어올 막대한 수익을 고려한다면 2할은 아무것도 아님을 다들 아시리라 확신합니다. 여러분이 받아들이면 유타루체는 그 어떤 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는, 역사상 유일무이한 도시로 성장하게 될 겁니다.”
매출의 2할!
몇 명은 호흡하는 것도 잊은 듯 한참 만에 숨을 몰아쉬었다.
단태는 사람들을 살피며 그들의 속내를 읽고 있었다. 매출의 2할은 가혹한 조건이지만, 호수의 개방으로 확장될 도시의 규모를 고려한다면 장기적으로 저들에게 좋은 조건일 가능성이 높았다. 용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그들에게 나쁘지 않은 조건이기도 했다.
유천주라는 이름으로 받은 막대한 양의 황금은 백중파를 통하여 도시를 위해 재투자 될 것이다. 대혈의 바닥에 깔린 황금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단태는 도시 내부적으로 순환하는 경제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이 방식이 정착한다면 유타루체는 완전히 다른 도시로 성장할 터였다.
“어느 정도의 개방을 말씀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반우현이었다.
“자정부터 동트기 전까지 호수 출입을 금지합니다.”
“그 외에는… 가능하다는 뜻입니까?”
반우현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습니다.”
단태는 그들이 자유롭게 의논할 수 있도록 밖으로 나왔다. 갑론을박 논의 끝에 그들은 단태가 유천주의 이름으로 제안한 요구를 받아들일 것이다.
어머니가 다가왔다.
“할 이야기가 있단다.”
단태는 평소 어머니가 생활하는 방으로 향했다. 책 몇 권과 딱딱한 침대, 낡은 의자가 전부인 거기서 어머니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당장 집이라도 한 칸 얻어서 너와 함께 살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단다. 너도 알겠지만 난 이곳을 책임지고 있고, 날 살려주신 어르신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이곳을 떠날 수가 없구나.”
“그런 이야기였어? 휴우, 얼마나 긴장했는지 알아? 난 또 사고라고 터진 줄 알았잖아. 나가자고 해도 내가 말렸을 거야. 아까 날 찾아온 사람들 봤지? 이 도시를 지배하는 사람들이 내 앞에서 쩔쩔 매고 있어. 내가 바로 용의 대리인이라는 이유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만에 하나라도 불손한 마음을 품고 어머니에게 손을 댈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곳이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난 생각해. 그러니까 여기 있어야 해.”
“…….”
어머니는 아들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자주 올게.”
“…우리 아들, 너무너무 멋있다.”
아들의 손을 꽉 쥐는 어머니.
단태는 어머니를 안았다. 포근했지만, 옛날만큼…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다. 그 순간, 유년 시절… 충동적으로 마음을 불태우는 어린 시절이 끝나버렸음을 깨달았다.
어머니에겐 어머니의 삶이 있다.
그에겐 그만의 삶이 있는 것처럼.
반갑고, 좋고, 기뻤지만 시간이 단절 없이 흐르는 것처럼, 삶도 계속 이어져야 한다.
단태는 가슴이 터질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그가 어머니와 헤어진 이후 죽을힘을 다해 살아남으면서 성장한 것처럼, 어머니도 순진해서 아들, 딸을 잃었던 과거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멋진 여성으로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사실이 너무나 뿌듯했다.
뭐랄까?
어머니를 향한 사랑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지만, 어머니를 향한 존경심이…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커져 있었다.
‘역시 엄마야!’라고 할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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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굵은 기둥에 설치한 마뢰가 폭발하자 방책 전체가 흔들렸다. 정교한 검토 후에 실시된 폭발은 연이어 터졌고, 자욱한 연기가 바람에 실려 사라지자 견고한 문은 조각조각 나누어져 물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150년 이상 호수로의 출입을 막고 있던 문은 오늘 끝장이 나고 말았다.
대마선은 서서히 문이었으나, 이제는 출입구로 변한 곳으로 움직였다. 마둔수탑에서 파견 나온 마법사 일곱이 땀을 뻘뻘 흘리며 대마선을 부드럽게 조종하려고 애를 쓰는 중이었다. 뒤에는 수련사, 종자 들이 필요할 때 공급하기 위해 마력석으로 가득 찬 상자들 옆에 서 있었다.
호수로부터 불어온 바람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그들의 마음에는 유천주가 나타나 이 거대한 배를 침몰시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그 바람 덕분에 잠시 염려를 잊었던 것이다. 좌우로 뻗은 늪지대에는 거대한 악어들이 대마선과 수십 척의 크고 작은 어선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내 선단은 호수 한가운데로 나왔다.
청명한 하늘에 둥실 떠오른 해는 따사로운 빛을 뿌렸고, 깃털 같은 구름은 바람에 쫓겨 달아나는 중이었다. 뱃전으로 찰싹거리는 파도 소리도 듣기 좋았다.
단태는 이물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이 광활한 호수는… 바다 같았다. 이제 유타루체는 호수로 진출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될 것이다.
콜록콜록.
겨울이 코앞에 다가와서 그런지 기침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순간, 만운주가 아레마고에게 유타루체가 들어선 땅을 내준 이유가 감기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단태는 낄낄 웃고 말았다.
“귀띔이라도 주지 그랬어요?”
반갑지 않은 목소리였다.
웃음기를 거두며 몸을 돌린 단태는 성깔을 억지로 눌렀지만 티가 나는 백율운현을 쳐다보았다. 묻지는 않았다.
“…어획권 말이에요.”
백율운현은 억울하다는 말투였다. 벌컥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단태가 가진 영향력과 지위 때문에 참고 있음이 분명히 드러났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시청이 발급한 어획권, 이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허가서를 백중파가 사들였어요. 싼 값에 말이에요.”
“그래서요?”
“당신이 알려준 거잖아요.”
“만약 백율가가 백중파처럼 바뀐다면, 당신에게도 귀띔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과연 백율가가 변할까요?”
“…….”
“실례합니다.”
거머리처럼 끈질긴 백율운현으로부터 벗어난 단태는 반우현을 비롯해 유력 가문들의 대표자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원형의 커다란 탁자 위에는 군침이 도는 요리가 놓여 있었다. 거기에도 금룡어는 빠지지 않았다.
가주들은 한 명도 없었다. 호수 중앙으로 나가는 위험천만한 일에 직접 온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반우현과 백율운현이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