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280화 (280/293)

<-- 280 회: 7-29 -->

“사람들도 여기저기서 모여들고 있어. 설희도 무슨 일인지 전혀 몰라. 아무래도 불길해.”

“설희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당장 거기서 빠져나와. 적당한 핑계를 대면 나올 수 있을 거야.”

“싫어. 설희와 같이 있을 테니까, 방법을 찾아봐.”

“…알았어.”

“가봐야 해. 점점 연락하기 어려워질 거야. 날 유심히 살피는 사람들이 있거든. 아무튼, 나중에 봐.”

연결이 끊어졌다.

골치가 아팠던 단태는 주먹으로 종을 쳤다. 뎅뎅, 소리가 퍼져나가자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종탑을 올려다봤다. 벌써 아래로 뛰어내려 몸을 숨긴 단태는 마음이 착잡했다. 북방 문제가 일단락되자 황제는 또 다른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백중파가 보여주는 방식이 황제에게 그토록 위협적이었을까? 유타루체를 공격할 만큼이나?

아니, 황제는 고민을 거듭할 것이다. 이제 곧 공식적으로 유천주가 물의 도시를 보호하는 수호룡이 되었음이 알려질 테니까. 아무리 황제의 뜻이더라도 용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미친 짓에 동조할 군대는 없으리라.

한참을 달리던 단태가 갑자기 멈췄다.

무언가 이상했다.

그동안, 군라중망과 연결된  사람들의 내면은 도도한 강물처럼 막힘이 없었다. 한 사람과의 연결이 끊어지면 즉시 다른 사람들의 내면이 단태에게로 밀려왔다. 그런데 이 순간, 강물의 바닥이 드러난 것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높은 건물 꼭대기로 올라가서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평소와 다름이 없……, 아니, 평소와는 달랐다. 어딘지 모르게 활력이 없달까? 백중파가 도시 전역에 특유의 분위기를 퍼트린 이후 유타루체의 거리와 골목은 터져나갈 듯한 열정이 묻어나는 곳으로 변했다. 이처럼 고요한 분위기는… 오랜만이었다.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

오래지 않아 단태는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병원 앞에서 찾을 수 있었다. 기침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증상이 심각한 사람은 없는 것 같지만 수백 명이 한꺼번에 몰렸다는 점, 다들 무기력하다는 점은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병원으로 들어가서 의사를 만났다. 마둔수탑이 공식적으로 발급한 패찰을 보여주자 의사의 반응이 달라졌다.

의사는 독특한 감기라고 설명했다. 짧으면 사흘, 길면 보름 만에 나을 거라고도 했다. 감기엔 특별한 원인이 없으며, 몸의 상태가 나빠지면 걸리는 병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병원 밖으로 나온 단태는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조용히 생각하고 싶었다. 마음은… 텅 비어 있었다. 수만 명의 백중파 사람들의 내면으로 붐비던 마음이었건만.

외로움이 커졌다.

이 무거운 적막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하둔이라는 시간 마법으로 밀려드는 사람들의 감정, 기억, 경험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한 단태에게 침묵은…… 고문이나 다를 바 없었다.

단태는 생각에 집중했다.

왜 군라중망이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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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가까이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손님이 걱정스러웠던 여관 주인은 방해하지 말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작년에 있었던 끔찍한 사건 때문에 손이 떨렸다. 며칠 묵겠다면서 방값을 선불로 치른 그 노인은 이틀 뒤 묵을 맨 채 발견되었다. 그 광경을 보고 비명을 지르다 기절했던 여관 주인은 한동안 물도 삼킬 수 없었다. 혹시 이번에도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싶어 가슴이 쿵쿵 뛰었다.

“내가 들어가볼까?”

계두철이 다가와 물었다. 백중과 류씨 삼형제가 상아별로의 큼지막한 건물로 가버린 후, 쓸쓸함을 느끼던 그녀 곁에는 아들이 있었다. 물론 백중이 신신당부한 소윤도 그녀를 웃게 했다. 소윤은 백중의 도움을 받아 학교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래.”

손님 방 들어가기 무서워지면 여관업을 접어야 한다는 말을 떠올리며 주인은 옆으로 물러섰다.

엄마로부터 열쇠를 받은 계두철이 잠긴 문을 여는 순간, 잘 생긴 청년이 웃으며 그를 맞아 주었다.

“무슨 일이죠?”

“그게…….”

계두철은 엄마를 쳐다봤다.

“누구세요? 그 어르신은요?”

여관 주인은 방이 투숙한 사람을 잊지 않았다. 나이는 줄잡아 70대 초반, 혹은 중반이었고 눈빛이 맑고 깊어서 기억에 남는 노인이었다.

“할아버지는 어제 고향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안 그래도 할아버지께서 저더러 주인을 만나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라고 하셨는데, 제가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그래요?”

주인은 마음이 놓였다.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유천주가 무서워서 도시를 떠났던 사람들 중 일부가 돌아왔고 백중파로 인해 도시 전역에 활기가 흐르고 있지만, 그래도 타지에서 유타루체로 들어와 여관에 묵는 사람들의 수는 획기적으로 늘지 않았다. 누가 묵든 제때 방세만 내면 그만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여관 주인과 그 아들을 안심시킨 사내는 문을 닫고 돌아섰다. 얼굴 전체에 담긴 웃음기는 즉시 지워졌다. 그는 안간힘을 다해 의자로 다가가 겨우 앉을 수 있었다.

몸이 저항하고 있었다.

내면 깊은 곳에서 소리가 들렸다. 살려달라는 외침이었다. 암탄주는 눈을 감고 그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내려갔다. 한때 몸의 주인이었으나 스스로 삶을 포기해버린 인간이 흐릿한 형체로 거기 있었다.

“살려달라?”

“위, 위대한 존재시여, 제발 살려주십시오.”

“내가 널 살려주지 않았나? 진창에 빠져 죽어가던 널 말이야. 그 대가로 넌 내게 몸을 주기로 했었지. 벌써 잊은 건가?”

“…아닙니다.”

“그러면 왜 멍청한 짓을 하는 거지?”

“저는 살고 싶습니다.”

“살고 싶다?”

“…이런 곳에 갇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사는 게 아닙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습니다.”

“그래? 진심으로?”

“…….”

그는 겁을 먹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살아온 삶을 후회하고, 또 후회할 뿐이었다.

“선택할 기회를 주지. 죽고 싶다면 즉시 죽게 해주겠다. 허나, 살고 싶다면 여기서 바깥세상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 이상을 바란다면 네가 갈 곳은 어둡고 축축한 무덤뿐임을 잊지 마라. 자, 택해라.”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암탄주는 그를 경멸스런 눈으로 쳐다보다가 거기서 빠져나왔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구차한 삶을 이어가려는 인간의 욕망을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골격을 바꾸는데 사흘이 걸렸다. 원하는 얼굴을 구성하는데 또 사흘이 흘렀다.

천마들은 만천상화진운법에 갇혔다. 그들에 대한 염려는 접어도 된다. 사혈지의 개방도 성공적이었다. 기존의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예상 외로 쉽게 처리했는데도 마음 속 깊은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잠시 후, 여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손을 흔들어 반가움을 표시하는 여관 주인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 그는 도시의 밤거리를 돌아다녔다. 처음엔 걸음이 불편했지만 한 시간쯤 지나자 움츠러들었던 근육이 풀렸다. 그가 처음 간 곳은 마둔수탑이었다.

광장 중앙에 서서 올려다본 마둔수탑은 제법 웅장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두 번 다시 본체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그는 무수한 인간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으리으리한 건물을 보면 기분이 상했다. 인간족의 저력을 느낄 수 있어서였다.

“그 잠재력이 인간족을 삼킬 테니, 재미있겠어.”

마둔수탑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저 고개를 들어 누천파를 떠올렸다. 지금쯤 왜곡된 방식으로 체내에 쌓은 세 종류의 힘이 끝없이 충돌하면서 기괴한 갈증을 일으키고 있을 터였다. 암현력, 패혈력, 흡사력이 일으킨 혼란 때문에 누천파는 피를 찾았을 테고, 십중팔구 그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사람을 죽였다고 암탄주는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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