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281화 (281/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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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행이 없음을 세 번이나 확인한 암탄주는 평범한 집 앞에 섰다. 열쇠로 문을 연 그가 좁은 복도도 들어서자 문을 열며 복도로 나온 비백포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물었다.

“누구십니까?”

“나다, 영고주.”

그 이름을 아는 존재는 하나뿐이었다.

“암탄주님!”

“잘 있었……”

다가와 포옹하는 비백포의 행동에 암탄주는 몸이 얼었다. 용은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만큼 비백포가 인간의 삶에 익숙해졌다는 뜻이리라. 그걸 아는지 비백포는 당황하며 뒤로 떨어졌다.

“…죄송합니다.”

“청무주는?”

“위층에 있습니다.”

“다들 모이라고 전해라.”

“네, 암탄주님.”

계단 위로 달려가는 비백포를 물끄러미 쳐다본 암탄주는 안쪽에 마련된 회의실로 들어섰다.

갑자기, 가슴이 빠개지는 느낌을 받았다. 사혈지에서 얻은 상처를 무리하게 치료한 데다 외모까지 바꾸었으니 심장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인간족보다는 오래 버텨야 한다.

계단 딛고 내려오는 소리가 요란했다. 곧 청무주, 영고주를 비롯해 세탐주, 예명주가 방으로 들어왔다. 부윤성, 비백포, 물항, 무청이라는 인간의 이름이 지금은 필요 없었다. 그들은 암탄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앉아라.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듣고 싶구나.”

“…….”

서로 쳐다볼 뿐 입을 다문 사람들.

결국 청무주가 나서서 황제의 계략으로 그동안 추진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알렸다.

대사마 좌영윤이 경솔한 행동으로 체포된 후, 승상 동예는 새로이 대사마 자리에 오른 동천과 함께 환관장 평용구, 어사대부 패환을 상대하느라 비백포, 부윤성 등을 배척할 뿐 아니라 암암리에 죽이려고 자객을 보내기까지 했다. 그 자객은 말라버린 뒤뜰의 우물 바닥에서 썩고 있었다.

“실망할 것 없다. 어차피 혼란을 일으키려고 그와 같은 일을 꾸몄으니, 대세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게다.”

망설이던 청무주는 백중파와 마둔수탑의 용마 단태 뒤에 유천주가 있다는 소문을 암탄주에게 설명했다.

“…유천주가?”

암탄주는 적잖이 놀랐다. 용혈이 용혈막으로 막혀 있기에 유천주가 살아 있다고 예상했지만, 인간과 관련이 있다니.

예명주가 유천주에게 잡혀 용혈로 끌려갔다가 겨우 살아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영고주와 예명주도 이런저런 말을 보탰다.

분기가 치솟아 심장을 건드리는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암탄주는 자리에서 굴러 떨어져 바닥에 쓰러졌다. 놀란 사람들이 달라왔지만,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용이었다가 인간으로 변하는 중인 암탄주를 누구에게 데려갈 수 있을까?

뜨거운 손이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에서 겨우 벗어난 암탄주는 숨을 길게 내쉬며 일어섰다.

“…괜찮으십니까?”

청무주였다.

“유천주를 끌어낼 방법, 있다.”

“그게 무엇입니까?”

“대리인을 죽여 버리면 유천주가 직접 나타나겠지.”

암탄주는 이미 그 계획의 세세한 부분까지 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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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소식에 유타루체가 들끓었다.

사혈지를 둘러싼 장벽이 무너져 밖으로 나온 망인에 의해 인근 지역이 초토화되었다는 소식에 놀란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황제가 유염상 옆에 무려 백여 마리에 달하는 용, 팔마탑의 마법사를 포함한 20만 대군을 모았고, 그 군대로 유타루체를 공격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도시를 강타한 것이다. 속속 낭설이 아니라는 증거가 도착했다.

즉시 12인위원회가 소집되었다. 예외적으로 반우현과 단태가 각각 시청과 마둔수탑을 대표하여 참석했다. 백중파는 일중이 백중 대신 들어와 앉아 있었다.

“수호룡의 도움이 이토록 빨리 필요할 줄은 몰랐습니다.”

반우현은 단태를 쳐다봤다.

“방군부의 병력은 얼마나 됩니까?”

“총동원령을 내려도 오만 명도 안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단태는 흥분하여 말도 안 되는 억지, 고집, 일방적 주장이 난무하는 회의를 지켜보았다. 골치가 아팠다. 황제와 관련된 문제만으로도 충분히 복잡한데, 백중파 내부를 뒤흔든 사건도 그를 괴롭혔다. 처음 백중파를 세울 때 함께 있었던 광월의 죽음은 모두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광월은 난동을 부리던 주점에서 뛰쳐나가 달려오던 마차에 치어 죽고 말았다.

무엇보다 군라중망이 사라져버린 게 치명적이었다.

회의는 최대한의 노력과 유천주의 도움으로 결론이 났다.

일중이 다가왔다.

“…돌아오셔야 합니다.”

“당분간 저는 단태입니다.”

“조직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제가 거기 없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단태는 고개를 주억거리는 일중을 남겨두고 정처 없이 걸었다. 한참 만에 마둔수탑으로 갔더니… 엉망이었다.

단태는 손수건으로 코를 훔치던 창수에게로 가서 물었다.

“무슨 일이야?”

“…동원령이 내려졌습니다.”

“동원령이라니?”

“탑주께서 모든 마법사, 수련사, 종자는 즉시 유타루체를 떠나 유염상으로 오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

지극히 당연한 반응인데, 왜 예상 못했을까? 머리가 복잡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빨리 움직였다면 절반은 이곳에 묶어둘 수도 있었을 텐데. 아니, 어떻게 하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부탑주실로 올라가는 동안, 빠뜨린 물건을 가지러 온 수련사와 종자 서넛을 봤을 뿐이었다.

공개적으로 당고와 대결하여 얻어낸 용마라는 지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탑주의 명령을 거부한다면 그 즉시 마둔수탑에서 추방당하고 말 테니까.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느낌에 마둔수탑을 벗어난 단태는 평소 자주 찾는 곳으로 향했다. 언제 가더라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곳이라면, 흥분을 갈아 앉히고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으리라.

단태는 소학당으로 들어섰다.

두 개의 대리석 기둥 위로 무지개 형상의 지붕을 얹은 문 사이로 청동상이 보였다. 밧줄에 묶인 청동제 말은 질주하려고 앞발을 치켜든 형상으로 굳어 있었지만, 강렬한 의지는 숨길 수 없었다.

비둘기 몇 마리가 말 등에 앉아 이제 막 소학당 뜰로 접어든 단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점박이 고양이가 살금살금 다가오자 비둘기들은 날개를 후드득 치며 날아갔다. 고양이 단태의 신발을 스치며 또 다른 먹잇감 혹은 장난감을 찾으려고 거리로 나갔다.

위쪽에서 아이들의 암송 소리가 들렸다.

건물 벽에 설치된 계단으로 올라가자 <무무비경>의 한 구절을 외는 소리가 커졌다. 얼마 전 소학당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무무비경>을 다 외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때문에 다들 열심히 외우는 모양이었다.

“아, 소용마님이시다!”

저마다 다른 문양이 새겨진 대리석 기둥이 늘어선 개방형 복도에서 친구들과 함께 누가 잘 외나 내기를 하던 아이들 중 하나가 단태를 발견했다. 아이들은 즉시 단태 쪽으로 달려와 에워쌌다. 열 살 남짓한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 위로 가을 햇살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단태는… 꿈을 이룬 영웅이었다.

아이들의 하나씩 이름을 부르며 어떻게 지내는지, 공부는 제대로 하는지, 집 사정은 어떤지 물어봤다. 그렇다고 친구들 앞에서 꺼내면 곤란한 내용은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들 각자에게 관심이 있음을 은근슬쩍 드러낼 뿐이었다.

이름이 불릴 때마다 아이들의 눈은 빛이 났고, 어깨에 힘이 들어갔으며,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단태는 사소한 친절이 아이들의 삶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매우 궁금했기에, 시간만 나면 이곳을 찾았다.

“오빠!”

소윤이 달려와 단태의 품에 안겼다. 백중이 모습을 감춘 동안, 단태는 백중의 사촌 동생으로서 소윤을 자주 만났던 것이다.

그 순간, 단태는 몇몇 아이들에게서 적개심을 감지했다. 소윤을 향한 시기심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그저 이름이 불리는 것으로 만족하는데, 유독 소윤만 단태가 나타나면 안겼던 것이다.

더 놀라운 건, 품에 안긴 소윤이 그런 아이들을 쳐다보며 혀를 쏙 내민 행동이었다. 그때서야 단태는 소윤이 아이들 사이에서 특별한 위치, 즉 유명한 ‘소용마’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라는 점을 은근히 과시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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