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282화 (282/293)

<-- 282 회: 7-31 -->

단태와 아이들 사이의 원만하고, 풍성하며, 기분 좋은 관계는 소윤의 몸짓으로 깨졌다. 소윤은 그 점을 잘 알았고, 그래서 더 좋아했다. 아이들 위에 자기가 있음을 의식적으로, 또한 무의식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단태는 나중에 개인적으로 소윤을 불러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소윤이 설명을 듣고 태도를 바꿀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은 소윤이 자랑할 만한 사람은 백중과 단태뿐이었다. 부모의 빈자리로부터 오는 텅 빈 마음을 단태를 통하여, 아이들에게 과시함으로써 채우려 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순수하고 순진했지만, 모두 올바르지는 않았다. 소윤처럼 한 부분이 비틀린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모난 마음은 충돌을 일으키고, 충돌은 상처를 남긴다.

상처로 인해 내면이 어두워지면, 둥글둥글하게 성장하지 못하고 특정한 면이 강조된다. 그런 식으로 어른이 되면, 아이들 중 상당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이웃을, 타인을 짓밟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말 것이다.

아이들이 무엇을 느끼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행동하는지 부모나, 교사보다 더 잘 알기에 단태는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선 아이들이 누군지도 파악하고 있었다. 단태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뒤쪽에 서서 장난을 치거나, 침을 뱉으며 다른 아이들을 위협하는 일부 아이들은 말로는, 온화한 설득으로는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뜨거운 맛을 보지 않는다면 스스로 깨닫기 힘든 아이들이었다.

반사적으로 주먹을 휘두르고 욕을 하는 아이들의 내면에도 순수한 열정이 숨어 있음을 알지만, 그 아이들로 인해 피해를 입고 좌절감에 빠져 삶에 대한 희망마저 버릴지도 모르는 다른 아이들을 생각하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각 학년마다 소위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의 명단은 소학당의 교장인 류근묵도 확보하고 있었다.

7학년으로 이루어진 소학당은 각 학년당 백여 명의 학생들을 받았지만, 실제로 공부하는 학생의 수는 몇 배나 많았다. 류근묵은 백중파의 지원을 받아 배우고자 하는 의욕만 있다면 누구든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체계를 고쳤다.

어차피 수업료를 내는 학생은 없기 때문에 수백 명을 한꺼번에 가르쳐야 하는 교사만 힘이 들었다. 그래도 웬만한 학원, 학교보다 임금 수준이 월등히 높을 뿐 아니라, 백중파의 일원으로서 가치 있는 일을 하길 원하는 지식인이 많아서 교사는 부족하지 않았다.

종이 치자, 단태를 에워쌌던 아이들은 빠르게 교실을 찾아서 사라졌다. 텅 빈 복도에 홀로 선 단태는 복도로 난 창문을 통해 교실을 힐끔거리며 교무실로 향했다.

“또 오셨군요.”

아래층에서 올라온 류근묵이 단태 앞으로 다가왔다. 류근묵은 아이들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배척하지 않았다.

“여기 오면 마음이 편안해서요.”

“소용마를 부르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닐 텐데, 이곳을 자주 찾아오시는 걸 보면, 얼른 결혼을 하셔야겠습니다.”

“결혼이요?”

“아이들이 예뻐 보일 때가 바로 결혼해서 아기를 낳을 때니까요.”

“…그렇습니까?”

“제가 괜찮은 처자를 알아보는 중입니다만, 너무 관심이 많아서 걱정입니다. 소용마를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반드시, 반드시 제가 소용마께 어울리는 처자를 찾아내겠습니다.”

류근묵은 농담과 진담을 섞어서 말했다.

한바탕 웃은 단태는 강당으로 향했다. 2층과 3층, 4층까지 뚫어서 만든 강당은 족히 천 명은 수용할 수 있을 만큼 크고 넓었다.

3백여 명의 아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서 절도 있게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열대여섯 살이어서 어른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체격을 가진 녀석들도 제법 있었다. 다들 앞에 선 류근철의 구령에 맞추어 기합을 넣으며 주먹을 뻗자, 강당 전체가 울렸다.

소학당은 백중파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교육기관이었다.

백중파는 병원, 고아원, 요양원을 비롯해 시청이 예산 혹은 관심 부족으로 신경 쓸 수 없었던 분야에 힘을 쏟았다. 그 중에서도 소학당, 중학당, 대학당 등 교육기관은 단태가 의지가 반영되어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졌다. 상류층이 헐값에 내놓은 건물, 땅 등을 사들여 내부 수리를 한 후에 학교로 사용했는데, 깨끗해서 아이들이 공부하기에 좋았다.

백중파가 12인위원회의 한 자리를 차지한 이후, 단태는 대담한 계획 대신 신중하고 점진적인 성장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래도 백중파로 흘러드는 사람들의 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계속 수가 늘어나자, 일중은 최고회의를 통해 진입 장벽을 세웠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백중파의 명성을 이용하려는 목적으로 가입하는 자들을 걸러내기 위한 최소한의 억제책이었다. 일중의 계획은 효과적이었다. 이후 증가세가 한풀 꺾였다.

외부 간섭으로부터 벗어나자, 백중파는 다른 가문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11인위원회가 예전에 백중파를 견제하려고 만들었던 법을 하나씩 무력화 시켰다. 지식 제한법, 교육 허가제, 이동 금지법 등이 차례로 유명무실해졌다. 몇 개의 가문들이 방해하려고 기를 쓰고 달려들었지만, 암암리에 시장, 백율가, 명가, 유가 등의 지지를 받고 있는 백중파의 기세를 이기지는 못했다.

그 법의 효력이 사라지자마자 백중파는 내부 조직을 혁신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제도적으로 지식의 교환과 통합을 장려했고, 누구나 가르칠 수 있도록 공개적인 배움의 장을 마련했으며,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도록 기존 관습이나 규칙 따위를 뜯어고쳤다.

그 변화의 결과는 비약적인 매출, 이익의 증대로 나타났다. 그로 인해 다른 조직도 백중파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백중파는 또 다른 도전을 감행했다.

시청은 물론 기존 지배층이 포기하거나 싼값에 내놓은 서쪽 방책 너머 어획권을 모조리 사들인 것이다. 수초를 캐거나 물고기를 잡는 일도 시청이나 관련 기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유천주로 인해 아무도 호수로 나가지 않으려고 했기에 어획권의 가격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단태가 직접 유천주와의 계약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자, 그로 인해 어획권의 가격이 수십 배, 수백 배로 뛰었다. 상류층은 부랴부랴 어획권에 관심을 가졌으나 이미 백중파의 수중에 들어가 버린 후였다. 호수로부터 나오는 이익의 대부분이 백중파의 몫이었지만, 백중파는 그 돈을 도시 전체의 발전을 위해 썼기 때문에 상류층만 그 일을 놓고 불평을 터트렸다.

호수로 나가는 길이 열리자 도시 내부의 균형이 달라졌다.

서쪽 지역의 땅값이 몇 배로 뛰었다. 유천주로 인해 방책에서 가까울수록 부동산 가격이 싸고, 멀수록 비쌌는데 그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백중파가 대규모 투자로 서쪽 지역을 정비하자, 북쪽이나 동쪽, 남쪽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었고, 그로 인해 부동산 가격은 폭등했다. 부유층은 서쪽 지역에 건물이나 땅을 구입하려고 애를 썼는데, 대부분 백중파의 소유여서 싼 값에 사들일 수가 없었다.

호수로의 확장이 가져올 부의 규모를 짐작한 지도층은 앞을 다투어 서쪽 지역을 사들이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을 뿐만 아니라, 단태와 일중을 비롯해 백중파 수뇌부를 설득했다. 단태는 못이기는 척하며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지만, 헐값에 팔 생각은 없었다.

그 조치를 통하여 백중파는 서쪽 지역의 건물을 사들였을 당시보다 수십 배나 많은 돈을 회수할 수 있었다. 단태는 그 돈으로 상아별로를 비롯해 도시 전역의 거점이 될 만한 건물과 땅을 사들였다. 부유층의 돈으로 그들의 건물, 땅을 사들인 셈이었다. 그로 인해 백중파는 도시 전체의 부동산 중 상당량을 소유하게 되었다.

단태는 개인이 아니라 백중파가 땅을 소유하도록 만들었다.

그런 조치는 소학당을 비롯해 수입이 전무하나 지출이 막대한 기관을 안정적으로,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단태가 취한 것이다. 나무를 심어 공원을 만들거나, 운하의 바닥을 파내는 수로 공사 역시 대량의 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단태는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백중파에 소속된 사람들, 특히 서쪽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일정한 금액을 백중파로 가져온 것이다.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백중파가 자신들이 사는 지역을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 붓고 있는지 잘 알았다.

그래서 늘어난 수입의 일부를 백중파에 전달한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소학당을 비롯한 교육기관이 무료로 아이들에게 글과 지식을 알려준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어떤 사람들은 소학당으로 쌀과 호박 따위를 가지고 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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