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태신곡-283화 (283/293)

<-- 283 회: 7-32 -->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황제였다!

난간에 기대어 쳐다본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높은 첨탑에서 화염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방책 입구의 위치를 알려 호수로 나간 어선들이 무사히 돌아오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황제의 마음만 돌리면 될 텐데.”

쉽지 않다는 점,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때, 바닥이 흔들렸다.

미세한 진동이지만 단태는 놓치지 않았다. 멀리서 지진이 일어났을까? 용족 특유의 예리한 감각은 아니라고 단언했다.

진동은… 소학당 지하에서 올라왔다.

눈살을 찌푸린 단태는 최고의 속도로 달렸다. 잔상을 길게 남기며 질주한 그는 금세 각종 기구와 물품이 채워져 있는 지하 창고에 도착했다. 다시 한 번 진동이 느껴졌다.

자물쇠를 손으로 잡고 비틀어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선 그는 빛을 밝히는 간단한 마법을 펼쳤다. 태양이라도 뜬 것처럼 어둠이 물러가고, 흐릿한 그림자만 기구, 물품 아래로 떨어졌다. 단태는 조금 전 느낀 진동의 근원지로 걸어갔다.

화강암 재질의 바닥돌이 갈라져 있었다.

바닥 돌을 위로 밀어올린 단태는 깜짝 놀라 숨을 멈췄고, 한참 후에야 숨을 길게 내쉬었다.

마뢰였다!

마법진이 그려진 둥근 가죽 중앙에 마력석이 박힌 형태의 마뢰 수십 개가 바닥 돌 아래의 구덩이에 쌓여 있었다. 이미 몇 개는 탁탁 불꽃을 튀고 있었다. 터지기 직전이라는 뜻이다. 일일이 마뢰를 무력화 할 시간은 없었다. 하나라도 터지면 나머지도 연달아 폭발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마뢰로는 지하 창고에 있는 물품을 부수거나 태울 수 있을 뿐이다.

그 순간, 벽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단태는 풍갑을 펼쳐 허공으로 높이 뛰어올랐다. 쌓인 물품을 우회할 여유가 없었다. 가볍게 착지한 그는 갈라진 벽돌을 빼냈다. 그 안에도 수십 개의 마뢰가 당장이라도 폭발할 기세로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이런!”

단태는 돌아서서 창고 전체를 훑었다. 마력이 눈에 몰리자, 시각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았다. 벽과 기둥에 균열 자국은…… 모두 27군데였다. 바닥에도 그만큼의 균열이 있을 터였다. 거기에 전부 마뢰가 채워져 있다면, 또한 그 마뢰가 연쇄적으로 폭발한다면…… 소학당은 붕괴된다.

저 위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순수한 마음으로 배우고 익히는 수백 명의 아이들은 이 건물과 함께 생매장되고 말리라.

단태는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두 개의 심장을 가져서 인간 이상의, 용에 가까운 능력도 이 순간 쓸모가 없었다. 마간을 통해 익힌 마법 이론을 머릿속으로 뒤졌다. 마뢰를 한꺼번에 중지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 거대한 기둥에 박힌 마뢰 하나가 터졌다.

쾅.

이어서 다른 마뢰들도 폭발했다.

쾅쾅쾅쾅쾅!

단태는 지하 창고 중앙으로 달려가는 동시에, 바람의 정령왕을 소환했다.

“소요왕령!”

가슴골을 드러낸 여인이 공간을 뚫고 나타났다.

“폭발을 막아야 해. 마뢰가 터져도 소학당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할 힘이 필요해!”

- 이 거대한 건물을 떠받친다? 너, 그러다가 죽을지도 모른다.

소요왕령은 웃으며 말했다.

“상관없다.”

단태는 소학당을 잃고 싶지 않았다.

-좋아.

소요왕령은 돌풍으로 변해 지하 창고를 채웠다. 마뢰가 연이어 터지는데도 그 충격은 지하 창고 내부를 휩쓸 뿐, 위로는 올라갈 수 없었다. 그러나 마뢰의 폭발로 소학당을 지탱하는 수십 개의 기둥이 무너지는 바람에 건물은 주저앉기 시작했다. 소요왕령은 건물의 균형을 이루며 지탱하려 애를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단태는… 이를 악물고 물의 정령왕을 불렀다.

-죽고 싶어 환장한 존재여, 내가 왔노라.

수탄왕령이 나타났다.

“…입 다물고, 이 건물이 쓰러지거나 붕괴되지 않도록 막아!”

-그토록 죽기 원한다면야.

수탄왕령은 물의 기둥이 되어 마뢰가 부순 돌기둥을 대신했다.

두 정령왕 덕분에 소학당은 크게 기우뚱했지만 원래의 균형을 되찾았다. 그러나 단태는… 힘줄이 불거지고, 핏줄이 도드라졌으며, 피부가 쪼그라들었다. 심장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마력을 짜내어 두 정령왕에게 보내고 있지만, 고갈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마뢰의 폭발은 지하 창고의 벽 뿐 아니라 그 너머 돌과 흙까지 날려버렸다. 소학당을 중심으로 커다란 구덩이가 만들어졌고, 소학당은 그 구덩이 위에 둥실 떠 있었다. 맹렬한 바람과 회전하는 물기둥이 소학당을 떠받치고 있었고, 그 중심에 단태가 두 팔을 벌린 채 서 있었다.

땅이 요동치는 충격이 잦아들자, 소학당을 둘러싼 건물에서 일하거나 살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공중에 떠 있는 소학당을 발견했고, 그 중 한 사람이 소학당 아래 구덩이에 있는 단태를 가리켰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류근묵은 안전을 확인하려고 계단으로 내려왔다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소용마 홀로 소학당을 떠받치고 있다는 믿기 힘든 사실을 알아차렸다. 전후사정을 재빨리 파악한 그는 사람들에게 사다리를 최대한 많이 가져오라고 부탁했다.

사람들도 금세 류근묵의 뜻을 알아차렸다. 위로 올라간 류근묵은 소학당이 균형을 잃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면서 아이들을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교사들과 계획을 짰다.

곧 탈출이 시작되었다.

수십 개의 사다리를 통해 아이들은 엉금엉금 기어서 소학당을 벗어났다. 그 중 한 아이가 발을 헛디뎌 대롱대롱 매달리자, 사람들이 안타까워 소리를 질렀다. 그때, 물기둥의 일부가 아이의 몸을 위로 밀어 올렸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 진귀한 장면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특히 마법사들은 대규모 마법의 흔적 때문에 찾아왔다가 두 눈으로 건물을 지탱하는 단태를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은 특히 바람의 정령과 물의 정령이 건물을 공중에 띄우고 있음을 알고는 침만 꿀꺽 삼켰다.

류근묵이 마지막으로 빠져나오자, 사람들이 일제히 외쳤다.

“다 빠져나왔습니다.”

단태는 물과 바람의 막 너머로 사람들을 힐끔 쳐다봤지만, 입을 열 힘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래도 무사히 빠져나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마력이 끊겨 두 정령왕이 사라지자, 소학당은 단태 위로 쏟아졌다. 대리석 기둥과 화강암 덩어리가 지하 구덩이를 메우며 먼지를 일으켰다. 짙은 안개 같은 흙먼지가 사람들까지 덮쳤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모두가 침묵에 빠졌다. 그들은 기적을 목격했다. 한 사람이 거대한 건물을 지탱하며 아이들을 구해냈다. 그러나 영웅은 건물에 파묻혔다. 저 거대한 흙더미가…… 폐허가…… 영웅의 무덤이 되고 만 것이다.

류근철이 시꺼먼 손으로 건물 잔해로 뒤덮인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깨어난 사람들이 가세했고, 관련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도구를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아이들은 울고 있었다.

류근묵은 그런 아이들 옆에 서서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에 힘을 주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백중은 죽었다는 머리의 판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눈물이 흙먼지로 뒤덮인 얼굴을 타고 한 방울이라도 내려가면 두 번 다시 백중을 보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손톱이 빠지고 거기서 피가 나도록 돌과 흙을 파헤치던 류근철이 고개를 쳐들고 포효했다. 주인을 잃은 사나운 짐승의 울부짖음이었다. 가슴이 뜨거워진 사내들이 따라서 울었다. 그들은 늑대였다. 대장을 잃은 늑대 수백이 도시의 하늘을 울리고 있었다.

포효를 멈추고 몸을 일으킨 류근철은 도시의 중앙을, 그리고 북쪽을 쳐다봤다. 사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뜻은 분명했다. 이런 짓을 꾸민 상아별로 놈들을 응징하려는 것이다.

류근묵이 동생에게 걸어갔다.

“지금은 누구도 날 막을 수 없습니다.”

“난 소용마를 구하려는 거다.”

류근철을 스치듯 지나간 류근묵은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돌을 밀었다. 그 행동에 사람들은 복수를 접고, 다시 구조 작업에 돌입했다. 주먹을 꽉 쥔 류근철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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