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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청과 11인위원회가 무엇을 의논하고 있는지 책사께선 알고 있습니까?”
“…압니다.”
“말씀해 보시죠.”
“강화 조건일 겁니다.”
“그 조건이 무엇이라고 봅니까?”
“…아마도 백중파의 괴멸이겠지요.”
“하하, 역시 책사로군요. 이처럼 똑똑하니 말입니다. 맞습니다. 저들은 살아남기 위해 백중파를 없앨 겁니다. 조직만 없애느냐?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저들은 우리를 족쳐서 끝내 죽여 버릴 겁니다. 벌레를 잡아서 없애듯이 말입니다. 이러니 결론은 하나뿐입니다.”
묘홍은 잠시 뜸을 들여 사람들의 이목을 자신에게로 집중시켰다. 쾌감이 가슴 안쪽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일중은 그 결론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가만히 있었다. 그 결정이야말로 백중파가 그동안 추구한 방식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공들여 쌓아올린 탑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꼴이었다. 그럼에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취할 수 있는 선택 중 하나라는 점은 분명했다.
“무장 봉기.”
묘홍의 말이 회의실 끝까지 천천히, 힘 있게 퍼져나갔다.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부는 묘홍이 이미 알렸는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일중은 눈을 감았다.
20만 대군을 이끄는 황제는… 필요하면 더 많은 군대를 동원할 수도 있는 제국 최고의 권력자였다. 또한 황제를 돕는 육성시, 팔마탑 등도 막강한 세력을 자랑했다.
무장 봉기에 성공해서 시청과 도시 전역을 장악한다고 해도 과연 황제의 군대와 맞설 수 있을까? 자칫 잘못하면 유타루체는 지도에서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묘홍은 구체적인 계획까지 끄집어냈다.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무장 봉기를 일으킬지 이미 세부사항까지 결정하여 이곳으로 온 것이다.
일중은 가만히 있었다.
현재로선, 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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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파의 수뇌부가 무장 봉기 계획을 의논하느라 여념이 없는 동안, 반우현은 첩자로부터 그 내용을 전해 듣고 있었다. 오래 전부터 어떻게든 백중파 내부에 첩자를 만들려 했음에도 실패했는데, 최근에야 거물급 인물이 반우현에게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무장 봉기?”
겉으로는 ‘풋’ 웃었지만, 가슴 깊은 곳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감히!
첩자가 보낸 심부름꾼을 돌려보낸 반우현은 팔짱을 끼고 창가에 서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서쪽 하늘은 붉게 물든 채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단태가 소학당 지하에 파묻힌 지 벌써 사흘이 지났는데도 유천주는 나타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유천주가 복수를 위해 도시로 날아올까?
단태가 죽은 그날에는… 반우현도 안절부절 못했다. 유천주가 시청은 물론 도시 전체를 깡그리 부수지는 않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두려움에 떨며 밤을 지새운 후, 멀쩡한 시청과 도시를 보며……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이틀이 지났을 때, 반우현 뿐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 유천주는 대리인의 죽음을 모르거나 알아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반우현도 그들 중 하나였다.
반우현은 커다란 탁자로 다가갔다. 탁자 위에는 유타루체와 호수, 성문 동쪽의 지형이 조그맣게 만들어져 있었다. 물의 도시는 거대한 힘 사이에 낀 꼴이었다. 서쪽의 유천주, 동쪽의 황제. 문제는 어느 쪽이 강할까, 하는 점이었다.
건방진 마법사 때문에 화가 난 용이 인간은 상상도 못할 마법을 펼치는 바람에 만들어진 사혈지를 생각한다면, 유천주 쪽에 붙어야 유타루체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주가 용족을 집어삼켰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금도 유천주가 그토록 강할까? 황제의 군대를 진멸할 만큼 유천주가 강한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는 게 현재 고민의 핵심이었다.
비서관이 백율운현의 도착을 알렸다.
곧 집무실로 들어선 백율운현은 탁자를 힐끔 쳐다보더니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뭐라고 하던가요?”
“황제는 미쳤어.”
“…….”
황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강화 조건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황제의 군영으로 갔다가 돌아온 백율운현의 말에 반우현은 소름이 돋았다. 왠지 피 비린내가 코를 자극하는 것만 같았다.
“백중파와 관련된 자들 전부의 목을 원하더군.”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게 물어봤다가 죽을 뻔했어. 황제는 진지해. 만약 우리가 백중파에 소속된 사람들을 죽여서 목을 잘라서 보내지 않으면, 황제가 군대를 몰고 와서 이 도시에 있는 사람들의 목을 자를 거야.”
“백중파에 소속된 사람들…… 노인, 여자와 아이들을 합치면 10만 명이 넘습니다.”
“…알아.”
“그들을 다 죽이는 게 황제의 뜻입니까?”
“그래.”
“…….”
반우현은 꽉 쥔 주먹으로 벽을 쳤다. 벽돌이 갈라지며 사방으로 금이 갔다. 10만이면, 셋 중 하나를 죽이라는 말이다. 기존의 구조를 뒤흔드는 백중파를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분위기에 휘둘러 백중파에 가입한 사람들 모두를 죽이려 한 적은 없었다. 도시의 계승자로서 처음 배운 건, 도시는 땅과 건물이 아니라… 거기 사는 사람들이라는 진실이었다. 사람들이 떠나면 도시는 무너지고 만다.
황제는 왜 그런 명령을 내릴까?
유타루체의 사람들은 제국의 백성이 아닌가?
“난 11인위원회에 참석하여 이 이야기를 알리고 의견을 모을 테니까, 너도 깊이 생각해봐. 그래봐야 결론은 하나뿐이겠지만. 죽지 않으려면 죽여야 하는 게 현실이니 말이야.”
백율운현이 가버리자, 반우현은 밤이 늦도록 고민을 거듭하다 집으로 향했다. 여기저기 기침 소리가 들렸다. 흑액병을 떠올린 그녀는 쿡쿡 웃었다. 황제나 흑액병이나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셋 중 하나를 죽이겠다니. 그렇다면 유타루체는 셋 중 하나만 살아남을까?
반우현은 아버지를 찾았다.
“…어서 오너라.”
침대에 누웠다가 몸을 일으킨 아버지는 기침을 심하게 했다. 아버지를 향한 걱정에 잠시 황제의 요구 조건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괜찮으세요?”
“아무렴.”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이번엔 아버지의 병세가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죽여야 한다.”
“…….”
“자비는 여유가 있을 때에나 취할 수 있는 통치술이야. 살아남기 위해서 뭐든 해야 하는 전쟁터에서 자비는… 멍청한 짓이란다.”
“…알고 계셨네요.”
“20만 군대를 모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직감했지.”
“무려 10만 명이에요.”
“두 배의 목숨을 요구해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다. 도시 전체를 잃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아버지는 힘주어 말했다.
“…알았어요.”
“백중파는… 암 덩어리야. 암 덩어리를 도려내지 않으면 사람이 죽어. 백중파를 없애야 도시가 살 수 있음을 명심해라.”
아버지를 침대에 눕힌 반우현은 밖으로 나오며 마음을 굳혔다. 도시를 위해서라면 뭐든 하겠다고 계승자가 될 때 맹세했었다. 피의 길을 걸어야 한다면, 몸에 피를 묻히고 피의 강을 당당하게 건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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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을 읽은 황제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무엇이옵니까, 폐하?”
마둔수탑의 탑주, 누마탄이 물었다. 승상, 어사대부 등 고위관료와 팔마탑에 속한 다른 탑주들이 그를 노려봤으나 누마탄은 개의치 않았다. 황제의 눈에 들어야 한다는 점을 잘 알았기에 필사적이었다.
“도시의 계승자가 똑똑한 결정을 내렸소.”
“그렇습니까?”
이번엔 승상 동예였다.
황제는 반우현이 보낸 서신을 동예에게 보여주었다. 동예는 있는 힘껏 웃었다. 백중파라는 조직에 속한 사람들 모두를 죽이겠다는 그 섬뜩한 내용이 그 어떤 이야기보다 재미있는 것처럼 보여야 했던 것이다.
“잘 된 일이옵니다, 폐하.”
“경하드리옵니다, 폐하.”
“폐하의 은덕 때문이옵니다.”
금색의 거대한 천막에 모인 사람들은 황제의 눈에 나지 않기 위해, 황제의 마음에 들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손바닥을 비볐고, 혀에 기름을 칠했다. 황제가 보여준 결단력, 북방 문제를 해결한 솜씨, 어린 황제라고 무시했던 고위관료를 제거한 방식 등이 그들로 하여금 비굴하도록 만든 것이다. 좌영윤을 잡은 것처럼, 유타루체를 압박한 것처럼 그들도 황제에 의해 지금의 자리에서 굴러 떨어질 수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